글/ 서아시아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 전 저는 제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련 후 저는 결혼을 회피하는 것이 사실 어떤 두려움에서 비롯됐음을 깨달았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과 함께 생활하면 저의 집착이 드러나게 되고,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한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19년 전 결혼 후, 저는 그런 걱정에 일리가 있음을 곧 알게 됐습니다. 아내와 저는 거의 완전히 다른 유형의 사람이었고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장시간 논쟁을 벌일 수 있었습니다.
때로는 너무나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시련은 모두 제가 넘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계속 버틸 힘을 얻었고, 이 모든 것이 수련의 일부분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때때로 같은 시련에서 거듭 고비를 넘지 못할 때면 극도로 좌절감을 느꼈고 속으로 원망했습니다. ‘왜 아내는 성격이 이렇게 고집스러울까? 왜 내 단점을 더 포용해주지 못할까? 왜 항상 내가 가장 직면하기 싫은 문제만 지적할까?’
하지만 때때로 희망을 보기도 했습니다. 제가 충돌 속에서 자아를 내려놓고 아내의 어려움을 헤아릴 수 있을 때면 갈등이 즉시 해소됐습니다.
이후 저는 점차 사부님의 안배를 깨닫고 감사하게 됐습니다. 만약 제 반려자가 지금 아내보다 부드럽고 저를 쉽게 용서해 주는 사람이었다면 단지 저의 자아를 보호할 뿐, 수련에는 이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는 아내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제가 닦아버려야 할 집착임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지만 저는 자신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인식이 깊어짐에 따라 갈수록 사부님께 감사드렸고 아내에게도 점점 더 고마움을 느꼈습니다. 깊이 숨겨둔 저의 집착을 발견하도록 돕기 위해 아내가 힘든 역할을 맡았음을 알게 됐습니다.
아내는 “당신은 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내 말도 듣지 않아”라고 자주 말했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내가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데!’라며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에야 그것이 사실 사부님의 일깨움임을 깨달았습니다.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은 표면적인 언어가 아니라 전체 수련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과거에 두 사람의 충돌이 문제라고 보았지만, 실제로는 수련을 위해 안배된 환경이었습니다.
문제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습니다. 아내의 일깨움이 저를 많이 변화시켰음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내가 맡은 복잡한 역할을 이해하기 시작했고, 환경을 두 사람이 조화롭게 지내지 못하는 것으로 보지 않고 두 수련자가 이 특수한 역사적 시기에 맺은 인연으로 보게 됐습니다. 문득 우리를 연결하는 기나긴 역사가 느껴졌습니다.
그 결과 저희 관계는 눈에 띄게 개선됐고, 저희는 사부님께서 내려주신 수련 기회에 갈수록 감사하게 됐습니다.
예전에 저희가 사람의 관념(쟁투심, 자아, 체면 유지)으로 문제를 처리했을 때는 구세력에게 빈틈을 주어 가상을 강화시켰지만, 정념으로 대하자 갈등이라는 가상이 사라지고 관계도 조화롭게 변했습니다.
피로라는 가상
아주 오랫동안 저는 매일 1시간씩만 연공했습니다. 2년 전, 저는 스스로 기준을 높여 연공을 2시간씩 했습니다.
출근길 교통 체증을 피하려면 일찍 일어나 새벽 4시부터 연공을 시작해야 했습니다. 서머타임 해제 후에는 3시 30분 시작으로 바꿨습니다.
한번은 단체 법공부 중 어떤 수련생이 제2장 공법을 1시간 동안 연마하는 사람이 있다고 언급했고, 저는 즉시 저도 해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새벽 3시에 일어나야 함을 의미했습니다.
그날 새벽 마침 3시에 깼는데, 저는 그것이 일깨움임을 깨닫고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변화가 컸지만 저는 금방 적응했습니다.
몇 가지 깨달음이 제게 도움이 됐습니다. 첫째,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거대한 업력을 감당하셨습니다. 만약 제가 일찍 일어나는 작은 고생조차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면, 사부님께만 감당하시게 하고 자신은 대가를 치르려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요? 둘째, 일념이 몹시 중요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우리는, 좋고 나쁨은 사람의 일념(一念)에서 나오며, 이 일념의 차이가 부동(不同)한 후과(後果)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눈을 떴을 때 첫 생각이 ‘잠을 덜 잤다’, ‘너무 춥다’가 아니라 ‘사부님, 저를 대법제자로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부님, 수련할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가 되도록 제 자신에게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하니 쉽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구세력이 모든 빈틈을 이용하리라는 점도 알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낮에 피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너무 바빠 시간이 없다고 말하는데, 사실 당신들은 휴식을 잘 못할까 두려워한다. 당신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련은 가장 좋은 휴식이다. 당신이 잠을 자도 다 도달하지 못하는 휴식에 도달할 수 있다.”(북미 제1기 법회 설법)
정념이 강하지 않을 때는 ‘몇 시간밖에 못 잤으니 당연히 피곤하지’라는 사람의 관념이 나타났습니다. 그때는 상태를 바꾸기가 몹시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제가 단호하게 ‘나는 이미 연공을 했으니 피로를 느끼지 말아야 해’라고 스스로에게 말했을 때 구세력은 더 이상 교란할 수 없었습니다.
수면에 대한 집착을 없애기 위해 저는 심지어 제가 얼마나 잤는지 더 이상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하니 매일 2시간 반 동안 연공을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부가적인 이점도 생겼습니다. 제 직장 동료들은 대부분 규율성이 아주 강한 장교들입니다. 제가 새벽 3시에 일어난다고 말하자 그들은 큰 흥미를 보였고, 이를 통해 진상을 알릴 기회가 생겼습니다.
이상은 현재 제 층차에서의 작은 인식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수련인들 간의 이성적인 교류는 일반적으로 개인의 당시 수련 상태에서의 인식일 뿐이니, 선의로 교류하며 다 함께 제고하기를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9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9/10/51395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9/10/513959.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