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대법이 널리 전해질 때의 몇 가지 소중한 추억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오늘 문득 대법이 내 고향에 널리 전해지던 시절에 남겨진 몇 가지 소중한 추억을 이야기하고 싶다. 대중이 앞다투어 대법을 얻고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던 그때 광경을 지금 떠올려 보아도 기억이 생생하고 눈앞에 선해 잊기 어렵다. 우주 역사 속에 남아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이 옛일들이 우리를 더욱 정진하게 하고 처음처럼 수련하게 하며, 사명을 완수해 사부님 은혜를 저버리지 않도록 격려할 수 있기를 바란다.

1. 기공 열풍

지난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중국공산당(중공)의 무신론과 진화론으로 단단히 봉쇄된 중국 땅에 갑자기 기공 열풍이 불었다. 기공은 인체를 자극해 초범적인 현상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천목이 열려 갑자기 다른 공간의 광경, 이를테면 신화 속 인물과 장면 등을 보게 되는 사람들이 생겼다. 또한 운반공, 투시 공능, 요시 공능, 공능으로 병을 치료하는 등 무신론과 상반되는 전대미문의 인체 현상들이 나타났다. 사람들은 약물 치료 외에도 기공 공법으로 신체를 단련하면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작용을 일으킬 수 있음을 느꼈다. 기공은 마치 사람들에게 하늘을 보는 창문을 열어준 듯 무신론을 뛰어넘는 신기한 세계를 보게 했고, 인체에는 실증과학 너머에 수많은 오묘함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그 당시 기공으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추구하려는 사람이 매우 많았는데 천태만상의 기공들이 사람들의 눈을 어지럽게 했다. 수강료가 아주 비싼 것도 있었고, 얼마간 연마한 후에는 병 치료와 건강 증진 효과가 떨어지는 것도 있었다. 어떤 기공사는 사람들을 모아 남의 병을 치료해주고 돈을 받았으며, 어떤 사람은 며칠 연공하고 몸에 공능이 나타나자 스스로 공을 내보내 사람들의 병을 봐주며 돈을 벌었다. 어떤 사람은 무슨 공을 연마하는지 모르지만 알 수 없는 언어로 주절거렸고, 어떤 사람들은 고함을 지르고 바닥을 뒹굴며 무의식 상태에서 온갖 이상한 행동을 했다. 내 경우만 해도 누군가 내게 어떤 공을 배우라고 권했는데, 그 공은 몇 단계로 나뉘며 마지막에는 산속으로 들어가야 하고 과정을 마치려면 수천에서 수만 위안의 돈이 든다고 했다. 나는 불치병을 앓아 돈을 전부 병원에 썼기에 책만 사고 배우러 가지는 못했다. 그 사람은 또 내게 그 공을 다른 사람에게 배우면 안 되고 처음 가르쳐준 사람만 찾아가야 하며 다음 단계 학비도 오직 그 한 사람만 받는다고 말했다. 이런 것들이 모두 이상하고 이해하기 어려웠다. 또 다른 사람은 내게 함께 구이저우로 가서 무슨 ‘일파조’라는 기공을 배우자고 했다. 가기만 하면 몇 가지 수법을 가르쳐주는데, 바로 몇 번 두드려 표면적인 병을 고쳐줄 수 있다는 느낌을 받게 한 뒤에 학비를 내라고 했다. 이게 사실인지는 별로 믿기지 않았다. 하지만 학비가 비싸다는 것 하나만은 사실이었다.

1992년 5월 13일, 파룬따파가 공식적으로 중국에 전해지며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독보적인 기치를 내걸었다. 8~9일 과정의 강의를 여는 데 40~50위안밖에 들지 않아 전국에서 가장 저렴했고, 기존 수련생은 절반으로 깎아주었다. 연공장은 무상으로 공법교습을 했고 돈을 받거나 등록하지 않았으며 명부도 없어서 오고 싶으면 오고 아무런 강요도 없었다. 대법서적 가격도 저렴해 ‘전법륜(轉法輪)’ 한 권이 겨우 12위안이었다. 사람들이 법공부를 하고 연공한 후, 많은 사람 특히 기공 수련 속에서 막막하고 혼란스러움을 느끼던 사람들은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아, 이것이야말로 진짜 기공이구나. 기공이란 원래 수련이었구나.’

파룬따파 저서 ‘전법륜’은 인생의 최종 목적과 사람 생명 존재의 진정한 의미인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밝혀주었다. ‘전법륜’은 또한 ‘기공으로 병 치료하기’, ‘일파조’ 등 기공계의 수많은 불량한 현상을 바로잡아 주었고, 이런 불량 현상의 근원과 배경 및 심각한 결과 등을 명확히 설명해 기공계의 먹구름을 말끔히 걷어내며 사람들 마음속의 미혹을 풀어주었다. 특히 파룬따파 수련 후 수련인의 몸에는 아주 좋은 변화가 일어나고 심성이 법 속에서 제고되는데, 그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조화로우며 신성하고 아름다움은 진정하게 수련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느끼고 체험하게 된다.

2. 고향에서 기쁘게 대법을 맞이하다

파룬따파는 봄바람처럼 중국 전역에 불어왔다. 우리가 사는 외딴 산골짜기도 기쁘게 파룬따파의 도래를 맞이했다. 1998년 7월 어느 날, 친구가 내가 있는 향진(鄕鎭)에서 파룬궁 학습반을 열려고 내게 도움을 청했다. 나는 학교(초중 통합학교)와 연락을 마치고 학교가 방학하자마자 교실에서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틀 준비를 했다. 우리는 현(縣)에서 홍법하러 올 파룬궁수련생들과 미리 연락해두었다. 하지만 개강할 때가 되자 현의 파룬궁수련생들이 오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향진에서 공을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중간에 가로막혀 그곳으로 간 것이었다. 파룬궁을 배우려는 사람이 너무 많아 그들이 감당할 수 없었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시기를 미루어야 했다.

1998년 7월 12일, 이곳에서 공식적으로 학습반이 열렸다. 사흘째 되던 날, 또 다른 향진 사람들이 와서 홍법하는 수련생들에게 자기 지역에 와달라고 청했다. 아울러 그들은 대법이 전해지는 것을 맞이하기 위해 특별히 오늘 이 좋은 날을 택했다며 대법에 대한 경건함을 표했기에, 현의 보도원이 당일 가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래서 현에서 홍법하러 온 수련생들은 한 팀을 남겨 우리와 함께 이번 학습반을 마쳤다. 우리 학습반이 막 끝나자마자 또 다른 향진 사람들이 와서 홍법하는 파룬궁수련생들을 데리고 갔다.

파룬궁을 배우려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자 현 보도소에서는 홍법 수련생 교육반을 열고 각 향진에서 몇몇 수련생을 뽑아 교육에 참가하게 했는데 내가 선발됐다. 보도원은 우리 동작에 대한 요구가 매우 엄격해 몇 번이고 동작을 교정해주며 기준에 도달하게 했다. 현 보도소의 도움으로 새로 꾸려진 몇 개의 홍법 팀은 인근 농촌과 더 외딴 산간 지역으로 달려갔다. 당시 우리 현은 여전히 교통이 불편한 궁벽한 시골이었지만, 전 현의 연공장은 우후죽순처럼 각 향진의 마을 곳곳에 퍼져나갔다.

우리 학습반만 하더라도 처음에는 온 사람이 교실 하나를 채우지 못했는데, 나중에는 교실에 다 들어가지 못할 정도가 됐다. 읍내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들은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왔다. 공을 배우러 온 사람 중에는 이 학교의 초중 교사, 읍내 각 기관 직원, 향진 주민, 주변 농민 등이 있었는데, 나는 주민센터 간부에 속한 사람으로 역시 신수련생 중 한 명이었다.

우리 현에는 유명한 양조장이 하나 있었는데, 직원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을 공장 지도부가 크게 지지했다. 공장 노조는 노인 활동센터 1층 전체를 무상으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활동 기지로 제공해주었고, 이를 위해 전용 TV, 비디오 플레이어, 연공 음악 재생기, 대형 스피커 등 장비까지 따로 사주었으며, 공장 본부에서 각 작업장 및 활동센터 등까지 전선을 전용으로 설치해 직원들이 휴식 시간에 단체로 연공하기 편하게 해주었다. 공장 노조 위원장은 일부 직원들이 파룬궁을 연마한 후로 번거로운 일이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싸우고 다투는 일이 적어졌다. 양조장은 복지 혜택이 좋아 의료비 청구가 골칫거리였는데, 사람들은 늘 어떻게든 더 청구하려고 했고 그렇지 않으면 와서 행패를 부렸다. 원래 직원 산재로 현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시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고, 시에서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성(省)으로 보내달라고 떼를 썼다. 가벼운 병을 큰병처럼 치료하고 병이 나아도 퇴원하지 않고 버티며 어쨌든 복지를 요구하고 보조금을 더 타내려 했다. 그러나 파룬궁을 수련하는 직원들은 그렇게 하지 않아 부당한 복지나 보조금은 주어도 받지 않았다.

3. 우리 법공부 팀의 수많은 기적

1기 학습반이 끝난 후, 우리 진(鎭)에는 여러 연공장과 여러 법공부 팀이 생겼다. 우리 법공부 팀에는 6~7명이 있었는데 하나같이 병이 많은 사람이었고 저마다 몸이 회복되는 기적을 경험했다.

나는 신경쇠약, 두통, 불면증, 현기증, 부비동염, 신우신염, 관절염을 앓고 있었고 자궁암 환자이기도 했다. 자궁암으로 이미 생명의 끝자락에 이르러 수의, 수의 이불, 관을 진작에 준비해 두고 무덤에 들어갈 날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언제 나았는지조차 모르게 나아버렸다. 나는 죽음과 작별하고 입관 용품을 전부 버렸다. 게다가 모든 질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400도짜리 안경도 이때부터 벗어버렸다.

60대의 한 할머니가 학교 옆집에 살고 계셨다. 학습반을 열 때 할머니는 지팡이를 짚고 찾아왔다. 할머니는 이곳이 참 시끌벅적하다며 자기도 보러 왔다고 하셨다. 당시 우리는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 제1강을 거의 다 볼 무렵이었다. 다 본 후 할머니는 더 보고 싶다며 계속 틀어달라고 하셨다. 나는 오늘은 연공을 배워야 하고 내일 다시 비디오를 틀 테니 일찍 오시라고 말씀드렸다.

이튿날 할머니가 오셨고, 사흘째 되는 날 또 오셨다. 사흘째 되던 날 내가 할머니를 보고 어째서 지팡이를 안 짚으셨냐고 묻자, 할머니는 다리가 나아서 걸을 수 있는데 무슨 지팡이를 짚겠냐고 대답하셨다.

한 수련생은 다년간 불면증에 시달려 장기간 약으로도 고칠 수 없어 몸과 마음이 몹시 지쳐있었는데, 사부님의 전체 설법 비디오를 다 보기도 전에 평온하게 잘 수 있게 되어 오랫동안 괴롭히던 불면증이 다 나았다. 교통사고로 쇄골을 다친 한 사람은 한 달 남짓 만에 쇄골 골절이 다 나았다.

한 수련생은 허리 디스크가 있어 수술을 받았는데도 고치지 못했다. 그녀의 집은 5층이었는데, 매번 계단을 오를 때 손으로 난간을 잡고 한 발을 먼저 올린 뒤 중심을 잡고 나서야 다른 발을 디뎠다. 계단 한 층을 다 오르면 앉아서 한참을 쉬어야 했다. 1층에서 5층까지 빈손으로 올라가려 해도 1~2시간이 걸렸고 집에 돌아오면 이미 땀투성이가 되었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꿈을 꾸었는데, 키가 큰 남성 의사가 그녀를 엎드리게 한 다음 허리가 아픈 부위에 쑥뜸 같은 것을 몇 개 놓았고, 그것들이 눈부신 불꽃을 내며 팍팍 소리를 냈다. 그녀는 온몸이 화끈거리고 땀을 한 바가지 흘렸으며, 깨어보니 옷이 흠뻑 젖어 있었다. 이때부터 허리 디스크가 나아 허리가 아프지 않게 되었고, 무거운 것을 들지 못하던 그녀가 물을 나르며 석탄을 지고 계단을 오를 수 있게 되었다.

또 다른 수련생은 몇 년 전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쳐 자주 머리가 아팠는데, 통증이 심할 때는 정말 살고 싶지 않을 정도였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맞아도 소용이 없었다. 파룬궁을 연마한 지 얼마 안 되어 어느 날 잠이 들었는데, 귓가에 갑자기 폭죽 터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며 잠에서 깼고 이때부터 머리가 더는 아프지 않았다.

다들 이것은 모두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임을 알고 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수련하고자 하는 이 마음을 소중히 여기신다. 수련생이 수련할 수 있도록 사부님께서 신통 법력으로 우리 몸을 정화해주셨다. 사부님 눈에는 인간 세상의 계층이나 귀천의 구별이 없으며 중생에게 모두 자비로우시고 모든 수련생을 똑같이 대하시어, 당신이 대법 수련에 들어서기만 하면 누구 하나 빠뜨리지 않고 사부님께서 다 보살펴 주신다.

허리 디스크가 있던 이 수련생 자신의 병이 낫자, 간염을 앓던 남편도 파룬궁을 수련한 후 간염이 완전히 나았다. 많은 수련생이 내 병이 어떻게 나았는지 나 자신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쨌든 주사를 맞지도 않고 약을 먹지도 않았는데 나도 모르게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때 우리 모두는 병이 없어 온몸이 가볍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진 기쁨 속에 있었다.

우리 팀의 60대, 50대 여성 수련생들이 잇달아 다시 생리를 하게 되었다. 어떤 이들은 연속으로 몇 차례나 했는데 달과 날짜가 정상적인 주기와 같았다. 수련생들의 몸과 정신 상태가 모두 변하고 있었고 사람 표면의 변화도 매우 컸다. 예를 들어 어떤 친구가 내게 무슨 화장품을 썼길래 혈색과 피부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다. 나는 아무 화장품도 쓰지 않았고 파룬궁을 연마해서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는 예전에 암 환자였는데 피부나 혈색이 얼마나 어둡고 보기 흉했는지 말할 것도 없고 생명마저 거의 끝날 지경이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이 친구도 대법 수련에 들어서게 되었다.

반신불수가 된 먀오족 여성이 있었는데 읍내 밖으로 몇 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남편이 그녀를 등에 업고 우리 법공부 팀에 왔다. 그녀는 등이 굽은 채 글자를 몰랐지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아주 집중해서 들었다. 처음에는 연공을 할 수 없어 그저 엉성하게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다가, 천천히 반가부좌를 할 수 있게 되었고 나중에는 가부좌를 틀고 제5장 공법을 연공할 수 있게 되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굽은 등도 펴지고 몸이 완전히 회복되었다. 친정 큰오빠가 그녀의 변화를 보고 병이 위중해 이미 걷기조차 힘든 아내를 동생 집으로 데려오려 했다. 큰오빠는 아내를 데리고 아침 동이 트기도 전에 출발해 날이 어두워져서야 여동생 집에 도착했다. 이튿날 시누이와 올케가 우리집으로 왔는데, 내가 홍법하러 나가고 없어 내 남편이 그들에게 사부님 설법 비디오를 틀어주었고 시누이는 올케에게 연공을 가르쳐주었다. 이렇게 꾸준히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하자 한 달 남짓 만에 올케는 건강을 회복해 자기 발로 집까지 걸어 돌아갔다.

시누이와 올케의 이야기는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담고 먀오족 마을의 친척과 친구들 사이에 널리 전해졌으며, 몇몇 먀오족 친척과 친구들도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1999년 4월 8일 그날, 우리 각 법공부 팀은 읍내에 모여 대규모 단체 활동을 가졌는데 100여 명이 참가했고, 수련생 중에는 향, 진, 현급의 퇴직 간부들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단체로 법공부를 하고 연공하며 교류했고, 마친 후 단체 사진을 찍었다. 사진 한구석에 신비로운 빛 무리와 후광이 나타났다. 누군가 그것은 불광(佛光)이라고 외쳤다! 우리 모두는 매우 감격했다.

이웃 향진의 어느 홍법 활동이 생각나는데, 두 명의 향진 퇴직 간부 중 한 명은 홍법하러 온 사람이었고 한 명은 홍법을 조직한 사람이었다. 그들은 적극적으로 홍법에 참여했고 두 사람이 함께 찍은 사진에 비교적 선명한 파룬이 찍혔는데 하나만이 아니었다. 당시 가장 먼저 나와 홍법하던 현 보도소 보도원들은 거의 다 퇴직 간부들이었다. 예컨대 전 향장, 향 정부 서기, 구 양곡창고 서기, 공판장 지점장, 전 법원 재판장 등이었다.

사진 속의 파룬과 불광은 당시 우리가 보기에는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격려해주시어 수련의 신심을 북돋아 주신 것이라 느꼈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은 ‘산에 비가 오려 하니 누각에 바람이 가득하듯’ 사악한 대대적인 박해가 임박하기 전야에,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앞으로 아무리 큰 시련과 험난한 고비를 만나더라도 정념을 확고히 해 수련을 견지해 나가라고 일깨워 주신 것이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하늘은 무너지지 않는다.

4. 대법 수련으로 심성이 전반적으로 제고되다

파룬궁은 시작부터 수련인에게 ‘진선인(眞·善·忍)’ 우주의 최고 특성에 따라 심성을 제고해 좋은 사람이 될 것을 요구하며 목표가 매우 명확했다.

우리 법공부 팀으로 말하자면 법공부가 끊임없이 깊어짐에 따라, 대법은 점차 우리의 예전 이기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바꿔 놓았고, 우리는 더는 승부욕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으며 문제에 부딪히면 안으로 자신의 잘못을 찾고 명예와 이익을 담담하게 보며 일할 때 곳곳에서 타인을 배려하게 되었다.

한 수련생은 상점을 운영했는데 누군가 그가 돈이 많은 것을 시기해 늘 트집을 잡아 한몫 뜯어내려 하다가, 하루는 핑계를 대고 진열장 유리를 깨뜨렸다. 이 수련생은 화를 내지 않고 갈등에 부딪혀 참음을 실천했을 뿐만 아니라 다치지 않았냐고 걱정스레 물으며 배상도 요구하지 않았다. 또 한 수련생의 집은 길가에 있었는데, 옆집에서 집을 고치면서 자기 집 측량 위치를 고수하려고 이 수련생 집의 길가 쪽 베란다 모서리를 깎아냈다. 이는 당연히 원래 집의 외형을 망가뜨리고 온전함과 미관을 해치는 일이었다. 그녀의 가족들은 당연히 가만있지 않으려 했지만 그녀는 가족들을 말렸다. 그녀는 우리가 살고 생활하는 데 지장만 없으면 된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의 뜻을 이루게 도와주어 그 사람 집이 반듯하고 보기 좋아지면 이 또한 좋지 않으냐는 것이었다. 자녀들은 그녀를 바보라고 했지만 그녀는 싱글벙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이는 수련인이 이익을 침해당할 때 명명백백하게 손해를 보는 것이며, 첨예한 이익 충돌 속에서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아 심성이 제고되고 경지가 승화하는 것이었다.

내 이야기를 하자면, 수련 전 나는 성격이 아주 포악해 어릴 때부터 남자아이들과 싸워도 반드시 이겨야만 했고, 중공 악당 통치하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라며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의 해독을 깊이 받아 남과 다투기를 좋아하고 이기적이었으며 안하무인이었다. 우리 진은 장날이 되면 아주 시끌벅적했는데, 하루는 어떤 사람의 노점이 내 친정집 대문 앞에 차려져 있었다. 나는 보자마자 화가 나서 발로 걷어차 노점을 엎어버렸다. 그 사람이 반발하자 나는 그녀의 의자를 부숴버렸고 결국 우리 어머니가 가서 사과하고 배상해야 했다. 또 내가 살던 곳은 직장 기숙사였는데, 직장에서 대량으로 사 온 새 빗자루를 나는 거리낌 없이 가져다 썼고, 직장 전화를 사적인 일로 마음대로 쓰면서 적절한지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차지할 수 있는 이득은 다 차지하려 했다.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 법리의 일깨움 덕분에 나는 이런 행동들이 모두 틀렸다는 것을 점차 깨달았다. 사람에게 거칠고 무례한 것은 선하지 못한 것이며 수련인은 자비로워야 한다. 탐내고 차지하려는 것은 모두 수련인이 닦아버려야 할 이기심과 탐욕이다. 훗날 나는 이를 잘 고치려 노력해 사상과 행동 면에서 점차 자신을 바로잡았다.

우리 수련생 중에는 다른 사람이 돈을 더 거슬러 주면 스스로 돌려주었고, 귀중품이나 돈을 주워도 액수와 상관없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으며 주인을 찾지 못하면 위로 제출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해 우리 지역에 큰 산사태 재난이 일어나 실종자와 부상자가 생기고 가정이 파탄 나거나 삶의 터전을 잃은 이재민이 발생하자, 수련생들은 돈을 내기도 하고 힘을 보태기도 했으며 쌀, 기름, 옷, 이불, 생활용품 등을 기부하기도 했다. 담당자가 이름을 적으려 하면 다들 ‘파룬궁수련생’이라고 말했다.

파룬따파 수련은 수련인 본인의 몸과 마음에 끝없는 혜택을 줄 뿐만 아니라, 수련인의 가족과 가정도 이때부터 ‘집에 환자가 있다’는 심리적·경제적 중압감에서 벗어나게 했으며, 지역 사회와 민중에게 복을 가져다주었다. 파룬따파는 국가, 사회, 가족, 타인에게 수많은 이로움만 있고 한 가지 해로움도 없다.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한 20여 년 동안 파룬궁수련생들은 피바람이 부는 가혹한 박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세상 사람들이 악당의 거짓말에 속아 도태될 위험에서 구하고 있으며, 진심으로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미래를 갖기를 바라고 있다.

 

원문발표: 2026년 8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8/1/50728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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