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과 접촉하며 진상을 알리고 사람 마음을 제거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혜소(慧笑)

[명혜망] 나는 2005년에 수련을 시작한 대법제자이며 그때는 아직 소년이었다. 경찰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내 마음의 변화와 심성 제고 과정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법(法)에 부합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바란다.

1. 처음 경찰과 마주하다

중학교에 다닐 때 명혜주간에서 수많은 수련생이 박해받는 것을 보고 마음속으로 ‘경찰에게 진상을 알려야겠다’는 일념이 생겼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대법이 박해받는 진상을 이야기하다가 학교 교사의 고발을 당했고,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현지 610 세뇌반에 납치돼 불법 감금됐다. 그곳에서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는 경찰과 610 직원을 처음 만났다. 그들은 위선적으로 깡패 같은 거짓말을 주입했고 이른바 ‘전통문화’를 이용해 나를 ‘전향’시켜 수련을 포기하게 만들려 했다. 당시 박해자들에 대한 내 인식은 명혜망에서 이런 사악한 가담자들을 폭로한 내용을 통해 아는 정도였다.

그곳에서 610 악인들은 나에게 사악한 사상을 주입하며 “파룬궁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잘못이 아니지만 먼저 사람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는 등 궤변을 늘어놓았다. 우리 시내의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 대장은 위선적으로 나를 ‘보러’ 와서 나를 속여 수련생을 팔아넘기라고 했다. 나는 그들의 속임수를 하나하나 간파했다. 결국 610의 한 책임자가 임무를 완수하고 학교에 해명하기 위해 자신이 직접 이른바 ‘보증서’를 쓰고 서둘러 마무리했다. 나는 보름 남짓 불법 감금됐다가 풀려났다.

집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우리집 수련생이 또 610과 파출소 경찰에게 세뇌반으로 납치됐다. 상황을 알게 된 나는 즉시 다른 가족 수련생과 함께 세뇌반으로 가서 석방을 요구했다. 당시 마음속으로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을 생각하며 오직 ‘모든 것은 사부님이 결정하신다’는 일념뿐이었다. 세뇌반 문 앞에 도착하자 610 직원이 우리집 수련생이 여기 없다고 거짓말하며 못 들어가게 했다. 내가 수련생의 이름을 부르자 수련생이 나왔다. 그러자 경찰, 보안요원, ‘방교(幇敎)’ 등 많은 사람이 우르르 따라 나왔다. 그 610 책임자는 “기왕 나왔으니 얼굴이나 보고 돌아가라. 곧 집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

한 경찰이 나를 향해 흉악하게 말했다. “너 기다려. 내가 널 어떻게 잡아넣는지 두고 봐.” 나는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나는 바로 여기에서 나왔습니다”라고 맞받아쳤다. 이어 “당신들이 하는 짓은 모두 불법이며 선악에는 응보가 따릅니다”라고 말하고 ‘대도태(大淘汰)’에 관해 이야기했다. 순간 모든 사람이 멍해져서 미동도 하지 않고 말문이 막혔다. 내가 수련생을 끌고 밖으로 나가려 하자 수련생이 “안 되겠다. 너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당시 그 수련생에게는 아직 닦아버리지 못한 두려움과 우려 등 사람 마음이 있었다.) 이 말이 끝나자마자 그 무리가 봉인이 풀린 것처럼 벌떼같이 달려들어 수련생을 다시 세뇌반으로 끌고 갔다.

당시 나는 신통으로 사악을 제거하겠다는 생각도 못 했고 두려움도 없었으며 오직 ‘모든 것은 사부님이 결정하신다’는 일념뿐이었다. 이 일념이 대법의 표준에 부합했기에 대법의 힘이 모든 사악한 요소를 해체했다. 명혜망에 사악한 박해 가담자들이 폭로되고 팀 수련생들이 24시간 릴레이로 근거리에서 정념(正念)을 발한 덕분에 이 세뇌반은 곧 해체됐다. 수련생들은 차례로 집으로 돌아왔다.

2. 구치소에서 선량한 경찰을 만나다

수련생이 집으로 돌아온 다음 날, 나는 경찰의 미행을 받고 납치됐다. 이 과정에서 나의 두려움과 우려 등 마음이 매우 심각했다. 나는 시 구치소에 불법 감금됐다. 구치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새벽이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다소 막막했다. 당시 나는 겨우 15세 미성년자였다. 나는 생각했다. ‘어떻게 되든 나는 대법 수련을 확고히 할 것이다. 어차피 나를 잡아넣었으니 나도 두렵지 않다. 마음대로 하라지.’ 그러고는 사부님의 ‘홍음(洪吟)’, ‘정진요지(精進要旨)’와 조금 외울 줄 아는 ‘전법륜(轉法輪)’을 떠올리며 암기하기 시작했다. 외울 수 있는 법을 모두 합치면 대략 1시간 남짓 분량이었는데 매일 여러 번씩 외웠다.

구치소에서는 죄수들이 돌아가며 2시간씩 당직을 섰다. 내가 당직을 서는 시간이 배정되면 나는 다섯 가지 공법을 연공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나를 난처하게 하지 않았고 감방의 죄수들도 내가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갇혀 들어왔다는 것을 알고 매우 동정했다. 나는 온갖 기회를 이용해 사람들에게 한 명씩 진상을 알렸다. 이 감방 사람들이 진상을 이해하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자 나는 신기하게도 다음 감방으로 교체됐고, 그 감방 사람들도 진상을 알고 삼퇴를 하자 또 다른 감방으로 옮겨졌다. 그곳에 있던 한 달 동안 나는 총 세 개의 방을 옮겨 다녔다.

구치소에 30일간 불법 감금된 후 시 구류소로 이감돼 불법 감금됐다. 그곳은 환경이 약간 더 느슨했다. 안에는 여권이 만료돼 잡혀 온 5개국 외국인들도 있었고 다양한 이유로 들어온 중국인들도 있었는데 나는 그들 모두에게 진상을 알렸다. 다들 잘 받아들였고 모두 삼퇴를 선택했다. 외국인들은 귀국하면 꼭 ‘전법륜’을 읽어보겠다고 했다.

그곳에는 펜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화장실 유리문의 검은색 밀봉 고무를 이용해 벽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등 진상 표어와 사부님의 정법 구결을 썼다. 또한 과거 대법제자들이 청원할 때 썼던 ‘정부에 보내는 공개편지’ 전문을 벽에 썼다. 경찰은 그것을 보고도 지우지 않았다. 내가 떠날 때까지 그곳의 글씨는 하얀 벽 위에서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나는 선량한 경찰 한 명을 만났다. 납치될 때 나는 옷 한 벌만 입고 있었고 속옷도 생활용품도 없었다. 어느 날 이 선량한 경찰이 당직을 설 때 나를 밖으로 부르더니 속옷과 화장지를 사주었다. 그는 “네가 이렇게 어린데 네 나이에 겪지 말아야 할 고통을 겪고 있어서 참 안타깝다. 다른 방법으로 돕지는 못하고 이것만 사줄게”라고 했다. 나는 경찰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알려주고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했다. 이 경찰은 말했다. “너는 이미 2년형 강제노동이 확정됐어. 어찌 됐든 그들이 널 내보내 줄 리는 없어. 그들이 다른 파룬궁수련생의 상황을 묻거든 절대 말하지 마. 네가 한 명을 말할 때마다 피해를 보는 가정이 하나 더 늘어나. 나는 이 말밖에 해줄 수 없어. 몸조심하길 바란다.” 나는 “나는 아무도 몰라요.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이때부터 경찰은 감방 수감자들에게 나에게 당직을 세우지 말라고 했고 내가 연공할 때 조용히 하고 방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나는 이 경찰의 선량한 행동에 진심으로 위안을 받았다.

3. 노동수용소 안의 경찰

한 달 남짓 지나 나는 본 시의 악명 높은 남성 노동수용소로 이감돼 감금됐다. 경찰차 안에서 나는 마음이 매우 긴장돼 그곳에 도착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노동수용소에 들어가 대문을 보며 ‘이제 끝났다. 쉽게 나가지 못하겠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가 대법제자이므로 어찌 됐든 만나는 중생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진선인(眞·善·忍)’의 아름다움을 그들에게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곳에서 거의 2년을 머물고 나서야 풀려났다.

처음에 나는 그곳 경찰들에게 강한 반감을 가져 경찰이 무엇을 시키든 일절 하지 않았다. 속으로 ‘당신들은 대법제자가 다 좋은 사람인 줄 뻔히 알면서도 박해에 가담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경찰이 무슨 말을 해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8명의 죄수에게 삼교대로 밀착 감시를 받았고 자정이 넘어서 새벽 12시나 1시가 되어야 잠을 잘 수 있었다. 나는 나를 감시하는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다. 그곳에서 나는 불법 체포 과정 중 처음으로 수련생을 만났다. 하지만 경찰은 나와 수련생이 대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한번은 악당(중공) 뉴스 시청 시간에 모두가 홀에 앉아 강제로 뉴스를 봐야 했다. 내 옆에 앉은 사람이 눈을 감고 결인(結印)하는 것을 보고 내가 작은 소리로 “대법제자입니까?”라고 묻자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나도 그래요”라고 하자 그는 “사부님께서 새로운 ‘홍음’을 발표하셨으니 내가 외울 테니 기억해”라고 했다. 그 20여 분 동안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나는 사부님의 시 10여 수를 외웠다. 그 사악한 환경 속에서 사부님의 법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너무나 소중했다. 나는 돌아가 몰래 써놓고 매일 외웠다.

그 후로 나는 이곳에 헛되이 올 수 없으니 파룬궁수련생을 관리하는 대대장에게 진상 편지를 써서 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그가 야간 당직을 설 때 내가 말했다. “대장님, 대장님께 편지를 한 통 썼는데 제 진심이 담겨 있습니다. 경찰복을 벗은 마음가짐으로 진지하게 읽어보십시오. 한 마디 한 마디가 제 진심입니다.” 그는 알았다고 했다.

다음 날 이 경찰은 자발적으로 나를 찾아와 감시 카메라가 없는 방에서 말했다. “네가 쓴 내용은 다 이해했다. 내가 너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는 없지만 내가 너에게 하는 모든 일은 널 위한 것이라고 보장한다.” 그는 화를 내지도 않았고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외치는 수련생에게 하듯 걸레로 입을 틀어막지도 않았으며 험한 말을 하지도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그가 마음속으로 진상을 받아들였고 기본적인 진상도 이해했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전향’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족과의 연락도 허용되지 않았고 돈도 없었다. 파룬궁을 감시하는 이 경찰은 자기 돈으로 내게 생활용품과 먹을 것을 많이 사주었다. 나는 그가 마음속으로 나를 동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시간이 더 지나자 어떤 경찰들은 나와 대화하기를 좋아했고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을 수련한 후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경찰은 “○○○(단식하며 박해를 반대해 온 칭화대 교수 대법제자)가 얼마나 확고한지 봐라. 너희 파룬궁이 만약 다 그 사람처럼 했다면 진작에 명예가 회복됐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 경찰의 말은 나를 감동하게 했다.

나는 2년 가까이 감금된 후에야 풀려났다. 불법 감금돼 있던 시간 동안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곳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100명이 넘는 사람이 삼퇴를 했다. 내가 풀려나던 날 아침, 몇몇 경찰이 일일이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했고 여러 명의 대대장도 나가서 몸조심하라고 당부했다. 한 경찰은 내게 말했다. “네가 돌아가면 분명히 또 연공할 거라는 걸 안다. 연공을 안 할 거였으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지. 하지만 당부하건대 집에서 혼자 법공부하고 다른 연공인들과 접촉하지 마라. 사고 친 사람이 널 연루시키면 너는 또 들어와야 해. 여기서 널 다시 보고 싶지 않구나.” 나는 진심 어린 말에 감사드리며 “경찰관님도 박해에 가담하지 말고 몸조심하시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4. 괴롭힘 속의 경찰

사악한 검은 소굴에서 나와 집으로 돌아온 후, 그날 밤부터 나는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다. 나온 지 일주일도 안 돼 현지 진(鎭) 610과 진장이 선물을 좀 들고 우리집에 와서 ‘위문’이라는 명목으로 나를 괴롭혔다. 그 후 한 달도 안 돼 나는 현지 파출소 경찰에게 강제로 혈액 샘플을 채취당했고 또 악당의 ‘파룬궁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당시 내 마음은 이런 행위에 대해 극도로 두려워하고 반발했으며 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때는 아직 심성이 제고되지 않아 어떻게 박해를 부정해야 할지 몰랐고 ‘두려움’이라는 요소에 휩싸여 있었다.

‘4·25’를 앞두고 나는 휴대폰을 안 챙기고 외출했다. 돌아와 보니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고 그 번호로 “나 네 친척인데 전화 좀 받아봐. 할 말 있어”라는 내용의 문자 메시지도 와 있었다. 다시 걸어보니 관할 구역 경찰이었다. 그는 “내가 누군지 알지? 곧 ‘4·25’니까 나가서 자료 돌리지 마라”고 했다. 당시 마음속으로 좀 긴장됐지만 나는 사부님께 가지를 구하고 용기를 내어 경찰에게 말했다. “앞으로 다시는 제게 전화하지 마세요. 파룬궁이 어떤 건지는 여러분이 저보다 더 잘 알 거예요. 저는 합법적인 시민입니다. 계속 이렇게 끝없이 괴롭힌다면 저는 천안문(天安門)으로 가겠습니다.” 경찰은 듣더니 긴장하며 말했다. “가지 마라. 앞으론 널 안 찾을게.” 이 일이 있은 이후로 이 경찰은 나와 연락한 적이 없다.

아마 같은 해 ‘7·20’ 무렵이었을 것이다. 현지 진 정부 사법국 간부가 나를 찾았다. 우리집 수련생이 나와 함께 사법국 사무실로 갔는데, 나이 든 수련생이 계속 작은 소리로 정법 구결을 외웠다. 그 간부는 그걸 듣더니 웃으며 “요즘 교통사고가 너무 많으니 밖에서 일할 때 안전에 주의하세요”라고만 하고 파룬궁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방에 들어가서 나올 때까지 1분도 안 걸렸다. 나는 이 사람 배후에서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던 사악이 해체됐음을 알았다. 그 후 몇 년 동안 사악의 괴롭힘이 없었다.

5. 현지 경찰이 이웃 현의 박해에 협조하지 않다

9년 전, 이웃 현(縣)의 수련생 집에 갔을 때 그곳에서 다른 기술 수련생을 만났고 나는 그 수련생과 함께 또 다른 나이 든 수련생 집으로 갔다. 당시 경찰과 사복경찰이 이미 오랫동안 미행하고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수련생 집에서 돌아온 후 내가 묵던 숙소 사장이 신분증을 확인하고 내 정보를 등록했는데 나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신분증을 주었다. 이틀 후 퇴근하고 돌아와 보니 수련생이 내게 남긴 쪽지가 있었다. 대략 이웃 현의 여러 수련생이 오늘 아침 같은 시간에 불법 납치됐고 집 안의 컴퓨터, 프린터, 대법 자료 등을 빼앗겼으니 인터넷에 올려 폭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민센터 직원이 문을 두드렸다. 당시 나는 다른 방에 있어서 그가 모르는 상황이었고 나는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는 수련생에게 연락해 밖의 상황을 좀 살펴봐 달라고 부탁했다. 수련생이 전화를 걸어와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니 온통 사복경찰과 수상한 검은색 승용차뿐이라고 했다. 나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고 무사히 뒷문으로 빠져나갔으며 밖에는 수련생이 나를 맞이하러 와 있었다.

내 신분 정보가 등록됐으니 당분간 밖에서 지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아내 수련생과 연락이 닿은 후 우리는 외지 수련생 집으로 갔다. 그곳에 도착해 상황을 설명하자 수련생은 거처를 마련해 주었다. 수련생은 우리와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며 어떻게 구세력의 함정에서 벗어나 법에 입각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할 수 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그녀는 ‘전법륜’ 중 ‘선종(禪宗)의 방할(棒喝)’ 단락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들려주었다. 수련생의 도움으로 나는 단번에 깨달았다. ‘구세력이 나를 박해하는 것이 바로 선종의 방할과 같지 않은가! 그들은 그 ‘몽둥이 한 대’밖에 할 줄 모르고 다른 것은 할 줄 모른다. 그들에게는 수련할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부님께서는 이 ‘몽둥이 한 대’를 인정하지 않으신다.’ 나는 단번에 나 역시 구세력이 내게 강요한 박해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오직 정법(正法) 속에서 수련할 뿐 그 밖의 다른 어떤 배치도 원하지 않고 다 인정하지 않는다.’

내가 이를 깨닫자 수련생이 “계속 여기 머물겠습니까, 아니면 집으로 가시겠습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집으로 가겠다고 하자 수련생은 웃으며 “좋아요. 그럼 오후엔 배웅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곳에 사부님이 계십니다”라고 했다. 우리는 수련생에게 감사를 표하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터미널을 빠져나올 때 정상적으로 신분증을 스캔하고 무사히 집에 도착했다. 집에 도착해서야 현지 경찰이 이웃 현 경찰의 박해에 전혀 협조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현지 경찰은 내 정보를 알고 있었지만 이웃 현 경찰을 데리고 우리집에 와서 괴롭히지 않았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제자가 법에서 제고되게 해주신 데 대해 진심으로 감사드렸다. 또한 현지 경찰이 박해에 가담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도 마음속 깊이 고마웠다.

6. 정념으로 법원 재판을 방청하다

며칠이 지나 명혜망에서 여러 수련생이 우리 지역 법원에서 불법 재판을 받는다는 소식을 보았다. 보니 우리가 모르는 외지 수련생들이었다. 나는 ‘만약 현지 수련생들이 오지 못하면 정념을 발해 도와줄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방청하러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마음속에 우려도 있었다. ‘피신했다가 갓 돌아왔는데 내 신분 정보가 수배됐는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러나 곧 생각을 바꾸었다. ‘이런 생각은 틀렸다. 우리 수련생은 하나의 정체(整體, 공동체)이니 법원에 가서 수련생의 정념을 도와주는 것은 나의 책임이자 사명이며, 구세력의 배치를 부정하는 과정이다.’

재판 당일 나는 사부님께 가지를 청하며 정념을 굳게 다지고 신분증을 챙겨 법원에 줄을 섰다. 신분증 스캔 후 무사히 통과했고 종합 로비에서 방청 수속을 밟았다. 수속을 돕던 경찰이 “방청하시겠습니까?”라고 묻기에 “네”라고 대답했다. 그녀가 “어떤 사건인지 아십니까?”라고 물어 “압니다. 파룬궁입니다”라고 했다. 또 “피고인과 어떤 관계입니까?”라고 묻기에 “모릅니다. 저는 그저 일반 시민 자격으로 방청하러 왔습니다. 시민에게 공개 재판을 방청할 권리가 있지 않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그녀는 “맞습니다. 그럼 수속해 드리겠습니다”라고 했고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그녀는 방청증을 발급해 주고는 옆에 있는 종이에 내 이름을 적었다. 나는 개의치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다. 법정에 도착한 후 나는 순조롭게 방청석에 앉았다.

몇 명의 외지 수련생은 나뉘어 재판을 받았고 매일 한 번씩 재판이 열렸다. 나는 이 재판들을 모두 방청했고 그들 지역에서 온 다른 수련생들도 방청에 참석했으며, 법원 밖에서는 수많은 수련생이 정념을 발하며 돕고 있었다. 인권 변호사가 조리 있게 무죄 변론을 했고 판사는 선고를 내리지 않은 채 휴정만 선언했다. 마지막 수련생은 아마도 신수련생인 것 같았다. 내가 방청증 수속을 마치고 막 법정에 들어서려는데 이 수련생이 나를 가리키며 판사에게 “이 사람이 누군지 모릅니다”라고 했다. 판사가 나를 쳐다보기에 나는 “저는 방청하러 왔고 저 사람을 모릅니다”라고 했다. 판사가 “오늘은 자리가 없습니다”라고 했다. 이때 방청하러 온 여러 수련생이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밖에서 제지당했다. 나는 안을 들여다보며 판사에게 “여기 자리 있지 않습니까? 들어가야겠습니다. 방청증도 있습니다”라고 했다. 판사가 보고는 “그럼 뒤에 앉아서 말하지 말고 법정 질서를 지키세요”라고 해서 나는 알겠다고 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나는 또다시 무사히 방청석에 앉았다.

재판 과정에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이 수련생은 정말 신수련생이었고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대법을 실증하는 일을 하다가 감시 카메라에 찍혔는데 진심으로 스스로 원해서 한 일이 아니라서 문제가 생긴 것이었다. 비록 변호사가 무죄 변론을 했지만 그의 정념은 강하지 않았다. 당일 법정에서 선고는 내려지지 않았다. 이로써 이 사건의 방청이 끝났다. 나와 수련생들은 불법 재판 과정을 명혜망에 폭로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음을 알았고, 사부님께서 제자의 난관을 해소시켜 주셨으며 나를 이 ‘박해받는’ 장(場)에서 벗어나게 도와주셨다.

7. ‘장쩌민 고소’ 후 2년간의 평온

2015년 5월, 다년간 박해받은 대법제자들이 중국 법률에 따라 전 악당 수괴 장쩌민(江澤民)을 고소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마음속에 좀 망설임이 있었다. ‘대마두를 고소했다가 박해받지 않을까? 박해받으면 대법의 사람 구하는 항목에 어떻게 참여하지? 내가 참여해야 할 일이 이렇게 많은데….’ 마음이 갈팡질팡했다. 팀 법공부를 마친 후 수련생이 나와 이 문제를 교류했다. 수련생은 “제 고소장은 다 접수됐어요. 제가 이해하기로 장쩌민 고소는 사실 중생을 구하는 과정이고 사부님께서 박해 가담자들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는 것이며 가장 큰 자비입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단번에 수련생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고 정념을 확고히 다졌으며 마음이 평온해지며 오직 ‘박해에 가담한 경찰들을 꼭 구해야 한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일념뿐이었다.

집에 돌아온 나는 고소장을 쓰기 시작해 10여 시간 동안 24쪽(A4 용지) 분량의 내용을 작성했다. 그 과정에서 법 안에서 닦아낸 자비로 인해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비록 밤을 꼬박 새웠지만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고 무척 상쾌했다. 나는 또한 대법제자들이 지난 몇 년간 겪은 고문 사진과 내가 불법 감금돼 박해받는 동안의 모든 관련 서류 사본도 준비했다.

아침 우체국 업무가 시작된 후 나는 양고(兩高, 최고법원과 최고검찰원)에 고소장을 성공적으로 발송했다. 우편물을 부칠 때 펜을 들고 주소를 적는데 손이 심하게 떨렸다. 나는 이것이 사악이 두려워하는 것임을 알았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가지를 외치자 순식간에 빙산이 태양 빛을 받아 녹아내리듯 따뜻한 기운이 머리에서 발바닥까지 흘러내렸다. 찰나에 모든 두려움의 물질이 해체됐다. 나는 힘주어 우편 주소를 적었다. 그 후 대략 두 달 동안 사부님의 배치하에 나는 현지의 수백 명 수련생을 도와 고소장을 써줬고 수련생들은 모두 성공적으로 발송했다.

장쩌민 고소 후 2년 동안 나를 괴롭힌 경찰은 단 한 명도 없었고 우리 팀 수련생들도 마찬가지였다.

8. 나를 괴롭혔던 그 경찰들

2017년이 되어서야 우리 현지 수련생들이 대규모로 경찰의 자택 방문 괴롭힘을 받기 시작했고, 우리 모두 지혜롭게 경찰에게 진상을 알리며 박해를 제지했다.

초창기에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던 경찰은 꽤 난폭하게 굴었다. 당시 나는 직장에 나가 있어 집에 없었는데 이웃이 전화를 걸어와 경찰이 우리집에 와서 사부님의 존영과 파룬(法輪) 도형을 다 빼앗아 갔다고 했다. 나는 서둘러 아내에게 알리고 휴가를 내어 집으로 갔다. 상황을 파악한 후 우리 부부는 함께 파출소로 찾아가 경찰에게 사부님 존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경찰은 매우 무도하고 몰상식하게 굴며 아내를 위협했다. “당신도 파룬궁을 수련하나?” 아내가 “당연하죠. 이렇게 좋은 공법을 왜 안 배우겠어요!”라고 하자 그는 “현수막을 걸거나 전단지 돌리러 다니지 마. 신고당하지 마. 만약 사고 나면 나도 당신을 보호해 줄 수 없어”라고 했다. 나와 아내는 그에게 악행을 저지르지 말고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했다. 결국 우리는 사부님 존영을 돌려받지 못했다.

그 경찰은 나중에도 우리집에 몇 번 더 찾아와 괴롭혔는데 매번 나는 그에게 진상을 알렸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 그 후 그는 다른 지역으로 전출됐다. 올해 들은 바에 따르면, 그가 근무 중 갑자기 몸이 안 좋아 병원 검사를 받았더니 간암 말기였고 곧 사망했다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듣고 그가 구원받지 못한 것에 대해 몹시 안타까웠다. 그는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해 응보를 받은 것이다.

그 후 또 다른 경찰이 왔는데 그는 아주 상냥하게 말했다. 매번 그가 집에 와서 괴롭힐 때마다 나는 그에게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했고 파룬궁 제자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니 수련인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는 “나는 일을 위한 것이지 박해에 가담하는 것이 아닙니다”라고 했다. 매번 나쁜 말도 하지 않았고 얼굴만 보고 갔다. 우리집에는 다년간 ‘쩐싼런하오, 파룬따파하오’가 적힌 커다란 복(福) 자, 종이 공예, 진상 연화(年畫) 등이 붙어 있었는데, 이 경찰은 그것을 보고도 해선 안 될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오직 문 밖에만 붙이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후 악당이 ‘제로화(淸零)’ 작전을 벌일 때 나도 괴롭힘을 당했다. 어느 날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센터 간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와 밖에서 누가 찾는다며 친척이라고 했다. 문 앞에 나가보니 우리 대대 직원 한 명과 진(鎭) 610 주임이었다. 직장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그들은 감히 들어오지 못하고 밖에서 몇 마디면 된다고 했다.

610 직원이 말했다. “좋은 일이 있습니다. 서명만 하면 블랙리스트에서 빼줄 수 있습니다. 지금이 기회예요.” 나는 말했다. “절대 빼주지 마세요.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다 악당의 박해를 받았고 장쩌민도 고소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청산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가 또 끈질기게 매달리며 말했다. “당신은 진선인을 수련하는 좋은 사람이니 우리 입장을 생각해서 서명해주세요.” 나는 대답했다. “나는 여러분 업무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여러분의 생명을 위해서라도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만약 내가 서명한다면 그것은 당신이 파룬궁 박해에 가담해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당신의 범죄 증거가 됩니다. 선악에는 응보가 따르므로 협조할 수 없습니다.” 그가 위협했다. “서명 안 하면 다음엔 경찰이 당신을 찾을 겁니다.” 나는 말했다. “당신이 지금 경찰을 불러 수갑을 채워 날 잡아가려 한다면 나도 어쩔 도리가 있겠습니까? 위에서 괴롭히라고 지시한다고 당신은 좋은 말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당신이 사람을 붙잡으러 온 겁니다. 나에게 당신은 그저 공산당이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도구일 뿐입니다. 나는 단지 당신에게 선(善)을 향하고 좋은 사람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하고 싶을 뿐입니다. 전염병이 심각하고 선악에 응보가 따르니 모든 사람이 자신의 위치를 정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당신의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계속 그에게 물었다. “파룬궁이 중국에서 위법이라는 법적 문서가 있습니까?” 그는 없다고 했다. 내가 이어서 물었다. “그럼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위법인가요?” 그는 “법적인 관점에서 보면 위법이 아니지만 지금 중국은 공산당 마음대로인데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겠습니까?”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파룬궁은 100여 개 국가에 널리 퍼졌고 현재 전 세계가 각성하고 있으며 각국 정계 인사들이 중공을 포위 공격하고 박해를 제지하며 박해 가담자의 입국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공산당원은 처자식을 포함해 모두 추방될 것이며 탈당 증명서가 있어야만 추방의 위험을 피할 수 있습니다.”

이때 대대 직원이 “우리 법 하나 정하면 안 될까요?”라고 했다. 610 직원이 “그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장쩌민도 못했는데”라고 했다. 그러고는 가려다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내게 말했다. “어떻게 해야 서명하실 건가요? 조건을 말해보세요.” 내가 농담으로 20만 위안을 주면 서명할지 말지 생각해보겠다고 그는 “서명 안 하면 그만이지, 돌아가서 아무 데나 말하고 다니지 마세요”라고 했다. 내가 “돌아가면 바로 당신들의 불법 행위를 폭로하겠습니다”라고 하자 그들은 차에 올라타 도망치듯 떠났다. 이 대대 직원은 파룬궁 진상을 이해했고 대법제자의 삼퇴 권유로 탈당도 선택했지만 소위 ‘상급자’ 앞에서는 여전히 적극적으로 아부했다. 결국 그는 퇴직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갑작스러운 질환으로 사망해 응보를 받았다.

며칠 후 우리집에 경찰 몇 명이 왔는데 한 사람이 새로 온 부소장이라며 나를 보러 왔다고 소개했다. 나는 말했다. “나도 마침 당신들을 찾으려 했습니다. 610 직원이 우리 직장까지 와서 내게 서명하라고 했는데 당신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건 참을 수 있어도 왜 감히 직장까지 가서 괴롭히나요?” 경찰은 “그건 정말 말이 안 되네요. 우리는 업무상 요식 행위로 집에 한 번 들른 것이지만 직장에 가면 업무에 지장을 주니 또 찾아오면 그들을 고소하세요”라고 했다. 내가 “당신은 부소장이니 부하 경찰들에게 더 이상 집으로 찾아와 괴롭히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내 정상적인 생활에 큰 지장을 줍니다. 나는 파룬궁을 수련하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 하는데 당신들은 마땅히 보호할 방법을 생각해야 합니다”라고 하자 그 부소장은 얼버무리며 “알겠습니다. 앞으로 오지 않겠습니다” 하고는 가버렸다.

관할 구역 경찰이 또 바뀌어 이번에는 퇴직을 앞둔 늙은 민경이 왔다. ‘7·20’을 앞두고 그는 우리집에 와서 새로 온 구역 경찰이라 소개하며 악의 없이 그냥 집에 들러본 것이라 했다. 그동안 안부만 묻고 파룬궁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 내가 “연세를 보니 곧 퇴직하실 때가 되시지 않았나요?”라고 묻자 그는 “얼마 안 남았어요”라고 했다. 나는 “젊은 사람들은 갓 사회에 나와 파룬궁을 잘 모르지만 어르신 연세면 파룬궁이 널리 전파될 때부터 박해받기까지의 전 과정을 지켜보셨을 테니 파룬궁이 어떤 것인지 마음속으로 잘 아실 겁니다”라고 했다. 그는 “더 말할 필요 없어요. 나도 어떻게 된 건지 다 알고 당신들의 명예가 회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 내가 “아신다니 더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무사히 퇴직하시고 평안하시길 바랍니다”라고 하자 그는 감사하다고 했다.

그 후 악당의 소위 민감한 날인 ‘4·25’를 앞두고 직장 부서 간부가 나를 찾아와 말했다. “파출소에서 회사 인사팀장에게 전화를 걸어 당신이 여기서 일하느냐, 파룬궁을 수련한다고 하던데 알고 있느냐고 물었답니다. 인사팀장이 내게 묻기에 나는 당신이 입사할 때부터 파룬궁을 수련하는 줄 알았다고 했고, 파룬궁이 TV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부처를 수련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인사팀장도 당신을 부를 텐데 혹시 그들이 당신에게 파룬궁 수련 여부를 물어볼 때 너무 맞서지 말고 지혜롭게 대답하세요.” 나는 “알겠습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들은 늘 괴롭혀왔으니 안심하십시오. 괜찮을 겁니다”라고 했다. 동료도 거들었다. “우리 부서 사람들은 다 진상을 알지만 회사는 아직 잘 모를 수도 있어요. 그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억지 트집을 잡으면 당신도 가정을 생각해야 합니다.” 나는 “신경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집에 돌아온 후 마음이 흔들렸다. 속으로 ‘만약 사악이 괴롭히고 위협해서 직장을 다닐 수 없게 되면 어떡하지? 직장이 없어지면 가족들의 생계는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법공부를 마친 후 나는 그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고 그것은 내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사악의 박해를 인정할 수 없다. 나의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셨고 오직 사부님께서만 결정하신다. 정법 속에서 사부님께서 필요한 모든 것을 안배하셨는데 내가 더 무슨 걱정을 한단 말인가. 나의 사명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나는 정념을 발해 바르지 못한 사상과 염두를 제거하기 시작했고, 동시에 인사팀장을 찾아가 진상을 알릴 기회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았다. ‘인사팀장을 찾아가 진상을 알리는 이 과정 자체가 바로 구세력이 안배한 이 박해 과정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본래 인사팀장에게 진상을 알려야 할 과정 자체가 있어서는 안 된다. 이 생명은 박해에 가담할 리도 없고 가담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생명은 법을 위해 왔기 때문이다. 다년간 접촉해 온 인사팀장은 틀림없이 나의 행동을 보고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념을 굳힌 후 나는 정념을 발할 때 ‘인사팀장 및 회사 모든 중생 배후에서 그들의 생명이 구원받는 것을 가로막는 일체의 사악한 생명과 요소를 제거한다’는 일념을 더했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 지금까지도 회사는 파룬궁 수련을 이유로 나를 찾은 적이 없으며, 마치 그런 일이 아예 없었던 것 같았다.

나중에 구역 늙은 민경이 또 우리집에 왔기에 내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 회사에 전화해서 괴롭힌 사람이 당신인가요?” 그는 그렇다고 했다. 내가 말했다. “파룬궁이 박해받는 진상을 아시면서 왜 가담하시나요? 이 일이 저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지 아십니까? 우리 간부와 동료들이 저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민경은 미안해하며 말했다. “위에서 명령이 내려와 당신이 진짜 일하고 있는지 확인하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전화했어요. 나도 당신 회사 간부에게 당신이 좋은 사람이고 파룬궁 수련하는 것 빼고는 흠잡을 데가 없다고 말했고 앞으로는 회사에 가서 괴롭히지 않겠다고 보장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 민경은 퇴직했다.

9. 구역 경찰이 마침내 구원받다

2024년 설을 앞두고 파출소 경찰이 아내의 직장에 연락해 대대에서 만나자고 했다. 아내가 가보니 한 경찰이 자기를 소개하며 “이전 민경은 퇴직했고 저는 새로 온 구역 경찰인데 앞으로 이쪽 일은 제가 담당합니다”라고 했다. 이어 “곧 설이니 남편에게 파룬궁 대련(對聯)을 문 앞에 붙이지 말라고 전해주세요. 마당 안은 우리가 상관하지 않겠지만 문 앞은 안 됩니다”라고 했다. 아내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며 “대련을 붙이는 것은 우리의 권리이며 누구도 간섭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고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권했다.

2025년 ‘4·25’를 앞두고 새로 온 구역 경찰이 우리집에 왔는데 태도가 꽤 부드러웠다. 오자마자 “저는 업무 때문에 왔습니다. 신앙을 갖는 것은 당신 자유고 집에서 믿는 것은 괜찮지만 여기저기 선전하지는 마세요”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은 위법이 아니며 우리가 하는 일도 위법이 아닙니다. 당신이 우리집에 와서 괴롭히는 것이야말로 위법입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무척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에게 카메라를 끄게 한 뒤 진상을 알려주며 파룬궁 수련으로 얻은 혜택과 대법이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에 대해 말해주었다. 그는 모두 동의했다. 내가 삼퇴를 권하자 그는 감히 의사를 밝히지 못하고 말대꾸도 하지 못한 채 연신 “저도 정말 오기 싫었고 당신을 만나기도 싫었습니다. 면목이 없지만 어쩔 수 없으니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라고만 했다. 나는 속으로 ‘이 사람을 반드시 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다음에 다시 올 때는 경찰복을 입지 말고 오세요. 그렇지 않으면 우린 친구가 될 수 없어요”라고 했고 그는 알겠다고 했다. 이후로 그는 집에 올 때마다 절대 경찰복을 입지 않았고 카메라도 가져오지 않았으며 보조 경찰도 데려오지 않았다. 혼자 사복 차림으로 와서 잠시 머물다 갔고 파룬궁에 대해서도 꺼내지 않았다. 만날 때마다 나는 기회를 잡아 진상을 알렸고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이야기했다. 또한 집에 있는 농산물을 그에게 주며 가져가서 아이들에게 먹이라고 했다.

2025년 ‘7·20’ 전, 그는 업무상 교류가 있는 우리집 친척에게 전화를 걸어 내게 전화를 달라고 하거나 퇴근길에 치안센터로 자신을 찾아오라고 전해달라며 우리집에 오고 싶지 않다고 했다. 나는 ‘아내와도 업무 교류가 있는데 왜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았을까? 분명히 나를 겨냥한 것이다. 이번엔 반드시 그를 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사부님께 가지를 청했다. 아내가 나를 대신해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약속 시간을 잡았고 저녁 퇴근 후 나는 그를 찾아갔다.

치안센터 문 앞에 도착하니 그가 혼자 나왔는데 경찰복도 입지 않았고 보조 경찰도 없었다. 그가 “정말 당신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 그냥 얼굴 한 번 보고 잘 지내는지 확인하면 됐습니다. 별다른 일은 없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녹음기나 카메라는 안 챙겼나요?”라고 묻자 그는 없다고 했다. 내가 “그럼 몇 마디 더 할 테니 잘 들어주세요”라고 했다. 나는 “당신 업무 때문에 만나러 온 게 아니라 당신을 구하기 위해 왔습니다. 그렇게 여러 번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했는데 감히 대답을 못 하시네요.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천멸중공)’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천기(天機)입니다. 반드시 삼퇴를 해야만 미래가 있고 대도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약간 겁을 먹고 “알았으니 돌아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갈 수 없습니다. 당신이 선량한 사람인 걸 알기에 반드시 당신을 책임져야겠습니다. 박해가 20년이 넘었는데 앞으로 또 20년이 있겠어요? 파룬궁이 바로잡히는 그날이 오면 당신은 어쩔 건가요? 당신이 한 일에 대해 공산당이 책임져 줄 수 있나요? 선악에 응보가 따른다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이며 각자 자신이 한 일은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당신은 좋은 사람이니 중공에 연루되는 것을 보고 싶지 않고 평안하기를 바라며 그것이 당신 가족의 바람이기도 할 겁니다”라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나는 계속 말했다. “속으로 탈당하기만 하면 되니 ‘좋다’, ‘알겠다’라고 의사 표시만 하세요. 가명으로 성명하면 업무에 아무 지장도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일하고 있어서 탈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말했다.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는 것은 당신의 임무가 아닙니다. 당신의 임무는 국민을 위해 봉사하고 권선징악하며 지역의 평안을 지키는 것이지 좋은 사람을 박해하는 게 아닙니다.” 그는 “알았으니 이제 가세요”라고 했다. 나는 “오직 당신을 위해 온 것이니 입장을 밝히고 탈당하세요. 그저 ‘좋다’고 한마디만 하면 됩니다”고 했다. 이때 그가 “좋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악수 한번 해요. 정말 기쁘네요”라고 했다.

나는 “악당을 탈당했으니 우린 이제 친구입니다. 친구로서 제 휴대폰 번호든 위챗이든 다 줄 테니 필요한 걸 말하세요”라고 했다. 그는 “다 좋습니다. 그저 당신 집에는 다시는 가고 싶지 않으니 연락만 닿으면 됩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럼 위챗을 추가할게요”라고 하자 그는 좋다고 했다. 나는 “당신의 개인 위챗만 추가할 뿐 업무용은 추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했고, 그는 “이게 개인 위챗입니다”라고 했다. 나는 그를 추가하고 당부했다. “제 연락처를 얻었다고 업무 성과로 보고하지 마세요. 만약 위에서 물으면 연락처가 없다고 하세요. 제 휴대폰 번호, 직장 정보, 생활 정보는 국보 경찰이 당신보다 훨씬 잘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감시해왔으니 모르는 게 어딨겠어요.” 그는 “압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고 저만 알고 있겠습니다”라고 했다. 위챗을 추가한 후 나는 그를 차단하지 않았고 그는 내게 ‘좋아요’도 눌러 주었다. 이 경찰은 마침내 구원받았다.

맺음말

이 과정을 통해 나는 경찰을 구할 때 반드시 인내심과 세심함을 가져야 하며 절대 원망하는 마음을 품어선 안 되고 그들을 악당과 도매금으로 묶어서도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입장에서 이해해주고 순차적으로 그들에게 안전감을 주어 우리 수련인들이 정말로 그들을 위해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해야 하며, 수련인의 아름다움을 진정으로 느끼게 해야 한다. 진정으로 그들을 친구처럼 아껴줄 때 그들도 비로소 수련인을 친구로 여기고 마음을 열 것이며 심지어 대법제자가 박해받는 입장에 서서 문제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대법제자를 동정하고 나아가 보호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그들이 이번 생에 경찰이라는 역할 속에서 진정으로 해야 할 역할이며 그들이 구원받을 자격이 있다는 기본적인 표현이다.

 

원문발표: 2026년 7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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