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을 겪으며 바른 수련의 길을 걷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먼저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두 번째 생명을 주셨습니다.

1. 구치소에서 연공 환경을 개척하다

2015년 나는 장쩌민 고소 건으로 구치소에 납치됐다. 구치소 안에서는 반드시 수감복과 조끼를 입도록 요구했다. 나는 파룬궁(法輪功)을 수련하는 사람이고 죄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수감복과 조끼 착용을 거부했다.

감옥경찰과 소장이 모두 나를 찾아와 대화했다. 나는 그들에게 파룬궁은 불법(佛法)이며 우리는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고 죄가 없으며 신앙의 자유가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들은 수감자 몇 명을 불러 강제로 내게 수감복과 조끼를 입히고 수갑을 채웠다. 그래서 나는 단식하며 항의했고 20여 일 동안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 단식 7일째가 되자 그들은 강제로 내게 음식물을 주입했다. 매일 10여 명의 수감자가 나를 억누르고 주입했는데 내가 입을 벌리지 않자 그들은 내 코를 쥐고 생수병 밑바닥을 자른 뒤 거꾸로 뒤집어 입안에 묽은 죽을 부어 넣었다. 그 과정에서 내 치아가 두 개 빠졌고 입안이 다 헐었다. 어느 날 주입한 죽이 목구멍에 가득 차 숨을 쉴 수 없게 되자 나는 마음속으로 외쳤다.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사부님 저를 구해주세요!’ 그 후 나는 아무것도 모르게 됐는데 나중에 누군가 더 이상 주입하지 말라며 사레가 들려 사람 목숨이 위태롭다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그들은 멈췄고 소장과 감옥경찰이 모두 달려왔다. 그들은 일이 생겨 책임을 질까 봐 두려워 나에게 수갑과 족쇄를 채운 채 병원으로 보내 주사를 맞게 했고 4~5명의 경찰이 거기서 지켜보았다. 며칠 주사를 맞고 다시 나를 구치소로 데려왔다.

다음 날 소장이 남자 감옥경찰 한 명과 수감자 한 명을 불러와 나를 아무도 없는 방으로 들고 갔다. 남자 경찰은 물병을 들고 나를 때리며 “왜 밥을 안 먹는 거야, 어쩌고 싶은 건데?”라고 물었다. 그 수감자는 주먹으로 내 양쪽 뺨을 때렸는데 당시 얻어맞아 윙하는 소리와 함께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2년 넘게 지나서야 좀 나아졌다). 나는 “수감복은 안 입어요, 나는 연공하고 정념을 발할 거예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밥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했다. 이렇게 해서 나는 연공 환경을 개척했다. 낮에는 침대에 앉아 정공(靜功)을 연공하고 밤에는 동공(動功)을 연공하며 정념을 발하고 법을 외웠다. 밖으로 바람을 쐬러 나가 체조를 할 때면 나는 뒤에서 연공했다.

2. 구치소에서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다

이후 나는 이왕 이곳에 왔으니 이곳 사람들은 모두 내가 구해야 할 중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먼저 감방 반장에게 알려주었는데 그녀는 마약 사범이었다. 그녀는 “당신들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고 매우 선량하며 남을 욕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공청단과 소선대에서 탈퇴했고 그 후부터 그녀도 좋게 변해 방안 사람들이 남을 욕하거나 험한 말을 하지 못하게 했다.

나는 각종 기회를 이용해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다. 밤 12시에 정념을 발하러 일어날 수 없을 때면 나는 젊은이들과 교대했는데 그들은 모두 아주 기뻐했고 한 명에게 진상을 알리면 한 명이 탈퇴했다. 그리고 새로 온 사람 중에 밥 살 돈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내가 더 사서 그녀들에게 나눠 먹이고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려 모두 악당에서 탈퇴하는 데 동의했다.

또 나를 때렸던 그 수감자에 대해서는 당시 날 때릴 때 난 매우 화가 나서 ‘나가면 반드시 당신을 고소할 거야’라고 생각했었다. 나중에 나는 사부님께서 “당신이 당신의 적을 사랑하지 않으면 당신은 원만에 이르지 못한다고 알려주었다”(오스트레일리아 법회 설법)라고 하신 말씀이 떠올랐다.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며 남을 고소하거나 미워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녀에게 진상을 알려주었고 그녀는 기쁘게 탈퇴했다. 방안에는 가는 사람도 있고 오는 사람도 있었는데 나는 그녀들 모두를 탈퇴시켜 50여 명이 됐지만 펜이 없었고 시간이 길어지자 다 기억하지 못했다.

나중에 수련생과 교류할 때 수련생이 사부님께서 “신(神)은 알고 있다”고 하셨다고 했다. 나는 그녀들이 모두 탈퇴하겠다고 승낙했으니 악당의 순장품이 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3.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나 다그쳐 착실히 수련하다

나는 불법 판결을 받고 감옥에 갇힌 후 감옥의 엄격한 관리 박해를 당했다. 6~7명의 수감자가 나를 감시하며 하루 17시간 동안 작은 의자에 앉혀 놓았고 화장실 가는 것 외에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 엉덩이가 다 헐었다. 또 얼리는 방법으로 나에게 ‘전향’을 강요했는데 11월인데도 솜옷을 나눠주지 않았고 아무도 내게 옷을 주지 못하게 해 홑옷 한 벌만 입혔으며 매일 앞뒤 창문을 모두 열어두어 자정까지 계속됐다. 내 양쪽 어깨가 모두 얼어붙어 들어 올릴 수도 없게 됐고 몇 년이 지나서야 좋아졌다. 하루 종일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을 틀어놓고 계속 계도원을 바꿔가며 나를 설득하려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녀들에게 진상을 알리는 것 외에 나는 그저 묵묵히 법을 외웠고 그녀들이 계속 나를 핍박하면 나는 “당신들이 총으로 나를 쏴 죽인다 해도 나는 ‘전향’하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다. 나는 마음속으로 ‘진선인은 내 마음속에 있으니 누구도 파낼 수 없고 나는 그저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강경하게 안 되자 부드럽게 나왔다. 나중에 남성 감옥에서 두 사람이 파견됐는데 한 명은 감옥경찰이었고 다른 한 명은 남성 계도원이었다. 그 경찰이 “나는 예전에 대법제자를 자주 때리고 욕했는데 그들이 내게 법을 외워주었소. 당신들 파룬궁수련생들이 이렇게 착하고 남에게 원한도 품지 않는 것을 보고 나도 좋게 배웠소. 더 이상 그들을 때리지 않고 욕하지도 않으며 안으로 찾을 줄도 알게 되어 매일 대법제자와 함께 법공부를 하오”라고 말했다. 그가 파룬궁 책들을 모두 가져왔기에 우리도 당시 아주 기뻐하며 모두 보고 싶어 했다. 그가 한 사람당 한 단락씩 읽자고 했다. 우리는 그들의 속셈을 모른 채 법공부를 하다가 그들이 멈추게 하더니 사부님의 한 단락 설법을 단장취의(斷章取義)하며 가리키고는 “파룬궁은 불법(佛法)이고 불법은 대립이 있을 수 없소. 그런데 당신들은 공산당에 반대하며 공산당과 대립하고 있지 않소”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은 당신들이 파룬궁수련생들을 잡아 가뒀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말했다. “당신들은 진선인을 배우지 않소? 그럼 당신들은 왜 인(忍)하지 않소? 중남해(中南海, 베이징 공산당 집무실)를 에워싸고 또 당을 탈퇴하고 단을 탈퇴하고 대를 탈퇴하라고 말하는데 당신들 이거 유위(有爲)적인 게 아니오?” 그들은 또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3강에서 말씀하시지 않았냐고 했다. 사부님께서 “나는 아직 유위(有爲)적인 일, 사람을 제도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마음은 사람을 제도하는 데에 있기 때문이었다”라고 하셨다. 나 역시 법공부를 적게 한 탓에 어떤 부분은 오히려 그 경찰의 말이 맞다고 여겼다. 이 일념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이끌려 사악한 길로 가게 됐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통제당했고 당시 견디지 못한 데다 생사를 내려놓지 못해 이른바 ‘전향’을 하고 말았다.

감옥경찰은 나와 아는 수련생이 계도원이 되어 ‘전향’하지 않은 수련생들을 이끌고 법공부를 하게 했다. 나는 계도원을 하지 않겠다며 나는 할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는 나에게 그저 ‘전향’한 과정을 말해주면 된다며 계도원을 하면 점수를 많이 딸 수 있어서 감형받아 일찍 집에 갈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본심과 다르게 일부 잘못된 일을 또 저질렀는데, 그녀들에게 나처럼 거기서 그렇게 많은 고생을 하지 말고 어서 일찍 집에 돌아가 집에 간 이후에 다시 공부하라고 권했다. 내가 이런 것들을 쓰는 것은 수련생들에게 나처럼 사악의 속임수에 넘어가지 말라고 경각심을 주기 위해서다.

돌아온 이후 수련생들이 모두 나를 보러 왔고 아직 나를 포기하지 않은 채 귀찮아하지 않으며 거듭 나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사부님께 죄송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련생이 나에게 먼저 엄정성명을 쓰라고 해서 썼는데 며칠 안 되어 다시 가져와서는 안 된다고 해서 나는 다시 썼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고 계시는데 여전히 제대로 쓰지 못했고 여전히 숨기려는 마음이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내가 저지른 잘못된 일들을 모두 써냈고 나중에 발표됐다. 나는 대법을 굳게 수련해 내가 대법에 끼친 손실을 만회하기로 결심했다. 법공부를 한 이후 아이들이 모두 내가 다시 연공하는 것을 알고 모두 돌아와 내게 연공하지 말라고 권했다. 딸이 울면서 “엄마가 거기 있을 때 우리가 모두 아주 걱정했어요, 살아서 돌아오실 거라곤 생각지 못했어요”라고 말했다. 며느리는 “어머님이 다시 연공하시면 저는 어머님 아들과 이혼할 거예요”라며 듣기 싫은 말도 좀 했다. 당시 나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고 속으로 ‘네가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야, 우리 사부님께서 말씀하셔야 결정돼. 너희들은 하고 싶은 대로 말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저녁 식사 이후부터 자정까지 계속 말했다. 내가 “모두들 돌아가라”라고 말하자 그들은 내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가버렸다. 그 이후 어린 손녀가 “할머니, 할머니가 우리 아빠의 엄마 아니에요? 아빠가 왜 할머니한테 그렇게 못 되게 굴어요?”라고 말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웃음이 났는데 이 아이가 이렇게 어린데도 다 알아본 것이다.

이후 나는 내가 왜 이렇게 크게 넘어졌는지 스스로 반성하기 시작했고 법공부를 통해 깨달았다. 법공부하고 연공을 시작할 때부터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일하는 것을 수련으로 삼았고 법공부는 그저 형식에 흐를 뿐 전혀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기 법공부를 할 때 나는 아무것도 몰랐지만 법도 공부했고 공도 연마했다. 이후 수련생이 “이젠 안 돼요, 곧 끝나가니 빨리 따라잡아야 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세 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했다. 그녀는 내게 전단지 약간과 소책자 몇 권을 가져다주며 자료가 적어서 이것밖에 없다고 했다. 내가 무엇을 좀 할까 하다가 벽에 글씨를 칠하기로 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자 수련생이 내게 스프레이 페인트를 보내주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 것이며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사부님께서 모두 아신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는 이 일이 너무 신기하다고 느꼈는데, 이 두 수련생을 나는 알지도 못했고 단지 여동생이 자기네 집 이웃에 파룬궁을 연공하는 사람이 있다고 말한 것을 들었을 뿐이다. 내가 여동생에게 그들을 좀 만나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날 그 두 사람이 왔고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것이라고 생각했다. 수련생이 “언니 일하고 싶으세요? 제가 기계 하나 보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나는 할 줄 모른다고 말하자 그가 와서 가르쳐 줄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다음 날 복합기가 배달됐다.

그때는 막 ‘9평 공산당’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였고 소책자도 있었는데 나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대량으로 만들었다. 그때는 다른 시, 다른 현에서도 모두 내게 와서 자료를 가져갔기에 나는 법공부를 적게 했고 법공부를 할 때면 졸음이 쏟아졌으며 정념을 발할 때도 손이 넘어갔다. 수련생이 때로는 내게 “법공부를 잘해야 해요, 일하는 것은 수련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나는 오히려 화를 내며 “당신들이 매일 여기에 와서 자료를 요구하고 여기서 요구하지 않으면 저기서 요구하는데 그럼 내가 당신들에게 만들어줘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다 인쇄하면 또 잘 철해야 했고 때로는 내게 배포하러 가라고도 했기에 사람을 구하는 것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해 법공부를 적게 했다. 읽어도 읽고 나면 그만이었으며 마음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스스로는 또 아주 잘하고 있다고 느꼈다. 내가 어디를 가든 그곳 수련생들이 모두 나를 칭찬하며 내가 수련을 잘했다고 말했다. 나의 과시심, 환희심이 모두 나와버렸다. 사실 전혀 자신을 수련하지 않았고 원망심, 질투심 등 아무것도 버리지 못해 구세력에게 틈을 주어 이렇게 여러 해 동안 박해당한 것이다. 돌아온 이후 수련생의 도움하에 다시 대법으로 돌아와 수련했다. 나는 다시 분발해야 하고 거기에 엎드려 있을 수만은 없으며 일어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을 가라앉혀 법공부를 하려 했고 낮이나 밤이나 두 개의 법공부 팀에 참가해 비바람이 불어도 빠지지 않고 법공부하고 법을 필사하며 법을 외웠다. 1년여의 시간을 들여서야 ‘전법륜’을 한 번 다 외웠고 지금은 두 번째 외우기 시작했다. ‘전법륜’을 한 번 베껴 썼고 각지 설법을 한 번 다 공부했으며 지금도 계속 공부하고 있다. 대량의 법공부를 통해 나는 사부님 말씀을 듣고 세 가지 일을 잘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두 수련생과 협력해 전단지를 뿌리고 소책자를 배포하며 탁상달력을 나눠줄 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하는 것까지 함께 하여 나눠주는 만큼 탈퇴시켰다. 지금은 때때로 나가서 대면하고 진상을 알리며 삼퇴를 권한다. 나는 돌아온 수련생들에게 모두 빨리 정진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다그쳐 법공부를 잘하고 연공을 잘하며 법에서 심성을 높이고 세 가지 일을 잘하라,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4. 사부님께서 나의 두려운 마음을 없애주시다

2023년 현지 여러 명의 수련생이 납치됐고 경찰이 집으로 찾아와 교란했다. 어떤 협조인 한 명이 납치됐고 또 대법서적도 가택수색으로 빼앗겼다. 당시 나도 매우 두려웠는데 사악이 우리집을 알고 있었고 수련생이 나를 걱정하며 “아들 집에 가서 며칠 지내세요”라고 말했다. 나는 가지 않았지만 마음속으로 매우 두려워 사악이 우리집에 올까 봐 매일 아주 늦어서야 집에 돌아갔다. 나는 매일 사부님께 가지(加持)를 청하고 사부님께서 하신 설법을 외웠다. 이후 나는 지낼 집을 찾고 싶어 몇 곳의 집을 보았지만 좋은 곳을 보지 못했다. 매일 집에 갈 때 여전히 좀 조마조마했다.

어느 날 내가 건물 아래로 걸어갈 때 마음속으로 여전히 집을 찾고 싶어 했는데 갑자기 사부님의 법이 내 머릿속에 들어왔다. “또 모기가 있다고 해서 우리 모두 밖에 나가서 자리를 찾아 살 수도 없으며”(전법륜).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나를 일깨워주시는 것이라 생각했고 사악의 교란이 있다고 해서 내가 밖으로 나가 살 곳을 찾을 수는 없다고 여겼다. 내 마음은 단번에 안정됐고 두려운 마음이 단번에 없어졌다. 나는 사부님께서 나의 두려운 마음을 없애주셨다고 생각해 감사드렸다. 나는 그들의 관할에 속하지 않고 내가 정념을 한 번 발하기만 하면 사악은 없어진다고 생각했다. ‘나는 사부님의 관할에 속하고 대법의 관할에 속하며 누구도 나를 관할할 자격이 없다.’ 이 두려운 마음이 해체됐다. 나는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은 후 곧장 집에 돌아갔고 다시는 두렵지 않았다.

사부님께서 두려운 마음을 없애주신 것이다. 나는 집에 돌아가 사부님께 머리를 세 번 조아렸다. “감사합니다 사부님!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나는 은사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절대 저버리지 않겠다!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사부님 은혜에 보답하며 사부님을 따라 집에 돌아가겠다!

개인적인 체득이니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바로잡아주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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