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거하기 어려운 휴대폰 중독과 근본 집착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몇 년 전, 나는 휴대폰 중독에 빠져 사악의 교란을 초래한 적이 있다. 당시 늘 바빴던 업무가 마침내 수월해져 법공부 시간이 보장됐지만, 매일 제시간에 법공부를 마치고 나면 마치 임무를 완수한 것 같아 나머지 시간에는 긴장을 풀기 시작해 드라마나 교양 프로그램 등을 보았고, 또한 늘 문화적 소양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업무와도 어느 정도 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며 핑계를 찾아 자신을 느슨히 했다. 사악의 전화 교란이 오고 나서야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안으로 찾으며 이러한 집착들을 내려놓게 됐다.

얼마 후 또 느슨해져서 업무 자료나 업무 관련 글, 사회 이슈 등을 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이런 것들도 보지 않았고 기본적으로 남겨둔 것은 모두 업무 도구 앱이었다. 하지만 업무나 생활에서 필요해 휴대폰을 켜기만 하면 또 핑계를 찾아 참지 못하고 잠시 보게 됐고, 문득 정신이 들어 서둘러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방금 어떻게 휴대폰을 켰는지, 어쩌다 이 내용을 터치하게 됐는지 스스로도 망연하고 얼떨떨했다. 늘 자신이 힘겹게 억제하고 억제한다고 느꼈지만 억제하지 못하고 또 보았다. 또 마치 끊임없이 떠보는 것 같았는데 아무 일도 없으니 또 보고, 아직 아무 일도 없으니 다시 보고…… 그러다 어떤 번거로운 교란 등을 초래하고 나서야, 긴장된 압력 속에서 부득이하게 안으로 찾으며 강제로 자신의 정념을 강하게 해 법공부, 법 암기, 발정념을 강화했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하에 비로소 이겨낼 수 있었다.

몇 년 동안 휴대폰 중독을 반복적으로 제거하면서 점차 약해졌지만 끝내 완전히 없애지 못해 나 자신도 매우 괴롭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줄곧 휴대폰 중독 배후에는 색욕심이 있다고 여겨, 발정념으로 휴대폰 중독을 제거하는 동시에 색욕심, 호기심 등도 제거했다.

바로 이 글을 쓰기 전날, 어른을 위해 의료용품을 인터넷으로 구매하느라 잠들기 전 쇼핑 플랫폼을 살펴보았고, 이후 또 몇 가지 상품을 뒤적이다가 꽤 유용하다고 생각해 서둘러 즐겨찾기해 두었다. 갑자기 보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황급히 휴대폰을 내려놓았다. 밤에 꿈속에서 나는 동료와 수다를 떨고 있었는데 잠시 후 오히려 귀신과 게임을 하기 시작했고, 한동안 게임을 하다가 내가 어떻게 여기에 있을 수 있는지 생각나, 다급한 마음에 힘껏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고 나서야 비로소 공중으로 솟아올랐다. 꿈에서 깜짝 놀라 깼다.

근본 집착이 ‘근본’인 이유

일찍이 수련생들이 모두 안으로 찾으며 자신의 근본 집착을 파헤쳤기에 나도 찾았다. 하지만 나의 근본 집착은 무엇일까? 나는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지만 딱히 큰 병은 없었고, 처음에 법을 배울 때는 몸이 좋아지기 위한 요소도 있었지만 근본 집착은 아니었다. 그럼 나는 애초에 무엇 때문에 대법을 배우기로 결정했을까? 대법을 배우면 수련 성취할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수련 성취하고 싶은 것이 잘못된 것일까? 수련 성취하려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수련 성취하면 인간 세상의 각종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으며 초탈해 자유자재함에 도달할 수 있다. 아! 나는 고통을 겪기 싫었고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져서 인간 세상의 번뇌에 시달리지 않고 세상을 초월해 자유자재하게 살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까지 찾았을 때 나는 이것이 근본이라고 여겼다. 이번에 휴대폰 중독이 끈적끈적하게 달라붙어 제거하기가 몹시 어려워, 끊임없이 깊이 안으로 찾고 나서야 세상을 초월해 자유자재하고 싶은 그 이면에 안일심이 있으며 이것이야말로 바로 그 근본 집착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휴대폰 중독의 뿌리는 바로 안일심으로, 편안함을 추구하고 생활의 평온함과 즐거움을 누리며 안일에 휩싸일 때마다 휴대폰 중독이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휴대폰 중독은 안일심에 의해 자양분을 얻는 것이라 그것에 자양분을 주는 토양이 제거되지 않았기에 휴대폰 중독은 줄곧 생존할 수 있는 환경이 있었다. 그래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끈적끈적하며 제거한 후에 또 나타나고 한 층을 제거하면 또 한 층이 있었던 것이다. 비록 점차 약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존재했다. 게다가 안일심이라는 이런 ‘미지근한 물에 개구리 삶기’는 더욱 교활하고 은폐되어 있어, 휴대폰 중독을 제거할 때 마치 솜에 주먹을 날리는 듯한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이 사고의 틀을 열고 난 후 나는 많은 집착심이 모두 근본 집착인 안일심과 관련이 있음을 발견했다. 두려운 마음은 사악의 박해와 교란이 두려운 것으로 사실은 안일한 생활환경을 잃을까 두려운 것이다. 사심은 오직 자신만 위하고 중생을 위해 생각하지 않으며 단지 자신의 안일한 생활을 지키려 할 뿐이다. 이익심은 돈을 모으고 싼 물건을 사려 하며 돈이 더 많아지려는 것인데, 역시 자신의 안일한 생활을 지키려는 것이다. 업무에서 남과 비교하며 남처럼 편안하고 싶어 하는 것도 역시 안일심이다. 남처럼 안일하지 못하면 평형을 잃는 것은 쟁투심이다. 나보다 편안하게 보이는 동료에 대해서는 질투심이 있다. 누가 내게 업무량이나 생활의 부담을 가중시키면 마음속으로 원망이 생기는 것은 원망심이다. 때로는 배불리 먹고도 맛있다고 느껴 몇 입 더 먹으려 하고 때로는 일을 끝내고 지쳤을 때 시간이 있으면 잠깐 눈을 붙인다. 식탐과 수면 탐닉은 더욱더 안일심의 표현이다…… (이 글을 다 쓴 후 나는 또 발견했는데, 휴대폰 중독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나의 안으로 찾기는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었다. 압력하에서 비로소 어쩔 수 없이 안으로 찾은 것으로 부득이한 것이었다. 안으로 찾아 이후 생활이 다시 평온해지고 시간이 길어져 환경이 느슨해지면 안일심이 또 튀어나왔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휴대폰을 보는 집착심이 또 몰래 생겨났다. 마치 안으로 찾는 것조차 안일한 환경을 보호하려는 느낌이 드는 것 같았다.)

근본 집착이 ‘근본’인 이유는 그것이 근본이자 뿌리이며 그것이 있으면 곧 각종 다양한 집착심에 자양분을 공급하기 때문이다. 그런 집착심들은 마치 풀과 같아서 잎을 제거해도 뿌리가 여전히 남아 있고 생존 환경이 여전히 남아 있으며 그것들에 자양분을 공급하는 토양이 여전히 남아 있어 제거하기가 매우 어렵게 되는데, 그것의 뿌리가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근본 집착 제거를 중시해야 하며 그것을 철저히 제거해야만 다른 집착심을 더욱 잘 제거할 수 있다.

당연히 무슨 집착이든 그것들은 모두 우리의 것이 아니며 진정한 자신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것을 승인하지 않는다.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배치해주신 것이 아니면 모두 원하지 않고 그것을 따라가지 않으며, 나는 오직 대법의 관할만 받고 오직 사부님의 관할만 받으며 오직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만 수련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을 잘 걸어가며,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길에서 수련해 끝까지 걸어가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층차가 제한되어 있으니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 바란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1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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