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2015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이며 올해로 곧 60세가 됩니다. 10여 년 전 저는 불치병에 걸려 모든 희망을 잃었지만 다행히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할 인연이 닿아 절망 속에서 살아났습니다. 아래에 제가 수련한 과정을 사부님께 보고해 파룬따파의 신성함과 신기함, 사부님의 성스러운 은혜와 무량한 자비를 실증하려 합니다.
1. 소년 시절 병마에 시달리다
6~16세는 본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세월이지만 제게는 오히려 병통의 고통에 시달린 고난의 10년이었습니다. 이 비극은 제가 6살 때 겪은 교통사고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날 저는 유치원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집 건물 아래에서 놀고 있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군용 지프차 한 대가 후진하면서 순식간에 저를 들이받았고 뒷바퀴가 제 배를 그대로 짓누르고 지나갔습니다. 제가 있던 위치가 자동차 사이드미러의 사각지대라 운전자는 저를 보지 못하고 계속 후진하고 있었습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2층에 있던 한 아주머니가 이 광경을 보고 “빨리 차 세워요, 차 밑에 사람이 있어요”라고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운전자가 급브레이크를 밟았을 때 저는 이미 통증으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습니다.
저는 긴급히 병원으로 이송됐고 의사는 검사 이후 서둘러 수술할 것을 권했습니다. 당시 병원에는 솜씨가 뛰어난 원로 의사가 있었는데 다음 날 출근 예정이었습니다. 만약 하루를 기다린다면 그 의사에게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부모님은 제 생명이 위험할까 봐 몹시 걱정하셨기에 인턴을 마치고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새 의사에게 수술을 맡기셨습니다.
의사의 수술은 복부를 절개해 살펴보고 복강 내 어혈을 제거하는 것이었는데 뜻밖에 수술 이후 장유착을 초래해 장폐색이라는 후유증을 남겼고 이는 제 평생의 악몽이 됐습니다. 때로는 케이크 몇 조각이나 포도 몇 알을 먹은 것만으로도 장폐색이 유발돼 입원해야 했습니다. 장폐색이 발생할 때마다 복부가 비정상적으로 아팠고 끊임없이 구토하며 쓴 쓸개즙까지 다 토해냈습니다. 입원하기만 하면 장시간 위관을 삽입해 위장 감압을 진행해야 했고 일주일이나 그 이상 지속돼야 비로소 완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계속되는 구토로 인한 위장 경련과 복부의 극심한 통증은 정말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입원 치료만으로도 이미 너무 고통스러웠고 부모님 역시 큰 수고와 시달림을 겪으시며 자주 “너는 왜 그렇게 식탐이 많아서 꼭 케이크를 먹어야 하니? 꼭 과일을 먹어야 해?”라고 원망하셨습니다.
저는 어린 나이에 몸이 약하고 병이 많아 고통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아는 사람들은 제가 가느다란 목으로 큰 머리를 지탱하는 모습이 온전치 못한 병약자 같다고 형용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극심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왜 나는 평범한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학교에 가고 놀 수 없을까? 왜 나는 아무런 걱정 없이 음식을 먹을 수 없을까? 왜 나는 이렇게 많은 병의 고통에 시달려야 할까?’
장폐색 발작이 너무 잦았기에 저는 16살 때까지 버티다가 또 한 차례 대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할 때 장이 유착된 부위를 잘라내야 했습니다. 차가운 수술대 위에서 의사와 간호사는 저를 보며 이렇게 피골이 상접한 젊은이는 본 적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수술은 하반신 마취로 진행됐기에 그 과정에서 저는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지만 입을 벌려도 한 줄기 소리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두려움과 절망 속에서 저는 하늘을 향해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인생은 왜 이처럼 고생스럽고 끝이 없으며 마치 지옥에서 사는 것 같을까?’
이 10년 동안 저는 장폐색의 고통에 시달렸을 뿐만 아니라 맹장에 염증이 생기고 곪아 하마터면 구멍이 날 뻔해서 또 맹장 절제 수술을 받았습니다. 이후에는 또 아무런 원인도 없이 간염에 걸려 며칠을 입원하는 등 끊임없이 각종 병마가 계속 습격해 왔습니다.
가장 고생했던 것은 곧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올라가려 할 때였습니다. 저는 동창과 장난치며 씨름하다가 팔꿈치 관절이 분쇄 골절됐고 가족은 저를 정형외과 병원으로 보냈습니다. 당시의 치료 수단은 극히 잔인했습니다. 건장한 의사 4명이 어두운 치료실에서 X선 촬영 아래 양쪽에서 동시에 제 팔을 당겨 억지로 팔꿈치 관절을 탈구시킨 다음 부서진 뼈를 맞췄고 이후 팔을 알루미늄판으로 고정해 붕대를 감았습니다. 거친 탈구 복원 치료로 인해 팔이 부어올랐고 팔의 부기와 붕대의 압박으로 인해 붕대 틈새로 곧 큰 물집이 잔뜩 생겨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이후에는 또 깁스로 고정했는데 팔 근육이 스팸 통조림 같은 사각형으로 변해 차마 똑바로 볼 수 없었습니다.
가혹한 형벌 같은 복원 치료가 여러 차례 아무 효과를 보지 못하자 수술 치료를 준비했습니다. 수술 전 의사는 가족에게 관절의 부서진 뼈 부위에 핀을 박아 고정해야 하고 1년 이후 다시 수술해 핀을 빼야 하며 앞으로 이 관절은 굳어버려 움직일 수 없게 된다고 알렸습니다. 단추에 손이 닿지 않고 세수도 못 하며 밥도 못 먹고, 더욱이 무거운 물건도 들 수 없어 마치 의수처럼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계속 이렇게 치료하다가는 아이가 장차 평생 장애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셨습니다. 수술 전날 부모님은 병원의 동의도 받지 않고 저를 데리고 병원을 도망쳐 나와 다른 사람이 소개해 준 대대로 전해지는 중의학 정형외과 진료소를 찾아가 치료받게 하셨습니다. 한 달여 동안 적외선 치료, 추나, 복원, 마사지, 부기를 가라앉히는 비방 약초 찜질과 비방 한약 복용 등 안팎으로 근본을 함께 다스린 끝에 점차 회복됐습니다. 매일 중의 치료의 추나, 복원, 그리고 장기간 고정돼 구부러진 팔의 힘줄을 곧게 펴는 과정 역시 고통이 극심했기에 매번 저는 아파서 엉엉 울었고 온몸이 땀투성이가 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다행히 회복돼 팔을 보존했고 장애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어떤 해에는 제가 거의 매달 병원을 들락거렸는데 손, 팔, 발의 혈관이 다년간 링거를 맞은 탓에 위축돼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안의 모아둔 돈은 모두 제 병을 치료하는 데 쓰였고 또 자주 빚을 지기도 했습니다. 어린 나이의 저는 자주 차라리 죽어버려 더는 병의 고통에 시달리지 않고 가족에게 짐이 되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신체의 고통은 마음의 뒤틀림도 가져왔습니다. 제 마음은 자주 원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우선 제 목숨을 앗아갈 뻔했던 사고 운전자를 원망했고 그다음으로는 의술이 서툰 젊은 의사를 원망했으며, 또 제 팔을 부러뜨린 동창을 원망했고 왜 하루를 더 기다려 그 경험 많은 원로 의사에게 수술받아 이 10년의 고통을 피하게 해주지 않으셨는지 부모님도 원망했습니다.
다년간 병을 앓았기에 초등학교 졸업 사진과 중학교 졸업 사진에는 모두 제가 없는데 그때마다 제가 입원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자주 어떤 신선이 저를 구해 이 고해에서 구제해 주시기를 기도했습니다.
2. 불치병에 걸려 모든 희망을 잃다
성인이 된 이후 저는 많은 또래처럼 대학에서 공부하고 일하며 아내를 얻어 아이를 낳았고 생활의 모든 것이 평온하게 궤도에 오른 듯했습니다. 어릴 적의 그 병통에 대한 기억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점차 멀어졌습니다. 이후 한창 상품 경제의 물결이 일 때 저는 남들이 보기에 안정적이고 편안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에 뛰어들었으며, 사회에서 다년간 산전수전 겪은 것을 바탕으로 친구들과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과정에 비록 고생과 기복이 가득했지만 결국 창업은 꽤 성공적이었습니다. 가정 면에서는 아내가 현명하고 자식이 효도해 화목했으며 아이는 건강하게 자라 마음에 드는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모든 것이 고진감래이고 순풍에 돛 단 듯 뜻대로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인생의 처절한 비바람을 겪은 이후 마침내 희망의 서광을 맞이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재앙은 조용히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한창 뜻을 이루고 회사 업무가 승승장구하며 빠르게 성장하던 좋은 시절, 한번은 건강 검진을 받았는데 몸에 아무런 불편함이 없는 상황에서 의사가 검진 보고서를 들고 매우 엄숙하게 제게 말했습니다. “간에 종양이 자랐는데 악성 종양으로 보입니다.” 저는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맙소사, 난 아직 젊고 회사도 막 활기를 띠기 시작했는데 어떻게 이런 병에 걸릴 수 있단 말인가?’ 이후 저는 여러 대형 병원을 돌며 검사받았고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어쩌면 오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고 모든 대형 병원의 검사와 진단은 간암 초기였습니다.
확진을 받은 이후 저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듯해 며칠 밤낮을 잠들지 못했고 머릿속은 뒤죽박죽이 됐으며 가장 많이 생각한 것은 철학적 세 가지 질문이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이 세 가지 풀리지 않는 질문이 내내 머릿속을 맴돌았고 아무리 궁리해도 답을 찾을 곳이 없었습니다.
아내가 초조해하며 제가 한 병원의 전문가와 연락하도록 도왔고 저는 서둘러 최소 절개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이후 두 달에 한 번씩 정기 검진을 받아야 했는데 매번 검사 때마다 종양이 재발했습니다. 이렇게 공포를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기대를 품고 몇 년을 끌어온 후 검진 보고서에는 종양이 사라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심각해진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는 의사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습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그는 “짧으면 몇 개월이고 길면 몇 년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다시 여러 대형 병원을 돌며 검사와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는 환자들이 무표정한 얼굴로 조수처럼 밀려왔다 밀려가며 입원 수속을 밟고 화학 검사, 초음파, CT, MRI를 하며 진단과 수술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병상에 누운 환자들은 매 순간 병통의 고통을 감당하고 있었고 저는 생명의 나약함과 무력함을 한탄했습니다.
많은 전문의 진료를 받았는데 어떤 전문의는 최소 절개 치료를 권했고, 어떤 전문의는 절제 수술을 주장했으며, 어떤 전문의는 당장 장기 이식을 제안했습니다. 제가 무엇이 원인이 돼 이런 불치병에 걸렸는지 물었지만 박사 과정 지도교수 등 최고의 전문가라 해도 그 누구 하나 답을 주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학식과 인식은 불치병을 발견하면 수술, 절제 또는 이식하는 것일 뿐 예방이나 근치할 효과적인 방법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이른바 혁신적이라는 극초음파 절제 수술을 택했는데, 이는 절제 바늘을 종양 부위에 삽입하고 극초음파를 이용해 고온을 발생시켜 종양 세포를 직접 죽이는 것으로 상처가 작고 효과가 좋으며 매우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치료 수단이라고 일컬어졌습니다. 수술실에 누웠을 때 마취를 하기는 했지만 제 의식은 비정상적으로 또렷해 마치 공포 영화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의사가 손에 단검(실제로는 절제 바늘 한 개)을 쥐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당시의 느낌은 단검 한 자루가 간에 깊숙이 꽂히는 것 같았습니다. 극초음파로 가열된 이후 내장이 강하게 타들어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경악스럽고 고통스러운 느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수술 이후 퇴원할 때 의사와 간호사는 제게 정기적으로 재검사를 해야 하며 수술로 근치될 수 있다고 여기지 말라고 일깨워주었는데, 선의의 배려가 도리어 저를 끝없는 심연으로 떨어뜨렸습니다.
수술 이후 몇 달이 지나 다시 재검사했을 때 종양은 재발해 있었습니다. 이때 저는 정말 철저히 절망했고 생명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 같았으며 생활 속에 아무런 햇빛도 즐거움도 없었습니다. 가장 직접적인 느낌은 이 세상이 이미 저와 아무런 상관도 없어 삶에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기간에 한 친척이 저를 걱정하며 점쟁이를 찾아가 저를 위해 물어봤는데 현재로서는 별일이 없다고 전해줬습니다. 저는 호기심과 아무 곳에나 매달리는 불치병 환자의 마음으로 점쟁이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제 사주팔자를 묻고 이것저것 이야기하더니 중간에 갑자기 주절주절 알 수 없는 말을 한바탕 쏟아냈습니다. 분명 중국어나 방언도 아니었고 외국어도 아니었기에 저는 몹시 놀랐고 심지어 신기하기까지 하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에 점쟁이는 재앙을 풀려면 재물을 써야 한다며, 저를 대신해 다른 공간의 신령에게 연꽃을 태워 재앙을 소멸하고 난관을 풀어줄 수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꺼이, 또 감지덕지하며 적잖은 돈을 써서 그녀에게 도움을 청했고 심지어 가족을 위해서도 돈을 써서 재앙을 소멸하려 했습니다. 그때 저는 오직 목숨만 보전할 수 있다면 가산을 탕진해도 좋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녀는 또 제게 악을 물리치는 부적을 써서 집 문에 걸고 베개 밑에 두며 몸에 지니게 했고, 설날 며칠 동안은 외출하지 말며 외출할 때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당부했습니다. 저는 당시 정말 능력이 아주 크고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신인을 만나 제게 길을 일러주는 줄 알았습니다. 이후 가족들은 모두 제가 귀신에 홀린 듯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변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신선에게 길을 묻고 도를 구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고 병증은 계속 재발했습니다.
제 외증조할아버지, 외할머니, 어머니는 모두 정토종을 신앙하셨고 제 대에 이르러서도 어머니를 따라 정토종을 신앙했으며, 다년간 신앙하며 절이 보일 때마다 꼭 절하고 향을 피우며 절을 올린 횟수가 셀 수 없었고 절에 이른바 보시금도 많이 기부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자신이 아주 잘하고 있으며 신의 보호를 받을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제 인생은 여전히 가파르고 험난했으며 심지어 생명이 끝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3.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며 수련의 인연을 심다
제 회사가 막 창업해 사무실 인테리어가 아직 철저히 완성되지 않았을 때 985 대학(중국에서 가장 좋은 39개 대학의 총칭)을 졸업한 젊은 청년 샤오천(小辰, 가명)이 회사를 알아보러 저를 찾아왔고, 한차례 대화를 나눈 이후 저는 그 청년의 전문 능력이 매우 뛰어나고 사람도 아주 성실해 보기 드문 우수한 인재라고 생각해 기쁘게 그를 채용했습니다. 이후 저는 샤오천이 파룬궁수련생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조금도 부적절하다고 느끼지 않았고 다른 사람이 그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하는 것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신앙이 있는 사람을 존중하기 때문이었고, 그 역시 파룬따파 제자가 품행이 단정하고 성과가 탁월하다는 것을 실제 업무 성과로 증명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대할 때 언제나 선하게 대했고 선행을 베풀기를 좋아했습니다.
이후 회사의 업무가 확장되면서 연이어 신입 사원을 채용했습니다. 또 한 명의 최고 명문 985 대학을 졸업한 청년 샤오항(小杭, 가명)이 구직하러 왔습니다. 샤오항은 면접 때 매우 솔직하게 제게 말하기를, 자신은 원래 아주 좋은 직장이 있었지만 파룬궁을 수련한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됐고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이 낯선 도시에 와서 새로운 발전 기회를 찾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의 처지를 매우 동정하며 제가 신앙이 있는 사람을 존중하고 회사가 인정하는 것은 업무 능력과 발현이라고 말했습니다. 급히 그에게 어디에 살고 있는지, 도움이 필요한 어려움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는 아직 살 곳이 없어 집을 찾는 중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사람을 배치해 샤오항이 집을 구하도록 도왔고 즉시 그를 입사시켜 하루빨리 생활이 정상화되도록 했습니다.
최고 명문 985 대학 졸업생답게 샤오항은 아주 똑똑했고 업무 능력이 강했으며 인품도 좋았습니다. 다만 한번은 제게 ‘큰 사고를 친’ 적이 있었습니다. 샤오항은 자주 출퇴근할 때 엘리베이터를 타는 기회를 이용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탄 사람들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번은 뜻밖에도 한 정부 부처의 최고 책임자에게 알렸고 이 지도자는 크게 화를 냈습니다. 그날 오전 이 정부 지도자는 몇 명을 데리고 기세등등하게 들이닥쳐 “당신들 회사에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이 있는데 감히 나에게 당에서 탈퇴하라고 권하다니 배짱이 너무 크군!”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말하면서 사방을 두루 찾더니 마지막에 샤오항을 발견하고는 “바로 이 사람이야! 우리와 함께 좀 가줘야겠어”라고 했습니다. 일이 너무 갑작스러워 저는 당시 머리가 ‘띵’ 하며 샤오항이 아주 위험하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곧 침착해진 저는 이 지도자에게 “그는 우리 회사 직원이고 업무 능력이 아주 강합니다. 제가 상황을 알아보겠으며 앞으로 번거로움을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설득해 보낸 이후 저는 샤오항을 찾아가 전체 과정의 위험성을 설명했고, 파룬궁 신앙은 제가 아주 이해하지만 그가 또 박해받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저는 또 샤오천을 찾아가 샤오항에게 자주 일깨워주라고 부탁하면서, 엘리베이터에서는 어떤 사람을 만날지 모르니 반드시 대화 대상을 알아야 하고 안전에 더 주의해야 하며 저는 그들에게 또 무슨 위험이 닥치는 것을 진심으로 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건물 안의 다른 지인 중에도 제게 파룬궁 연마하는 사람을 채용하지 말라며 자신에게 번거로움을 가져올 것이라고 권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저는 늘 웃기만 할 뿐 그렇다 아니다 말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신앙일 뿐이고 그들은 업무 능력이 모두 아주 강해 일을 잘해내기만 한다면 그들이 무엇을 믿든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게다가 그들의 업무 성과는 대다수 동료를 훨씬 뛰어넘었습니다.
이후 회사 직원에 적잖은 파룬궁수련생들이 입사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사회의 엘리트였고 전문 능력이 아주 강했으며 업무에 성실하고 한 몸에 바른 기운이 가득했습니다. 절대 사사롭지 않고 착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일을 처리해 업무를 하든 관리를 하든 동료들의 깊은 존경을 받았고, 회사에는 더는 파룬궁이 어떻다 저렇다 뒤에서 논하는 사람이 없었으며 모두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동료들이 모두가 배워야 할 본보기라고 느꼈습니다. 고객들 역시 이 사람들의 업무 능력, 서비스 태도와 제품 품질에 아주 안심했고 심지어 깊이 의존했습니다. 물욕이 횡행하는 이 사회 속에서 파룬따파 수련생들은 마치 산골짜기를 흐르는 한 줄기 맑은 샘물처럼 그렇게 서늘하고 순수했으며 들판에 고요히 핀 꽃처럼 세상에 생명의 밝은 빛을 더해주었습니다.
알게 모르게 저는 파룬궁수련생들과 아주 큰 인연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4. 고심하며 선을 권해 마침내 대도에 들어서다
두 번째 수술 이후 저는 회사에 출근했습니다. 당시 제 상태와 안색은 아주 나빴는데 샤오천의 말로 형용하자면 안색이 흙빛이며 옥시테트라사이클린 약 색깔 같아 이루 말할 수 없이 보기 흉했습니다.
제가 극도로 의기소침해 있을 때 샤오천이 제 사무실에 들어와 한 말을 저는 지금까지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저는 사장님이 정법(正法)을 얻으시도록 도우러 왔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시면 반드시 사장님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이어 그는 진심으로 말했습니다. “파룬따파를 믿고 진심으로 수련하세요. 대법 사부님께서 반드시 사장님을 구해주실 겁니다.” 말 한마디가 제 차가운 마음을 따뜻하게 해줬지만 저는 여전히 의구심이 가득했습니다. 저희 가문은 줄곧 정토종을 믿었고 병원 최고 의사들도 치료해 보았으며 점쟁이도 점을 치고 액땜해 봤지만 여전히 병마가 한 걸음씩 압박해 오는 것을 막지 못했기에, 저는 목숨을 앗아가는 병마의 습격을 진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무언가가 또 있으리라고는 믿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그가 사부님의 저서인 ‘전법륜(轉法輪)’을 제 앞에 가져와 제게 설명해 줄 때도 무지한 저는 무관심하게 말했습니다. “나는 신앙이 있고 그것도 다년간 전해진 정토종이네. 불이법문(不二法門)이니 다른 신앙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아.”
이때 회사에 재직 중이며 능력이 아주 강한 또 다른 파룬궁수련생 샤오웨이(小偉, 가명)도 와서 제게 대법 수련을 권했습니다. 그는 “진심으로 파룬따파를 배우고 수련해야만 생명의 의미에 대해 색다른 인식과 깨달음이 생길 것이며 더욱이 사장님의 운명을 바꿀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인생에서 직면하는 모든 당혹스러움은 사부님의 이 대법 속에 모두 답이 있다고 했습니다. “책을 잘 보시고 나면 반드시 자신의 미래에 대해 아무런 두려움이 없어지실 겁니다. 하지만 병을 치료하려는 목적으로 대법을 배워서는 안 됩니다. 사부님께서 ‘전법륜’에서 우리에게 ‘추구하는 마음을 품고 법을 배워서는 안 된다’고 알려주셨습니다.” 두 사람의 진심 어린 권유에 저는 반신반의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진짜로 진지하고 세밀하게 사부님의 대작 ‘전법륜’을 받들어 읽기 시작했을 때 저는 즉시 깊이 충격받고 매료돼 손에서 책을 놓지 못했습니다.
처음 ‘전법륜’을 읽을 때 아주 친숙하게 느껴졌는데 책에서 말씀하신 많은 현상이 모두 제가 일찍이 겪었던 것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와 우주어(宇宙語)입니다. 저는 자신이 병이 나 아무 곳에나 매달렸을 때 만났던 그 이른바 ‘점쟁이’가 사실 부체였고 그녀가 한 신기한 말이 바로 우주어였음을 알았습니다. 법공부를 한 직후 저는 점쟁이가 써준 그 호신 부적들을 모두 던져버렸고 버리고 나니 마음이 탁 트이고 당당해졌습니다.
또 예를 들면 무술기공입니다. 지난 세기 80, 90년대 기공 열풍이 불었을 때 저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주 큰 광장이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사람 무리가 서로 다른 대형으로 서서 각종 기공을 연마했습니다. 낮에도 사람들이 각종 무술기공을 선보이며 물건을 판매했는데 맨손으로 벽돌 깨기, 창으로 목 찌르기, 쇠공 삼키기, 쇠칼 삼키기, 매발톱공으로 쇠못 구부리기, 목에 철근 감기 등이 있었습니다. 또 대법서적에서 언급하신 이를 뽑고 물약을 파는 일도 제가 직접 본 적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당시 광장에서 본 그 물약을 파는 남방 사람은 책에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았습니다. 당시 저는 그의 물약을 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도 저는 광장에서 물약을 팔던 남방 사람이 바로 사부님께서 책에서 언급하신 그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에서 당대 종교계의 혼란상도 짚어주셨습니다. “내가 모(某) 시(市)에서 본 한 화상(和尙)은 그 손이 시커멨다. 경문을 불상 속에 밀어 넣고 대충 바르고서 입으로 두어 번 중얼거리고는 개광했다고 한다. 다시 불상을 하나 갖다 놓고 또 두어 번 중얼거리는데, 개광을 하나 하면 40위안이다. 현재 화상은 이것도 상품으로 삼아 불상 개광으로 돈을 번다.”
저는 1997년에 소림사로 여행 갔을 때 본 광경이 떠올랐습니다. 절 안에는 많은 사람이 부처에게 절을 올린 후 공덕함 안에 돈을 던져 넣고 있었습니다. 날이 점차 어두워지고 갑자기 가랑비가 내리자 사람들은 흩어졌습니다. 저는 대웅보전 안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한 승려가 다가왔는데, 그는 도둑처럼 사방을 둘러보며 주변에 아무도 없는 줄 알고 공덕함 옆으로 걸어가 탐욕스럽게 손을 집어넣더니 안에서 돈을 한 움큼씩 꺼내 자신의 품속에 쑤셔 넣었습니다. 이 광경은 제가 소림사에 대해 다년간 가졌던 존경, 선종의 조정(祖庭)과 이 신앙에 대해 철저히 실망하고 부정하게 했으며, 그 후로 저는 다시는 소림사에 가지 않았습니다.
다시 ‘전법륜’을 읽을 때 저는 또 이것이 일반 사람이 말할 수 있는 이치가 아니며 신만이 써낼 수 있는 사람을 구하는 천서(天書)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제 많은 의혹과 풀리지 않던 일들이 대법서적을 받들어 읽은 후 문득 깨우쳐졌고 왜 자신이 내내 독실하게 정토종을 닦았으면서도 불치병에 걸렸는지 철저히 알았습니다. 고대 사람들은 부처에게 절할 때 경의를 품고 부처를 공경하고 부처를 닦을 것을 생각했지만, 현대 중국인들은 이미 신전(神傳) 문화의 함의를 모르게 됐기 때문입니다. 저는 매번 절을 올리고 기부할 때마다 다 추구하는 바가 있었는데 건강을 추구하고 평안을 추구하고 부귀를 추구하고 아이의 학업 성취를 추구하는 등 이것저것 구하면서, 속인의 이런 추구하는 마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을 뿐 마음속으로 부처님은 공경해야 하는 대상이지 추구하러 가는 대상이 아님을 완전히 몰랐습니다. 추구하는 마음으로는 얻을 수 없습니다.
저는 생명의 진정한 의미가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았고 전체 우주의 최고 법리가 바로 진선인(眞·善·忍)임을 더욱 명백히 알았습니다. ‘전법륜’ 외에도 샤오천과 샤오웨이는 제게 각종 병을 고치고 몸을 튼튼히 한 이야기들을 준비해 주었는데, 인쇄된 문자 자료도 있었고 오디오와 비디오 자료도 있어 제 시야를 크게 넓혀주었습니다. 원래 이렇게 많은 불치병 환자들이 파룬궁을 수련해 절망 속에서 살아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대법의 심오한 법리와 진실하고 생동감 넘치는 병을 고친 사례들은 제게 커다란 격려를 줬습니다.
5. 대법 수련 10여 년, 심신에 혜택을 많이 받다
막 수련을 시작했을 때 저는 깨달음이 부족해 책을 보면서도 한편으로는 약을 먹었는데 그런 독성이 아주 큰 약이었고, 법공부와 약 먹는 것을 모두 놓치지 않는 것이 양전기미(兩全其美, 두 가지를 모두 온전히 갖추어 양쪽 다 좋다는 뜻)이며 이중 보험이라고 느꼈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법에 대한 제 이해는 갈수록 깊어졌고 대법을 갈수록 굳게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곧 저는 아주 비싼 약들을 모두 버렸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다시는 약을 단 한 알도 먹지 않았고 다시는 병원에 반걸음도 들여놓아 재검사받거나 진찰받거나 치료받지 않았습니다.
수련생들의 격려로 저는 또 법공부 팀에도 참가했습니다. 수련생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함께 법공부를 하고 교류하며 체득을 나눴습니다. 수련생 아주머니는 열정적으로 플레이어를 가져와 사부님의 공법교육 비디오를 틀어주었고 모두 제게 동작 요령을 가르쳐주며 연공 자세를 교정하도록 도왔습니다.
저는 몸이 갈수록 좋아지는 것을 느꼈고 이전의 피로감은 연기처럼 사라졌으며 음울하고 공포스러운 심리도 말끔히 가셨습니다. 수술 이후의 흙빛 안색은 이미 건강하고 윤택하게 변했고, 사람 전체가 생기가 돌고 정신이 맑으며 신체가 건강하고 활력이 넘쳐 저를 본 친척과 친구마다 제가 마치 딴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이후 우연히 저를 진단했던 주임 의사를 만났는데 그는 아주 의아해하며 제게 물었습니다. “두 달마다 정기 재검사인데 당신은 왜 오지 않습니까?”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보기에 제가 지금 병이 있는 모습인가요? 제 이 상태에 무슨 치료가 필요하다고 느끼십니까?” 그는 미소 지으며 의아해하면서도 기적을 목격한 듯한 이례적인 눈빛으로 저를 살펴봤고 진심으로 저를 위해 기뻐해 줬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지 지금까지 10여 년이 됐는데 제게 건강한 신체를 얻게 했을 뿐만 아니라 제게 도덕의 승화도 얻게 했습니다.
위급한 순간에 용감하게 나서다
어느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 길을 걷던 저는 80세가 다 된 노인 한 분이 무슨 까닭인지 도로 한가운데 쓰러져 있는 것을 봤는데 보아하니 땅에 누운 지 시간이 좀 된 것 같았습니다. 당시 차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자동차가 연이어 노인 곁을 스쳐 지나갔지만 어느 차 한 대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길가의 많은 사람이 이 광경을 보면서도 어르신을 돕는 이가 하나도 없어 상황이 아주 위험했습니다. 저는 아무런 주저 없이 달려가 오가는 차량에 우회하라고 손짓하고 노인을 부축해 천천히 앉혀드렸습니다. 노인은 눈빛이 흐리고 멍했으며 얼음장같이 차가운 양손으로 제 손을 잡고 얼어서 눈물과 콧물을 멈추지 못하고 흘리셨으며, 가냘프게 떨리는 목소리로 끊임없이 제게 감사해하시며 부축해 일으켜 달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조심스레 노인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는데 노인의 다리가 필시 부상당해 신체를 지탱하지 못하시고 아주 무겁게 제게 기대셨습니다. 이때 또 한 사람이 다가와 저와 함께 노인을 부축해 길가의 안전한 곳으로 모셨습니다. 저는 종이 상자와 깔개를 찾아와 노인이 그 위에 앉아 차가운 지면을 피하게 해드렸고 노인이 나무에 기대앉으시도록 부축해 드렸습니다. 잘 모신 이후 노인의 휴대폰을 가져와 아내에게 전화해 상황과 정확한 주소를 알려드렸습니다. 전화를 막 마치자마자 노인의 휴대폰 배터리가 나갔습니다. 주위에 한 무리의 사람이 모여들더니 말했습니다. “당신 담이 정말 크군요, 이런 사람을 감히 부축하다니 덤터기를 쓰면 어쩌려고 그럽니까?” 그렇습니다, 중국의 이 환경은 사람마다 스스로를 위태롭게 여겨 누구도 남의 일에 참견하려 하지 않고 사기당할까 봐 두려워합니다. 저와 함께 노인을 도운 그 사람도 말했습니다. “당신이 부축해 일으키는 것을 보고서야 저도 온 겁니다. 돕는 사람이 없었다면 저도 감히 돕지 못했을 겁니다.” 노인을 돕던 그 순간 저는 정말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수련인으로서 마땅히 좋은 사람이 돼야 하고 다방면에서 모두 잘해야 한다고 느꼈을 뿐입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이전이었다면 저도 덤터기를 쓸까 봐 두려워 절대 감히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도움을 청하는 이의 절망 앞에서 선념을 택하다
어느 날 회사를 그만둔 지 여러 해 된 여직원이 저를 찾아오더니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 돈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둘러 그녀의 행동을 만류하고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오늘 저만이 자신과 아이를 구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남편이 투자 사기를 당해 거액의 투자가 결국 한 푼도 남지 않았고 집도 저당 잡혀 살 곳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편은 밖에서 빚을 받으러 다니기도 하고 빚을 피해 다니기도 해 오랫동안 집에 오지 못했고 감히 집에 있지도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때로 빚 독촉하는 사람에게 쫓겨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여러 신용카드를 돌려막으며 빚을 갚을 수밖에 없었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신용카드로 6만 위안을 긁고 연체돼 더는 일말의 상환 능력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은행에서 빚 독촉을 시작해 오늘 갚지 못하면 구류될 것이고 아이는 돌볼 사람이 없을 것이라 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담보물이 있냐고 물었으나 그녀는 담보할 어떤 물건도 내놓지 못했고 향후 매달 1천 위안씩 갚아 5년 동안 빚을 다 갚겠다고 했습니다. 동료들은 그녀의 집에 거액의 부채가 있어 절대 갚지 않을 것이라며 돈을 빌려주지 말라고 권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몹시 슬프고 처참한 처지를 보니 저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고 그녀가 일단 구류되면 아이를 돌볼 사람이 없어 얼마나 불쌍할까 더욱 걱정됐습니다. 아무 담보도 없는 상황에서 저는 수중에 그렇게 많은 현금이 없어 긴급히 다른 사람에게 돈을 빌려 은행의 최후통첩 빚을 갚아줬고 급한 불을 껐습니다. 이후 정말 동료들의 판단이 적중했는데, 그녀는 처음 몇 달 동안 수천 위안을 갚고 나서는 전화를 안 받고 메시지에 답하지 않더니 마지막에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는 완전히 자취를 감췄습니다.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소식이 없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이전이었다면 저는 필시 각종 방법을 찾아 빚을 받아냈을 것이고 절대 제 적잖은 돈을 물거품으로 만들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저는 너그럽게 느끼기를, 최소한 당시 그녀의 징역을 면하게 해 아이가 떠돌지 않게 도왔으니 가치 있는 일이라 여기며, 어쩌면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여전히 당시 거액의 부채 때문에 빚을 갚으러 이리저리 뛰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향후 그녀를 만날 기회가 있다면 저는 반드시 그녀에게 이익을 탐하는 것은 덕을 잃는 것에 비하면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다는 이치를 알려줄 것이고, 또 그녀에게 제가 대법에 들어와 운명을 바꾼 이야기를 들려줘 그녀 역시 파룬따파에 들어와 운명을 바꾸기를 희망할 것입니다.
택시 기사의 벌금 고지서
한번은 택시를 탔는데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기사가 회전 속도 제한 표시를 주의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멀리 있는 표지판의 글씨가 너무 작아 이 구간의 도로 상황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지시된 시간대를 도저히 똑똑히 볼 수 없었습니다. 막 회전했을 때 길가에 주차하고 잠복해 있던 경찰차 옆에서 경찰 한 명이 걸어오더니 기사에게 손짓해 차를 세우고 벌금 고지서를 받게 했습니다. 기사는 시무룩한 얼굴로 “정말 재수 없네요, 연말이 다가오니 그들이 수입을 올리려 하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요금을 지불하고 차에서 내린 후 보니 기사가 달려가 경찰에게 두 손을 모아 절하고 억지웃음을 지으며 애원하는 말을 했습니다. 하지만 소용없었고 경찰은 그를 직접 경찰차 안으로 데려가 벌금 고지서를 받게 했습니다. 저는 몇 걸음 걷다가 생각할수록 씁쓸했는데 그는 저를 목적지에 좀 더 가깝게 내려주려다 표지판을 주의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중국의 택시 업계는 현재 차량 호출 앱의 대량 자가용 차량에 밀려 생존하기 아주 힘든 상황입니다. 택시 기사가 매일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심지어 건강을 희생해 고생스럽게 돈을 버는 것은 아주 쉽지 않은 일인데 이렇게 벌금을 맞으면 자칫 그날 하루를 공칠 수도 있고 필시 며칠 동안 몹시 낙담할 것이며, 심지어 가족들도 기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주머니에 있던 단돈 100위안의 현금을 꺼내 돌아서서 그에게 전해주며 “당신은 저를 데려다주다 벌금을 맞은 것이니 이 100위안을 받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놀라서 고맙다는 말조차 미처 하지 못했고 저는 돌아섰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이전이었다면 저는 아마 이렇게 동정심이 있지 않았을 것이고 그가 위반해 벌금을 맞은 것은 저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타인을 위하는 선념과 이타적인 마음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자신이 뭔가를 잃었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원망심을 내려놓고 마음을 진정으로 해탈하다
제 소년 시절 신체의 병통으로 인해 생긴 증오심 역시 법공부가 깊어짐에 따라 눈 녹듯 사라졌고, 이후 다시는 사고 운전자, 의술이 얕았던 젊은 의사, 씨름하다 제 팔을 분쇄 골절시킨 친구에게 일말의 원망심도 생기지 않았으며 이후 돈을 빌려 가 갚지 않은 전 여직원에 대한 원망심도 없었습니다. 저는 표면적으로는 그들이 저를 잘못 다치게 하고 신용을 저버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제 생생세세의 업력으로 인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어쩌면 제 전생에도 이렇게 다른 사람을 다치게 하고 다른 사람의 신용을 저버렸을지도 모릅니다. 원망심을 제거한 이후 저는 마음이 비할 데 없이 평온함을 느꼈고 마음속으로 제가 이번 생에 파룬따파를 얻게 하기 위해 깔아주신 사부님의 성스러운 은혜에 더욱 감사했습니다. 이번 생에 겪은 고통과 번뇌가 클수록 이는 사부님께서 자비로 제게 생생세세에 빚진 거대한 업채(業債)를 더욱 빨리 갚게 해주신 것입니다. 이런 고난을 겪고 나니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묵묵히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지 상상하기조차, 보답하기조차 어려우며 제자에 대한 사부님의 은혜는 산처럼 큽니다.
6. 직접 진상을 말해 중생을 구하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이후 저는 매일 5장 공법을 연마하고 ‘전법륜’ 한 강을 공부하는 것을 견지했고 동시에 대법 진상을 더욱 많이 알았습니다. 저는 대법의 수혜자로서 사람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려 중공 악당에 세뇌된 소중한 중국인들을 구할 책임이 있습니다.
저는 먼저 집안의 친척들부터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매년 새해마다 친척들이 함께 모여 모임을 합니다. 술자리에서 사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한마디씩 해야 했는데 대개 과거를 회상하거나 새해 덕담을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제 차례가 됐습니다. 저는 일어나서 말했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새해에는 신체가 건강하시고 만사형통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합니까? 당연히 건강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불치병에 걸렸는데 왜 오늘 여전히 여기에 앉아 여러분과 함께 식사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파룬따파를 수련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저는 진작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고 여기서 친지들과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대법 속에서 혜택받은 경험을 상세히 그들에게 들려줬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또 그들에게 알렸습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를 기억해야 합니다. 이것이 생명 중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공산당은 무신론이라 스스로 신과 적대할 뿐만 아니라 불법(佛法)을 신앙하는 수련인을 잔혹하게 박해하니 천리가 용납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두 중공의 당·단·대 조직에 가입했고 공산주의를 위해 평생 분투하겠다고 선서했습니다. 이는 독한 맹세이므로 하늘이 중국공산당(중공)을 멸할 때 그것과 함께 재앙을 당하게 되며 오직 그것의 모든 조직에서 탈퇴해야만 아름다운 미래를 가질 수 있습니다.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해야 평안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때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의논하기 시작했는데 어떤 이는 12살 때 자동으로 소선대에서 탈퇴하지 않았냐고 했고, 28살 때 자동으로 공청단에서 탈퇴하지 않았냐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다년간 당비를 내지 않았으니 자동 탈당한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건 다 소용없습니다. 여러분이 독한 맹세를 했을 때 사악이 여러분 이마에 짐승의 표를 찍어놨고 오직 공개적으로 삼퇴를 성명해야 철저히 짐승의 표를 지워 신의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가명을 써도 되며 핵심은 진심으로 당·단·대에서 탈퇴하려 하는 것입니다.” 제 권유에 모든 사람이 가명으로 삼퇴했습니다. 또 큰형님 한 분은 “나는 비록 어떤 당·단·대 조직에도 가입한 적이 없지만 그들이 조직한 활동에 많이 참가했으니 나도 지금 다 탈퇴하고 다 무효로 하겠다고 성명하겠네”라고 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가 인쇄된 코팅 호신부를 한 사람씩 나눠줬고 그들은 모두 즐겁게 몸에 지녔습니다.
저에게는 정부에서 일하는 친척이 한 명 있는데 그녀는 제가 말한 진상에 아주 공감하며 중공 악당이 벼슬을 사고파는 데 정찰제를 매기고 심지어 여자는 승진을 위해 몸을 바쳐 영달을 구하기도 한다며 아주 혼란스럽고 부패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가 삼퇴하도록 도왔을 뿐만 아니라 대법서적을 구해 그녀에게 주어 읽게 했습니다. 매번 그녀가 저희 집에 와서 사부님의 법상을 볼 때마다 아주 경건하게 사부님께 합장해 예의를 갖췄고 자발적으로 사부님께 향을 올렸습니다.
저에게는 또 국유기업에서 간부로 있는 친척이 한 명 있는데 그는 관가의 부패를 몹시 증오하며 의분에 차서 말했습니다. “지금의 반부패는 국민에게 보여주려고 시늉만 하는 것이네. 그들은 똥통을 에워싸고 파리를 잡고 있는데 잡을수록 더 많아지네. 왜냐하면, 정부 전체라는 이 국가 기구가 바로 똥통이라 그 자체에서 끊임없이 파리가 번식하는데 자기 스스로 자신을 친다고 어떻게 파리를 소멸할 수 있겠나? 오직 이 똥통을 파내 메우고 철저히 환경을 바꿔야만 근원에서 부패를 해결할 수 있고 파리를 소멸시킬 수 있네.” 그는 제가 병을 치료하러 다니던 전 과정과 파룬따파에 들어온 이후의 믿기 어려운 변화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제가 그에게 대법 진상을 들려준 이후 그는 아주 잘 이해하고 받아들였으며 이 다년간의 ‘노(老)당원’은 흔쾌히 삼퇴에 동의했습니다.
이후 저는 시간과 기회가 날 때마다 접촉하는 사람에게 자발적으로 제가 대법 수련에 들어온 경험을 이야기하며, 그들에게 이렇게 좋은 대법은 만세에 얻기 어려운데 대법이 널리 전해지자 중공 악당에 의해 극력 왜곡되고 탄압받았으며 대법제자들이 비인간적인 시달림과 박해를 받은 진상을 알렸습니다. 또 세상의 진상을 똑똑히 보고 ‘진선인’이야말로 우주의 진리임을 알아야 하며 중공 악당과 어떤 관계든 깨끗이 끊어야 평안을 지킬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제 신체의 기적적인 회복을 이야기해 인연 있는 수많은 중생에게 삼퇴를 권했는데 그들 중에는 정부 기관 공무원, 군수 기업의 고급 지식인, 중앙기업 및 국유기업 엔지니어, 노동자, 농민, 판매원, 교사, 기업주 등 각 계층 인원들이 있으며 그들 역시 평안을 지키기 위해 자주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려 합니다. 그들은 모두 “당신이 말하는 것은 내가 분명히 믿습니다, 당신의 기적이 바로 가장 좋은 증거가 아닙니까?”라고 말했습니다.
7. 신기한 꿈과 행복한 인생
2020년 10월 18일은 제 이번 생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날입니다. 그날 새벽 저는 자애로운 얼굴에 위엄 있는 체구, 유백색 연공복을 입으신 사부님과 위풍당당한 뭇 대법제자들이 저희 집에 오신 꿈을 꿨는데 집 안팎이 모두 대법제자들이었습니다. 저는 흥분해 마치 어린아이처럼 사부님을 우러러보며 사부님의 팔을 꼭 잡고 침대에 누워 쉬실 것을 청했고 마음속에는 비할 데 없이 행복한 온기가 넘쳐흘렀으며, 그런 다음 저는 대법제자들 앞으로 달려가 웃으며 사람들에게 “여러분 아시나요?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대법제자들 역시 똑같이 행복하게 미소 지으며 저를 바라봤습니다. 이후 사부님께서 일어나시자 저는 사부님께 의자에 앉으실 것을 청하고 물 한 병을 올려 드시게 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사부님께서 약간 미간을 찌푸리시며 다소 불편한 표정을 지으셔서 저는 마음속으로 자책했는데, 제가 올린 물이 깨끗하지 않았던 걸까요? 꿈속에서 저는 갑자기 사부님께서 제자를 도와 소업해 주고 계심을 깨달았습니다. 마음속에 온갖 죄송함과 감사함이 일었습니다.
이후 뭇 제자들이 사부님을 따라 배를 타고 아주 커다란 섬으로 대법을 널리 알리러 갔는데, 배를 타고 가는 과정에서 저는 사부님의 왼쪽 곁에 꼭 붙어 사부님을 호위하며 해면에서 오는 모든 불안전한 요소를 경계하고 방비했습니다. 배에서 내려 상륙하는 과정에서도 저는 사부님의 왼쪽에 꼭 붙어 사방을 경계했고 마음속으로 항상 사부님을 수호하고 사부님을 위해 법을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위풍당당한 대법제자들이 사부님을 따라 섬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자 안전해졌습니다. 사람들이 아주 큰 식당에 와서 식사했는데 저는 사부님의 대각선 맞은편 테이블에 앉아 사부님께서 미소 지으시며 자애로운 눈빛으로 환호하고 웃는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함께 식사하시는 모습을 봤습니다.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에야 저는 자신이 흥분해 뜻밖에도 식사하는 것을 잊었다는 것이 생각났고, 저는 서둘러 밀전병 한 장을 먹은 후 뭇 제자들과 함께 사부님을 모시고 기뻐하며 섬 깊은 곳으로 위풍당당하게 걸어 들어가 중생에게 대법을 널리 알리러 갔습니다….
꿈이 여기에 이르자 저는 잠에서 깼고 곧 아침 연공 시간이 다가왔는데 입가에는 여전히 꿈속의 미소가 걸려 있었습니다. 이 꿈은 너무나 또렷해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똑똑히 기억났고 특히 제가 기뻐하며 다른 제자들에게 한 그 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가 기억났습니다.
맺음말
그렇습니다, 저는 정말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꿈속에서도 그러했고 현실에서는 더욱 그러합니다. 법을 얻은 후 저는 이번 생이 바로 파룬따파를 얻기 위해 온 것임을 깨달았고 이 비할 데 없이 행운의 인연을 실로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전에 겪은 모든 고난과 번뇌는 모두 제가 마땅히 감당해야 하고 마땅히 갚아야 할 업입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감당해 주신 업력은 더욱이 감히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아 제자가 비할 데 없이 감사드리게 하며, 저 역시 더욱 확고하게 사부님을 믿고 대법을 믿습니다. 미래의 세월 속에서 저는 사부님께서 당부하신 세 가지 일을 잘해 용맹정진하려 합니다. 법공부하고 연공하는 동시에 더욱 대법을 널리 알리고 중생을 많이 구해 더 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대법에 들어오고 수련 원만해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가게 하겠습니다.
(명혜망 2026년 세계 파룬따파의 날 원고모집 선정작)
원문발표: 2026년 6월 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6/51041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6/51041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