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동적으로 집착을 제거하던 데서 능동적으로 수련하기

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6년 6월에 법을 얻었고 올해 61세입니다. 저는 수련에서 별로 정진하지 못했고, 다른 수련생들처럼 대면해서 사람을 구한 감동적인 이야기도 없습니다. 하지만 우여곡절을 겪으며 걸어온 이 과정에서 저는 수동적인 수련에서 점차 능동적으로 수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머릿속으로 문제를 생각할 때 그런 좋지 않은 생각과 관념을 힘껏 배척하고, 좋지 않은 사유를 따라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저는 집에서 막내로, 네 살 남짓 됐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어머니와 오빠, 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며 자랐고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았기에 매우 강한 의존심이 생겼습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대형 국영기업에 배정돼 관리 업무를 맡았는데, 급여 대우나 근무 환경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수준이라 제 안일심의 요구를 만족시켰습니다. 결혼 후 남편은 저를 무척 아끼고 사랑해주었고, 아들은 이미 결혼해서 분가했으며 아들 내외의 직장도 모두 좋아서 제가 신경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남편은 집안일을 거의 도맡아 했고 저는 월급을 그에게 맡긴 채 우리집 땔감이나 쌀, 기름, 소금 같은 살림살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며 스스로 매우 행복하고 만족스럽다고 느꼈습니다. 남편에 대한 제 의존은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존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실 아름다운 생활을 추구하는 제 안일심과 의존심은 이미 매우 커져 있었지만 저 자신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 채 완전히 사람 속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하늘에는 예측할 수 없는 비바람이 있고, 사람에게는 아침저녁으로 화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2021년에 저는 거대한 고난을 겪게 됐습니다. 남편이 병업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어쩌면 남편에 대한 저의 완전한 의존이 구세력에게 빌미를 잡히게 한 것일지도 모릅니다. 거의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심장을 도려내고 뼈를 깎는 듯이 집착을 제거하고 나서야 비로소 남편이 세상을 떠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막 세상을 떠났을 때 저는 너무나 망연자실해서 정말 따라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비록 이 생각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머릿속에는 늘 이런 올바르지 않은 생각이 맴돌았습니다. 하루는 제 친구 한 명을 만났는데, 그녀의 남편도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는 조금도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제게 “남편이 살아 있을 때 내게 잘해준 게 하나도 없는데, 죽으면 죽은 거지 뭐가 슬프겠어”라고 말했습니다. 친구가 제게 이런 말을 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그럼 나는 왜 슬플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남편이 제게 잘해줬기 때문에 제가 그를 내려놓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사실 제가 진정으로 내려놓지 못한 것은 저에 대한 그의 보살핌이었고 저 스스로 생활을 즐기는 것이었으며, 이것은 제 사심과 안일심이었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것은 제가 추구하던 이른바 아늑한 생활이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계속 갈 수는 없다. 구세력이 내 남편을 박해해 죽게 하고 또 내 집착을 이용해 나를 망치려 하는데, 구세력의 뜻대로 되게 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시 저는 법공부와 연공을 할 때도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자주 멍하니 있었습니다. 수련생들은 저를 돕기 위해 우리집에 법공부 팀을 꾸려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법공부를 하고 법을 베껴 썼습니다. 저는 A4 용지에 ‘안일심을 버리자’라는 글자를 적어 침대 머리맡에 두고 자신을 일깨웠으며, 매일 아침 눈을 뜨자마자 ‘안일심을 버리자’라는 글자를 보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의존심 역시 안일심에서 파생된 것이고 모두 사심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저 다른 사람이 베푸는 것에 의지해 혼자 안일한 생활을 누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법리는 깨달았지만 이 마음을 정말로 닦아버리는 데는 그래도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어느새 남편에 대한 의존심이 다시 아들에게 옮겨갔고, 무슨 일만 있으면 아들을 찾으려 할 뿐 스스로 해결할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자주 사람의 이치로 일의 옳고 그름을 가늠하며 자신이 수련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버렸습니다. 아들은 일이 무척 바빠 매일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주말에도 자주 쉬지 못했는데, 마음속으로는 저까지 걱정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들이 정말 힘들었을 텐데, 저는 당시 아들 입장은 생각하지 않고 늘 제 기분만 고려했습니다. 아들이 자주 저를 보러 오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는 마음을 품었고, 그들이 결혼한 지 몇 년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갖지 않는다고 싫어하며 불만을 품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전혀 자신을 닦지 않으면서 오히려 스스로 억울하다고 느꼈습니다.

어느 날, 큰언니가 제게 전화를 걸어 이 일은 이렇게 해야 하고 저 일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알려주며 저를 원망했습니다. 저는 무척 화가 나서 그녀에게 “언니의 이건 다 사람 마음이야. 법에서는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았어”라고 말했습니다. 이틀이 지나 큰언니가 또 제게 그 일들에 대해 말했을 때, 저는 문득 ‘내가 바로 아들에게 이렇게 요구하지 않았던가?’ 하고 의식하게 됐습니다. 아들에게 무척 미안했습니다. 또한 깨닫지 못하는 저를 보시고 이런 방식으로 일깨워주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렸습니다. 저는 제 언행을 반성하기 시작했고, 제가 때로는 평범한 사람만도 못하게 행동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저는 진수제자(眞修弟子)가 되겠습니다. 모든 집착과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가겠습니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제가 사부님께 너무 많은 심려를 끼쳐드렸던 것입니다. 저는 또한 ‘만약 내가 이 의존심과 안일심 등을 조금 더 일찍 발견하고, 일에 부딪혔을 때 법으로 가늠했다면 구세력이 그렇게 많은 빈틈을 타지 못했을 것이고, 어쩌면 남편의 고비도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가 넘어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결심했습니다. ‘더 이상 이렇게 수동적으로 수련해 구세력에게 늘 덜미를 잡히고 빈틈을 타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능동적으로 집착을 제거하고 주동적으로 수련할 것이다.’ 저는 이 몇 마디를 일기장에 적었습니다.

저는 법공부를 하고 제 사상의 근원을 파헤쳐 보면서, 모든 집착심이 사심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사(私)’라는 글자에서 출발해 아주 작은 일부터, 행동에서부터 시작해 진정으로 해냈습니다. 일을 할 때 먼저 다른 사람을 배려했습니다. 현재 제 층차에서 제가 법을 이해한 바에 따라, 법에 부합한다고 생각하는 일이라면 원하든 원치 않든 모두 성심껏 하려 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일을 할 때는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는지 살펴보고, 상처를 주지 않으면 하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친다면 하고 싶어도 하지 않았습니다. 머릿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르면 즉시 그것이 진정한 내가 생각한 것이 아니라 나쁜 관념과 업력이 한 짓임을 부정하고, 정념을 발해 제거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아들에게 저를 위해 뭔가를 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았고, 제 일은 최대한 스스로 했으며, 할 수 없는 일은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해결했습니다. 그러면 일하러 온 사람에게 진상을 알릴 수도 있었고, 최대한 아들을 곤란하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들도 제 변화를 느끼고 기뻐하며 말했습니다. “엄마, 많이 변하셨네요.”

예전에 제가 수련생의 컴퓨터 설치를 도와줄 때, 어떤 컴퓨터는 너무 오래됐고 HP나 델 같은 일반적인 브랜드도 아니어서 설치하기가 무척 까다로웠습니다. 자주 PE(윈도우 설치나 복구할 때 쓰는 미니 윈도우)조차 들어가지 않았는데, 예전의 저는 수련생의 기분은 고려하지 않은 채 그냥 컴퓨터를 가져가게 하고 설치해주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일단 제 손에 들어온 이상 모두 방법을 생각해 설치해줍니다. 때로는 설치하는 데 10여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중간에 자료를 찾아보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도저히 설치할 수 없을 때는 수련생의 경제 상황을 알아보고 도움이 필요한지 살펴봅니다.

수년 동안 저는 줄곧 각별히 주의하며 제 차를 몰고 민감한 장소에는 절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한번은 변호사를 선임해 구치소에 있는 수련생을 접견해야 했는데, 마음속으로는 가고 싶지 않았고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일은 내가 반드시 해야 한다. 수련생을 돕는 것은 법에 부합하는 일이고, 나 자신의 안위만 고려할 수는 없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억지로 용기를 내어 구치소로 차를 몰고 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보니 외지와 현지의 차들이 아주 많은 것을 발견했고 제 이 두려움도 내려놓게 됐습니다. 그 후 구치소에 갈 때면 그곳에 차가 많든 적든 아무런 거리낌이 없어졌습니다. 이런 마음은 다른 수련생들이라면 아마 진작에 닦아버렸을 텐데, 저는 이제야 제거한 것입니다.

내면의 수양은 환경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위층 집 에어컨에서 흘러내린 물이 제 침실 밖 창틀에 똑똑 떨어져서, 침실 안 창틀 아래 벽지가 크게 한 덩이 떨어져 나갔습니다. 저는 이를 발견하고 이웃을 불러 우리집을 보게 했는데, 그녀는 미안함을 표하며 최대한 빨리 고치겠다고 말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제가 아래층으로 내려가다가 마침 엘리베이터에서 위층 남자 주인과 마주쳤습니다. 그는 제게 먼저 “죄송합니다. 이미 에어컨 수리 기사를 불렀고 물건을 사러 갔으니, 2~3일만 더 지나면 고칠 수 있을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또 5~6일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물이 떨어졌습니다. 이번에 저는 이웃을 원망하지 않고 제게 아직 바로잡아야 할 어떤 마음이 있는지 찾아보았습니다. 제가 최근에 조금 나태해져서 계속 졸음이 오는 것을 돌파하지 못하고 내버려 두었으며, 잠들기 전에 늘 잠깐씩 휴대폰을 보았음을 발견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수련을 느슨히 했던 것입니다. ‘안을 수련하여 밖을 안정시키다(修內而安外)’(정진요지). 저는 즉시 정념을 발해 제 수련을 교란하는 모든 좋지 않은 물질을 제거했고, 행동에서도 자신을 바로잡아 잠들기 전에는 더 이상 휴대폰을 보지 않았습니다. 하루가 더 지나자 물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가 손녀를 데리고 노는 위층 이웃을 보았는데, 그녀는 급히 제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제 물 안 새죠?” 제가 “안 새요”라고 하자 그녀는 “다 고쳤어요”라고 말했고, 저는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제가 안을 잘 닦았더니 물이 새지 않게 된 것입니다.

수련은 참으로 신기합니다. 많은 번거로운 일들은 모두 자신의 마음이 불러온 교란이었습니다. 사람의 사유가 바로 물질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제 전처럼 제 생각을 방임하지 않고, 머릿속에 좋지 않은 생각이 떠오를 때면 즉시 그것을 부정하며 어떤 마음이 이런 잡념을 불러일으켰는지 살펴본 후 배척합니다. 고난이 닥쳐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고난이 정말 닥쳐온다 해도 담담하게 직면하며, 먼저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지 살펴본 후에 문제를 해결합니다. 모든 고난을 자신이 승화하는 계단으로 삼고 수련이 제고될 수 있는 어떠한 기회도 최대한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이 기간의 수련을 거치면서 제 마음은 많이 평온해졌고, 법공부도 비교적 마음에 와닿았으며, 연공할 때 때로는 파룬이 회전하는 것을 느낄 수도 있게 됐습니다.

저의 약간의 얕은 인식입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은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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