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많은 중생이 구원받기를 바라는 우수 교사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한 농촌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이번 생에 대법제자가 될 수 있어 진심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처럼 다년간의 수련 속에서 저는 꾸준히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해왔습니다. 아래에 저의 몇 가지 경험을 이야기하며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1. 세뇌반으로 우편 발송된 편지 한 통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온몸의 질병이 약 없이도 나았고 생명은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따파를 박해하자 향(鄕) 정부는 향 전체 대법제자들에게 향 정부로 와서 ‘회의’를 하라고 통보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는 서명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향 정부를 걸어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 내내 울었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파룬따파가 이렇게 좋은데 왜 연마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2001년 설날 오후, 저는 학교 지도부로부터 ‘며칠 학습을 하러 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학교 간부와 경찰 한 명, 그리고 운전기사가 강제로 저를 구(區)의 한 호텔 안에 설치된 ‘학습반’으로 납치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이미 70~80명이나 되는 수련생들이 설날 가족이 모여 있던 집에서 납치돼 그곳에 불법적으로 감금돼 있었습니다. 세뇌반은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거짓말과 삿된 논리를 강제로 받아들이게 했으며 서명을 강요하며 파룬궁을 연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하게 했는데 이것이 이른바 ‘전향’이었고 ‘전향’하지 않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했습니다.

세뇌반에 도착한 당일은 바로 세계를 경악하게 한 ‘천안문 분신’ 조작 사건이 발생한 날이었습니다. 저녁에 세뇌반은 우리를 모아놓고 뉴스를 보게 했는데 모두가 ‘천안문 분신’ 소식을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습니다. “가짜입니다, 가짜입니다.” “수련인은 살생하지 않는데 자살을 하겠습니까? 자살은 죄가 됩니다.” “우리가 배우는 대법서적은 단 한 번도 사람에게 자살하라고 가르친 적이 없습니다.” “그 휘발유를 마셨다는 사람(‘분신’ 참여자)은 그렇게 많이 마셨는데 왜 중독되지 않았습니까?” 모두 그 자리에서 이 엄청난 거짓말을 폭로했습니다.

세뇌반은 선후로 수백 명의 파룬궁수련생을 감금했고 도시에서 교외로 옮겨졌습니다. 비록 휴양용 농촌 산장에 설치됐으나 철문과 철창을 달고 24시간 전담 직원이 감시했습니다. 구 공안국, ‘610’(파룬궁 탄압 전담 기구), 정법위, 사법국, 기율검사위 등의 직원들이 교대로 당직을 서며 번갈아 파룬궁수련생들을 모아놓고 ‘학습’을 시켰으며 그들의 강연을 듣게 하고 거짓말을 주입하며 삿된 논리를 퍼뜨렸습니다. 그들은 교대로 나서서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장기적이고 강제적인 세뇌와 정신적 박해를 가했습니다.

세뇌반이라는 이런 강압적이고 폐쇄된 사악한 환경 속에서 저는 뜻밖에도 제 학생이 제게 써준 이 편지를 받게 됐습니다. 편지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실명은 숨겼습니다).

존경하는 L 선생님 안녕하세요!

우선 저희 반 전체 학생이 다 함께 선생님께 한 말씀 올립니다. 저희는 선생님이 정말 정말 보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자상한 선생님이셔서 언제나 다정한 목소리로 저희에게 도리를 일러주셨습니다. 반에서 가장 장난꾸러기였던 Xi를 기억하시나요? 지금 그는 눈시울을 붉히며 선생님께서 어떻게 가르쳐주셨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선생님은 인내심 있는 훌륭한 선생님이시라 항상 많은 시간을 저희에게 쏟으셨습니다. 방과 후에도 선생님은 교실에서 학생들을 지도하시거나 교무실에서 열심히 숙제를 채점하셨고 교정에는 언제나 가장 늦게까지 선생님의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 학기에 저희 반 전체 성적이 아주 좋았는데 선생님의 오랜 교육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가 있었겠습니까? Dxg와 Cxr를 기억하시나요? 지금 엄청나게 발전했습니다!

선생님, Lk, Hsq, Lyh 학생이 선생님께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아팠을 때 선생님께서 직접 집으로 찾아와 보충수업을 해주시고 지극정성으로 돌봐주신 것을 그들은 평생 잊지 못할 텐데 지금 선생님이 저희 곁에 안 계시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까요!

경애하는 선생님! 선생님은 모든 학생에게 똑같이 잘해주셨습니다! 반의 Lm을 기억하시나요? 집안 형편이 어려워 학비를 내지 못할 때 선생님께서 대신 내주시고 끊임없이 그녀를 격려해주셨습니다.

선생님, 어서 돌아오세요! 지금 반 학생들 모두 선생님 이야기만 꺼내면 눈물을 줄줄 흘립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나도 많으니 선생님 저희 곁으로 돌아와 주세요!

3학년 전체 학생 일동
2001년 9월 13일

이 편지를 읽고 저는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이들의 마음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해서 선생님이 좋으면 그냥 좋은 것이었지 선생님이 파룬궁을 수련하고 불법적으로 감금됐다고 해서 선을 긋거나 비판하거나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편지에서 끊임없이 선생님이 얼마나 훌륭한지 찬양하고 서술하며 선생님이 어서 그들 곁으로 돌아오시기를 애타게 불렀습니다.

아이들의 편지를 보니 글씨가 아주 반듯했고 한 획 한 획마다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중공 악당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거센 물결 속에서 아이들이 보여준 이런 선량함과 순수함, 그리고 용기는 진정 천지를 뒤흔드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들은 편지와 함께 32위안 5자오를 보내왔고 명단에는 각 학생의 이름과 각자 기부한 금액이 3위안, 2위안, 1위안, 5자오씩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역사의 기록이자 사악한 세상 속에서 생명의 선량한 본성을 보여주는 증거였습니다.

2. 대법을 수련하며 새로 태어나는 기쁨을 얻다

수련 전에 저는 과도한 업무로 인해 이제 겨우 30대의 인생 황금기임에도 갖가지 질병에 시달렸고 죽는 편이 나을 정도로 고통받았으며 치료할 약조차 없었습니다. 예를 들면 오랜 어지럼증과 두통으로 매일 두통약을 여러 봉지씩 먹어야 했고 요추가 아파서 허리를 굽혀 일을 하면 몸을 제대로 펴지 못했습니다. 온몸의 류머티즘 관절통으로 왼쪽 무릎이 아파 걸을 때마다 절뚝거렸고 차를 타고 내리는 일은 더욱 힘들었습니다. 만성 기침으로 밤이 되면 기침을 하느라 뜬눈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나중에는 기침이 낫지 않아 목이 쉬고 아예 말을 할 수 없게 됐습니다. 때로는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손짓을 하거나 칠판에 연습 문제를 적어놓고 학생들이 스스로 풀게 했으며 그 시절에는 교단에 앉아서 수업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게다가 치질까지 저를 괴롭혀 오랫동안 편안할 날이 없었습니다. 10여 년 동안 저는 크고 작은 병원을 찾아다니며 약을 구했고 길거리의 민간요법이나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비방을 끊임없이 찾아 헤맸지만 여전히 치료할 길이 막막했습니다.

1998년 10월 저는 너무나 다행스럽게도 법을 얻어 파룬따파를 수련하게 됐습니다. 연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기침이 줄어들었고 누런색 가래를 대량으로 뱉어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더는 기침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두 차례 피가 섞인 대변을 많이 배출하고 나자 며칠 만에 치질이 뿌리 뽑혔고 요추 통증이 나아 허리를 굽히고 펼 수 있게 됐으며 서서히 목이 정상으로 회복돼 말하기가 점점 편해졌습니다. 이후로 저는 병이 없어 온몸이 가뿐해졌고 걸음걸이에 바람이 일었습니다. 사라졌던 건강을 되찾았으니 이것은 그야말로 인간 세상의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생명이 새로 태어나는 비할 데 없는 기쁨을 얻었음을 느꼈고 이런 인생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하고 아름다운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은혜에 큰절을 올리며 감사드립니다!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귀하고 얻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저는 적극적으로 홍법했습니다. 우리집에 법공부 장소를 마련하자 인근 수십 개 마을의 주민들이 우리집으로 와서 법공부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아침 5시 무렵에 1~4장 공법을 연마하고 저녁에는 다 함께 단체로 법공부를 한 뒤 가부좌를 하고 제5장 공법을 연마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30년 동안 피우던 담배를 끊었고 어떤 사람은 만성적인 어지럼증과 두통이 나았으며 불룩했던 배가 줄어드는 등 병을 제거하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기적이 수없이 일어났습니다. 이렇게 좋은 대법을 저는 제 학생들에게도 전파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3. 진선인 법리가 아이들의 마음 밭에 뿌려지다

1999년 3월 겨울방학이 지나고 새 학기가 시작될 때 저의 정신적 면모는 완전히 새로워져 있었습니다. 저는 2학년 학생들의 등록을 돕고 학생들과 함께 청소하며 개학 준비를 했습니다. 짧은 몇 달간의 수련을 거치며 저는 정신이 맑아지고 몸이 개운해져서 말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걸을 때 아주 가뿐해졌으며 아이들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게 됐습니다. 학생들이 물었습니다. “선생님은 예전에 기침을 엄청 심하게 하셔서 말씀도 못 하셨고 걸음도 절뚝거리셨는데 지금은 어떻게 다 나으셨어요?” 저는 대답했습니다. “선생님은 파룬궁을 연마했단다. 파룬궁을 수련해서 온몸의 병이 다 나은 거야. 파룬궁은 정말 좋단다!” 학생들은 이 말을 듣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저는 수업 중이나 방과 후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홍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파룬궁은 사람에게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는 것을 이야기해주었고 현재 학생들 사이에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성 결핍 상황과 결부시켜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사람 됨됨이를 가르쳤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는 ‘진선인’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돼야 합니다. 집에서는 훌륭한 자녀가 돼 부모님을 존경하고 효도하며 부모님의 수고를 이해하고 부모님을 도와 스스로 할 수 있는 집안일을 해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훌륭한 학생이 돼 선생님을 존경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수많은 학생이 선생님 곁을 스쳐 지나가면서도 인사조차 하지 않아 기본적인 예의도 갖추지 못하고 뒤에서는 불평을 늘어놓거나 대놓고 선생님과 말대꾸하며 다투곤 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고쳐야 합니다. 여러분은 학생이므로 공부를 잘해야 합니다. 학우들 사이에는 서로 아껴주고 도와주며 너그럽게 포용하고 양보해야 합니다. 학우와 갈등이 생기면 우선 자신이 어디가 잘못됐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자 아이들에게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어떤 학부모는 제게 말했습니다. “L 선생님, 요새 우리 아이 류시퉁(劉西童, 가명)이 아주 착해졌어요. 방과 후에 집에 돌아오면 숙제를 다 끝내고서 집 안을 깨끗하게 청소한답니다. 전에는 절대 그렇게 안 했거든요.” 또 다른 학부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L 선생님, 리완(李婉, 가명)이 요즘 아주 철이 들었어요. 제게 화를 내지도 않고 훨씬 효도한답니다. 제가 바쁘게 일하는 걸 보면 다가와서 일손을 돕기도 해요. 또 어른 공경할 줄도 알게 돼서 할아버지와 할머니께 밥도 퍼드린답니다.”

수많은 학부모들이 학생들의 변화된 모습을 연달아 전해오자 저는 학부모들에게 홍법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이들이 ‘진선인’을 알게 됐기 때문입니다. 파룬궁은 바로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칩니다.” 학부모들은 모두 “파룬궁은 좋네요, 파룬궁은 좋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반 분위기에도 큰 변화가 생겨 펜이나 지우개를 훔치는 일이 없어졌고 학우들끼리 책상 한가운데에 선을 긋는 행동도 사라졌습니다.

그 당시 저는 2학년과 5학년 두 개 반의 수학을 가르치며 2학년 반 담임도 맡고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모두 “선생님이 맡은 두 반에 수업하러 들어가면 수업 태도가 아주 좋아서 가르치기가 훨씬 수월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선생님은 제게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L 선생님, 선생님 반의 왕하오(王浩, 가명)가 예전에는 저를 아는 체도 안 했는데 지금은 저만 보면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깍듯이 고개 숙여 인사까지 하더라고요.” 저는 “그 아이가 파룬궁을 배워서 예의 바르게 변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파룬궁이 참 좋네요”라고 말했습니다.

방과 후 시간에 저는 학생들을 데리고 법공부를 하고 연공을 했습니다. 주로 제가 교과 담임으로 있는 5학년 반 학생들이 참여했습니다. 학교가 파한 후 학생들이 자리에 앉으면 저는 교단에서 ‘전법륜(轉法輪)’을 읽어주었는데 학생들은 모두 무척 진지하게 들었으며 한 번에 몇 쪽이나 10여 쪽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으로 나가 연공 음악에 맞춰 연공했습니다.

일요일이면 가끔 도시에 있는 수련생들이 농촌으로 홍법하러 와서 우리집에 머물렀는데 그럴 때면 저는 30여 명의 학생들을 우리집으로 오게 해 다 함께 단체로 법공부와 연공에 참여하게 했습니다. 대법의 ‘진선인’ 법리는 단비처럼 아이들의 마음 밭에 뿌려졌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대법에서 사람에게 어떻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쳤는지 슬쩍 일깨워주기만 해도 아이들은 즉시 깨닫고 자신을 다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떤 선생님이 제게 말했습니다. “L 선생님, 우리 보충수업반을 열어서 돈 좀 벌어볼까요!” 제가 대답했습니다. “안 됩니다. 어떤 학생들은 집에서 학비조차 제대로 내지 못하는데 학부모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지 맙시다. 우리는 수업 시간에 성심성의껏 가르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자 그 선생님은 다시는 보충수업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제 업무는 줄곧 상급 부서 간부들과 교사들에게 인정받고 호평을 얻었으며 저 자신도 학생과 학부모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아 1등상, 2등상, 특등상 등 상장을 수북하게 받았습니다. 이토록 우수한 성적을 거두었기에 다들 제가 당연히 고급 직함을 받을 거라 여겼습니다. 하지만 다 된 줄 알았던 고급 직함이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갔을 때도 저는 원망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사부님께서 우리 수련인에게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보고 어디서나 타인을 위해 생각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4.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다

2003년 6월 대법제자들의 바른 믿음과 정념이 굳건한 가운데 제가 불법으로 감금됐던 세뇌반이 종료됐습니다. 2003년 8월, 2년 6개월간의 불법 감금을 겪은 후 저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모두 제가 하루빨리 아이들 곁으로 돌아와 교사의 본분을 다해주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저 역시 그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늘 마음속에 품고 있었지만 향 교육사무실 책임자는 “당신은 평생 다시는 교단에 오를 생각 마시오”라고 통보했습니다. 저는 간부, 동료, 학부모, 학생이 모두 공인하는 우수 교사였고 33년 동안 교직에 몸담으며 단 한 번도 법을 어기거나 기율을 위반한 적이 없었건만 뜻밖에도 ‘다시는 교단에 오를 생각 마라’는 말을 들은 것입니다.

저를 끝없는 병고의 고통에서 구해주시고 몸과 마음의 건강을 되찾아 주시며 사람의 도리를 가르쳐주시고 생명 존재의 진정한 의미를 일깨워주신 분은 바로 사부님이십니다. 그 덕분에 저는 미소를 지으며 가뿐한 마음으로 교단에 서서 아이들과 함께 불광(佛光)을 쬐며 가르치고 배우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성실하고 부지런히 수많은 실제적인 공로를 세워 사람들이 공인하는 훌륭한 교사였던 저는 그저 헌법이 공민에게 부여한 신앙의 자유라는 권리를 받들어 파룬따파를 굳게 수련하며 좋은 사람이 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영원히 다시는 교단에 오를 생각 마라’는 핍박을 받고 불법으로 퇴직금마저 압류당했습니다.

예전에 세뇌반으로 우편 발송됐던 그 학생들의 편지는 마치 거센 비바람과 파도를 뚫고 철창 안으로 날아든 용감한 흰 비둘기처럼 고난 속에서도 진리를 지키는 수련인에게 굳건한 신뢰와 격려와 희망을 전해주었습니다.

중공의 거짓말에 중독돼 위험에 처해 있는 수많은 세상 사람들을 생각할 때면 저는 마음이 아프고 조급해졌으며 그래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일을 대량으로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손에 진상 자료가 없었으므로 저는 빳빳한 종이상자를 길게 오려내어 그 위에 컬러펜으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파룬따파는 바른 법입니다’, ‘우리 사부님은 결백하시다! 대법은 결백하다!’ 등의 작은 표어를 적어 실로 꿴 다음 농촌 들녘, 큰길과 오솔길, 나뭇가지, 전봇대 등에 걸어두었습니다. 표어를 걸면서 항상 컬러 분필을 들고 다니다가 커다란 바위나 다리 난간, 교각 아래 등 적당한 장소를 발견하면 그곳에 이런 표어를 썼습니다.

나중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장식품, 표어, 족자, 현수막이 생기자 저는 수련생들과 함께 밤을 새워가며 그것들을 걸었습니다. 때로는 집집마다 찾아가 진상 자료를 나눠주며 향 전체 수백 가구에 진상 자료를 뿌렸습니다. 한동안 우리 향 반경 수십 리 안의 마을들을 샅샅이 돌아다녔고 어떤 곳은 여러 차례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인연 있는 사람을 만나면 그들에게 진상을 알렸고 파룬따파의 훌륭함을 이야기했으며 중공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죄악을 폭로하고 ‘천안문 분신’ 사건이 거짓임을 알렸습니다. 특히 과거의 학생들과 학부모들, 아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는데 그들은 한결같이 따뜻하게 대해주며 이렇게 칭찬했습니다. “그렇게 잘 가르치시고 훌륭하신 선생님이 수업을 못 하게 되다니 정말 안타깝습니다. 학생들도 모두 아쉬워했습니다.” 저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진선인’을 배워 좋은 사람이 되고 제 본분에 충실하며 학생들을 잘 가르친 것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습니다. 그들이 저를 이렇게 대우하는 것 자체가 법을 어기는 짓입니다.”

가끔은 어떤 사람들을 만났는데 진상을 듣고 나서 제게 말했습니다. “제가 진작에 당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파룬궁을 연마하다가 몇 년간 감금됐던 분(저는 불법으로 4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이 바로 당신이군요? 오늘에서야 뵙습니다.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그들은 모두 제가 당한 처지를 억울하게 여겼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도 아주 수월했습니다. 저는 그들이 진상을 깨닫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해 평안을 지키고 복을 얻기를 진심으로 기원했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진상 자료와 영상 디스크를 본 뒤 저와 마주치자 몹시 감개무량해하며 말했습니다. “당신들 파룬궁은 정말 대단합니다!” 제가 “자료를 보셨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정말 많이 봤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더 많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 저는 수시로 친척에게 스쿠터 뒷자리에 저를 태워달라고 해서 도시로 가서 진상 자료를 배포했습니다. 도심의 아파트 단지와 학교를 모두 돌아다녔고 파출소, 공안국, 법원, 검찰원 등의 관공서에도 찾아가 진상 자료를 전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5. 퇴직금을 요구하며 각계각층에 진상을 알리다

세뇌반이 해산된 후 세뇌반에서 박해에 가담했던 인원들의 식대, 숙박비, 차비, 유류비, 온갖 보조금 등 모든 비용이 세뇌반에 불법 감금돼 있던 파룬궁수련생들에게 전가됐습니다. 사람들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전 세뇌반은 마지막까지 억류돼 있던 파룬궁수련생들을 인질로 삼아 그들의 가족에게 돈을 내고 서명하며 보증서를 작성하게 한 뒤에야 비로소 가족을 집으로 데려갈 수 있게 허락했습니다.

세뇌반은 제게 1만 3125위안을 갈취했는데 제 월급에서 강탈해 간 것이었습니다. 돈을 차감한다는 사실을 저 본인에게 통보하지 않았고 정식 법적 수속이나 절차도 밟지 않았으며 제게 정식 영수증이나 정규 증빙 서류도 발급해주지 않았습니다.

세뇌반에서 집으로 돌아온 지 10여 일 뒤 향 정부 교육사무실 주임이 제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2만 4000위안을 더 내야 하오. 정부에서 요구하는 돈이오(세뇌반 비용).” 저는 향 정부로 가서 한 관리를 찾아내어 그에게 말했습니다. “세뇌반은 제가 원해서 간 것이 아니라 속아서 간 것이고 잡혀간 것입니다. 관리 인원이 우리를 박해하는 데 가담한 것은 법을 위반한 짓인데 인건비마저 우리더러 부담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한 푼도 낼 수 없습니다. 누구든 제 월급을 또다시 차감한다면 저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가겠습니다.” 저는 박해에 단호히 맞섰고 두 번째 경제적 갈취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2012년 9월 9일, 저는 4년의 억울한 옥살이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저의 연금이 2009년부터 불법적으로 박탈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수십 년의 근속 연수가 통째로 소멸돼 저는 단 한 푼의 퇴직금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저는 여러 관계 부서에 상황을 알렸으나 결국 교육국은 어떤 불법 문서의 위법적인 규정에 따라 제게 매달 880위안의 최저 생계비만 지급했습니다.

저는 경제적 박해를 배격하며 수년간 줄곧 합법적인 연금을 되찾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녔습니다. 성(省) 내 각급 교육 부서, 각급 인사사회보장 부서, 구(區) 위원회, 시(市) 위원회, 성 위원회 등 각급 정부 청원사무실, 신방국(信訪局, 청원국) 등 갈 수 있는 곳은 모조리 찾아갔습니다. 저는 저의 생생한 경험을 바탕으로 파룬따파가 좋다는 사실을 실증하고 박해를 폭로하며 진상을 알려 그들의 양심과 선념을 일깨웠습니다. 저는 퇴직금을 요구하는 진상 편지를 구, 시, 성뿐만 아니라 국가급 각급 사회보장 부서, 인사사회보장 부서, 심지어 국무원, 국가신방국, 전국인민대표대회, 기율검사감찰 부서 등지로 보냈습니다.

진상을 알리는 일은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주 기나긴 과정을 거쳤습니다. 처음에 이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했을 때는 구 정법위, ‘610’, 향 정부, 경찰 등이 패거리를 지어 집으로 몰려와 저를 괴롭히고 위협하고 공갈하며 갖은 방법으로 훼방을 놓았습니다. 저는 법원에 고소장을 제출해 제가 합법적으로 권리를 수호하고 있으니 박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확히 밝혔고 이후로는 이런 일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저의 끊임없는 노력에 따라 수많은 사람이 진상을 깨달았고 태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생겼습니다.

지금 제가 현지의 관련 부서 담당자들에게 자료를 제출하러 가면 그들은 모두 선의로 저를 대합니다. 어떤 사람은 저와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중에 삼퇴를 하기도 했습니다. 한 관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이 우수 교사이고 참 좋은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당신의 퇴직금은 단 한 푼도 줄어들지 않을 테니 그때가 되면(파룬궁이 명예를 회복하는 날)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다 처리해 드리겠습니다.”

깨어나는 중생이 갈수록 많아지니 저는 반드시 계속 노력해 제 사명을 완수하고 사부님을 따라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6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6/4/510951.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6/4/51095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