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랴오닝성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의료 종사자로 1999년 초부터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다. 내가 법을 얻고 수련한 지 몇 달 후, 중국공산당(중공) 악당의 파룬따파에 대한 박해가 시작됐다. 박해는 나를 흔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고, 나는 속으로 ‘나는 반드시 수련할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중공의 파룬따파에 대한 먹칠과 비방은 진상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을 해치고 있었기에 나는 ‘나는 반드시 잘 해낼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통해 파룬따파의 훌륭함을 보고 파룬따파 진상을 깨닫게 하려 했다.
수련을 업무에 녹여내다
수련 전 나는 차갑고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전법륜(轉法輪)’ 법공부를 통해 나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가족처럼 대해야 함을 깨달았다. 매일 업무 속에서 나는 최선을 다해 모든 환자를 배려했고 그들의 다급함과 생각을 내 것처럼 여겼다. 특히 야간 근무를 할 때는 오후에 집에서 한숨 자고 출근해, 밤에 졸지 않고 더 잘 일할 수 있었다. 야간 교대 후에는 항상 각 병실을 돌며 환자들의 상태가 어떤지 묻고 혈압을 재주며, 그들을 위로하고 질병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북돋아 주었다. 나는 모든 환자의 병세를 마음속에 숙지하고 있었다.
일부 중증 환자의 가족들은 매우 지쳐 있었는데, 내가 근무할 때는 그들에게 조금 쉬라고 하고 내가 대신 수액을 지켜봐 주었다. 환자와 가족들은 모두 내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느꼈고, 어떤 가족은 내 손을 꼭 잡고 말했다. “어쩌면 이렇게 좋으신가요?!” 그럴 때면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저희에게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중공이 파룬따파를 미친 듯이 박해할 때, 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알려야 하며 대법 사부님은 결백하시다는 것을 말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 정념을 확고히 하고 침착하고 이성적으로 내가 만나는 모든 직원, 환자, 가족들에게 파룬따파가 중공에 박해받는 진상을 알렸으며, 의학 지식을 이용해 ‘천안문 분신자살’ 사기극을 폭로해 수많은 환자와 가족, 그리고 부서의 전 직원이 진상을 깨닫고 삼퇴(중공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게 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나는 진심으로 수련했고 심리적 자질과 기술이 향상됐다. 몇 번은 병원 간부가 있는 자리에서 환자를 응급처치할 때도 질서정연하게 처리해 간부들의 인정을 받았고, 그들이 파룬따파에 대해 가진 편견을 해소시켜주었다.
업무 중 나는 자신에게 엄격히 요구하며 항상 내가 수련인임을 일깨웠고, 개인적인 이익을 다투지 않으며 간부가 지시하는 일은 무엇이든 다 했다. 한번은 다른 부서에 인력이 부족해 우리 부서에서 한 명을 파견해 대타를 뛰게 하려 했다. 그 부서는 우리 부서보다 힘들었기에 간부가 어떤 동료에게 가라고 해도 다들 온갖 핑계를 대며 미뤘다. 어쩔 수 없이 간부가 나에게 가라고 했고, 나는 두말없이 가서 야간 근무를 대신했다.
나는 우리 부서에서 일하던 방식을 그 부서에서도 적용해, 모든 환자에게 끈기 있게 안부를 묻고 병세를 파악하며 그들에게 관심을 갖고 격려하며 도왔다. 다음 날 나는 모든 환자의 병세에 대해 상세히 인수인계를 했다. 인수인계를 할 때 실내는 조용했다. 인수인계가 끝난 후 그들은 모두 나에게 칭찬의 눈길을 보냈다.
다음 날 내가 출근했을 때 그 부서의 간부가 나를 한쪽으로 부르더니 말했다. “당신이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걸 알고 있어요. 부서 직원들과 환자들이 모두 당신을 칭찬하더군요!” 나는 기회를 이용해 그녀에게 파룬따파는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녀는 내게 수련에 관한 몇 가지를 물었고 나는 상세히 대답해 주었다. 이어서 그녀가 내게 물었다. “우리 부서에 남아줄 수 있나요?” 나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병원의 지시를 따라야지요!”
며칠 후 나는 원래 부서로 돌아왔다. 우리 부서 간부의 아내가 그 부서에 있었는데 간부가 내게 알려주기를, 그 부서의 환자들이 원장에게 “이렇게 좋은 직원은 본 적이 없습니다. 환자에게 너무 잘해 줍니다”라고 말했다고 했다.
업무 중에 나는 어떠한 돈이나 물건도 받지 않는다. 어떤 환자들은 진심으로 내게 감사하며 아주 비싸고 고급스러운 과일을 많이 선물하기도 했다. 그들의 성의를 생각해 나는 과일 한두 개만 남겨두고 그들에게 말했다. “마음은 잘 받겠습니다. 나머지 과일은 가져가세요.” 나는 그들에게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모든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며 그들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도록 도왔다.
어느 환자는 지역의 유명 인사였는데 불규칙적으로 처치를 받으러 왔다. 모두에게 감사하기 위해 그는 각자에게 쇼핑 카드를 한 장씩 주었고, 나는 동료 수련자와 어떻게 돈을 돌려줄지 상의했다. 이후 우리는 쇼핑 카드에 있는 금액을 현금으로 바꿔 입원처에 가서 입원 보증금으로 냈다. 나는 보증금 영수증을 들고 환자의 아내를 찾아가 영수증을 건네주며 말했다. “저희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기에 환자를 돌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녀가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 다 드린 건데 너무 사양하시네요.” 나는 말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카드는 받을 수 없습니다.”
내가 그녀에게 파룬따파 진상을 알려주자, 그녀는 자신도 대법서적을 읽어본 적이 있지만 텔레비전에서 중공이 파룬궁을 모함하고 비방하는 것을 믿고 그만두었다고 했다. 나는 말했다. “그럼 이제 다시 계속해 보세요. 좋은 마음가짐은 치료에 큰 도움이 되므로 당신과 남편분 모두에게 좋습니다.” 그녀가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당신은 참으로 사부님의 훌륭한 제자군요.”
또 다른 환자 역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도 우리에게 쇼핑 카드를 주었다. 나는 같은 방식으로 현금화한 돈을 입원 보증금으로 내고 영수증을 환자 본인에게 직접 주었다. 그와 친구는 모두 매우 놀라며 의아해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선물을 줘도 안 받는 사람이 있나?’ 나는 그에게 알려주었다.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합니다. 사부님께서는 제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환자분을 치료하는 것은 저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마음만 잘 받겠습니다.”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한다는 말을 듣고 이 환자는 곁에 있는 친구들에게 말했다. “제 친척 중에도 파룬따파를 배우는 사람이 있는데, 여러분은 정말 훌륭하시군요.” 그러고는 나와 파룬따파에 관해 이야기했다. 곁에 있던 친구들의 눈빛은 놀라움과 몰이해에서 깨달음과 찬탄으로 바뀌었다. 그는 기뻐하며 나를 병실 밖까지 배웅했다.
그가 퇴원할 때 우리 부서의 치료에 감사하기 위해 고급 식당에서 우리에게 식사를 대접했고, 우리 부서를 담당하는 원장도 자리에 있었다. 식사 자리에서 다들 매우 어색해했고 부서 간부와 원장만 이야기를 나눴을 뿐, 우리는 조용히 자리만 지키고 있었다.
갑자기 이 환자가 일어나 술잔을 들고 내게 말했다. “○○씨, 따로 한잔 올리겠습니다.”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의 시선이 내게 쏠렸다. 너무 갑작스러워서 나도 황급히 일어났고, 그가 말했다. “진리를 고수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나는 말했다. “이해와 지지에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그가 말한 ‘진리’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고 있었다. 그가 용기를 내 일어나 이 말을 한 것은 그의 입장과 선택을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내가 보기에 그의 말은 짧았지만 진상을 깨달은 후 자신의 이익이 손상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정의로운 행동이었다.
업무 중 만난 어느 환자의 가족은 파룬궁을 직접 박해하는 부서의 간부였지만, 우리는 환자를 대할 때 조금의 편견도 없이 말과 표정에 선함을 담아 가족을 대하듯 격려하고 관심을 가지며 도왔다. 환자가 임종할 때 나는 내내 침대 곁을 지키며 가족의 신분으로 호스피스를 해주었고 환자는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환자 가족은 우리 간부에게 우리가 가족을 너무 잘 보살펴줘서 무척 감동했다고 말했다. 나는 말했다. “저는 단지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에 따라 여러분을 제 가족으로 여겼을 뿐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데 가담하지 말라고 알려주었다. 우리는 각종 방법을 이용해 그에게 진상을 알렸고, 그 역시 해외 파룬궁수련자의 선을 권하는 전화를 자주 받았다. 나의 동료이자 간부도 그와 친구 사이였는데, 그에게 그의 직책이 좋지 않다고 말해주었다.
그 후 어느 날 길에서 그를 만났는데 5~6m 정도 거리를 두고 있을 때 그가 두 팔을 벌리고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내 앞에 다가온 그가 말했다. “좋은 일 하나 알려드릴게요.” 내가 말했다. “빨리 말씀해 보세요. 무슨 기쁜 일인데 그렇게 좋아하세요?” 그는 허벅지를 치며 말했다. “저 마침내 그 일 안 합니다.” 그는 양손으로 허벅지를 치며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웃었다. 자세를 바로 한 그가 내게 말했다. “아세요? 저 이제야 밥도 넘어가고 잠도 잘 수 있게 됐습니다.” 이어서 그는 다시 웃었는데 아이처럼 웃었다.
그를 보며 나는 명예와 이익에 유혹돼 대법 박해에 가담했던 그가 진정으로 진상을 깨달은 후 식음을 전폐할 정도로 고통스러웠기에 오늘 이렇게까지 기뻐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이때의 그가 진실한 그라고 여겨 그를 축복했다.
그가 나와 말할 때의 장면은 줄곧 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한 생명이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스스로 밝은 미래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내게 자비로 더 많은 사람을 일깨울 수 있다는 확신을 더해주었다.
자신의 사고를 완전히 ‘남을 위하는 것’으로 바꾸다
어느 날 나는 작업복 단추를 꿰매려고 비품 상자에서 바늘과 실을 꺼냈다. 비품 상자를 열어보니 흩어진 흑백 두 타래의 실이 엉킨 채로 돋보기안경 한쪽 안경다리에 감겨 있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실마리를 찾아 풀어내려면 얼마나 번거로울까. 차라리 실을 끊어서 단추부터 꿰매자.’
이때 내 머릿속에 명혜망 특집 기사 ‘우리의 사부님’이 떠올랐다. 용천사(龍泉寺) 건설 당시 공사장과 길가의 못을 사부님께서 수시로 주워 분류해 창고에 넘겨주셨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실타래를 잘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두 손에 실타래를 하나씩 쥐고 허공에서 한 번 털자, 내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깜짝 놀랐다. 엉켜 있던 흑백 실이 저절로 풀린 것이다. 그때야 나는 엉켜 있던 것이 돋보기안경 다리만이 아니라, 우리가 간병인 의자 커버 끈을 끼울 때 사용하는 작은 머리핀과 10cm 길이의 굵은 실오라기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나는 재빨리 실을 감고 비품 상자를 정리한 후 바늘과 실을 들고 단추를 꿰맸다. 나는 단추를 꿰매면서 방금 전 상황을 떠올렸다. 왜 내 손을 허공에서 한 번 털었는데 실이 저절로 풀렸을까? 나는 내 생각을 되돌아보았다. 그것은 내가 이기적인 일념을 내려놓고 남을 위하는 일념을 가져, 더 많은 사람의 편의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진심으로 낸 이 일념 때문에 사부님께서 내게 신통을 보여주신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제자 곁에 계신다. 사부님이 계셔서 정말 행복하다! 오후 내내 나는 아이처럼 행복에 잠겨 있었다.
작년 늦가을 우리 작업실 창문 지지대가 고장 나 창문이 꽉 닫히지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면 창문이 열려 업무에 지장을 주었다. 나는 간부와 동료에게 수리공을 불러 고치자고 했지만 동료는 기어이 고쳐보겠다고 했다. 창문이 벽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나란히 서 있었고 그녀는 내 바깥쪽에 섰다. 내가 창문을 열었는데 경사식 여닫이라 지지대가 고장 난 상태여서 내 손으로 그 창문을 받치고 있었다. 동료는 내 손을 못 봤는지 이를 악물고 힘껏 창문을 닫았고, 내가 아파서 “아!” 하고 소리치자 동료는 그제야 내 손이 끼인 것을 발견하고 그녀 역시 “어머나, 세상에!”라며 황급히 창문을 열었다. 나는 급히 팔을 빼내 손을 높이 들어 피가 역류하게 했다. 그녀가 말했다. “어디 좀 봐요.” 나는 “괜찮아요, 가서 수리공이나 불러와 줘요”라고 말하며 그녀를 돌려보냈다.
열 손가락은 심장과 이어져 있다고 하듯, 내 손이 끼인 그 순간 내가 “아!” 하고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나는 심장 부위에서 서늘한 무언가가 뽑혀 나가는 것을 생생하게 느꼈다. 동료가 간 후 나는 고통을 참고 손을 내렸다. 가운뎃손가락 앞쪽이 파랗게 변해 있었고 손톱 밑은 피가 뿜어진 자국이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많은 원한을 풀어주셨고 사부님께서 대신 감당해 주셨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며칠 후 내 손톱은 까맣게 변했다. 어느 날 아들이 밥을 먹다가 갑자기 그것을 발견하고는 내 손을 잡아끌며 안타깝고 조급한 마음에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되셨어요?” 나는 사건의 경과를 말해주었다. 아들이 말했다. “그럼 그분은 엄마 손이 이렇게 낀 걸 아시나요?” 나는 말했다. “그녀에게 내 손을 보여주지 않았어. 보면 자책하고 죄책감을 느낄 텐데, 고의로 그런 것도 아니잖아.” 말이 나오자마자 나는 내 사고방식이 이미 불평, 원망, 불만에서 벗어나 완전히 남을 위하고 있으며 법에 서서 문제를 볼 수 있게 됐다는 것을 놀랍게도 발견했다. 이 까만 손톱은 자라남에 따라 조금씩 잘라냈고, 대략 두 달 후에 완전히 다 자랐다.
법리를 말씀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내가 고통을 겪을 때 남을 생각하고 이기심을 내려놓으니 오히려 진정한 행복을 느꼈다. 이것이 바로 파룬따파의 위력이다.
나는 늘 마음속으로 남을 생각해야 한다고 자신에게 타이른다. 자전거를 세울 때도 옆 자전거가 나갈 때 밀기 편한지 배려한다. 운전할 때 길이 좁은 곳에서 맞은편에서 차가 오면, 나는 차를 세우고 상대방에게 먼저 가라는 신호를 보내 긁힘 사고도 피한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그곳에 서서 모든 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건너며 자신에게 말한다. ‘운전하는 사람들은 다 바쁘니 그들 먼저 가게 하자.’ 어떤 운전자는 인품이 특별히 좋아 차를 세우고 내게 먼저 지나가라는 신호를 보내는데, 그러면 나는 그에게 가볍게 인사한 후 건너간다.
나는 자신이 대법제자이므로 일언일행이 모두 미래인에게 참조로 남겨질 것이라 생각하며, 대법제자라는 칭호에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려 한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7/51033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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