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우리 지역 대법 전파의 성황을 회고하며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의 인생에서 1996년 봄은 참으로 특별한 봄이었다. 비록 지금으로부터 30년이 지났지만, 그해 득법해 수련하던 정경을 회상하면 여전히 눈에 선하고 기쁨이 마음 가득 넘쳐난다.
그 당시 나는 현역 군인이었으며, 동시에 해당 지역 구(區) 소속 기공협회 책임자를 겸임하고 있었다. 내가 속한 도시는 성도급(省都級) 대도시였고, 내가 있던 구는 외곽의 농업 구역으로 인구가 30여만 명이었다. 당시 많은 기공 유파가 우리 구에 전파돼 있었지만 파룬궁만은 없었다.
책 한 권 이야기
1996년 새해가 막 지난 무렵, 기공계의 오랜 친구 두 명이 나를 찾아와 말했다. 새해 전에 외지에서 온 대학생이 자신들에게 ‘전법륜(轉法輪)’이라는 책을 한 권 주고 동작 몇 가지를 가르쳐 줬는데, 두 사람 모두 책을 다 읽어 보니 정말 좋더라고 했다. 나도 한번 읽어 보고 나서 이야기하자는 것이었다.
집에 돌아와 책을 펼치니, 사부님 사진을 보는 순간 사부님이 왜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지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비롭고 선량한 눈매에 게다가 매우 젊어 보이셨다. ‘논어’를 펼치니 ‘불법(佛法)’이라는 두 글자가 단번에 나를 사로잡았다. 나는 밤을 꼬박 새워 단숨에 책 전체를 다 읽었다. 이것은 정말 보배로운 책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책에 담긴 이치가 예사롭지 않고 언어는 평이하고 알기 쉬우면서도 문장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울렸다. 동시에 법리가 무척이나 깊고 깊어 끝없는 함의를 담고 있다는 느낌도 받았다.
나는 매우 행복했다. 인생의 목적이 반본귀진(返本歸眞, 선천적인 본성으로 되돌아가는 것)임을 알았고, 진선인(眞·善·忍)이란 우주 대법을 얻었으며, 안으로 찾는 것이 이타적이고 사심 없는 좋은 사람이 되는 방법임을 알게 됐다. 선하고 악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기준은 무엇인가? 인생에서 얻고 잃고 만나고 추구하는 모든 것의 까닭은 무엇인가? 사람은 왜 병에 걸리는가? 사람은 왜 시련을 겪는가? 살면서 품어왔던 수많은 의문과 답을 이 책에서 모두 찾을 수 있었다.
책을 내려놓자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다. 사부님 사진을 향해 말씀드렸다. “사부님은 제가 찾던 스승이십니다. 드디어 사부님을 찾았습니다! 저를 제자로 받아 주십시오. 반드시 열심히 수련하고 실제 행동으로 대법을 널리 알리겠습니다.”
다음 날 나는 곧바로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는 기공협회에 사직서를 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두 친구를 찾아가 셋이서 함께 각자의 체험을 나눈 것이었다. 우리는 모두 너무 흥분돼 이 훌륭한 공법을 하루빨리 널리 알려 더 많은 사람이 법을 듣게 하고 싶었다.
우리는 먼저 주변 사람들부터 시작했다. 친척과 친구, 기공계 동료들을 찾아가 파룬궁의 비범함과 탁월함, 진선인의 이념을 소개하고 각자의 체험을 들려줬다. 대다수 사람이 기뻐하며 매우 지지해줬고, 파룬궁 수련에 대한 열망도 컸다. 우리는 대법을 온 구에 빨리 널리 알리고 싶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전법륜’ 한 권밖에 없었고 다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법을 얻고 싶어 하는데, 책 한 권을 돌려 읽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첫 번째 법회
우리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애를 태우던 어느 날, 퇴근 통근 버스 안에서 수(蘇)씨 성을 가진 의사 한 분이 내게 말을 건넸다. 아주 신기한 기공이 있는데, 자기 집 이웃이 ‘파룬궁’이라는 공법을 수련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너무 기뻐 얼른 그를 따라 그 이웃집을 찾아갔다.
알고 보니 그 집 이웃 노부부가 모두 파룬궁을 수련하고 있었다. 남편은 교사였고 아내는 성(省) 병원의 간호사였다. 우리 사정을 듣고는 즉각 우리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겠다고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이 속한 구의 보도소에서 우리를 위해 대법 책과 자료를 예약해 줬고, 보도소 책임자가 수련생들을 데리고 우리 구에 와서 보도소 설립을 도와줬다. 시(市) 총 보도소에서도 곧 우리 구로 사람을 파견해 지도와 도움을 줬다.
이어서 ‘전법륜’ 등의 경서, 사부님 설법 비디오테이프·오디오테이프·공법교육 테이프, 연공 음악, ‘보도(普度)’와 ‘제세(濟世)’ 등의 대법 음악 카세트테이프, 대법을 소개하는 관련 자료들이 끊임없이 우리 구로 들어왔다. 이로써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가 우리 구에 급속도로 전파돼, 도시에서 농촌까지 봄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실로 사부님께서 ‘정진요지(精進要旨)’에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대법(大法)을 널리 전하니, 소문을 들은 자는 찾고, 얻은 자는 기뻐하는바, 수련자가 날로 많아져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다.” “과연 맺은 연분대로 깨달을 수 있는 자들인지라, 잇따라 모여와 입도(入道)하여 법(法)을 얻는구나.”
대법 수련을 신청하러 사람들이 앞다투어 몰려왔다. 어떤 집은 온 가족이 신청하고, 어떤 집은 부부가 함께 왔으며, 어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어떤 할아버지는 손자의 손을 잡고 찾아왔다. 전 구의 12개 향진(鄕鎭)과 2개 농장에 차례로 파룬따파 보도소가 설립됐고, 많은 마을에 연공 수련 거점이 세워졌다.
시내의 노(老) 수련생 몇 분이 사비를 들여 파룬따파 홍법 깃발 20여 개를 만들어 우리에게 선물해 줬고, 우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9일 설법 영상반을 개최했다. 이리하여 책 한 권의 전달에서 수천 명이 법을 듣고 득법하기까지, 불과 몇 달 만에 우리 구 보도소에서 가져간 ‘전법륜’만 4천여 권에 달했다. 파룬따파 깃발이 도시와 농촌의 드넓은 대지 위에 펄럭였고, 대법의 ‘보도’와 ‘제세’의 성스러운 음악과 대법 연공 음악이 온 구의 하늘 위에 울려 퍼졌다.
여기서 작은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바로 그 간호사 누님이 내 금연을 도와준 이야기다.
직업적 특성상 나는 담배를 피우는 나쁜 습관이 생겼는데, 중독이 매우 심했다. 당시에는 막 수련을 시작해 법리가 분명하지 않아 자신에 대한 요구가 엄격하지 못했다. 처음 만나던 날, 그 누님이 방에 들어서자마자 나를 향해 큰 소리로 말하던 것이 기억난다. “책 안 읽으셨어요? 아직도 담배를 피우세요! 수련하는 사람이 어떻게 담배를 피워요? 빨리 꺼요!” 그 순간 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허, 정말 거리낌이 없네. 첫 만남에 대뜸 야단을 치다니, 내가 지역에서 나름 체면 있는 사람인데, 정말 체면을 안 세워 주는구나!’ 그러다 이내 생각이 바뀌었다. ‘이분은 진심으로 나를 위하는 거야. 보아하니 이 공법은 정말 예사롭지 않구나!’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즉시 담배를 껐다. “누님, 감사합니다. 반드시 금연하겠습니다. 누님을 통해 ‘진(眞)’을 보았고, 대법을 수련하겠다는 믿음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말은 쉬웠지만 실천은 여전히 쉽지 않았다. 한번은 정말 참지 못해 사부님 사진 앞에서 부끄러운 마음으로 말했다. “사부님, 제자가 너무 못났습니다. 담배 중독이 너무 심해서 한 개비만 더 피우게 해 주세요.” 결국 그 한 대가 화근이 되어 담배 중독이 다시 살아났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다가 나중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라이터와 담배를 모두 버렸다. 그 이후로 수십 년간의 흡연 습관을 완전히 끊어 버렸다.
수련 이후, 이전 생활과 일 속의 수많은 억울함, 불공평함, 원망심 같은 감정들, 그리고 몸과 마음의 병업으로 인한 고통이 모두 사라졌다. 나를 여러 해 동안 괴롭혔던 부체(附體, 사람 몸에 붙는 동물, 귀신 등의 영체)를 사부님께서 완전히 제거해 주셨다. 나는 정말 환골탈태하고 생명이 다시 태어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너무나 행복하고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렸다.
첫 번째 소보(小報)
1997년 5월, 제1회 파룬따파 수련심득 교류회가 우리 구에서 성대하게 열렸다. 인근의 한 군수 기업 소속 100여 명의 수련생들도 자발적으로 참가했고, 인민대표대회와 인민정치협상회의 지도자들도 함께했다. 당시 근 1천 명이 법회에 참가해 분위기가 매우 뜨거웠다. 심득 교류 원고는 마을에서 시작해 아래에서 위로 올라오는 방식으로 선발됐으며, 내용이 풍부하고 다채로웠다. 병을 고치고 건강을 되찾은 이야기, 방탕한 생활을 청산한 이야기, 도덕이 향상된 이야기 등 너무도 많은 사연이 있었다. 대법 수련을 통해 몸과 마음에 큰 변화를 경험한 이야기들, 특히 수련인의 심성 향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들을 선별한 결과, 최종적으로 8명의 수련생 발언 원고가 채택됐다.
곡물 창고의 한 과장은 술을 무척이나 좋아해 주변에서 모두 인정하는 술꾼이었다. 술에 만취해 말려도 소용없었고, 오토바이를 타고 집에 돌아오다 코를 다치고 온 얼굴이 멍투성이가 된 채 의식을 잃은 적도 있었다. 그다음 날 깨어나서도 여전히 마셨다. 결국 도저히 살 수가 없게 돼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지만, 그래도 소용없이 계속 마셨다. 눈앞에서 가정이 무너져 내리려는 바로 그때, 그는 법을 얻었다. 즉시 술을 끊었고 온전한 가정을 지켜냈다. 직장과 가족 친척, 그를 아는 모든 사람이 너무도 놀라워했다. “파룬궁이 정말 너무 신기하네! 가족들조차 포기했던 이런 술꾼이 술을 한 방울도 안 마시다니.”
한 여성 수련생은 자궁근종이 있었는데, 종양이 어린아이 주먹만큼 컸다. 의사는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악성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권고했고, 수술비는 2만 위안 정도 든다고 했다. 아들이 그해 막 대학에 합격했는데 학비 마련도 안 됐으니 치료비가 어디 있겠는가. 결국 이 어머니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자신이 병의 고통을 감내할지언정 아들을 대학에 못 보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대법을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느 날 밤 잠자리에서 몸속에서 ‘뚝’ 하는 느낌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일어나 보니 평생 느껴 보지 못한 몸의 가벼움을 느꼈다. 무언가 예감한 딸은 병원으로 달려가 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종양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었다. 의사들도 모두 탄복해 마지않았다.
한 여성 수련생은 대법 수련 후 몸과 마음의 큰 변화를 교류했다. 주로 시댁 식구들과의 갈등이 해소된 이야기였는데, 그야말로 천지개벽과 같은 변화였다. 처음에는 서로 난투극을 벌여 거의 사람이 죽을 뻔했던 고부 관계가 수련 후에는 모녀처럼 친밀하고 화목해졌으니, 온 가족과 이웃 사방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직접 목격한 셈이었다.
파룬따파의 법리는 봄바람에 내리는 비처럼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적셔줬다. 평생 풀지 못할 것 같은 마음의 매듭들을 하나하나 열어 주고, 수없는 은원(恩怨)을 녹여 주었으며, 수없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붕괴 직전의 수많은 가정을 살려냈다. 남자는 올곧아지고, 여자는 부드러워지고, 노인은 자상해지고, 아이는 철들었다. 수련한 지 겨우 1년여가 지났는데 수련의 이야기는 아무리 해도 끝이 없었다.
법회 후 우리 구 보도소에서 첫 소보(小報)를 발행했다. 우리 구에서 대법이 널리 전해진 성황과 수련생들의 심득 교류를 소개한 것으로, 나는 시(市) 보도소에 보내려고 5부를 남겨 뒀다. 바로 그날 밤 나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생생한 꿈을 꿨다.
꿈속에서 사부님을 뵙다
그것이 내가 꿈속에서 사부님을 처음으로 뵌 날이었다. 사부님께서 의자에 앉아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계셨다. 나는 너무 기뻐 얼른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뵙게 되어 정말 기쁩니다. 저와 제 가족 모두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보도원인데, 우리 구 30만 명을 대표해 사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게 해 주십시오. 저는 군인 출신인데 사부님도 군에 계셨다고 들었습니다. 사부님께 거수경례를 드리겠습니다.” 그러고는 몸을 바짝 세우고 단정하고 공손하게 사부님께 거수경례를 드렸다. 당시 그것이 사부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높은 존경과 경의의 표시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 일어서시며 미소를 지으시고 내게 손짓하셨다. 그때 밖에서 누군가 사부님을 찾자 나는 사부님 뒤를 따라가며 말했다. “사부님, 저희가 법회를 열고 소보를 한 부 발행했는데 5부를 남겨 총 보도소에 올리려 합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러면 그들에게 갖다 주세요.” 난 “내일 바로 보내겠습니다”라고 했다.
그 당시 나는 사부님께서 각지에서 여신 설법반에 한 번도 참가하지 못해 무척 아쉬웠는데, 꿈속에서 친근하신 사부님을 뵈니 너무나 행복했다. 우리는 즉시 소보를 시(市) 보도소에 전달했고, 이후 베이징 총 보도소로도 보내졌다. 마침 베이징 총 보도소가 각지에서 대법을 배운 후 수련생의 심성 향상과 관련된 교류 글을 모집하던 중이었는데, 우리 구에서 쓴 ‘고부(姑婦) 간의 얼음장을 대법이 녹이다’라는 글이 선정됐다. 이것이 위에서 언급한 고부 이야기다. 나중에 이 글은 명혜 총서(叢書)에도 수록됐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 몸을 얻기 어렵고, 중원에 태어나기 어려우며, 정법을 만나기 어렵다고 했다. 우리는 만 년에 한 번 만나기 어려운 대법의 전파를 정말로 만났으니, 이보다 큰 행복이 없다! 사부님께서 우리 도시에 직접 오셔서 설법반을 여신 적은 없었지만, 사부님께서는 어느 한 곳의 중생도, 어느 한 명의 인연 있는 세상 사람도, 어느 한 명의 제자도 놓치지 않으셨다. 불법(佛法)은 무한하여 못 하는 것이 없다. 책 한 권에서 시작해 전 구의 수십만 명이 모두 파룬따파가 세상에 널리 전해졌음을 알게 되기까지, 중생이 길도 없고 희망도 없고 기댈 곳도 없는 상황에 빠졌을 때, 우연과 우연, 인물과 사건, 기회와 인연이 겹겹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언제나 수백 번의 우여곡절 끝에 이뤄지는 자연스러운 결실이었다. 그 모든 것은 사실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수만 년 동안 힘들게 마련해 두신 안배가 실현되는 것이었고, 신의 기적은 바로 이처럼 조용히 일어나고 있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 곁에 계시며 시시각각 제자들을 보호하시고, 한 걸음 한 걸음 제자들을 반본귀진의 통천대도(通天大道)로 이끄신다. 또한 세간 중생에게도 대법의 위덕과 복을 내려 주시니, 비록 아직 수련을 시작할 인연이 닿지 않은 중생이라 할지라도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시대에 태어나 대법의 복음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
기억에 남는 것은, 어느 해 다른 도시에 갔을 때 그곳 수련생에게 들은 이야기다. 그 수련생의 이웃에 80여 세의 노파가 있었는데, 대법을 수련하지 않았지만 수련생 집에서 매일 흘러나오는 ‘보도’와 ‘제세’ 음악을 즐겨 들었다고 한다. 문간에 기대어 흠뻑 빠져 듣는 일이 많았다. 한번은 노인이 위독해 병원에서 응급 치료를 받았는데 기적적으로 살아 돌아왔다. 노인은 돌아온 후 수련생에게 이렇게 말했다. 자신이 염라대왕 앞에 갔는데, 염라대왕이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신선의 음악’을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 노인은 이후 10여 년을 더 살다가 90여 세에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얼마나 많은 중생이 법을 들은 이들 중에 속하며 또 대법의 은혜로 내려지는 복을 받게 될 것인가! 진심으로 더 많은 세상 사람이 대법의 진상을 듣고 하늘의 뜻을 깨달아 모두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기를 바란다.
1999년 ‘7·20’ 이후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각기 다른 정도의 박해를 받았다. 내 주변의 친한 수련생 중에도 두 명의 젊은 수련생이 박해로 목숨을 잃었다. 한 명은 보도소 책임자로 남자 교사였고, 다른 한 명은 여자 교사였다. 둘 다 40~50세의 한창 나이였으니 정말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사악한 박해가 어찌 정법(正法)을 막을 수 있겠는가! 어찌 대법제자를 진정으로 무너뜨릴 수 있겠는가! 물론 중생도 무너뜨릴 수 없다. 30년이 지난 지금, 내가 아는 수련생들은 거의 모두 여전히 수련 속에서 힘차게 정진하고 있다. 나이도 다르고 계층도 다르며 직업도 다른 그들이 각자 다양한 방식으로 쉬지 않고 진상을 알리고 세인을 구하며 대법을 실증하면서, 저마다 사전(史前)에 세운 서약을 이행하고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이 지역의 중생을 제자들에게 맡기셨다. 우리는 이 지역 중생이 구원받을 희망이다. 새 우주와 낡은 우주가 교체되는 이 순간에, 사부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그 빛나는 세월을 걸어오셨다. 진선인의 광휘가 이미 중원 대지를 밝게 비추고 있으니, 우리는 위대한 사부님을 따라 역사의 미래를 계속 창조하고 중생을 진정한 집으로 데려가야 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이 지역에서 구원받은 중생을 대표해 사부님께 절을 올려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25/51042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25/510426.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