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어머니를 따라 수련을 시작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다른 성에 있는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시더니 둘째 이모에게서 천서인 ‘전법륜(轉法輪)’ 한 권을 모셔 왔다고 하셨다. 어머니는 우리에게 이 공법이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하게 하는 효과가 특별히 좋을 뿐만 아니라 진정으로 수련해 원만할 수 있는 공법이라고 알려주셨다. 당시 책을 펼쳐 처음 사부님 사진을 보았을 때 그저 책 속의 인물이 너무나 낯익어 어디선가 본 것만 같았다. 어머니는 그날부터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하셨다. 나는 노는 것을 탐해 그저 어머니가 배우는 것을 지켜볼 뿐 스스로는 끝내 책을 들고 읽지 않았다.
어느 날 수업 시간에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아파서 나는 마음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내보냈다. ‘리 선생님, 만약 파룬궁이 정말로 병을 제거하고 몸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면 지금 내 머리가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럼 저는 앞으로 수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대법 수련에 들어선 이후 이것이 추구하는 마음이자 근본적인 집착임을 알게 됐다.) 그러자 이마가 갑자기 매우 뜨거워졌고 머리에서 열기가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리가 조금도 아프지 않게 됐다. 당시 나는 너무나 신기하게 느껴져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일을 말씀드렸다. 어머니는 내가 대법과 인연 있는 사람이니 대법을 소중히 여겨 잘 수련해야 한다고 하셨다. 나도 매우 기뻐하며 이때부터 대법 수련에 들어섰다.
매일 방과 후 숙제를 마치면 혼자 방에서 책을 읽고 연공했다. 수련을 막 시작했을 때 사부님께서 내 천목(天目)을 열어주셨는데 눈을 감기만 하면 온통 옅은 흰색의 파룬이었다. 매일 낮잠에서 깰 때면 항상 금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커다란 연꽃 한 송이를 볼 수 있었다. 수련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느 날 밤 비몽사몽간에 내가 침대에서 둥둥 떠오른 느낌이 들었고 그 후 다시 천천히 침대로 내려앉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내게 대주천을 통하게 해주셨기에 떠오를 수 있었음을 알았다.
2003년 나는 성도(省會) 도시로 진학하면서 수련 환경이 없어졌고 서서히 대법에서 벗어나게 됐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줄곧 대법을 담고 있었으며 사람의 도리와 일을 처리함에 있어 ‘진선인(眞·善·忍)’에 따라야 비로소 바른길임을 알았다. 비록 계속 수련하지는 않았으나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곁에 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수련한 때부터 지금까지 20여 년간 나는 약 한 알 먹어본 적이 없다. 대법에서 벗어나 있던 10여 년간 몸이 불편할 때면 나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고 곧 아무 일도 없게 됐다.
내 천목으로도 줄곧 파룬을 볼 수 있었다. 나는 사부님께서 자비로우시어 길을 잃은 나라는 어린 제자를 남겨두려 하지 않으심을 알았다. 하지만 나는 끝내 다시 대법으로 돌아올 결심을 하지 못했다. 매번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어머니가 내게 법공부를 촉구하셨으나 나는 책을 보려 하지 않았다. 이렇게 속인 속에서 아무렇게나 10여 년을 보냈다. 이 기간에 나는 자주 교실을 찾아 시험을 치는 꿈이나 매우 높은 곳에서 아래로 뛰어내리는 꿈을 꾸었는데, 그로 인해 현실에서 길을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내리막을 갈 때도 마음속으로 일종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곤 했다.
2009년 무렵 어머니는 한 차례 생사 고비를 겪으셨다. 당시 나는 외지에서 출근하고 있었는데 여동생이 내게 전화를 걸어 어머니가 지금 병이 매우 위중해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말했다. 나는 듣고 나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나는 어머니가 대법을 수련하신 이후 줄곧 건강하셨기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동생의 말투에서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급히 상사에게 휴가를 내고 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당시 어머니는 이미 아버지와 여동생에 의해 시 병원으로 이송된 상태였다. 병원에서 나는 어머니를 뵈었는데 온몸이 아파 움직이지 못하셨고 조금만 움직여도 전신 피부 구석구석이 모두 아프다고 하셨다. 어머니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 나는 이미 대법에서 벗어난 지 6년이 지나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어머니를 도와드려야 할지 알지 못했다. 내가 어머니에게 다가가 부축해 몸을 뒤집어 드리거나 화장실에 가실 때만 어머니는 그렇게 아파하지 않으셨고 비로소 조금 편안한 느낌을 받으셨다. 다른 사람이 다가가기만 하면 어머니는 괴로워하며 건드리지 못하게 하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줄곧 아직 곁에서 나, 그 시절의 어린 대법제자를 돌봐주고 계심을 알았다.
병원에서는 어머니에게 각종 기기로 검사를 진행했지만 아무런 병도 검사해 내지 못했다. 결국 병원 측은 가족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통지하며 자신들도 어찌할 방법이 없고 병의 원인과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당시 아버지와 세 자매는 병원의 통지를 받고 모두 어찌할 바를 몰라 울었다. 나도 매우 절망적이었고 어떻게 어머니를 도와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오직 사부님만이 어머니를 구하실 수 있다는 일념이 있었다. 나는 같은 마을의 할머니 수련생에게 전화를 걸어 펑펑 울며 할머니에게 말했다. “병원에서 엄마를 집으로 모시고 가래요, 치료할 방법이 없대요. 저는 오직 대법만이 엄마를 구할 수 있다고 믿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할머니는 내일 병원으로 오겠다고 말씀하셨다.
다음 날 할머니는 다른 수련생 한 명과 사부님의 경문을 가지고 오셨다. 그들은 어머니에게 병업 고비에 관한 법을 읽어드리고 어머니와 교류하며 시련 속에서 어떻게 정념을 가지고 자신의 집착을 찾아내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는지 말씀해 주셨다. 이렇게 어머니는 정념이 생겼고 이곳이 자신이 머물 곳이 아님을 아셨다. 자신에게는 아직 실현하지 못한 많은 사명이 있어 반드시 최대한 빨리 이곳을 떠나 사람을 구하는 정법 과정으로 복귀해야 한다고 생각하셨다. 그다음 날 어머니는 스스로 걸어서 병원을 나서셨다.
집에 돌아오신 후에도 어머니의 병업 가상은 여전히 매우 심각했다. 할머니 수련생은 24시간 어머니 곁을 지키며 함께 법공부하고 연공하셨다. 밤에도 여러 수련생이 어머니 곁에 모여 책을 읽고 발정념을 했다. 당시 어머니를 위해 발정념을 하고 책을 읽어준 수련생 모두가 저마다 다른 교란을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이는 우리집으로 오는 길에 넘어졌고, 어떤 이는 잠에 빠져 아무리 깨워도 일어나지 못했으며, 어떤 이는 발정념을 마치자마자 토하고 설사했다. 나는 얼굴 전체가 새까맣게 변했는데 회사에 돌아간 이후 동료들은 내게 고향에 가서 한 달 동안 석탄을 캐고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어머니의 상태는 점점 좋아져 한 달 뒤 스스로 2km를 걸어가 진상 자료를 배포하실 수 있었다. 당시 친척과 친구들은 모두 어머니가 병원에서 돌아오셨으니 분명 오래 살지 못하실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어머니 혼자 그렇게 먼 길을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모두 진심으로 대법의 신기함에 감탄했다. 나 역시 대법에서 벗어난 지 6년 만에 대법의 기적을 목격했다. 안타깝게도 당시 나는 속인 속의 명(名), 이(利), 정(情)에 미혹돼 여전히 다시 대법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이후 나는 남편(일반인)을 알게 됐고 이어서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 아이는 한 살 때부터 자주 병을 앓았고 감기와 기침으로 보름에 한 번꼴로 어린이병원에 달려가야 했다. 수많은 아이들의 감기와 기침이 명성 있는 의원에서 모두 치료되었지만 내 아이는 여태껏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그래서 매번 현지 어린이병원이나 의대 제2병원에 갈 수밖에 없었는데 이런 대형 병원들은 약을 많이 처방해 효과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의 체질은 갈수록 나빠졌고 병에 걸리는 횟수도 점점 늘어났다. 나의 심신도 자주 절망적이고 무기력한 처지에 놓이게 됐고 당시 마음속으로 자주 이런 말을 떠올렸다. ‘하늘을 부르짖어도 대답이 없고 땅을 부르짖어도 영험하지 않구나.’
어쩌면 인연이 닿은 것인지 2019년 아이가 5살일 때 이웃이 시장에서 어떤 언니가 자주 자신에게 파룬궁 진상을 알려준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나는 당시 듣고 마음이 매우 설레어 곧바로 이 수련생을 찾아갔다. 수련생은 내 상황을 듣고서 내게 법공부 팀을 하나 찾아주었고 동시에 명혜망 교류 문장을 들을 수 있는 라디오를 주었다. 집에 돌아와 나는 참지 못하고 곧장 라디오를 켜 수련생들의 수련 심득과 신기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자신이 10여 년의 수련을 놓쳤음을 알고서 반드시 잘 수련해 다시는 조금의 수련 시간도 낭비해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각지 설법 40여 권을 모두 갖춘 나는 두 달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사부님의 모든 설법을 다 한 번 읽었다. 당시 나는 매일 적어도 각지 설법 한 권을 읽었다. 이 과정에서 대법이 우주 대법이고 사부님께서는 정법해 세상 사람을 구하러 오신 것이며 자신도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기 위해 층층이 내려왔음을 알게 됐고 더는 초등학교 때 책을 읽으며 그저 대법이 좋다는 것만 알던 수준이 아니었다.
그 기간 나는 매일 밤 5살 아들을 데리고 눈보라를 무릅쓰고 법공부 팀에 갔다. 수련생들이 책을 읽으면 아이는 혼자 옆에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을 뿐 한 번도 떠들거나 보채지 않았다. 겨울에 날씨가 추우면 나는 아이에게 아주 두꺼운 옷을 입혀 스쿠터 안에 앉히고 내내 ‘논어(論語)’를 외우며 갔는데 아이도 스쿠터 위에서 자주 듣다 보니 서서히 외우게 됐다. 한번은 밤에 법공부를 마치고 집에 돌아올 때 밖에 폭설이 내리고 찬 바람이 쌩쌩 불었다. 나는 아이에게 춥지 않냐고 물었고 아이는 춥지 않다며 사부님 법신이 앞에서 우리를 막아주고 계신다고 대답했다. 아이의 이 말을 듣자 내 눈시울이 붉어졌고 사부님께서 줄곧 곁에 계심을 알았다.
수련 후 아이도 나를 따라 매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정공을 연마했다. 당시 아이는 고작 5살이라 글자를 몰랐기에 나는 손가락으로 한 글자 한 글자 짚어가며 읽었고 아이는 나를 따라 한 번 더 읽었다. 이렇게 두 번째 읽을 때쯤에는 ‘전법륜’ 속 글자를 아이가 기본적으로 모두 알게 됐다. 어쩌다 모르는 글자가 있어 내가 알려주면 아이는 역시 매우 빠르게 기억했다. 세 번째에 이르자 아이 스스로 책 전체를 읽어낼 수 있었다. 당시 아이는 그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이 이렇게 어린 아이가 이토록 많은 글자를 아는 것을 기적이라고 여겼다.
수련 후 아이의 건강도 갈수록 좋아졌는데 비록 때때로 병업 가상이 나타나긴 했지만 나는 사부님께서 아이의 업을 제거해주시는 것임을 알았다. 아이가 1살부터 5살까지 이 4년 동안 먹었던 약과 몸속에 억눌려 있던 업력을 모두 배출해 주시는 것이었다. 수련한 때부터 지금까지 아이는 만 11살이 됐고 크고 작은 수많은 병업 고비를 넘기면서도 다시는 병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으며 약 한 알 먹은 적이 없다. 현재 아이는 매일 꾸준히 법공부와 연공을 하며 ‘홍음(洪吟)’을 외우고 있다.
오래 수련한 수련생들이 매일 밖으로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자신이 이렇게 늦게 돌아왔으니 더욱 사람을 많이 구해야 함을 알았다. 당시 전염병 사태가 막 시작되어 유치원이 휴원하자 나는 매일 오전 아이를 데리고 근처 공원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자료를 배포하며 스티커를 붙였다. 이따금 듣지 않거나 욕하는 사람을 마주쳐도 나는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들이 거짓말에 세뇌되었기에 진상을 듣기 꺼리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부분 사람은 여전히 진상을 듣기 원했고 기꺼이 당, 단, 대에서 탈퇴하려 했으며 어떤 이는 탈퇴하지 않더라도 소책자를 받아 들고 일단 읽어보려 했다.
당시 수련생들의 교류 문장에서 위챗을 삭제했다는 내용을 자주 들었는데 나는 명혜망에서 위챗을 사용해선 안 된다는 통지가 내려온 이상 내가 계속 쓴다면 그것은 분명 옳지 않다고 생각해 곧장 위챗을 삭제했다. 삭제한 후 나는 수련인이 위챗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단지 안전 문제일 뿐만 아니라 많은 집착심도 위챗을 삭제함에 따라 함께 제거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록 당시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 있었으나 아무런 영향도 받지 않았다. 선생님의 통지가 있으면 남편이 내게 전화를 걸어 알려주었다. 친척과 친구들도 나를 찾을 때면 모두 전화로 연락했다.
나는 매일 오전에 아이를 등교시키고 돌아와 30분간 연공했다. 오래 수련한 수련생들은 내게 대법제자가 매일 아침 연공을 하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것이라며 동시에 나를 위해 제2장 공법의 30분을 1시간으로 바꿔주었다. 그런 다음 나는 새벽 3시 10분으로 알람을 맞추고 5장 공법을 한 번에 모두 연마하며 줄곧 아침 연공을 견지했다.
다시 수련으로 돌아올 수 있어 나는 너무나 운이 좋으며 그 시절 어린 대법제자가 현재 다시 어린 대법제자를 데리고 대법 속에서 수련하고 있다. 사부님의 한량없는 자비에 감사드리며 우리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해내고 자신을 잘 수련해 사람을 많이 구함으로써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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