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속에서 성장하며 대법의 신기함을 체험하다

글/ 헤이룽장성 청년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부모님이 모두 수련하시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따라 수련했습니다. 우리집은 법공부 팀이기도 해서 수련 환경이 매우 좋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수련 길이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고, 많은 고난도 가득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의 보호 아래 오늘까지 걸어올 수 있었고, 대법의 신기함도 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1. 법을 얻다

저는 태어날 때 미숙아였습니다. 의사는 당시 저에게 산소와 혈액이 부족한 상태였다고 했고, 태어난 다음 날 바로 뇌 CT를 찍었습니다. 그 결과 뇌 세 곳에 출혈점이 있다는 진단이 나왔고, 의사는 제가 뇌성마비가 될까 우려해 퇴원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입원 기간에 부모님께서는 저에게 ‘보도(普度)’와 ‘제세(濟世)’를 들려주셨습니다. 보름 후 의사가 다시 검사하고는 이상이 없다며 퇴원을 허락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이미 사부님께서 저를 돌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어릴 때 아버지가 쉬는 날이면 자주 저를 데리고 나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셨으며, 구치소나 감옥 같은 곳에 가서 가까운 거리에서 발정념도 하셨습니다. 저는 아무리 멀리 걸어도 전혀 피곤한 줄 몰랐습니다. 또 저는 사부님의 설법을 듣는 것을 매우 좋아해 혼자 사부님 설법 영상을 자주 틀어놓고 보곤 했습니다. 그렇게 어느새 대법은 제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렸습니다.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저는 매일 부모님과 함께 법공부를 하고 연공했습니다. 몸은 점점 더 건강해졌고 날마다 즐겁게 지냈으며, 어린 시절의 고비와 걱정도 점차 잊게 됐습니다.

그러나 중학교에 들어간 후 학업 부담이 무거워지면서 법공부 시간이 줄어들었고, 점차 몸에 바르지 못한 상태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때로는 잠을 자다 경련 증상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고3이 되자 학업 부담은 더욱 가중됐고, 경련 발작도 점점 잦아졌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걱정하셨지만 저는 늘 부모님을 안심시켰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시는 것이고 업을 없애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대학입시가 끝난 후 부모님은 저를 현지 큰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받게 했고, 간질 진단을 받았습니다. CT 검사에서는 뇌에 물이 차 있다며 성(省) 소재지의 큰 병원에서 개두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 소재지 큰 병원에서 다시 검사를 받은 후 의사는 제 상황을 파악하고, 제가 정상적으로 대학입시까지 치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는 뇌에 찬 물도 이미 적응된 상태이므로 수술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부모님은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저도 일부 간질 환자들이 휠체어에 의지하며 생활조차 스스로 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았지만, 저는 몸의 협응력이 조금 부족한 것 외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었고 여전히 활기차게 뛰어다녔습니다.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덕분임을 알았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법공부에 더욱 정진했고, 시간이 날 때마다 법을 외우고 필사하며 매일 법광 속에 잠겨 지냈습니다.

2. 학교에서 법을 실증하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친한 친구들에게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또 학교 조회 때 국기 게양식이 있으면 저는 조용히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중학교 때 한번은 정치 수업 시간에 교사가 ‘천안문 분신자살’ 거짓 사건을 언급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나는 대법의 어린 제자인데 진상을 알고 있다. 선생님과 친구들은 진상을 모르니, 선생님이 대법을 모함하고 친구들을 해치도록 두어서는 안 된다.’ 저는 조금 긴장됐지만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 선생님께 말씀드렸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는 오래된 수련 방법이며, 천안문 분신자살은 거짓입니다.” 친구들은 모두 신기한 듯 저를 쳐다봤고, 선생님은 앉으라고 한 다음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른 내용으로 넘어갔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시며 항상 우리를 돌봐주신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3. 심성을 수련하다

어릴 때 저는 성격이 매우 좋았습니다. 누구를 만나도 잘 웃었고, 아저씨 아주머니들도 모두 저와 이야기하기를 좋아하셨습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기회를 빌려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셨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몸에 바르지 못한 상태가 나타나면서 제 성격은 점점 나빠졌습니다. 제 몸 상태 때문에 부모님도 저를 나무라지 않으셨고, 혹시 자극이 될까 봐 걱정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남의 말을 듣지 못하게 됐고, 누가 조금만 말해도 금세 폭발하면서도 스스로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아버지와 격렬하게 오랫동안 다퉜습니다. 일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이게 어디 수련인의 모습인가.’ 그 문제를 의식한 후 저는 매우 의식적으로 감정을 조절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점심을 미리 준비해 부모님이 퇴근하면 바로 드실 수 있게 해드렸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아버지는 퇴근 후 제가 준비한 음식이 원래 점심에 하려던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짜고짜 저를 심하게 꾸짖으셨습니다. 저는 순간 어리둥절했습니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칭찬은 못 받을망정 오히려 꾸중을 듣다니.’ 저는 억울해 변명하고 싶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 제가 화를 낼까 봐 얼른 심성을 지켜야 한다고 일깨워주시며 저를 대신해 좋은 말도 해주셨습니다. 저도 곧 정신이 들었고, 이것이 바로 제 심성을 제고하게 하려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도 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한 차례 풍파는 지나갔습니다.

이후 저는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본래 좋은 일을 했는데 왜 아버지는 기뻐하지 않으셨을까? 이것은 내 어떤 마음을 버리게 하려는 것일까?’ 안으로 찾아보니 저는 여전히 좋은 말을 듣고 싶어하는 마음, 남의 지적을 듣기 싫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끊임없이 이 마음을 닦아냈습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하든 하지 않든 저는 제가 해야 할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점차 집안의 다툼은 줄어들었고, 가정은 더욱 평온해졌습니다.

4. 예전 수련생을 다시 찾다

사부님의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고, 우리 전체 대법제자는 반드시 하나의 정체를 이뤄 서로 일깨우고 서로 도와야 합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 때문에 집에 머물며 거의 수련하지 못하는 옛 수련생들을 찾아가 도와주고, 그들에게 좋은 수련 환경을 마련해주어 정체를 형성해 함께 제고해야겠다고 깨달았습니다.

할머니께서는 1996년에 법을 얻으셨고, 그 당시에는 비교적 정진하셨습니다. 그러나 박해가 시작된 후 두려운 마음 때문에 수련을 포기하셨습니다. 이후 할머니 몸에는 두 차례 뇌졸중 증상이 나타났지만 모두 심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몸이 조금 불편하고 말이 예전만큼 또렷하지 않을 뿐 생활은 완전히 자립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여전히 할머니를 돌보고 계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법공부를 권했지만 할머니는 그다지 듣지 않으셨고, 그때는 저도 거의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법을 외우기 시작한 후 제 마음은 점차 평온해졌고, 정(情) 또한 수련해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수련 속에는 어떤 사심과 사념도 섞여서는 안 되며 반드시 법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곧 구세력의 배치를 따르는 길이 됩니다. 제가 왜 자신감이 없었을까요? 그것은 제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기며 지나치게 자아를 강조했고, 완전히 법을 스승으로 삼아 법에서 법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끊임없이 법을 외우면서 저는 착실하게 수련할 시간이 정말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고, 서둘러 옛 수련생들을 다시 찾아 함께 법공부하며 좋은 단체 법공부 환경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능한 한 매주 할머니 댁에 가서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진정으로 함께 법공부를 해보니 이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처음 법을 읽을 때 할머니는 글씨가 잘 보이지 않아 돋보기안경을 쓰고도 다시 확대경을 들어야 겨우 볼 수 있었습니다. 법 읽기는 매우 힘들었고, 어떤 때는 글자를 더 읽고, 어떤 때는 빠뜨리고, 또 어떤 때는 줄을 건너뛰기도 했습니다. 한 시간에 겨우 4~5쪽밖에 읽지 못했습니다. 저는 한때 ‘이건 너무 내 법공부 시간을 지체시키는 것 아닌가’ 하며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것 역시 사심이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닦아버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급해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할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했습니다.

할머니는 관절염이 있어 집안일도 매우 힘들고 느리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할머니 댁에 갈 때마다 먼저 가능한 한 집안일을 도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시간을 절약해 더 많이 법공부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점차 할머니는 한 단락의 법을 비교적 유창하게 읽으실 수 있게 됐고, 저는 할머니의 예전 법공부 기억이 점차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저는 또 할머니께 연공도 권했습니다. 할머니는 관절염 때문에 지팡이에 의지해 걸으셔야 해서 동공(動功)은 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먼저 의자에 앉아서라도 연마하시도록 권했고, 제가 동작을 바로잡아드리며 가능한 한 연공 음악의 속도를 따라가시게 했습니다. 두 번째 연공 때 할머니는 스스로 서서 연마하기 시작했고, 3분을 버티셨습니다. 세 번째 연공 때는 놀랍게도 9분 넘게 서서 제1장 공법을 완전히 마치셨습니다. 또다시 대법의 신기함을 목격한 것입니다.

끊임없이 수련하면서 할머니의 변화는 점점 더 커졌고, 저 역시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 마음을 닦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번 생에 대법이 널리 전해지는 시대에 태어나고 또 다행히 대법을 수련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입니까.

우리 함께 정진하며 사부님을 따라 함께 집으로 돌아갑시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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