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속에서 바로잡아 원망심을 해체하다

글/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의 원망심은 꽤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어릴 때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설날에 다른 아이들이 새 옷을 입는 것을 보고 질투했습니다. 또 어릴 때부터 말을 더듬어서 밖에 나가면 아이들이 뒤에서 “말더듬이 나왔다!”고 소리쳤습니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지만 감히 대꾸할 엄두도 못 냈습니다. 심지어 아이들 부모들은 저를 닮을까 봐 자기 아이들에게 저와 놀지 말라고 했습니다.

저는 자존감이 낮은 데다 원망도 많았고 화도 많아 사람을 보면 말을 못 하는 소심하고 예민한 성격이 형성됐습니다. 두 사람이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면 ‘혹시 내 이야기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의심했습니다. 누가 “예쁘다”고 해도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내가 얼마나 못생겼으면 이런 말로 비꼬는 걸까?’라고요. 머릿속은 온통 부정적인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중공 악당의 책을 즐겨 읽어 어릴 때부터 악당의 삐뚤어진 이론이 주입됐으니, 쟁투, 강경함, 의심이 가득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고, 완벽함을 추구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말도 못하면서 혼자 있을 때는 온갖 생각을 했습니다. 매일 마음이 팽팽하게 긴장되어 삶이 무척 힘들었습니다.

그때는 이런 것들의 근본을 알지 못했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답답하고 우울해 혼자 속을 끓였습니다. 자연히 몸에 여러 가지 병이 생겨 체질이 약해지면서 말할 기력조차 없어졌습니다. 긴 문장을 한 번에 말하려면 두 번은 멈춰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숨이 막혔습니다. 추위도 많이 타서 한여름 삼복더위에도 긴 치마에 내복을 입었는데, 바람이 부는 곳에 서 있으면 배가 아파 화장실로 달려갔습니다. 매달 생리 때는 배가 너무 아파 침대에서 뒹굴었고, 온몸이 싸늘해지면서 식은땀을 흘려 옷과 머리카락이 흠뻑 젖었습니다. 거의 1시간 가까이 고통을 겪어야 겨우 몸이 따뜻해졌습니다. 여름에는 아이스크림도 먹지 못했고 겨울에는 사과도 못 먹었습니다. 한 달 내내 한약을 달여 마셔도 월말이면 어김없이 다시 고통이 찾아왔습니다. 몸무게는 40여 kg에 허리는 23인치도 안 돼 아동복을 사 입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사람이 사는 게 왜 이렇게 힘든가!’라고 생각했습니다.

1997년에 대법을 만나는 행운을 얻었습니다. 입문 후 두 번째 공법 포륜(抱輪)을 할 때 배가 차가워지는 것을 느꼈는데,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업을 없애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이후 다시 포륜을 할 때는 두 손바닥에서 따뜻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의 몸을 조절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 감사함은 말로는 표현할 길이 없었고 기쁨이 마음속에 차올랐습니다. 몸은 점점 편안해졌고 성격도 달라졌습니다. 남편은 “한 번도 웃지 않던 당신이 이제 웃네”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우울했던 제가 이제는 밝고 명랑해졌으며 말도 많아지고 웃음도 많아져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습니다. 동창 모임에서 한 친구가 “우리 반에서 가장 조용했던 사람이 지금은 가장 밝고 말이 많은 사람이 됐구나”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처럼 좋은 기회가 생겼으니 당연히 그들에게 진상을 알려야 했습니다. 저는 전통문화부터 시작해서 오늘날의 타락한 사회현상을 결합해 대법 진상을 전했고 일부 동창들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했습니다.

건강해졌을 뿐 아니라 왜 살아야 하는지도 알게 됐습니다. 아이와 남편을 이해하고 배려할 줄 알게 됐는데, 특히 남편 쪽 가족에게 더 그랬습니다. 남편은 농촌 출신으로 공부를 마치고 도시에 취직했는데, 시부모님은 여든 가까운 나이까지 외진 농촌에서 여덟 자녀를 키우며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수련 후 남편 직장이 멀어 통근이 불편해졌고 직장 근처에 25만 위안짜리 새 아파트를 샀습니다. 남편 출근도 아이 통학도 한결 편해졌습니다. 그러자 전에 살던 집이 비게 됐습니다. 저는 먼저 남편에게 시부모님을 모셔오자고 권했습니다. 남편은 한참을 고민했습니다. 시부모님은 시동생 식구 셋과 함께 살고 있었으니 오면 다섯 식구가 오게 됩니다. 시동생 아이는 초등학교를 마치고 막 중학교에 올라갈 참이었습니다. 당시 우리 월급은 많지 않았고 새 집을 사면서 친정 큰언니에게 5만 위안을 빌린 터라 부담도 작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오래 고민한 끝에 시댁 식구 전부를 모셔오는 데 동의했습니다. 수련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들이 오고 싶다고 해도 저는 절대 허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비어 있던 전 집은 시세가 15만 위안 정도였으니 팔면 빚도 갚고 손에 현금도 남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대법제자였고 사부님은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시부모님이 힘들게 사시는 것을 보았고, 시동생 아이는 영리한데 외진 농촌에서 학교를 다니면 아이의 미래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이 오고 나니 시동생 부부의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문제가 생겼습니다. 둘 다 학력도 기술도 없었습니다. 시동생은 막내로 태어나 귀하게 자랐는지라, 농촌 출신이면서도 고생도 모르고 고됨도 겪지 않은 데다 까다롭기까지 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남편이 많이 고생했습니다. 어렵게 사람을 통해 탐사대에 자리를 알아봐 줬더니, 시동생은 자기 아내를 시켜 제 남편에게 전화를 걸게 하여 “이 조는 밥이 별로니 다른 조로 바꿔달라”고 했습니다. 남편은 전화를 끊고 나서 수심이 가득한 얼굴이었습니다. 남편은 거절을 못 하는 성격이라 힘든 것을 혼자 다 떠안았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난처해하는 것을 보니 후회가 밀려왔고 불평이 터져 나왔습니다. 남편에게 잔소리하며 탓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신 식구들은 왜 이렇게 번거롭나요? 시동생이 당신을 노동부 국장이라도 되는 줄 아나요? 마음대로 어디든 넣어줄 수 있는 줄 아나요? 우리가 평범한 서민인데 사람 통해 일자리 하나 구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그나마 자리가 생겼으면 다행이지, 신세를 지면서도 고마운 줄 모르고 이것저것 요구하다니, 집도 공짜로 살면서 말이에요. 진작에 이럴 줄 알았으면 이 고생을 안 했을 텐데.” 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원망심이 치솟았습니다. 그때 저는 완전히 속인과 다름없이 법에서 배운 것을 모두 잊어버렸습니다. 사부님 말씀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정말 힘들었고, 시동생을 업신여기는 마음에 온갖 집착심이 올라와 며칠 동안 마음을 추스르지 못했습니다.

조금 진정된 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수련인인데 일이 생기면 안으로 찾아야 하는데, 왜 이리 원망하는 마음이 많은가? 내 어떤 마음이 건드려진 것인가? 남편도 수련생인데 같은 일을 겪고도 법으로 자신을 헤아릴 수 있는데, 나는 왜 못해내는 것인가?’ 사부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실제로 수련하지 않았으며, 남을 배려하지 않았고 참지도 못했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깨닫고 나서 즉시 법 속에서 자신을 바로잡았습니다.

우선 생활면에서 그들을 보살폈습니다. 관리비와 난방비, 시부모님 생활비와 용돈을 전부 저희가 부담해 시동생의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었습니다. 더는 불평하지 않고 진심으로 시부모님을 대했습니다. 한번은 변변한 스웨터도 없는 제가 먼저 시어머니 옷을 사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무척 기뻐하며 “네 시누이들은 10위안, 20위안짜리 옷을 사줬는데, 이렇게 좋은 옷은 처음 입어봤구나. 도시에 이렇게 좋은 며느리가 있다니!”라고 하시며 감격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저는 “어머님, 드리는 건 당연하지요. 평생 고생만 하셨으니 이제 편히 사셔야죠”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시골 고향에 가실 때마다 제가 사드린 옷과 신발을 모두 챙겨 가셔서 방 아랫목에 한 벌씩 펼쳐놓고 누가 오기만 하면 자랑하셨습니다. “봐요, 다 둘째 며느리가 사준 거예요. 당신들한테는 이런 거 없죠?” 온 식구가 돌아와서 그 이야기를 전해주면 저도 절로 웃음이 났습니다. 팔십이 넘은 시어머니가 정말 동심 그대로이셨습니다. 저는 시부모님에게 매일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라고 알려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하루에 몇 번이나 외워야 하니?”라고 물으셔서 “많이 외울수록 좋아요”라고 말씀드렸더니 무척 좋아하셨습니다.

시댁은 식구가 많았습니다. 그들이 온 지 얼마 안 돼 시댁에 큰 냉장고를 사드렸는데, 우리집에는 작은 냉장고가 있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시댁엔 큰 냉장고를 사주면서 왜 당신은 작은 냉장고를 써요?” 저는 “시댁은 식구가 많으니까요”라고 답했습니다. 냉장고가 배달되던 날, 저는 동서(시동생의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새 냉장고를 샀다고 알려주며, 배달 기사에게 동서의 휴대전화 번호를 남겼으니 배달 전화가 오는지 잘 듣고 있다가 집에 가서 문을 열어주라고 당부했습니다. 동서의 직장 동료가 그 통화 내용을 듣고는 “어머, 넌 어쩜 이렇게 인복이 많니? 이렇게 좋은 형님을 다 두고”라고 말했습니다. 동서는 활짝 웃으며 나중에 저에게 이 일을 들려주었습니다.

저는 그때 동서에게 말했습니다. “내가 파룬궁을 수련해서 그래요. 대법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진(眞)·선(善)·인(忍)을 수련하고, 항상 남을 먼저 생각하며, 모든 중생을 선하게 대하라고 가르쳐 주셨거든요. 파룬궁을 수련하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 못 했을 거예요. 동서네 식구가 이렇게 많은데, 내가 파룬따파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이 많은 식구를 다 받아들이지 못했을 거예요.”

또 한번은 시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 세 아들 결혼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시어머니가 “큰아들 결혼 때는 (아주버님은 제 남편보다 12살 많습니다) 우리가 며느리 쪽에 400위안을 주고 모직 옷감 두 필도 줬는데, 당시 마을에서 제일 많이 준 거였어. 셋째 며느리 결혼 때는 6천 위안을 줬는데, 네가 결혼할 때는 한 푼도 안 들었지”라고 했습니다. 그때 이야기를 들으며 아무 생각이 없었고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온 뒤 그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고 원망하는 마음이 올라왔습니다. ‘이익을 챙기고도 생색을 내는 격이잖아. 이 집안은 왜 이래?’ 남편에게도 “세 며느리 중 나만 만만했나 보네요! 어머니가 내 앞에서 당당히 그런 말씀을 하시다니, 우리 결혼 때 한 푼도 안 들었다고 웃음거리로 삼다니요”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떠올릴 때마다 화가 치밀어 도저히 자제가 안 됐고, 남편에게 계속 불평을 늘어놓았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웃으며 저를 바라봤습니다. 남편이 “몇 년이나 지난 일을 왜 자꾸 꺼내요?”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왜 이러는 걸까요? 왜 또 이렇게 연극에 집착한 걸까요? 저는 수련인인데! 왜 이 심성 고비를 자꾸 못 넘는 걸까요?

안으로 찾기 시작했는데, 찾다가 저 스스로도 깜짝 놀랐습니다. 저는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있었는데, 왜 불공평하다고 느낀 것일까요? 혼인신고 전에 남편은 시어머니가 1만 위안을 주실 거라고 했는데, 결혼하고 나서 주지 않겠다고 해서 결혼 비용을 모두 빌려 썼습니다. 시어머니를 원망했던 적이 있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잊혀졌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가 다시 그 이야기를 꺼내신 것입니다. 수련인이 마주치는 일은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이 일이 건드린 마음은 무엇인가요? 첫째는 원망심입니다. 이미 원망하는 마음이 없어진 줄 알았는데, 사실 없어진 게 아니라 시간이 지나 잊혀진 것뿐이었습니다. 그 마음은 여전히 있었고 원망하는 물질도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제자 안에 숨겨진 원망심을 보셨습니다. 증오(恨)는 공산사령(共産邪靈)의 9가지 유전자 중 하나입니다. 이 원망심을 없애지 않으면 마도(魔道)로 수련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요? 반드시 철저히 없애야 했습니다. 그래서 사부님께서 이런 방식을 통해 제자가 안으로 찾아 숨겨진 원망심을 찾게 하신 것이고, 그것을 없애고 향상시키게 하신 것입니다. 자비하신 사부님의 보호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 질투심, 보답을 바라는 마음, 체면을 따지는 마음도 찾았습니다. 어떻게 형성된 것인가 생각해보니 어릴 때의 그 경험들이 떠올랐습니다. 아, 이것들은 모두 후천적으로 형성된 것이니 진정한 자신이 아닌 것입니다. 이 마음들을 모두 내려놓고 법 속에서 실제로 자신을 수련하겠습니다.

이제 저는 더는 말을 더듬지 않습니다.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바로잡아주신 것입니다. 그 몇 년 동안 저는 음성 전화로 진상을 유창하게 전했습니다. 자비하신 사부님께서 저의 말더듬을 고쳐주셨습니다. 이제는 직접 만나서도 진상을 전할 수 있습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가족을 선하게 대했더니 친지들과 친구들이 모두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게 됐고 대법을 매우 인정하게 됐습니다. 집에 오는 친척들에게 모두 대법 진상을 전했고 삼퇴를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항상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면 복을 받는다고 알려줍니다.

자비하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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