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7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사부님의 정법을 따라 비바람 속에서 28년을 걸어왔습니다. 사부님께서 이기적이고 도도하며 겁 많던 평범한 저를 한 걸음씩 타인을 위할 줄 아는 선량하고 진실하며 감당할 줄 아는 수련인으로 동화시켜 주셨습니다. 제자는 인간의 언어를 모두 동원해도 사부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을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1. 용량을 확대하여 편집 업무를 맡다
1) 자아의 왜소함
처음에 우리 지역은 대규모 자료점 방식으로 운영됐습니다. 자료점 수련생들은 겹겹의 어려움을 극복하며 인터넷 접속, 다운로드, 편집, 인쇄 등의 업무를 담당해 매우 힘들었습니다. 이후 대규모 자료점 수련생들이 잇달아 박해를 받으면서 현지 편집 업무를 한동안 아무도 맡지 못하게 됐습니다. 한 수련생이 학식이 있으니 이 일에 적합하다며 저에게 권했습니다. 저는 그 수련생이 쓸데없이 참견한다고 여기며, 협조인 수련생도 그런 말을 하지 않는데 당신이 무슨 근거로 그러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키지 않았지만 문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수련생을 통해 날 일깨워주시는 것은 아닐까? 이번 생에 학식을 갖추도록 배려해 주신 것이 이 업무를 위해서가 아닐까?’ 법을 얻기 전 직장에서 빠른 중국어 타이핑을 배웠는데, 사부님께서 이미 일찌감치 저를 위해 준비해 두신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런 생각이 들자 그 수련생에 대한 원망이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불안하고 답답했습니다. ‘나도 출근을 해야 하는데 시간이 없잖아. 게다가 글쓰기에도 서툴고 쓰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든데.’ 사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안전하지 않고 위험이 따른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이 순간 저는 저와 수련생들 사이의 격차를 똑똑히 보았습니다. 수련생들은 중생구도와 안전을 위해 이토록 감당하고 있었으며 심지어 납치되거나 형을 선고받기도 했습니다. 반면 저는 압박 앞에서 매사 자기 자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자신의 왜소함을 보았고 아울러 수련생들의 이타적인 경지를 보았습니다.
2) 편집 업무에서 자신을 수련하다
저는 관련 자료를 다운로드해 편집과 조판 등을 배웠습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명혜망 편집 수련생의 수정 및 보완을 거쳐 마침내 첫 번째 지역판 주보를 발행하게 되자 매우 보람을 느꼈습니다. 며칠 후 한 수련생이 질책하는 말투로 문제점을 지적했을 때는 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곧 이것 역시 저의 용량을 넓혀주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 노동수용소에는 전 성의 많은 대법제자가 불법적으로 감금되어 있었습니다. 악한 경찰들이 사용하는 고문은 극도로 야만적이고 잔인했으며 어떤 수련생은 박해로 숨지기도 했습니다. 처음 이 내용을 편집할 때는 너무 두려웠습니다. 경찰들의 사진마다 잔인하고 변태적이며 흉악하고 교활한 느낌이 묻어났습니다. 특히 밤이 깊고 주변이 고요할 때면 공기마저 무겁게 짓누르는 듯했고 마치 수많은 눈이 저를 감시하는 것 같아 온몸이 오싹해졌습니다. 저는 다른 공간에서 정사대전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았습니다.
지역판 주보의 주요 내용은 현지 정법위와 610 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 전담 기구)이 대법제자들에게 가한 박해를 폭로하는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악경(惡警)과 나쁜 사람을 폭로하고 사회에서 그 사람의 악행을 공포(公布)하는, 이런 방법은 이성(理性)이 없는 그런 악인을 두려워 떨게 하는 더할 수 없는 큰 작용을 일으켰다”(정진요지3-수련생 문장에 대한 평어) 주변의 실제 박해 사례를 주보 형식으로 대중에게 전함으로써 사악을 효과적으로 해체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호 지역판 주보를 주로 저녁 식사 후에 편집하고 정리하기 시작해 때로는 한밤중까지 작업했습니다.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들었지만 주보가 현지 사악을 해체하는 날카로운 무기이며 시의성이 강하다는 생각만 하면 피로가 단숨에 사라졌습니다. 때로는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때 환희심, 과시심, 일 욕심, 자아에 대한 집착, 자신을 실증하려는 마음 등 사람 마음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하늘의 공을 탐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의 가지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서둘러 이 가장 좋지 않은 사람 마음을 제거했습니다.
편집을 배우는 과정에서 명혜망 편집 수련생이 저에게 큰 도움을 줬습니다. 지면 선택, 사진 배치, 제목 등 여러 방면에서 실제 조작을 통해 시범적인 지도를 해줘 주보의 질이 꾸준히 향상됐습니다.
때로는 지역판 주보가 몇 차례 게재되지 않을 때도 있었습니다. 서둘러 안으로 찾아 관념을 바꾸니 부족한 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호 제가 업로드한 것과 게재된 것을 비교해 다른 점과 격차를 찾아냈고 이를 통해 안목을 넓히고 심성을 수련했습니다.
3) 장쩌민 고소 자료 정리
2015년에 전 국민적인 장쩌민 고소의 물결이 일었습니다. 이를 위해 수련생들은 저의 집에서 20여 명이 참가하는 교류회를 열었습니다. 교류를 통해 수련생들은 이것이 정법의 또 다른 과정임을 인식하고 자아를 내려놓고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인식이 제고된 후 각자 돌아가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도록 이끌었고 이에 따라 우리 지역(농촌 지역 포함)은 당시 기본적으로 전원이 장쩌민 고소에 참여했습니다.
당시 저는 아직 퇴직 전이었기에 처음에는 장쩌민 고소에 대해 약간의 걱정이 있었고 직장에 영향이 미칠까 두려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과 부정적 사고가 아닌가?’ 저는 반드시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실명으로 장쩌민을 고소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부님의 가지 아래 저는 먼저 명혜망에서 제공하는 양식에 따라 장쩌민 고소장을 작성하고 이어 수련생들의 고소장 정리를 도왔습니다. 글을 쓸 줄 모르는 수련생은 대필해 주었고 쓸 줄 아는 수련생은 수정과 인쇄를 도와줬습니다.
장쩌민 고소를 통해 수련생들은 수련 면에서 또 한 단계 크게 도약했습니다. 우리 지역 수련생들은 정념과 일치된 마음으로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속에서 효과적으로 사악을 위협했고 장쩌민 고소로 인해 교란이나 박해를 받은 수련생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2. 사람 마음을 닦아내며 통신원 업무를 잘해 나가다
주보를 편집하기 위해서는 현지의 사악한 박해를 폭로하는 내용이 필요했습니다. 당시 납치 사건이 발생하면 수련생들은 저에게 박해 보도문을 작성하여 명혜망에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렇게 몇 차례 글을 보낸 후 명혜망 편집 수련생은 제가 보낸 글 앞에 ‘명혜통신원’이라는 문구를 붙여줬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가 짊어진 책임이 막중하며 결코 피할 수 없음을 느꼈습니다! 저에 대한 수련생들의 신뢰와 격려를 느꼈고 무엇보다 저에 대한 사부님의 기대와 당부를 깊이 느끼며 마음속에 정념이 한층 더해졌습니다.
1) 사람 마음 제거
통신원 업무를 하는 것 또한 두려운 마음을 닦아내는 훌륭한 수련 과정이었습니다. 수련생이 납치됐을 때 저 역시 같은 고통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상황에서든 가능한 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박해 정보를 인터넷에 올려 폭로하는 것이 저의 책임이었습니다.
한번은 우리 지역의 여러 수련생이 납치됐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서 수련생 집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다소 불안했습니다. 며칠 전 납치된 수련생의 집에 갔던 어떤 수련생이 그곳에 경찰이 잠복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사부님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험을 벗어났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는 두려움이 걸림돌이 되게 해서는 안 되며 이를 돌파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L 수련생을 찾아가 함께해 달라고 부탁하려 했으나 그녀는 집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다시 L을 찾아갔더니 그녀는 남편으로부터 어제 오후에 파출소 경찰 두 명이 그녀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CCTV를 확인하고 갔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이것은 나를 가로막으려는 가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녀의 집에 간 것은 어제 오전이었는데 오후에 CCTV를 확인했다니 말입니다. 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고 저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찾아온 목적을 설명하자 그녀는 응낙했습니다. 그날 밤 그녀는 큰 개 한 마리가 길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꿈을 꿨습니다. 다음 날 그녀가 저에게 꿈 이야기를 했습니다. 제가 L에게 갈 수 있겠냐고 묻자 그녀는 아무 일 없을 것이고 단순한 교란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는 내내 발정념을 하며 카메라와 감시 장비의 교란을 포함한 모든 교란을 제거했습니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했을 때 제가 다시 그녀에게 괜찮겠냐고 물으며 아니면 밖에서 기다리고 저 혼자 들어가겠다고 했습니다. L은 매우 확고하게 “괜찮아요, 함께 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수박을 사서 수련생 집의 문을 두드렸습니다. 수련생의 남편은 몹시 화가 나 있었고 우리에게 화풀이했지만 우리는 계속해서 그를 위로했습니다. 설 전후에 저는 다른 수련생과 함께 다시 그의 집을 찾아가 상황을 파악하고 500위안을 전달하여 그가 수련생들의 관심과 대법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했습니다.
때로는 지속적으로 폭로하기 위해 납치된 수련생의 가족을 여러 차례 찾아가야 했습니다. 어떤 가족은 “입구에 새로 감시 카메라가 설치됐으니 다시는 오지 마세요”라고 직접 말하기도 했습니다.
보도 과정에서 수련생들의 심성 상태도 저마다 달랐습니다. 어떤 수련생은 체면이나 명예욕 혹은 두려운 마음 때문에 폭로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괴롭힘을 당한 사례가 다른 수련생의 사례와 함께 폭로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수련생은 누가 올렸냐며 어떻게 하겠다고 험한 말을 했습니다. 사실 이것 역시 제 심성을 단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아주 드물게 여러 가지 이유로 보도 내용을 미처 확인하지 못해 사실과 다른 경우가 생기기도 했는데 이는 공산당 당문화(黨文化)식의 대충 처리하는 행태이자 무책임한 행동이었습니다. 때로는 일을 하려는 마음이 앞서 폭로를 위한 폭로를 하다 보니 좋은 효과를 거두지 못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폭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중생구도가 진짜 목적임을 깨달았습니다.
2) 인터넷 연결 문제 해결
새 아파트 단지로 이사했을 때 초고속 인터넷을 신청하러 갔더니 직원이 제가 사는 동에는 여유 포트가 없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자 그는 누군가 이사를 가서 포트가 비어야만 설치할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옆에 있던 한 고객도 자기 집도 몇 년째 설치하지 못하고 있다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 이래서는 안 됩니다. 저에게는 인터넷이 꼭 필요합니다! 저는 이 상황을 인정하지 않겠습니다! 반드시 인터넷이 연결돼야 합니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집에 도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직원이 전화를 걸어 포트가 생겼으니 오후에 바로 설치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몹시 감격했고 이는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열어주신 신의 길로 통하는 통로이자 천상의 고향으로 통하는 길임을 알았습니다! 사부님의 성은에 감사드립니다!
3) 친구처럼 대하며 시련을 해소하다
2021년 현지 610 사무실, 주민센터 및 파출소에서는 파룬궁수련생들을 광범위하게 괴롭히며 이른바 ‘제로화(淸零)’ 활동을 벌였습니다. 수련을 계속할 것인지 묻고 하지 않겠다고 하면 명단에서 삭제하고 앞으로 다시는 찾아오지 않겠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가해진 괴롭힘을 포함해 모든 괴롭힘 사례를 명혜망에 폭로했고, 모든 주민센터 직원의 휴대폰 번호를 명혜망에 올려 해외 수련생들이 진상 전화를 걸 수 있도록 요청하여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현지 주보에도 박해를 받은 수련생이 거주하는 주민센터 직원의 이름과 휴대폰 번호를 공개했습니다. 이러한 활동은 다른 공간의 사악을 크게 자극했습니다.
610 사무실 주임은 상부의 압박을 받자 저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A, B 두 사람을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610 사무실 주임은 여성이었는데 이전에 제가 그녀에게 권선(勸善) 편지를 직접 써준 적이 있었고 다른 수련생과 함께 두 차례나 610 사무실로 그녀를 찾아가 진상을 알린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식사를 대접한 적도 있었고 다른 수련생들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녀를 찾아갔기에 우리 지역에서는 수년간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올 필요 없으며 제가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그 두 사람을 보내겠다고 하며 만약 다른 사람이 찾아오면 번거로워진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지 말라고 하며 조만간 밥이나 한 끼 먹자고 했지만 그녀가 거듭 고집하여 결국 오도록 했습니다.
저는 A와 B를 반갑게 집 안으로 맞아들이고 과일과 차를 대접했습니다. 여름이라 날씨가 몹시 더웠기에 선풍기를 틀어주고 오랜 친구를 대하듯 따뜻하게 대했습니다. 그들도 매우 감동한 기색이었습니다. 그들이 노트북을 켜자 A가 모월 모일에 파출소에서 전화를 받았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렇다고 답하며 정확히 어느 날인지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A가 인터넷에서 수집한 자료를 저에게 보여주려 하자 저는 보지 않겠다고 하며 그런 자료들은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협조하지 않는 것을 보고 노트북을 닫았습니다. 저는 이전에 A와 접촉한 적이 있었기에 친구처럼 그의 이름 뒷글자 두 개를 다정하게 부르며 “여러분은 이제 과거와 달라졌어요, 수련생들도 다들 그렇게 말하더군요”라고 했습니다. 그들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제가 “여러분은 모두 선량하고 나쁜 사람이 아니니 앞으로 좋은 미래가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B가 “제가 선량해 보이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새로 온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그를 바라보며 “당신도 매우 선량합니다”라고 했고 그들은 모두 웃었습니다. 잠시 후 그들은 돌아갔습니다.
선의 힘은 거대합니다! 사부님의 홍대한 자비에 감화돼 한 차례의 시련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실 이 일이 있기 전에 인터넷 회사 직원 두 명이 두 차례 전화로 괴롭힘을 가한 적이 있었습니다. 또한 610 사무실 주임이 한 대법제자의 집을 찾아가 인터넷에 올라온 자신에 관한 폭로 글을 내려달라고 요구하며 누가 썼는지 묻고 자신들의 업무에 지장이 있다고 말한 적도 있었습니다. 저는 박해를 단호히 부정했습니다. 저는 오직 사부님만이 저를 관여하시고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으므로 이 모든 것은 저와 무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4) 악의 우두머리를 폭로하다
2022년에 우리 지역의 파룬궁수련생 10여 명이 납치됐습니다. 오랫동안 이처럼 대규모로 납치된 적이 없었기에 저는 정법위 책임자가 바뀐 것이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당시는 마침 전염병 봉쇄 기간이었기에 휴대폰으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과연 그러했습니다. 새로 부임한 관리가 기세를 올리느라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붙잡았던 것입니다. 저는 정법위 우두머리의 정보를 메모하고 사진도 다운로드했습니다. 제 개인 휴대폰으로 검색한 것이었기에 안전을 위해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어조로 이 인물의 간략한 신상 정보를 폭로했습니다.
폭로 자료를 명혜망에 보내자마자 늘 함께 지내던 어머니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사악은 여러 방면의 두려운 마음을 틈타 빈틈을 파고들려 했습니다. 저는 ‘두려울 것이 무엇인가, 사부님께서 바로 제 곁에 계신다’고 생각했습니다. 낮에는 괜찮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는 확실히 마음이 다소 불안해 조용히 법을 베껴 썼습니다. 사부님께서 늘 곁에서 보살펴주신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마음이 훨씬 평온해졌습니다.
며칠 후 명혜망 편집 수련생이 이 인물의 모든 정보를 제때 폭로했고 이는 사악을 강력하게 위협했습니다. 저는 국내외 수련생들이 진정으로 하나임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새로 부임했던 정법위 우두머리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1년쯤 지나 다른 곳으로 전보됐습니다.
5) 정체적인 구출로 공검법 인원을 구하다
몇 년 전 우리 지역에서 10명에 가까운 수련생이 납치됐습니다. 정체(整體)의 일원으로서 저에게는 수련생을 구출할 책임이 있었고 아울러 공검법(공안·검찰·법원) 인원들을 사악한 사슬에서 구출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야말로 진정으로 박해받는 집단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박해 사실을 제때 폭로하고 지속적으로 추적 보도했습니다. 취보후심(取保候審, 보석 상태에서 수사·재판을 받는 조치)을 받은 수련생을 도와 공검법에 보낼 편지를 편집했고 고소장과 관련 자료 등을 정리했습니다.
또한 가족들을 도와 수련생이 겪은 박해에 관한 글을 작성하여 즉시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저와 가족 수련생이 적극적으로 합심하여 새로운 진전이 있을 때마다 그들이 저를 찾아왔고 저는 즉시 정리하여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특히 납치된 수련생들이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했기에 1심과 2심 과정의 세부 사항을 제때 폭로함으로써 사악을 강력히 위협했고 많은 공검법 사법 인원이 진상을 알게 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구출에 참여한 수련생들은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며 인력과 물자, 시간을 쏟아부었습니다.
때로는 심성 시험을 겪기도 했습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자료 정리를 도와달라고 하여 이틀 동안 정리한 후 차를 타고 전달해 주러 갔습니다. 거리가 멀어 왕복 2시간 정도 걸리는 곳이었습니다. 도착하자 그녀는 다른 자료도 인쇄해야 하니 돌아가서 그것도 마저 인쇄해 오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자 마음이 불편해지며 왜 진작 말하지 않았냐는 원망이 생겼습니다. 다시 한번 발걸음을 해야 했고 가뜩이나 이틀 동안 법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길에서 버려야 할 시간이 얼마나 많을지, 이 사람은 왜 일을 이렇게 처리하는지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러나 곧이어 스스로 수련할 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을 찾지 않고 남을 탓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바로 저의 수련을 돕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10명에 가까운 수련생들이 불법적인 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럼에도 국내외 수련생들의 공동 노력과 사부님의 헤아릴 수 없는 감내 및 자비로 업력이 줄어든 덕분에 당초 성(省) 중점 대형 사건으로 취급되던 이 일은 결국 10명에 가까운 수련생들이 각각 불법적으로 1년형, 1년 6개월형, 최대 2년형을 선고받는 것으로 마무리됐습니다. 박해의 정도를 낮추고 사법계에 큰 충격을 준 결과였습니다.
맺음말
10여 년의 편집과 통신원 업무는 저를 반복해서 단련시켜 주었습니다. 수많은 어려움과 위험 속에서도 사부님의 보호 덕분에 늘 아슬아슬하게 위험을 벗어나 무사히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이번 생에 사부님의 대법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이자 행복인지 모릅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베풀어 주신 지극히 높은 은혜입니다! 제자는 이를 영원히 마음에 새기며 정진의 원천으로 삼겠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하시는 것이며 사부님만이 유일한 정법자(正法者)이십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정념, 즉 사부님에 대한 바른 믿음과 독실한 믿음뿐입니다! 사부님의 요구대로 행하여 각 층차의 법의 기준에 부합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는 전능하시며 대법의 위덕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 모두 이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기회와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내로 연장해 주신 시간을 소중히 여깁시다. 손을 맞잡고 동행하며 정념으로 더 많은 중생을 구하여 세상에 올 때 했던 서약을 실현합시다.
원문발표: 2026년 5월 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5/3/508523.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5/3/508523.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