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 말에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1999년 ‘7·20’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 박해를 시작한 이래 7차례 납치 구금됐고 세 차례 정념으로 불법 강제노동 박해를 해체했으며 두 차례 구류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 중 한 차례 정념으로 강제노동 박해를 해체한 여정과 수련 중 체득한 것을 써서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합니다.
납치당해 정념으로 불법 심문에 맞서다
2004년 봄 이사한 지 열흘도 안 된 거처에서 집주인의 고발로 경찰 3~4명이 강제로 저를 끌어다 경찰차에 태웠는데 한참 동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파출소에 도착하자마자 저는 단식으로 박해에 맞서기 시작했습니다. 경찰 한 패거리가 또 우리집으로 가서 불법 가택수색을 해 대법 책 수십 권과 자료, 스티커, CD, 컴퓨터, 프린터 등과 현금 수천 위안을 빼앗아 갔습니다. 경찰은 압수한 신분증에서 제 정보를 얻었습니다.
그날 저녁 식사 후 파출소 부소장 A와 경찰 한 명이 불법적으로 심문했습니다. 양손을 뒤로 수갑을 채우고 바닥에 세워놓았습니다. A가 이름과 물건이 어디서 났는지, 아는 사람이 누구인지, 누구와 연락하는지 등을 물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법을 굳건히 수호해야 한다. 내가 납치됐으니 수련생들이 박해당하고 대법이 더 손해를 입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경찰의 심문에 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A는 분노해 스스로를 악당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전제 도구라고 칭하며 제 머리카락을 잡아당기고 뺨을 때리고 머리를 때리며 협박했습니다. “말하지 않으면 살가죽을 벗겨버리겠다. 그 물건들(우리집에서 강탈한 것들을 가리키며) 때문에 10년 8년은 판결받을 거다.” 저는 마음속으로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습니다. A는 또 “말하면 집에 보내주겠다”고 속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에 법이 있으니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고 한밤중에 저를 구치소에 불법 구금했습니다.
구치소에서 또 한 차례 불법 심문을 겪으며 몸이 매우 쇠약해졌습니다. 사흘째 오전에 또 불법 심문을 받았습니다. A가 제 팔을 부축해 어떤 방으로 데려가 의자에 앉히더니 양손을 의자 양쪽에 따로 수갑으로 채우고 양발을 의자 아래 철고리에 각각 채웠습니다. 잠시 후 ‘610사무실’(중공이 불법적으로 설립한 파룬궁 박해기구)과 공안국 부국장 W 등 7~8명이 들어왔습니다. 610이 위협했습니다. “당신 사건은 크다. 성(省) 전체가 들썩였어. 10년 8년 판결받으면 나왔을 때 쉰 살이 넘고 세월도 지나버려 뭘 할 수 있겠어? 그때 가서 후회하지 않겠어? 눈앞의 손해를 피하려면 말해야 해. 말하지 않으면 몸이 고생하게 돼.” 제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각종 방법으로 유혹하고 속이려 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물건이 많다고 해서 그게 나를 박해하는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온 우주에서 가장 바르고 가장 신성한 일을 하고 있다. 당신들이 물건이 많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요구에 한참 못 미친다. 이번 생에 대법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나의 영광이다! 당신들이 결정하는 게 아니다. 나에게는 전능하신 위대한 사부님이 계시고 일체는 사부님 말씀대로 되며 대법제자의 말대로 된다.’ 그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W는 제 몸이 쇠약한 것을 보고 굶어서 그렇다며 고래고래 소리쳤습니다. “강제로 먹여라!” 저는 또 야만적으로 분유를 강제로 주입당한 후 감방으로 보내졌습니다.
오후에 저는 큰 방으로 끌려갔는데 타원형 탁자 주위에 십여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이때 무장경찰 두 명이 무언가를 들고 들어왔는데 뭔지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W는 무장경찰을 가리키며 위협했습니다. “말해. 말하지 않으면 몸이 고생하게 돼. 저 둘을 당해낼 수 있겠어?”
저는 W가 하는 말이 나와 아무 상관없다는 느낌이 들어 그 두 무장경찰도 쳐다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공간 전체의 분위기가 매우 억압적으로 느껴졌고 십여 명이 돌아가며 저를 공략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쉬지 않고 정념을 발하며 사부님께 제자를 가지(加持)해 주시길 청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신다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은 마치 그들이 연기하는 것을 구경하는 것처럼 평온했습니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다른 공간에서 정사(正邪) 대전이 벌어지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정법위(政法委)의 T가 저를 사각 탁자 옆 의자에 앉히고 자신은 제 앞에 앉아 ‘한가롭게 이야기’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오후 내내 이리저리 돌려가며 이야기했지만 저는 그 사악한 음모를 간파하고 때때로 이성적으로 응대했습니다. 주위에서 공략하던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하나씩 자리를 떠났고 마지막에는 T도 갔습니다.
W가 제 오른쪽 손목의 맥을 짚더니 문 밖으로 나가 구치소 Y 소장에게 맥이 매우 약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다음 무장경찰 두 명이 나가고 저는 감방으로 보내졌습니다.
나흘째 오후 또 그 큰 방으로 끌려갔는데 무장경찰 두 명이 전날 가져왔던 형구 양쪽에 각각 서 있었습니다. 형구를 한 번 쳐다봤는데 ‘호랑이 의자’인지 철의자인지 몰랐지만 사악한 요소가 줄어들었고 분위기도 그렇게 기세등등하지 않았으며 여러 사람이 공략하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않고 정념을 발하며 사부님께 제자를 도와주시길 청했습니다. 마음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어떤 생명도 나를 관할할 수 없다. 나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신다.’
얼마 후 T가 들어와 “또 한가롭게 이야기해요, 다른 건 말고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배후에서 그를 조종하는 사악한 요소를 제거했습니다. 제 정념 속에서 그는 이야기 도중에 나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사람으로 바뀌어 이야기를 했는데 두 시간 후 그도 물러났습니다. 소장 Y는 감옥 의사를 불러 제 심박을 측정하게 했는데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습니다. 감옥 의사가 나가서 Y에게 “심박이 130이에요. 알아서 하세요”라고 했습니다. 무장경찰 두 명이 나가고 저는 감방으로 보내졌습니다.
닷새째 오전 저는 접견실로 불려 나가 W에게 불법 심문을 받았습니다. 그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람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일선 도시에서 왔어요. 집에 가고 싶어요?” 저는 “당연히 집에 가고 싶죠. 당신들이 줄곧 집에 보내준다고 했는데 아직도 안 보내줬잖아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내 심문에 답하면 집에 보내줄게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슨 말을 하겠어요”라고 했습니다. 그가 질문을 하나 하자 저는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는 감옥경찰에게 저를 감방으로 보내라고 했습니다.
사부님의 보살핌 아래 경찰과 악인들이 저를 닷새 동안 불법 심문하는 것이 끝났습니다.
감방 수감자들을 선하게 대하다
저를 불법 구금한 감방에는 여자 수감자 5~6명이 있었는데 가짜 물건을 팔다 걸린 사람, 절도범, 살인범 등이었습니다. 제가 막 들어왔을 때 감옥경찰은 제가 ‘대형 중요 사건’ 관련자라며 수감자들을 한 명씩 불러 이야기하고 몰래 저를 감시하도록 부추겼습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저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습니다. 방장 수감자 D와 절도범 C는 판결을 받은 후 구치소에서 형을 살고 있었는데 우두머리처럼 굴었습니다. 한번은 방장 D가 저를 위협했습니다. “여기가 어딘지 알아? 감옥이야. 한번 들어오면 나갈 생각은 마.” C가 옆에서 거들었습니다. “나가기 매우 어렵지.”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속인의 사고 논리를 따라가지 않았습니다. 그 논리를 부정했습니다. ‘대형 중요 사건’이라니? 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해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주고 그들이 대법의 아름다움을 보고 나누어 아름다운 미래를 갖게 해야 했습니다. 저는 자신의 언행을 바로잡고 남을 배려하며 그들을 선하게 대했습니다. 몸이 매우 쇠약했지만 자발적으로 감방 청소를 했고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울 수 있는 만큼 도왔습니다. 그들은 저의 선한 행동을 목격하면서 점차 적대감이 바뀌어갔습니다. 또 제가 악인의 박해에 맞서는 것을 보며 매우 존경했고 감방 분위기도 느슨해졌습니다. 가끔 D와 C가 저에게 먹을 것을 주었는데 받지 않으려 해도 기어이 주었습니다. C는 저에게 매우 잘 대해줘 머리도 빗겨주고 때로는 자신 옆에서 자게 해줬습니다. 기회가 생기면 그들에게 진상을 전하고 『홍음(洪吟)』 속 시를 외워주었으며 외우는 것도 가르쳐줬습니다. 어떤 사람은 잊어버렸는지 어떻게 외웠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제가 정념을 발하며 말을 하지 않으면 “왜 이렇게 조용해요? 시 안 외워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선한 면이 있는데 그 순간 그들이 매우 사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수감자 Z는 30살 남짓으로 농사를 짓는 사람이었습니다. 정신병이 발작했을 때 자신의 딸을 목 졸라 죽여 판결을 기다리는 중이었습니다. 감방 수감자들은 모두 그녀를 냉정하게 대하며 잔인하다고 싫어했습니다. Z는 말이 없고 때로는 울다가 웃다가 하며 밤에는 이불 속에서 우는 일이 많았습니다. 가족들은 일 년에 두 번 생활용품을 넣어줬습니다. 제가 막 들어왔을 때 그녀 옆에서 자며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수련생이 햄소시지와 과자를 넣어줬는데 저는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는 감동해 저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들이 사람을 죽이고 분신한다고 했어요. 당신이 처음 왔을 때 저는 잠을 못 잤어요. 당신이 저를 죽일까봐 무서워서요. 너무 졸려서 당신이 잠든 것을 확인하고서야 잤어요. 며칠이 지나 당신이 사람을 죽일 것 같지 않아 보였는데도 먼저 잠들기가 두려웠어요.” 저는 그녀에게 전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을 선하게 하는 것이고 원흉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질투해 파룬궁에 뒤집어씌우며 모함해 ‘천안문 분신’ 가짜 사건을 만들어 거짓말로 세상 사람들이 파룬궁을 증오하도록 속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파룬궁은 살생과 자살을 금하며 저희는 살아있는 것을 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온몸의 병이 연공으로 나았다는 것도 전했습니다. Z는 걱정을 내려놓고 말했습니다. “이제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네요.” 그녀는 또 딸을 목 졸라 죽인 것을 후회하며 살고 싶지 않다고 했습니다. 저는 “선한 마음을 가지면 전환이 올 수도 있어요”라고 위로해줬습니다.
며칠 후 감방에 살인 미수범 L이 들어왔습니다. 울고 소란을 피우며 죽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납게 상대방을 일곱 번 찔렀는데 죽이지 못한 것이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이틀 후 L은 몸에 열이 오르고 고혈압과 심장병이 도졌다며 열이 나고 어지럽다고 침상에 누워 신음했지만 아무도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물을 떠다 주고 수건을 찬물에 적셔 짜서 이마에 올려 열을 내려주며 곁에 앉아 위로했습니다. 한 시간 후 그녀는 많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남자 수감자 두 명이 밖에서 돌아다니다 작은 창문을 통해 저를 보며 웃고 말했습니다. “파룬궁(저를 가리키며)이 자기 처지도 모르면서 남을 돕고 있네.” L은 저의 선한 행동에 감동받아 계속 감사해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으니까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사부님 감사합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자기 집 근처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분이 있는데 참 좋은 분이라고도 했습니다. 저는 “나중에 배우고 싶으면 그분을 찾아가세요”라고 했습니다. ‘홍음-사람 되기(做人)’를 외워줬더니 그녀는 들으니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습니다. 그녀도 점차 차분해졌습니다.
‘저는 죄가 없습니다’
20여 일이 지나 감옥 여경이 저를 어느 방으로 데려가며 법원 심문이라고 했습니다. 남녀 한 명씩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저는 마음에 아무런 동요가 없었습니다. 남성이 일어나 저에게 말했습니다. “이제 말씀을 하셔야 해요. 스스로 변호를 하셔야 해요.” 말을 마치고 그는 나갔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시는 건가?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보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이 말했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해주세요.” 저는 “말씀하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물었습니다. “컴퓨터 안에 뭐가 있었나요?” 저는 “고장났어요”라고 했습니다. “경비는 누가 줬나요?” 저는 “제 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또 물었습니다. “아직도 파룬궁을 수련하나요?” 저는 답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수련하는지 안 하는지 그것도 못 말하는 거예요?” 저는 마음속으로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격장법(激將法)은 통하지 않아. 당신은 내 답을 받을 자격이 없어. 사악은 나를 시험할 자격이 없어. 나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신다.’
그 여성은 수련하는지 안 하는지를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무슨 요구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평온하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진선인(眞·善·忍)’을 믿는 것은 잘못이 없습니다. 조건 없이 저를 집으로 돌려보내세요!” 그녀가 “서명하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서명 안 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왜 서명하지 않는 거예요? 당신이 한 말 아닌가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물어서 한 말이지 제가 스스로 하고 싶은 말이 아니니까요”라고 했습니다.
이때 젊은 남성 두 명이 올라와 제 팔을 잡아당기고 왼쪽 다리를 발로 찼습니다. 저는 서명에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은 저를 끌 수 없자 제 팔을 등 뒤로 꺾고 붉은 인주를 들어 제 손에 찍으려 했습니다. 저는 단호히 거부했습니다. 이때 옆에 서 있던 여경이 말했습니다. “그분(저를 가리키며)은 서명하지 않을 거예요. 내내 서명하지 않았어요.” 두 남성은 저를 놓아줬습니다.
이때 법원 남성이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에게 “저는 죄가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습니다. “맞아요. 죄가 없어요. 죄가 없어요.” 사부님의 가지 아래 법원 심문이니 판결이니 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불법 구금돼 있었고 그들은 저를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L이 약을 받으러 나갔다 돌아와 주재(駐在) 검찰관이 전화하는 것을 들었다며 이렇게 전했습니다. “그 파룬궁(저를 가리키며)이 한 달이 넘었는데 풀어줄 거야 말 거야?” 저는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 판결 박해를 해체해 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무슨 말을 했어요?”라고 물으니 L이 다시 말했습니다. “풀어줄 건지 강제노동을 보낼 건지 하는 것 같기도 했어요.” 저는 ‘강제노동’이라는 두 글자를 듣자마자 마음이 한번 흔들렸고 이후 머릿속에 시시때때로 ‘강제노동’이라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중공이 박해를 시작한 초기에 저는 두 차례 불법 강제노동을 당했습니다. 첫 번째 강제노동 때는 이전에 법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법리가 분명하지 않아 사악을 부정할 줄 몰라 노동수용소에 보내져 박해를 당했습니다. 이후 사부님의 경문 ‘이성(理性)’, ‘교란을 배제하자’, ‘원만을 향해 나아가자’, ‘제자의 위대함’ 등을 다시 공부하면서 법리적으로 인식이 생겼습니다. 대법제자는 사악한 박해를 감당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세력과 그것들의 사악한 안배를 전면 부정해야 하고 사부님도 인정하지 않으시고 제자도 인정하지 않아야 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사부님께 청하는 법도 배웠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불법 강제노동 때는 노동수용소가 제 몸이 기준에 미달한다며 수용을 거부했습니다. 하지만 생각 속의 ‘강제노동’이라는 그림자를 제거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또 ‘강제노동’이라는 두 글자를 듣게 된 것이었습니다.
사진 촬영 거부
구치소 감옥경찰이 저에게 감방 규정을 외우고 사진을 찍으라고 했지만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오후 구치소 소장 Y가 왜 감방 규정을 외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저는 수감자가 아닙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여기 왔으면 우리 말을 들어야 하고 여기 규칙을 지켜야 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고 있고 법을 어기지 않았는데 그들이 저를 잡아온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Y는 “여기가 어딘지 알아? 감옥이야. 사진 찍을 거야, 안 찍을 거야?”라고 위협했습니다. 저는 “안 찍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남자 수감자 네 명을 불러 저를 끌고 담벼락 옆으로 가 누르고 찍게 했습니다. 저는 고개를 숙여 거부했고 마음속으로 ‘분명히 잘 안 찍힐 것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수감자들이 저를 놓아주자 Y는 사납게 저를 보며 말했습니다. “어디 안 찍히나 보자.” 저는 “안 찍힐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는 또 수감자들에게 15kg짜리 족쇄를 채우게 하고 저를 들어다 감방으로 보냈습니다.
C는 제가 족쇄를 차고 있는 것을 보고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왜 이 고생을 해요? 저들이 저렇게 악독한데 좀 순응하지 그래요. 눈앞의 손해를 피해야지요. 이렇게 무거운 족쇄가 얼마나 불편해요. Y는 정말 잔인하거든요. 어떤 사람은 그에게 맞아 피투성이가 됐어요.” 저는 “저는 파룬궁을 수련하는 것이 잘못이 없어요. 신앙의 자유가 있고 사부님께서 저희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주셨어요. 저는 수감자가 아니에요”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제 왼쪽 발목의 쇠고리를 만지며 “얼마나 아프겠어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쇠고리를 가리키며 “곧 열릴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그녀가 “그게 가능해요?”라고 하자 저는 자신 있게 “열려요”라고 했습니다. 말을 마치고 왼발을 들어 올리자 쇠고리가 ‘탁’ 하고 열렸습니다. C는 놀라며 말했습니다. “정말 열렸네요! 파룬궁은 정말 신기해요!” 저는 “이게 대법의 위력이에요”라고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한없이 감격해 사부님께 감사했습니다! C가 또 말했습니다. “덮어두세요. CCTV에 보이면 또 채울 거예요.” 그녀는 화장지를 가져와 족쇄 위를 덮어줬습니다. 저는 감사를 전하며 “안 보이면 더 채울 수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C는 오른쪽 발목이 쓸릴까봐 화장지와 생리대로 받쳐줬습니다.
저는 세수하고 화장실에 갈 때 열린 쪽 족쇄를 들고 다녀 훨씬 편했습니다. 또 C와 제가 나가면 생활용품을 갖다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그녀는 “정말 잘 됐네요. 앞으로 저도 더 이상 훔치지 않겠어요. 우리집에 놀러 오세요”라며 주소를 알려줬습니다. 저는 족쇄를 닷새 동안 차고 있으면서 자신에게 쟁투심이 있어 사악한 자들에게 이용당하는 사람을 선하게 대하지 못했다는 것을 찾아냈습니다.
정념으로 강제노동 박해를 부정하다
한 달여 후 저는 구류소로 보내졌는데 몸이 여전히 매우 쇠약했습니다. 구류소 경찰이 “여기서는 자유롭게 있어도 됩니다”라고 했습니다. 연공하고 정념을 발해도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저는 ‘전법륜(轉法輪)’을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는 없다고 했습니다.
이튿날 17살 여자아이가 들어왔는데 싸움을 해서 열흘 구류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이후 대화 중에 대법 진상을 전해주고 ‘홍음’을 외워줬더니 정말 듣기 좋다며 외우는 것을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몇 수를 배웠습니다. 어느 날 밤 여자아이가 침상에 앉아 제 유일한 작은 천주머니를 뒤지다가 읽었습니다.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세요.” 저는 깜짝 놀라 얼른 주머니를 가져와 보니 파란 유성펜으로 쓴 글자였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 주시는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 위험에 처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구류소에 보내진 지 11일째 오전 9시가 넘어 부소장 A와 정보보위과 G와 경찰 한 명이 감방에 와서 짐을 챙기라며 성도(省都)에 가서 신체검사를 하러 간다고 했습니다. 저는 강제노동소에 가기 전 신체검사라는 것을 알고 협조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제 짐을 챙기고 강제로 수갑을 채워 구류소를 데리고 나갔습니다.
차에 타기 전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구류소 환경이 꽤 여유로웠는데 그때 부정하지 않았다. 이 생각은 옳지 않다.’ 차에 탄 후 저는 G와 경찰 사이에 끼어 앉았습니다. 가는 길에 A가 물었습니다. “집주인이 방을 내주려 하는데 당신 물건을 가족이 챙기게 할까요 집주인이 챙기게 할까요?” 저는 “제가 직접 챙기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G에게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칩니다. 박해에 참여하지 마세요. 선악에는 응보가 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도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정념 발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차가 성도에 도착해 세 바퀴를 돌고서야 노동수용소 병원을 찾았습니다. 저는 차에서 내리지 않았습니다. G가 주먹으로 저를 차 밖으로 내치자 땅바닥에 앉게 됐습니다. 그가 일어나 걸으라고 했지만 저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는 저를 끌고 병원 문 앞까지 와서 놓아줬습니다. 저는 일어서서 마음속으로 ‘홍음-위덕(威德)’을 외웠습니다. 병원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자신이 하늘을 찌를 듯 크고 거대하게 느껴졌습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격려해 주시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경찰 세 명이 저를 진료실로 데려갔다가 밖으로 나갔습니다. 여의사는 매우 온화했습니다. 저는 검사를 안 받겠다고 했더니 그녀가 말했습니다. “검사를 안 받으면 그들이 강제로 보낼 거예요.” 저는 검사를 받기로 하며 사부님께 제자를 위해 주장해 주시길 청했습니다. A가 저를 데리고 심전도 검사를 받으러 가서야 제가 3년형 강제노동 판결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즉시 강제노동 박해를 부정했습니다. 심전도 검사를 하는 동안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었습니다. 이후 의사가 제 몸에 문제가 있어 수용을 거부한다는 말이 어렴풋이 들렸습니다.
경찰이 저를 1층 의자에 앉혀놓고 옆에서 지켜봤습니다. A와 G 두 사람은 안에서 연줄을 동원해 어떻게든 저를 보내려고 했습니다. 정사가 맞붙는 이 순간 저는 정신을 집중하고 정념이 가득한 채로 강력한 정념을 발하며 자비롭고 위엄 있게 바로잡았습니다. ‘나의 사부님께서 정법(正法)하고 계신다! 구세력이여, 너희 이 소멸될 나쁜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너희와 그 사악한 배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사악한 생명은 대법제자를 시험할 자격이 없다. 어떤 생명도 날 관할할 자격이 없다. 설령 나와 구세력 사이에 역사적으로 어떤 약속이 있었다 해도 인정하지 않으며 모두 무효다. 나에게는 전능하신 사부님이 계시고 일체는 사부님 말씀대로 된다! 구세력이 대법제자에게 강제로 가한 강제노동 박해를 철저히 해체한다.’ 또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사부님! 제자는 오직 사부님만이 관할하십니다. 사부님께서 제자의 정념을 가지해 주시고 제자를 위해 관장해 주시길 청합니다. 노동수용소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 저는 나가서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사악이 저를 박해하는 것은 대법을 박해하는 것이고 중생을 박해하는 것입니다. 사악의 음모가 이루어지도록 둘 수 없습니다.’
40여 분쯤 지나 경찰이 차에 타라고 했습니다. 저는 계속 정념을 발했습니다. 몇 분 후 정보보위과 G가 차에 탔습니다. 경찰이 여기서 풀어줄 건지 돌아가서 풀어줄 건지 물으니 그는 A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잠시 후 A가 병원에서 나와 차에 타더니 저에게 고함쳤습니다. “당신이 이겼어! 당신이 이겼어!” 맹렬하게 밀려왔던 강제노동 박해가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와 보호 아래 해체됐습니다.
무조건 석방되다
저는 또 구류소로 보내져 불법 구금됐습니다. A에게 언제 풀어주느냐고 물으니 절차를 마치면 된다고 했습니다. 보름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도 풀어주지 않았습니다. 몇 차례 구류소 소장에게 왜 풀어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매번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악당은) 파룬궁에 대해 한 번도 법을 따진 적이 없는데 무슨 절차를 처리한다는 건가요?”
그 기간에 저는 감옥경찰에게 바늘과 실을 빌려 다른 사람이 준 낡은 이불을 이리저리 꿰맸습니다. 어느 날 또 감옥경찰에게 바늘과 실을 빌리러 갔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바람을 쐬러 나갔을 때 바늘과 실이 당직실 창틀 위에 놓여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저를 불법 구금해놓고 바늘과 실도 안 빌려주면서 속이기까지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후 안으로 찾으니 자신의 불평등한 마음, 쟁투심, 원망심 등을 찾아냈습니다. 이런 사람 마음들을 수련해 없애고 내려놓자 이틀 후 또 감옥경찰에게 바늘과 실을 빌리러 갔더니 그녀가 바로 가져다줬습니다. 이번에 이불 꿰매기를 마치고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내가 왜 계속 이불을 꿰매고 있는 거지? 나중에 쓸 데가 없을까봐 걱정하는 게 아닌가! 어디에 가져가서 쓰려고? 이건 스스로 집에 돌아가지 못하는 길을 설계하는 것이 아닌가?’ 감옥경찰이 바늘과 실을 빌려주지 않는다고 원망하기까지 했으니 자칫 잘못된 길로 들어설 뻔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꿰매지 않았습니다.
구류소에 싸움이나 도둑질을 한 사람들이 연이어 들어왔는데 기본적으로 남성들이었고 그 중 H는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습니다. 그가 어떻게 들어오게 됐느냐고 물어 파룬궁을 수련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그건 왜 수련해요?” 저는 말했습니다. “좋으니까요! 저는 원래 열 가지가 넘는 병이 있었는데 고치지 못했어요. 요추 추간판 탈출증이 심할 때는 골반이 비뚤어지고 걸을 때 다리 하나가 길고 하나가 짧은 것처럼 됐으며 결국 평지를 걸어도 숨이 가쁘고 물건을 조금도 들 수 없을 정도로 병에 시달렸습니다. 저는 돈 한 푼 쓰지 않고 파룬궁 수련으로 다 나았어요. 파룬궁은 불법(佛法) 수련으로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치는데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어요.” H가 사부님의 성함을 언급하며 왜 미국으로 갔냐고 하자 저는 제지했습니다. “저희 사부님 성함을 함부로 부르면 당신에게 좋지 않아요.” 그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도망가다니요. 저희 사부님은 일찍이 출국해 전 세계에 법을 전하고 사람을 제도하고 계시는 거예요. 외국에도 많은 사람들이 수련하고 있어요.” H가 또 말했습니다. “텔레비전에서 당신 사부님이 돈을 긁어모은다고 하던데요.”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이 박해를 받기 전에 이미 1억 명이 배우고 수련하고 있었어요. 저희 사부님이 그냥 높이 앉아 계시기만 해도 우리 제자 한 사람이 한 위안씩만 드리면 억만장자가 되는 거잖아요. 우리 모두 사부님께 돈을 드리고 싶었지만 사부님은 한 푼도 받지 않으셨어요. 텔레비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일부러 나쁜 이미지를 만들어가며 힘들게 돈을 긁어모을 필요가 있겠어요? 지금까지 우리 중 누구도 사부님께 한 푼도 드린 사람이 없고 사부님은 우리에게 오직 진심으로 선을 향해 수련하는 마음만을 원하세요. 텔레비전의 거짓말을 믿으면 안 돼요. 공산당이 누군가를 타도하려면 먼저 죄명을 조작해야 하잖아요?! 거짓말은 저절로 무너지는 법이에요. 장쩌민과 중공은 왜 파룬궁을 박해하는 걸까요? 우리가 진실을 말하는 게 두렵기 때문이에요.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라고 외치기만 해도 잡혀가는데 도박이니 음란이니 사기니 마약이니 하는 것은 온 데 널려 있어도 아무도 관여하지 않잖아요.”
H는 진상을 알아듣고 말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파룬궁은 억울하게 당한 거네요. 안됐네요.” 한번은 H가 저에게 말했습니다. “매일 그렇게 단정하게 머리를 빗고 있으니 그들이 당신을 풀어주겠어요?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미친 척하면 풀어줄 거예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를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그렇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러면 그것들이 또 파룬궁을 수련하다 미쳐버렸다고 모함할 거예요. 대법과 사부님을 욕되게 하는 것 아닌가요? 저는 당당하게 나가야 해요.” 그는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말했습니다. “그것도 맞네요. 당신 정말 대단해요. 존경스러워요.”
대법제자로서 법공부를 못 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었습니다. 그리고 저처럼 불법 구금된 수련생들이 그렇게 많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거나 심지어 박해로 사망한 수련생도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한 가지 생각이 생겨났습니다. ‘나가면 할 수 있는 한 수련생들을 돕겠다.’ 이 한 생각이 이후 수련의 길에서 수련생들과 함께 수련생 구조에 참여하는 신성한 인연을 갖게 해줬습니다.
며칠 후 한 남자아이가 물었습니다. “아주머니, 왜 아직도 안 풀어줘요?” 저는 “610이 절차가 끝나지 않았다고 해요”라고 했습니다. 이후 가족에게 전화해 관련 부서에 가서 저를 데려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관련 부서’는 풀어주기는커녕 가족을 위협했습니다. 화가 난 가족이 저에게 말했습니다. “죽든 살든 이제 당신 스스로 해결해요.” 가족이 왜 이렇게 말한 걸까요? 안으로 찾으니 당시 ‘구류소 환경이 꽤 여유롭다’는 바르지 않은 생각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 구세력에게 빈틈을 내준 것이었습니다. 노동수용소에서 수용을 거부했을 때 또다시 구류소로 보내져 절차를 기다리는 사악한 함정에 빠졌고 이른바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안일한 마음이 생겨 점점 나태해지고 정념이 느슨해졌습니다. 또 구치소에서 야만적으로 강제 음식 주입을 당하며 생긴 두려워하는 마음을 찾아냈습니다. 생사를 내려놓지 못했고 보통 사람에게 기대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구세력은 이런 사람의 마음들을 이용해 저의 정신과 의지를 갉아먹고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반드시 자신의 정념정행으로 진정으로 생사를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저는 법으로 마음가짐을 조율하고 정념 발하는 것을 강화하며 사부님께 제자를 도와주시길 청했습니다. 여기는 제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다시 단식으로 박해에 맞섰습니다. 단식 나흘째 되던 날 위에서 검사가 나온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저는 감방에 누워 있었는데 공안국장이 부소장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으니 부소장이 파룬궁(저를 가리키며)이라고 했습니다. 그 국장이 저에게 왜 수련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이 되도록 가르쳐 도덕을 회복시킵니다. 지금 사회 도덕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보세요. 매춘과 부패가 도처에 있잖아요.” 그는 오히려 말했습니다. “예전엔 강간이 많았는데 지금은 강간하는 사람이 없어요.” 말을 마치고 가버렸습니다. 저는 생각했습니다. ‘중공이 먹여 살리는 관료들이란 정말 온갖 건달짓을 다 하는구나. 저런 도덕군자를 자처하는 위선자가 국장을 하고 있으니 서민들이 얼마나 고달프겠는가.’
검사단이 가고 나서 부소장이 물었습니다. “지도자들이 검사하러 왔는데 왜 일어나지 않으셨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왜 제 상황을 반영하지 않았나요? 당신들은 저를 불법 구금하고 기간도 초과해서 구금했어요. 신체검사에서 수용 불가 판정을 받았는데도 계속 구금하고 있잖아요(주: 몸이 기준에 맞든 안 맞든 구금해서는 안 되는 것으로 모두 박해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그 몸으로 보니 누가 당신을 붙들고 싶겠어요?!” 저는 말했습니다. “저도 여기 있고 싶지 않아요!” 당시 저는 몸이 기력도 없이 쇠약한 상태였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단식 6일째에 저는 무조건 석방돼 당당하게 가족의 차에 올랐습니다. 햇살이 눈부시고 파란 하늘에 흰 구름이 떠 있는 아래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는 차 안에 앉아 맑고 상서로운 파란 하늘을 바라보며 사부님에 대한 감사의 눈물이 저도 모르게 흘러내렸습니다. ‘사부님! 제자 감사드립니다!’
맺음말
집에 돌아온 후 법공부와 연공을 하니 며칠 만에 건강이 회복됐고 얼굴에 혈색이 돌며 걸음도 가벼워졌습니다. 약속대로 구치소로 C를 찾아가 생활용품을 가져다줬습니다. 접견실에서 C는 저를 보자 매우 기뻐하며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정말로 나오셨네요!” 저는 “바른 믿음이 있으면 기적이 나타납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자신도 곧 집에 돌아갈 것이라며 꼭 집에 오라고 당부했습니다. C는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한 복으로 형이 감형됐습니다. 창문으로 저를 훔쳐보던 그 두 남자 수감자가 저를 보더니 몹시 놀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그 파룬궁 아닌가요? 나오셨네요!”
이번에 저는 구치소와 구류소에 두 달 넘게 불법 구금됐습니다. 겉으로는 구세력이 배치한 시련처럼 보였지만 대법의 위력과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아찔했지만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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