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동북 대법제자
[명혜망] 1999년 4월 24일 저녁, 저와 남편은 톈진 교육대학이 파룬궁을 비방하는 글을 발표했고, 그곳에 상황을 설명하러 간 톈진 수련생들이 체포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 때문에 각지의 많은 수련생들이 베이징으로 올라가 연공의 자유를 요구하는 청원을 하려 한다는 것도 알게 됐습니다. 저는 남편(수련생)에게 “어머니한테 미리 말해뒀어요, 아이를 봐주신다고 하셨어요”라고 했고, 우리 둘은 함께 베이징으로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미리 소식을 접한 수련생들은 이미 비행기를 타고 먼저 떠났습니다. 그날 밤, 저희는 다른 몇몇 수련생들과 택시를 타고 읍내로 나가 밤 10시가 넘는 베이징행 열차 표를 사서 올라탔습니다. 좌석이 없어 자리 있는 수련생들과 번갈아 가며 쉬었습니다. 완행열차인 데다 거리도 멀어 14시간을 덜컹거린 끝에 이튿날 오후 2시가 돼서야 베이징에 도착했습니다.
기차에서 내려보니 플랫폼에 경찰이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함께 온 수련생 몇 명은 내리자마자 경찰에게 둘러싸여 잠시 심문을 받더니 경찰차에 실려갔습니다. 그것을 보고 저는 얼른 남편 팔에 팔짱을 끼었고, 다른 몇몇 수련생들과 함께 경찰 옆을 자연스럽게 지나 무사히 플랫폼을 빠져나왔습니다.
우리는 청원사무실 방향으로 가는 시내버스에 올라탔습니다. 오후 2시에 역에 도착했던 터라, 버스가 푸유가(府右街)에 닿았을 때는 이미 인도 위에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파룬궁수련생들이 가득 서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늘어선 수련생들을 바라보니, 마음이 아픈 건지 감격스러운 건지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많은 수련생들이 서로 아무도 모르는 사이지만 하나의 공동 소원을 위해 이곳에 모인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친근하게 느껴지던지요! 저는 주위 수련생들과 서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나눴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행기로 먼저 도착했던 같은 지역 수련생들을 만나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 앞 멀지 않은 곳에는 총을 메고 구간마다 서 있는 경찰들이 있었습니다. 파룬궁수련생들은 모두 조용히 서 있었고, 연세 있는 분들은 뒤쪽에 앉아 있었으며, 책을 읽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도 조금도 소란스럽지 않았습니다. 모두 매우 자율적이어서 먹을 것과 용품을 전부 자기 가방 속에 넣어두었고 땅에는 쓰레기 하나 없었습니다. 어떤 파룬궁수련생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바닥의 담배꽁초와 쓰레기를 줍고 있어 거리가 깨끗하게 유지됐습니다. 이런 모습을 본 경찰들 중에는 질서를 유지할 필요조차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눈빛에 우호적인 빛을 내비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잠시 후 소식이 한 명씩 전해졌습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음 사람에게 전달됐는데, 기자가 취재를 하러 오더라도 앞다퉈 말하지 말고 한 사람이 대표로 이야기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소식도 전해졌는데, 파룬궁수련생 대표 몇 명이 중난하이(中南海, 공산당 중앙 집무실)에 들어가 중앙 지도부와 회담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청원에 나선 모든 파룬궁수련생들은 여전히 조용히 기다렸습니다.
밤 9시경, 수련생들 사이에서 “결과가 나왔어요! 우리 요청을 받아들였답니다!”라는 말이 전해졌습니다. 잠시 후 중난하이 회담에 참석했던 수련생 대표 한 명이 우리 쪽으로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총리가 우리 요청에 답했습니다. 체포된 톈진 파룬궁수련생들을 석방하고, 민중의 연공에 간여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재천명했습니다. 우리가 제시한 요구가 모두 받아들여졌으니 다들 돌아가십시오.” 수련생들은 기쁨에 넘쳐 질서 정연하게 천천히 해산했습니다.
우리를 또 감동시킨 것은 베이징 현지 수련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각 구역의 수련생들에게 다가가 먼 지방에서 온 수련생들의 숙소를 직접 주선해줬습니다. 베이징 수련생 두 명이 우리를 우커쑹(五棵松)이라는 곳으로 데려가 여관을 찾아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줬던 것이 기억납니다. 참으로 수련생들이 같은 대법을 닦는다는 것이 실감났고, 수련생들의 그 정성스러운 보살핌은 가족 이상이었습니다.
베이징역에서 막혔던 수련생들도 풀려났습니다. 4월 26일 그날, 우리 지역에서 베이징으로 갔던 수십 명의 수련생들이 우커쑹 여관에 다 모여 하루 더 베이징에 머물며 소식을 기다리기로 의논했습니다. 수련생들이 4명씩 조를 이뤄 택시를 타고 다시 중난하이 근처로 나가보니, 거리에는 아직 많은 경찰이 철수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당당하게 중난하이 외곽을 한 바퀴 돌아봤습니다. 4월 27일, 우리 지역에서 청원에 나섰던 수련생들은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27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4·25’ 평화 대청원을 회상하면 눈앞에 그 소중한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히 떠오릅니다. ‘4·25’의 평화 정신은 영원히 역사에 기록될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6년 4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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