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은 내가 미혹의 안개를 뚫고 선을 닦아내게 했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대법은 제가 소년에서 청년으로 성장할 때까지 함께해 주었습니다. 19년의 수련 길 동안 저는 여러 번 대법의 부름을 받아 미혹에서 돌아왔고, 사존의 자비로운 보호와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덕분에 혼미함 속에서 깨어나 정념(正念)을 굳건히 하고 풍파에 맞서며 이 수련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먼지처럼 미미한 저의 생명을 만드시고 대법제자라는 칭호를 부여해 주신 분은 바로 사부님이십니다. 사존에 대한 감사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제 사부님께 제자의 우여곡절 많았던 수행 성장 과정을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마음을 닦고 집착을 제거한 깨달음을 교류하며 서로 도와 함께 제고하고자 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1. 완고한 이기심과 선하지 못함

부모님이 이혼하신 이후, 아버지는 모든 재산을 챙겨 외도 상대와 재혼하셨고, 중병에 걸린 어머니와 어린 남동생, 그리고 저만 남아 서로 의지하며 살게 됐습니다. 저는 낮에는 학교에 가고 밤에는 집에 돌아와 밥을 하고 빨래하며 어머니를 돌봤습니다. 밤에 어머니가 잠드신 후에야 숙제를 시작해 새벽까지 이어갔고, 다음 날이면 온몸에 피로를 가득 안고 등교했습니다. 어머니는 성격이 나약하셔서 손해를 보거나 모욕을 당해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고, 가끔 참지 못하실 때만 제 앞에서 몇 마디 불평을 하셨습니다. 남동생은 부모님의 이혼 때문에 성격이 열등감이 강하고 내성적으로 변했습니다.

이 두 식구를 보호하기 위해 저는 점차 강한 척하고 다투는 법을 배워 자신을 무장했습니다. 누군가 어머니를 해치거나 우리의 이익을 침해할 때면 어머니와 남동생을 뒤에 세우고, 싸움닭처럼 위아래도 없고 장소도 가리지 않은 채 사람들과 다퉜습니다. 제가 화를 낼 때마다 어머니는 화가 나 한숨을 쉬시며 저를 왈가닥이라 부르시며, 여자애다운 예의와 교양이 없다고 꾸짖으셨습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면서 어머니께 꾸지람을 듣자 불균형해진 마음은 아버지를 원망하게 했고, 그의 이기심과 매정함을 증오했습니다. 나아가 주변의 냉담하고 무감각한 친척들까지 싸잡아 미워하며 다 같이 죽어버리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비록 그때 제가 이미 어렴풋하게 대법에 들어왔었지만, ‘인내(忍)’와 ‘선함(善)’ 부분에서 어머니의 권고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으며 제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련생들이 우리집에 들를 때면 제가 화를 낼까 봐 제 눈치를 먼저 살핀 후 조심스럽게 어머니와 대화하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매번 저 때문에 뒷목을 잡으셨고 어머니께 사석에서 하소연하시길, 제가 다 좋은데 성질이 너무 나빠서 아무도 저를 이길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제가 보기에 제 성질이 나쁜 것은 가정 형편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며, 저의 자기방어 수단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병으로 직업이 없으셨고 저와 남동생은 학교에 다녀야 했지만, 아버지의 생활비는 들쑥날쑥했고 온전히 주신 적이 없었으며, 방학만 되면 저희를 내팽개치셨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가끔 임시직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는데, 번 돈은 밥 먹기에도 빠듯했습니다. 저와 남동생은 옷과 신발을 살 돈이 없어 늘 남의 헌 옷을 얻어 입었고, 학교에서는 유명한 빈곤 가정이었습니다. 저는 더 이상 가난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했고, 어머니의 돈을 잘 지켜서 친척에게 빌려주거나 다른 사람을 구제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어머니의 방식을 이해할 수 없었고, 친척이 돈을 빌리러 올 때마다 어머니와 다퉈 어머니를 몹시 괴롭게 했습니다. 비록 제가 수련을 시작했지만 성질을 참지 못했고 선(善)을 닦아내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직장 생활을 시작했고 가정 형편도 점차 좋아졌습니다. 매달 어머니께 생활비를 드렸으며 어머니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사드렸습니다. 저는 제가 인색하지 않다고 생각했고, 어머니를 위해 돈을 쓰는 것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제가 효녀라고 말했으며 외삼촌들도 자주 저를 칭찬하셨습니다. 저는 가난할 때 이익에 대한 마음 때문에 생겼던 이기심과 선하지 못함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의식주가 풍족해진 저도 선량한 사람이 될 수 있을 거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이른바 ‘효행’이 정(情)을 바탕으로 한 배타적인 것이었음을 몰랐습니다. 저는 어머니 이외의 그 누구에게도 돈을 한 푼도 더 쓰려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게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만 선택적으로 보답하고 있었을 뿐, 주변의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버스를 타고 외출할 때마다 길가 담벼락에 붙은 표어를 자주 보게 됐는데, 그중 ‘선(善)’ 자가 유독 크게 확대돼 눈에 띄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인지상정을 초월한 선한 마음을 닦아내기를 원하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21년, 저와 남동생 모두 가정을 꾸릴 나이가 됐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가정을 꾸릴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제가 돈을 모아 남동생을 도와주기를 바라셨습니다. 남동생은 학교를 일찍 그만둬 능력이 없었고 공장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재혼하신 이후, 저와 남동생을 부양하고 남동생의 결혼 비용을 부담하겠다던 약속을 모두 뒤엎고 없던 일로 하셨습니다. 이혼 합의서에 남동생 명의로 이전해주기로 했던 집도 말을 바꿔 서류 절차를 밟지 않으려 하셨고, 대외적으로는 친척들에게 집이 자기 손에 있어야 저희를 쥐락펴락할 수 있고 나중에 늙어서 저희가 모른 척해도 두렵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수련을 시작한 이후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셔서 많은 기술을 익히게 됐습니다. 저는 그림을 배운 적이 없지만 그림을 그려 돈을 벌 수 있었고, 부수입이 제 월급보다 높았습니다. 그 번 돈으로 집에 가전제품을 바꾸고 차도 샀습니다. 어머니 입장에서는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기에, 능력 있는 자식이 능력이 부족한 형제를 돕는 것이 인지상정이었지만, 저는 어머니가 편애한다고 생각하여 어머니와 크게 다퉜습니다. 어머니는 제가 명예와 이익 속에서 완전히 딴사람이 됐고, 수련인의 포용력과 선량함은 조금도 없으며 자식으로서의 책임감도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제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어머니와 불쾌하게 헤어졌습니다.

2023년, 아버지와 재혼한 아주머니가 외도로 가출했습니다. 아버지와 여덟 살 된 아들을 버려둔 채 소식이 완전히 끊겼습니다.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데리고 저희를 찾아와 도움을 청하셨습니다. 어머니는 늙은 아버지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를 보시며, 그들도 구원받으러 온 생명이라 생각하시고 아버지를 도와 아이를 돌봐주기로 동의하셨습니다. 저는 강하게 거부하고 밀어내며 어머니와 끈질기게 다퉜습니다. 어머니가 줏대도 없다며, 당시 아버지가 가정폭력을 휘두르고 외도하며 얼마나 매정했는지 잊으셨냐고 따졌습니다. 아버지가 예전에 우리에게 상처 줬던 일들을 하나하나 들춰내어 어머니가 그 고통스러웠던 나날들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셨고, 꿈에서 사부님께서 아버지와의 예전 원한을 일깨워주신 일을 제게 말씀하시며, 저에게 책을 많이 보고 법공부를 하여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을 내려놓고 그들을 선하게 대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저는 억지로 눈물을 참으며 못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체면을 생각해서 결국 아이가 오는 것을 받아들였습니다. 비록 내키지 않았고 아직 증오를 내려놓지 못했지만, 저는 법을 읽고 마음을 닦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돕기로 선택하신 어머니의 뜻을 제가 거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를 등하교시키고 밤에는 숙제를 봐주셨습니다. 한밤중에 아이가 잠들면 걸레 같은 옷을 벗겨 세탁해 말려두셨다가, 다음 날 다시 입혀 학교에 보내셨습니다. 몇 번 어머니에게 병업 가상이 나타나 제게 아이를 데려오라고 부탁하셨을 때, 저는 차가운 얼굴로 아이에게 험한 말을 퍼부었습니다. 그러자 바로 다음 날 제 몸에 코로나 병업 가상이 나타났습니다. 밤새 고열이 내리지 않아 정신이 혼미해질 무렵, 저는 제 자신이 정말 차갑고 선근(善根)이 없는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비웃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제자로 선택해 주셨는데도, 저는 미련하고 고집스러워 선한 마음을 닦아내지 못했습니다. 완고한 이기심과 선하지 못함이 큰 산처럼 제 마음을 짓누르고 있었습니다. 저는 참으로 사부님의 가르침을 저버렸기에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었습니다.

2. 생사 이별의 재시험

2024년 초, 어머니의 몸에 심각한 병업 가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외출해 일을 보셨습니다. 집에 돌아오신 지 사흘째 되는 날, 어머니는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법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제발 저에게 기회를 한 번만 더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반드시 지난 허물을 뼈저리게 뉘우치고 마음을 닦아 선을 향하며, 열심히 정진하여 어머니가 난을 넘기시도록 돕겠다고 빌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본 것은 사부님의 붉어진 눈시울과 얼굴에 가득한 걱정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정에 얽매여 이기적이고 냉담했으며,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저는 통곡하며 어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죄책감과 후회가 저를 짓눌렀고, 어머니와 함께 수련한 18년의 세월이 눈앞에 생생했습니다. 저 혼자 어떻게 이 길을 계속 걸어갈 수 있을까요?

어머니의 장례식에는 어머니가 예전에 도와주셨던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모두 어머니의 선량한 행적을 이야기하며 떠나심을 안타까워했습니다. 외삼촌은 눈이 붉어진 채 아버지와 끝장을 보려 하셨고, 저는 외삼촌이 과격한 행동을 하실까 봐 껴안고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외삼촌에게 어머니가 아버지를 용서하셨으니, 어머니의 선한 마음과 행실을 존중하여 지난 모든 원한과 미움을 내려놓아 달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저는 외삼촌의 모습이 사실 제 내면의 증오가 진실하게 투영된 것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를 잃은 뼈아픈 고통 속에서 저 역시 원망하고 미워했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 주는 방식으로 내면의 고통을 메우려 했습니다. 마성(魔性)은 이 수련생의 마음을 끊임없이 두드렸습니다. ‘너는 정을 내려놓을 수 있느냐? 너는 증오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 너는 자비와 선한 마음을 닦아낼 수 있느냐?’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사흘째 되던 날 밤, 12시 발정념 때 사부님께서는 어머니가 자신의 천국 세계로 돌아가신 모습을 제가 보게 해주셨습니다. 그곳의 중생들은 환호하며 기뻐했고 그 장면은 신성하고 장관이었습니다. 저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저에게 어머니에 대한 정을 내려놓도록 일깨워주신 것이며, 어머니가 이미 아주 좋은 곳으로 가셨으니 더 이상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지 말라고 알려주신 것임을 알았습니다. 못난 제자가 또 사부님께 걱정을 끼쳐드린 것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두 달째 되던 날, 아버지는 제게 전화를 걸어 중풍 증세가 있는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셨고 의사는 급성 뇌경색 진단을 내렸습니다. 아버지는 그날 밤 혈전 용해 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 입원하셨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입원 수속을 마치고 집안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고모에게 일일이 알렸습니다. 고모는 전화기 너머로 통곡하시며 제 팔자가 왜 이리 기구하냐고 하셨습니다. 저는 고모를 안심시켜드린 후, 남동생과 아버지를 병간호할 일을 상의했습니다. 매일 밤 저는 집에 돌아와 어린 남동생을 돌보았고, 아침에 그를 학교에 보낸 이후, 다시 병원으로 가서 아버지를 돌보며 고모와 교대로 밥을 가져다드렸습니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입이 돌아가 있었습니다. 제가 죽을 한 입 떠먹여 드리면 겨우 드셨고, 숨이 가빠질 때면 입안의 음식물과 침을 사방으로 기침하며 뱉어내셨습니다. 저는 그것을 조금씩 닦아내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혀 드렸습니다. 아버지가 한 달 동안 입원해 계시는 동안 제 몸무게는 6kg이 빠졌고, 완전히 수척해지고 까맣게 탔습니다. 밤에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어머니가 그리울 때면 홀로 묵묵히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법 암기를 했습니다. 다음 날이면 기운을 차리고 마음을 다잡아 다시 아버지를 돌보러 갔습니다.

아버지가 퇴원하신 이후, 많은 친척이 집으로 병문안을 왔습니다. 아버지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다 우리 딸 덕분이야. 딸이 아니었으면 내가 어떻게 지금 이렇게 될 수 있었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변 이웃들도 제게 칭찬을 아끼지 않으며 선량하고 꿋꿋하다고 했습니다. 친구는 제 행동에 깊이 감동하여 대법 수련에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친척들은 저에게 아버지와 나중에 결산을 확실히 하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입원하고 치료받은 돈을 제게 갚게 하거나, 아버지가 예전에 남동생에게 주겠다고 약속했던 집을 이혼 합의서의 요구대로 남동생 명의로 이전하게 하라고 했으며, 아버지가 아주머니를 찾아가 막내 동생의 양육비를 받아내게 하라고 부추겼습니다.

저는 그들의 말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제가 수련인임을 알고 있었고, 제 아버지를 포함해 모든 사람을 선하게 대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 명혜주간(明慧週刊)에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수련생의 글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저는 사부님께서 어디에나 계신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습니다. 제 손가락은 아버지의 밥을 지어드리다 베여 세 바늘을 꿰맸는데, 저는 파상풍 주사를 맞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친 후 완치될 때까지 저는 전혀 통증을 느끼지 못했고, 마치 제가 다친 것이 아닌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은사(恩師)께서 제자를 대신해 고통을 감당해 주시고 업채(業債)를 갚아주셨음을 압니다. 제가 고립무원이 되어 의지가 꺾였을 때 격려와 희망을 준 수련생들에게 감사하며, 수고를 마다하지 않으시고 제자를 보호해 주시는 사존께도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3. 미혹의 안개를 뚫고 선한 마음을 내다

어머니는 예전에 쓰신 한 교류 원고에 이렇게 적으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그와 함께 생활해야만 그를 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매번 만날 때마다 그를 구할 기회다. 어린아이는 내가 학교에 데려다주는 길에 이미 소선대에서 탈퇴시켰으니, 그가 구원받는 것도 조만간의 일이다.”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신 이후, 저는 틈이 날 때마다 아버지께 진상을 알렸고, 전통문화 이야기를 들려드리며 아버지의 선한 마음을 일깨웠습니다. 아주머니와 타인에 대한 증오를 내려놓으라고 권했습니다. 예전에 어머니가 아버지께 진상을 알릴 때는 아버지가 험악하게 화를 내며 죽어도 공산당을 따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 제가 아버지께 진상을 알리면 묵묵히 들으십니다. 가끔 제가 중국공산당(중공)의 유언비어를 믿고 대법을 적대시하지 말라고 권하면, 아버지는 “너희가 좋은 건 나도 안다. 난 너희를 반대하지 않는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언젠가 아버지가 진상을 깨닫고 구원받으실 거라 생각합니다.

어쩌면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그 부정적 교훈만 받아들이는 어리석은 제자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부님께서는 저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오늘날까지 줄곧 저를 보호해주셨으며, 선량한 어머니를 제 곁에 짝으로 안배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일을 겪었으니 저라는 쇠기둥도 이제 바늘로 갈리지 않았을까요? 사부님의 고심 어린 안배와 거듭 제게 진선인(眞·善·忍)을 가르쳐 주시는 홍대(洪大)한 자비를 제가 어찌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과거의 저는 어머니의 품 안에서 어머니를 따라 함께 수련했고, 어머니의 독촉에 의지해 정진했으며, 아버지의 도움과 생활 속의 세심한 보살핌에 의존했습니다. 후천적으로 형성된 안일한 마음 때문에 저는 어머니의 날개 아래에서 줄곧 자라지 못했고, 오히려 어머니에 대한 정의 속박을 가중시켜 구세력이 어머니의 신체를 박해할 틈을 타게 했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 후, 저는 대법으로 어머니의 병이 치유되기를 원했던 저의 근본적인 집착을 찾아냈고, 대법 수행 중인 어머니가 가져다주는 낙관과 포용을 탐냈음을 깨달았습니다. 정작 제 자신은 수행에서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이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어머니가 안 계셔도 너는 수련할 것인가? 어머니의 도움이 없어도 너는 여전히 수련생인가?’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지난 1년 동안 저는 제가 무시하고 회피하며 알면서도 범했던 문제들을 똑바로 마주하기 시작했고, 진지하게 안으로 찾았습니다. 한때 남녀 간의 정을 내려놓지 못해 휴대폰 인터넷에 빠졌고, 휴대폰 인터넷에 물들어 이기적이고 냉담하게 변해 인간 세상의 명예와 이익, 환상에 집착했습니다. 명예와 이익을 추구하느라 물욕을 탐했고, 타인의 헌신만을 바랐으며 안일한 마음을 방종하고 고생하기를 거부했습니다. 가정 수련 환경에 기생하는 덩굴 식물처럼 거대한 나무로 자라지 못했고, 대법제자의 책임과 사명을 짊어질 수 없었습니다. 법난(法難)이 나타나고 많은 어린 수련생들이 션윈(神韻)을 통해 사람을 구하는 최전선에서 온갖 고생을 견뎌내는 것을 알게 되자 깊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자비와 선한 마음을 닦아내지 못한다면, 어떻게 세 가지 일을 잘해내어 자신과 인연 있는 중생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난해 저는 부업으로 돈을 벌던 1인 미디어 플랫폼을 폐쇄했습니다. 이익에 대한 마음을 내려놓고 본업만 충실히 해내며, 남은 시간은 전부 법공부와 연공, 발정념에 사용하고 직장 환경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속인 사회에 오염되는 것이 두려워 정식 직장을 포기하고 자유업에 종사했는데, 결과적으로 안일한 마음에 틈을 보여 경제적 불안정이 수련을 교란하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인터넷 고객을 유치한다는 핑계로 오랫동안 속인 매체에 갇혀 사회에 색욕심 범람을 조장했고, 사부님께서 거대한 감당으로 바꾸어 오신 소중한 시간을 낭비했습니다. 집착이 두려워 또 다른 집착에 빠지고, 빙빙 돌며 지름길을 가려 했던 것은 그저 자기 기만에 불과했습니다.

법공부를 통해 저는 더 큰 용기를 얻게 됐습니다. 예전에는 색욕에 물들까 두려워 가정을 꾸리기 싫어했고, 사회의 나쁜 습관이 두려워 일하러 나가기 싫어했으며, 관념이 주입될까 두려워 사람들과 교류하며 진상을 알리기 싫어했습니다. 이제 그런 두려움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제 마음은 넓고 평화로워졌습니다. 낮은 경지의 신은 자신보다 높은 생명의 존재를 믿지 못하고, 속인은 수행자의 경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께서 혼탁한 세상에 내려와 우리를 제도하시는데, 제가 만약 속인의 관념과 행동 습관을 흠잡고 비판한다면 그것은 수행자로서 저의 포용력과 경지가 아직 부족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또 어떻게 자비심을 내어 진상을 알리고 그들을 구원받게 할 수 있겠습니까? 법(法)은 우주 대법입니다. 법 위에서 수련하기만 하면 넘지 못할 난(難)은 없습니다.

대법 수련은 성질 급하고 이기적이었던 저를, 고생을 낙으로 삼고 타인을 선하게 대하는 수련생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심과 대법 안에서 오직 얻기만 하려 했던 사심(私心)을 내려놓고, 어머니에 대한 좁고 편협한 정을 닦아내며, 중생을 구하려는 선한 마음과 자비를 닦아냈습니다.

저는 진심에서 우러나와 제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아버지는 제가 난(難) 속에서 금체(金體)를 단련할 기회를 제공해 주셨고, 제 수행의 정념을 성취시켜 주셨습니다. 법 안에서 성장한 이후의 저는 온화하고 평온하며 도량이 넓어져, 주변의 모든 사람을 포용하고 이해하며 그들의 친근하고 사랑스러운 장점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저는 대법 안에서 다시 돛을 올리고 출항하여 마지막 기회를 소중히 여기며, 선한 마음과 선한 행실로 저와 인연 있는 중생을 구할 것입니다.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대법에 감사드립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은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6년 3월 2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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