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 집안은 A성을 가진 큰 가문으로, 자손은 번성했으나 화목하지는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 할아버지께서는 지역 인민공사 대대(7~8개 마을이 하나의 대대를 이룸)에서 회계로 근무하셨습니다. 할아버지는 성품이 정직하고 인망이 두터웠으며 대대의 복지를 위해 애쓰셨기에 농민들의 존경을 받으셨습니다.
1980년대 초, 우리 마을에는 C성을 가진 악독한 집안이 있었는데 아들 일곱에 딸 하나를 둔 집이었습니다. 그들은 아들이 많다는 것을 믿고 마을에서 온갖 횡포를 부렸습니다. 자기네 소와 돼지를 함부로 남의 밭에 몰아넣어 농작물을 뜯어먹게 하고, 밤이면 남의 집 마당에 있는 큰 나무를 베어가거나 닭과 오리를 훔쳐 갔습니다. 불만을 제기하면 오히려 트집을 잡아 사람을 구타하니, 마을 사람들은 화가 나도 감히 말을 못 하고 할아버지를 찾아가 공정한 처리를 부탁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 집안은 현(縣)에 있는 친척 관리를 뒷배로 삼아 할아버지의 말도 듣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두 집안은 원수가 됐습니다.
1980년대 중반, 할아버지께서 대대 회계직에서 물러나자 그 집안은 더욱 거리낌 없이 할아버지와 우리 가족을 모욕하고 폭력을 휘둘렀습니다. 할아버지 댁의 논과 텃밭을 이유 없이 차지했고, 우리 집안은 매번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고모 세 분과 큰아버지 두 분이 온몸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맞았고, 할머니는 더는 때리지 말아 달라고 무릎 꿇고 빌기까지 하셨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양쪽이 싸우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고모들의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뽑히고 큰아버지들이 며칠씩 일어나지 못하는 참상을 보며, 어린 마음에도 이유 없이 우리를 괴롭히는 그들에 대한 증오심이 불타올랐습니다. 억울함을 호소하려 해도 들어주는 곳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우리를 동정하면서도 C집안의 세력이 무서워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1990년대 초, 가족들은 상처 많은 그 마을을 하나둘 떠났습니다.
어릴 적 증조할머니와 할머니는 늘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증손아, 꼭 성공해서 A가문의 원수를 갚아야 한다.” 저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중에 반드시 C집안이 피로 갚게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복수를 준비하며 몸을 단련했습니다. 독학으로 무술을 익히고 싸움 실력을 키웠습니다. 학업은 중등전문학교에 그쳐 고위 관리가 될 기회는 없었지만, 몸을 건장하게 만들어 훗날 사촌 형제들과 함께 C집안을 습격할 생각을 했습니다. 그들을 불구로 만들거나 죽여버릴 계획을 수없이 세웠습니다.
1996년 3월, 우연히 수련생을 만나 홍법을 접하고 그날 밤 공원에서 사부님의 9강 녹음 설법을 들었습니다. 첫 강의는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다음 날 계속 듣다 보니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게 되어 9강을 모두 들었습니다. 아주 신묘하면서도 천만 년에 한 번 만날까 말까 한 대도(大道)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해 불가와 도가 서적을 많이 읽어 수련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지만, 사부님처럼 명쾌하게 설명해주신 분은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파룬따파(파룬궁) 수련에 입문했습니다. 당시 학생이었던 저는 매일 아침 공원에서 연공하고 저녁에는 수련생들과 법공부를 했습니다. 모르는 사이에 심성이 제고되어 싸움을 즐기던 성격이 온화하고 선량하게 변했습니다. 땅에 떨어진 돈도 줍지 않았고 덕을 잃지 않기 위해 남의 이익을 탐하지 않았으며, 예전에 훔쳤던 자전거도 돌려주었습니다. 집안일도 거들고 어머니와 다투지 않자, 저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제가 변했다고 칭찬했습니다. 어머니도 효자가 됐다며 대법을 매우 긍정적으로 생각하셨습니다. 저는 주변 친척과 친구들에게 대법을 소개했고, 한 동창은 수련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1. 원한을 내려놓다
수련한 지 두 달쯤 지났을 때 문득 큰 문제가 떠올랐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하는 내가 어떻게 복수를 하지? 할아버지와 할머니, 친척들에겐 뭐라고 설명해야 하나?’ 며칠을 고민해도 뾰족한 수가 없었습니다. 법리(法理)에서 깨달으니 가문의 원한은 업력 때문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조상이 C집안을 괴롭혀서 이번 생에 빚을 받으러 온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다시 보복하면 이 빚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후대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만약 제가 원한을 내려놓고 C집안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이 빚은 여기서 끝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십수 년 묵은 원한을 하루아침에 내려놓기가 어디 쉽겠습니까? 몇 년이 지나도록 복수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단체 법공부를 마치고 자문했습니다. ‘너는 진수(眞修)제자인가? 사부님께서는 대법제자가 법의 요구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C를 해치거나 죽인다면 감옥에 갈 것이고 대법에 먹칠하게 된다. 나는 대법에 누를 끼칠 수 없다. 복수를 포기하자.’ 그렇습니다. 저는 복수를 포기하기로 했습니다. 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악으로 악을 갚을 수는 없었기에 가문의 원한을 제 선에서 끝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자 온몸이 가벼워졌고, 오랜 세월 가슴을 짓누르던 증오를 풀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가족들도 제 뜻을 알고 별말이 없었고, 수십 년간 이어진 가문의 원한은 그렇게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C는 결국 온갖 악행 끝에 응보를 받아 누군가에게 칼에 찔려 반죽음이 되었습니다. 선악에는 보응이 있다는 천리(天理)가 증명된 셈입니다.
2.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다
1999년 7월 20일, 중공(중국공산당)이 돌연 파룬따파 박해를 시작하며 유언비어를 퍼뜨리자 아는 수련생들이 수련을 그만두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파룬따파가 천법(天法)이며 진정한 수련임을 알았기에, 중공이 왜 역행하며 대법을 탄압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끝까지 수련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건 잘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시 저는 직장에서도 ‘진선인(眞·善·忍)’의 기준에 따라 처신했습니다. 작은 반장을 맡았지만 공적인 이익을 탐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남을 먼저 배려했습니다. 야간 근무 때도 요령 피우지 않고 성실히 일해 동료와 상사의 칭찬을 받았습니다. 1999년 11월 베이징으로 청원하러 갔다가 돌아와 불법 구류됐고, 얼마 후 직장에서 대기발령 조치를 받았습니다.
사부님의 경문 ‘이성(理性)’을 읽고 수련생들과 등사한 진상 자료를 밤마다 배포했습니다. 2001년 섣달그믐날 밤, 자료를 배포하다 납치돼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구치소에서도 저는 사람들을 선하게 대했고 대부분 수감자가 파룬따파를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설 이튿날, TV에서 천안문 분신 조작극이 방송됐습니다. 저는 단번에 가짜임을 알아채고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천안문에 가봐서 아는데, 경찰이 소화기를 메고 순찰하다가 그렇게 빨리 불을 끄는 건 불가능합니다. 왕진둥의 가부좌 자세도 틀렸고 파룬궁수련생은 살생이나 자살을 하지 않습니다. 왕진둥의 옷과 머리카락이 불에 타지 않은 것도 말이 안 되고, 휘발유 반 병을 마셨다는 류 씨도 거짓말입니다. 휘발유는 조금만 마셔도 위세척을 해야 하고 반 병이면 중독사합니다. 이건 중공이 파룬궁에 죄를 뒤집어씌우는 겁니다.” 사람들은 제 설명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중공의 보도를 믿지 않았습니다.
2002년 출소 후 사부님의 신경문 ‘미국 플로리다 법회 설법’, ‘북미 순회 설법’, ‘도항’ 등을 읽고 대법의 심오함과 정법시기 대법제자의 책임을 깊이 깨달았으며, 사부님의 위대하심을 더욱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 몇 년간 저는 갈증 난 사람처럼 매일 법공부와 발정념(發正念)을 했고 수련생들과 교류했습니다. 사람을 만나면 중공의 박해와 대법의 아름다움을 알렸습니다.
2003년 가을, 직장에서 칭하이성의 작은 현으로 파견을 나갔습니다. 그 외진 곳에서 스티커와 사인펜을 사서 ‘파룬따파는 좋습니다(法輪大法好), 진선인은 좋습니다(眞善忍好)’라고 써서 산골 마을과 공원에 붙였습니다. 그곳의 인연 있는 사람들이 진상을 알고 대법을 인정하기를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결국 직장의 ‘610’ 조직은 제가 수련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계약 만료를 핑계 삼아 일방적으로 해고했습니다. 실직 후 전국을 돌며 온갖 일을 다 했습니다. 건설 장비 운전, 발 마사지, 식당 면 요리사, 새싹채소 재배, 공사장 짐꾼 등등. 어디를 가든 대법의 요구대로 좋은 사람이 되어 남을 먼저 배려했고 기회가 닿는 대로 진상을 알리고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권했습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한번은 기차에서 맞은편 할머니가 배를 움켜쥐고 괴로워하셨습니다. 제가 도와드릴까요 하고 묻자 배가 너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기차 안이라 약도 없으니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겠다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마음속으로 외워보시라고 했습니다. 파룬따파는 불가(佛家)의 고덕대법이며 천안문 분신은 조작극이라고 설명해 드리고, 이 아홉 글자를 외우면 복을 받는다고 알려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입을 달싹이며 외우시다가 잊어버리면 다시 물으셨습니다. 얼마 후 할머니는 “배가 다 나았네, 정말 영험하구먼!”이라며 신기해하셨고, 진상을 더 듣고는 집에 가서 대법제자를 찾아 수련하겠다고 하셨습니다.
광둥성의 새싹채소 기지에서는 기술을 배우러 온 낯선 여성에게 무료로 기술을 가르쳐주며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해 기쁘게 탈퇴시켰습니다. 이런 사례는 너무나 많습니다. 제가 만난 수많은 인연 있는 사람이 진상을 받아들이고 삼퇴했습니다.
3. 매일 법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안으로 찾아 심성을 닦다
20여 년의 실제 수련 과정에서 저는 법공부가 안으로 찾기, 심성 제고, 집착 제거, 신사신법(信師信法·사부님과 법을 믿음)에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했습니다. 법을 착실히 배우고 매일 정심(靜心)하여 법공부를 하면, 일사일념(一思一念)이 법에 부합하지 않을 때 금방 알아차려 사심을 닦아내고 무사무아(無私無我)의 정각(正覺)에 이를 수 있습니다. 집착심을 없애는 정도는 신사신법과 정비례합니다. 집착이 적을수록 믿음이 굳건해지고 정념이 강해지며 대법의 위력이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색욕심을 없애는 게 참 힘들었습니다. 속인 시절 본 음란물 때문에 색욕심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아, 꿈속이나 일상에서 노출이 심한 여성을 보거나 인터넷 음란물을 접하면 며칠씩 기분이 가라앉고 낙담했습니다. 물론 지금은 아니지만, 예전에는 생각 속에서 색욕을 배척하고 인터넷과 거리를 뒀음에도, 색(色)이라는 고비를 넘길 때 기복이 있었습니다. 색욕의 생각이 스칠 때 정념으로 즉시 배척하지 않으면 다른 잡념이 밀려와 호기심을 자극하고 결국 사악한 생각에 통제되어 정념을 발할 힘조차 잃곤 했습니다. 꿈속에서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전법륜(轉法輪)의 ‘나는 일반인이 아니며, 나는 연공인(煉功人)이다. 당신들은 나를 이렇게 대하지 말라. 나는 法輪大法(파룬따파)를 수련하는 사람이다’라는 구절을 외웠습니다. 좀 나아지긴 했지만 교란은 여전했습니다. 저는 매번 자문했습니다. ‘너는 사부님과 법을 믿느냐? 믿는데 왜 색욕심을 내려놓지 못하느냐?’ 수심단욕(修心斷欲)에 관한 글을 읽고 안으로 찾았지만 뿌리가 뽑히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한 사람이 의자에 묶인 채 목이 베어져 있고, 옆에서 누군가 억지로 무언가를 목구멍에 붓는 장면을 봤습니다. 깨어나서 깨달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일깨워주신 겁니다. 제 색욕심이 제거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는, 다른 공간의 생명이 제 몸에 나쁜 물질을 강제로 주입하고 있었는데 제가 멍하니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정념을 강화하며 ‘구세력의 안배를 부정하고 그들이 주입하는 부패물질(敗物)을 원치 않는다’는 강력한 일념을 내보냈습니다. 색욕의 교란은 줄었지만 여전히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으로 저는 또 하나의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나’라는 개념은 구우주 지구상의 육신과 그 육신이 일으키는 일사일념을 포함합니다. ‘무아(無我)’란 이 육신과 두뇌의 생각을 진정한 자신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은 구우주의 산물이며 구세력의 안배일 뿐 진정한 제가 아닙니다. 진정한 자아는 무사무아이며 대법에 동화된 존재입니다.
이 법리를 깨닫는 순간 명확해졌습니다. 색욕이라는 생각은 구세력이 안배한 생명이나 마(魔)가 제 공간장에 집어넣은 것이지 제가 원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쓰레기입니다. 사부님의 일깨움에 감사드립니다. ‘나’라고 여겼던 것이 실은 구우주의 부패물질임을 깨닫고 색욕심의 정체를 똑똑히 파악하자, 더는 그것이 법공부를 방해하거나 저를 혼란스럽게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사부님과 법을 믿으니 사부님께서는 일깨움을 통해 법리에서 제고하고 승화하여 집착을 없애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의 자비와 대법의 위대함을 더욱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4. 가문의 유전병이 낫다
증조할아버지는 40세에 폐병으로 요절하셨습니다. 할아버지도 40대 초반에 폐결핵을 앓고 50대에 폐기종이 되어 기침을 달고 사시다가, C집안의 괴롭힘까지 겹쳐 60대에 한을 품고 돌아가셨습니다.
아버지 역시 40대에 폐결핵, 50대에 폐기종을 앓아 숨쉬기를 힘들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90년대부터 제게 “가문의 폐병이 3대째 이어지고 있으니 담배, 술, 비, 외식을 피하라”고 신신당부하셨습니다.
2001년 구치소에서 박해받을 때 저에게도 폐결핵 증상이 나타났습니다. 아버지는 가문의 저주라며 걱정하셨지만 저는 “저는 파룬따파를 수련하니 사부님께서 관여해주셔서 괜찮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출소 후 법공부와 연공에 매진하자 두 달 만에 완치되었고 재발도 없었습니다. 지금 저는 50세지만 폐 기능이 아주 좋습니다. 가문의 유전병이 파룬따파 수련으로 완전히 사라진 것입니다! 저를 구해주시고 건강한 삶을 주신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립니다.
5. 세상 사람들이 대법제자의 인품을 존경하다
10년 전, 지인이 급히 할 말이 있다며 가게로 부르기에 갔더니 낯선 부인이 와 있었습니다. 부인은 저를 훑어보더니 나이를 묻고는 좋은 혼처가 있다고 했습니다. 친척 조카딸이 20대 중반인데 내성적이지만 살림 솜씨가 야무진데 아직 짝이 없다고 했습니다. 처녀의 부모가 연로해 사윗감을 걱정하던 차에, 파룬궁수련생들의 인품이 훌륭하다는 소문을 듣고 파룬궁수련생을 사위로 삼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미 결혼했기에 부인의 신뢰에 감사를 표하고 정중히 거절하며 조카딸이 좋은 배필을 만나길 축복해주었습니다.
제 수련생 친구의 일화입니다. 그의 직장 상사였던 늙은 과장은 친구의 인품을 매우 아껴 20년 지기로 지냈습니다. 2018년, 과장은 친구에게 식사 대접을 하며 정중하게 아들을 부탁했습니다. 과장의 아들은 30대지만 지능이 10세 수준이라 자립이 어려웠습니다. 과장은 자신들이 죽으면 집과 유산을 줄 테니 아들을 돌봐달라고 했습니다. 믿을만한 친척도 없고 오직 파룬따파를 믿고 대법제자의 인품을 신뢰했기에 부탁한 것입니다. 제 친구는 아들을 돌봐줄 수는 있지만, 남의 집과 재산을 탐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지켜 재산 상속은 거절했습니다.
6. 여러 차례 대법의 신기함과 위대함을 목격하다
법을 얻은 지 한 달도 안 됐을 때입니다. 동창과 식당에 갔는데 축구공이 날아와 동창을 맞혔습니다. 상대방 무리가 우리를 둘러싸고 시비를 걸었고 동창은 식칼을 집어 들었습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저는 ‘나는 대법제자다. 사부님께서 때려도 맞받아치지 말고 욕을 해도 대꾸하지 말라고 하셨으니, 때리면 그냥 몇 대 맞고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살기등등하던 상대방이 갑자기 아무 말 없이 공을 들고 가버렸습니다. 저와 동창은 어리둥절했습니다. 제가 대법의 기준을 지키려 하자 사부님께서 갈등을 해소해 주신 것임을 짐작했습니다.
2000년대 어느 여름 밤, 수련생과 오토바이를 타고 외진 시골에 진상 전단을 배포하고 돌아오다가 사복 경찰에게 납치됐습니다. 불법 심문에서 묵비권을 행사했고 한밤중에 병원으로 끌려가 신체검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정념을 발해 구세력의 박해를 부정하며 의사에게 “저는 대법제자이며 좋은 사람입니다”라고 진상을 알렸습니다. CT 촬영을 할 때 속으로 사부님께 ‘감옥은 대법제자가 있을 곳이 아닙니다’라며 가지(加持)를 청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구치소에 가니 군의관이 저를 알아보고 “왜 또 왔나?”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경찰이 강제로 끌고 왔다고 했습니다. 군의관은 검사 결과를 보더니 손을 저으며 “이 사람은 못 받는다”고 했습니다. 경찰이 사정해도 소용없어 결국 풀려났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경찰이 뜬금없이 병원에 가보라고 하더군요. 나중에 같이 잡혔던 수련생에게 들으니, 경찰이 “그 사람 내장이 다 썩어서 며칠 못 산다”고 했답니다. 사부님께서 가상(假相)을 연화(演化)하여 저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2013년 한여름, 퇴근길에 큰 화물차를 얻어 탔는데 차가 전복됐습니다. 저는 운전석 반대편 아래에 깔렸고 덩치 큰 운전사까지 제 몸 위로 덮쳤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아주 평온했습니다. 수련인은 사부님의 보호를 받으니 괜찮을 거라고 확신했고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대형 화물차가 뒤집히면 충격과 깨진 유리에 다치기 마련인데 저는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유리창도 멀쩡했습니다. 운전사도 신기해했습니다.
대법 자료가 든 메모리카드를 작은 비닐봉지에 넣어 아내 편에 처가에 보관했다가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1년 뒤 찾으려니 없어서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부님께 찾아달라고 빌고 메모리카드와 소통하며 돌아오라고 염원했습니다. 작년 가을, 재킷 주머니를 무심코 만졌는데 그 비닐봉지가 들어있었습니다! 2~3년 만에 메모리카드가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이런 일을 몇 번 겪으며 저는 사부님께서 늘 제 곁에 계심을 깊이 느꼈습니다. 대법 수련은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며 후회는 없습니다. 앞으로도 신사신법하며 세 가지 일을 잘해 사전(史前)의 큰 서약을 완수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6년 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26/50204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2/26/50204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