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유럽 천국악단 단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음악가이며 2020년부터 대법 수련을 시작했습니다. 이번 교류는 주로 두 가지 측면을 포함합니다.
1. 사회 속에서, 그리고 수련 집단 속에서의 내 느낌
어린 시절부터 저는 사회 속에서 늘 불편함을 느꼈고 이 문제는 줄곧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사회적 환경 속에서 자연스럽게 적응하며 관계를 맺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잘 어울려 놉니다. 하지만 저는 달랐습니다. 유치원 시절조차도 제 기억 속에는 두려운 감정만이 남아 있습니다. 마치 거대한 ‘인파’가 저를 향해 밀려오는 것 같았고 저는 주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부모님은 또래 아이들과 비교해 제가 그다지 ‘정상적이지’ 않게 보인다고 느끼셨고 이후 의사는 제게 자폐증 진단을 내렸습니다. 그 일로 저는 늘 제가 이 사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런 관념은 마치 목에 걸린 가시처럼 저를 다른 사람들과 갈라놓았습니다. 마치 유리 장벽이 있어서 제가 사람들과 진정으로 접촉하는 것을 막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형 법공부 교류회에 참가하려 할 때마다 늘 무언가가 저를 가로막았고, 자폐증이라는 생각도 함께 떠올랐습니다.
수련 초기 단계에서 저는 천국악단에 입단했습니다.
저는 이미 악단 안에서 하나의 확정된 역할을 맡고 있었고, 이것이 사부님께서 제 수련의 길을 위해 안배해주신 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악단 안에서 이미 고정된 자리가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저로 하여금 수련 공동체 안에서 일종의 소속감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느낌은 매우 빠르게 발전했습니다. 악단과 함께 연주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수련인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또한 저 자신도 이스라엘 현지의 수련 환경 속으로 녹아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됐습니다.
그러나 전국 법공부 교류회에 진정으로 들어가는 데에는 여전히 여러 가지 장애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전국 교류회에서 제 체험을 나누고 마음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때, 한 수련생이 자리에서 일어나 감정이 실린 목소리로 제가 말을 분명하게 하지 못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그것은 그야말로 악몽이 현실이 된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마음을 열었는데 그들은 저를 거부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후 다시 체험을 나눌 때도 똑같은 일이 벌어졌고 같은 수련생이 또다시 일어나 같은 말을 했습니다. 그것은 제 마음을 깊이 건드렸습니다.
그러나 수련인으로서 저는 선(善)을 닦고 인(忍)을 닦기 시작했고, 그 무렵 저는 막 학교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제가 특히 학생들을 포함해 매 사람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를 체험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저는 점차 넓고 큰 자비심을 기르기 위해 노력하게 됐고, 더 이상 자신의 생각 속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람의 감정과 수요를 위해 더 많은 공간을 내어 주려고 했습니다. 사실 수련인이라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이로써 저는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저는 하나의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제가 한 집단 안에 있을 때, 그 집단에 속한 모든 사람을 함께 고려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가 백 퍼센트 그 자리에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전에는 제가 말하고 나서 듣고, 다시 말하고 또 듣는 식이었지만, 이 두 가지는 서로 분리돼 있었습니다. 이제 그것들이 서로 연결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수련생의 일깨움이 날 도와주다
최근 저는 한 수련생의 집에서 열린 하루 단체 법공부에 참가했습니다. 우리 네 명은 하루 종일 함께 법을 공부하고 교류했습니다. 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한 수련생이 제게 말을 좀 더 분명하게 해 달라고 일깨워 주었습니다. 저에게 이것은 하나의 피드백이었고 또한 매우 중요한 지적이었습니다.
만약 제가 속인의 마음으로 이 말을 봤다면 이 한마디는 분명 제 마음을 강하게 건드렸을 겁니다. 그러나 그 일은 집중해서 법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일어났고, 그 말은 제가 잘 알고 마음이 놓이는 한 수련생에게서 나왔기 때문에 저는 두 가지를 떠올렸습니다. 첫째, 저는 이 말의 배후에 사실 사부님의 법리가 이끌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동시에 그것은 오랫동안 저를 따라다닌 심각한 문제를 건드렸습니다. 즉, 저는 사회 속에서 과연 진정한 제 자리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그 수련생이 그 말을 했을 때, 그것은 즉시 제 마음의 가장 민감한 부분을 건드렸지만, 저는 그 순간 동시에 알았습니다. 저는 반드시 이것을 돌파해야 한다는 것을요!
저는 점점 더 사람들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왜냐하면 저 자신이 우주와 정체(整體, 공동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법을 읽을 때, 제가 다른 사람들을 마주하고 읽고 있으며 또한 그들을 위해 읽고 있다는 것을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벽은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진지하고 분명하게 읽고 또 전체 과정을 주의 깊게 바라보기 시작했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예전에 제가 내뱉었던 모든 말은 제 마음속의 불안과 불분명함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하고 있었다는 것을요. 그러나 이제는 제가 분명하게 읽고, 분명하게 말할 때 모든 것이 밝아졌습니다.
이어 저는 일상생활 속에서 사실 아주 강한 하나의 관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어떤 사회적 환경에 있든, 모든 사람이 끊임없이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확인해 주기를 바라고, 또 저를 그들 안에 받아들였다는 신호를 계속 보내주기를 바란다는 것입니다.
이 점은 ‘전법륜’ 제5강에서 말한 ‘일심불란(一心不亂)’에 대한 부분을 새롭게 이해하게 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머릿속에 잡념이 가득 차 있다면, 그 잡념이 바로 서로 사이에 하나의 장애를 형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녀(그 피드백을 준 수련생)에게 교류회 기간 동안 제가 느꼈던 감정들을 나누었습니다. 그 수련생은 우리가 동시에 모든 사람을 관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주의력은 한정돼 있고, 또 집중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녀는 제가 매번 두세 사람에게만 집중하되, 동시에 모든 사람을 돌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지 말라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이 이해는 저를 단번에 훨씬 가볍게 해주었습니다. 제 느낌은 마치 빽빽하고 조화롭지 못하던 음들의 덩어리가 또렷하고 밝은 화음으로 바뀐 것과 같았습니다.
2. 천국악단에서의 경험, 그리고 그것이 음악가인 저에게 미친 영향
2022년 9월 ~ 폴란드 ‘유럽의 길’ 행사
2022년 9월 폴란드에서 열린 퍼레이드에서 저는 처음으로 ‘천국악단’을 알게 됐습니다. 저는 음악가입니다. 악단의 연주를 들었을 때, 그것은 제가 들은 음악 가운데 ‘션윈’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라고 느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아테네 퍼레이드
저는 2023년 10월 7일 아테네에서 퍼레이드에 참가했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합니다. 그날 아침, 휴대전화에서 평소보다 훨씬 빈번하게 경보음이 울렸기 때문에 이스라엘에서 매우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저는 여전히 아테네에서 사람을 구하는 활동에 참여해야 했고 연주도 잘 해내야 했습니다. 외부 상황에 끌려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는 여전히 가족의 상황이 걱정됐습니다.
저는 제 느낌을 악단 단원들과 나누었고 그들은 저를 지지해 주며 제가 차분함과 안정을 유지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저는 제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은 정념을 유지하고, 하나의 정체로서 퍼레이드에 참여해야 할 좋은 기회였습니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이전의 모든 생각과 걱정은 마치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졌습니다. 제 사고는 비교적 집중되고 또렷해졌고, 저는 그 순간 제가 맡은 역할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퍼레이드가 끝난 뒤, 악단의 수련생들은 저에게 파룬따파 수련자들이 창작한 음악을 소개해주었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하는 음악가로서 음악 창작에 대해 더욱 분명한 인식을 갖게 됐습니다.
2024년 6월 프라하 퍼레이드
퍼레이드 전날 리허설에서 저는 대열 측면, 즉 악단이 방향을 틀 때의 축선 위치에 서도록 배치됐습니다. 이는 곧 대열의 최전방에 서서 방향을 이끄는 역할을 맡았다는 의미로, 행진 노선과 지휘자의 지휘를 정확히 따라야 하는 자리였습니다.
한편으로는 많은 인원이 참여해 오랜 시간 연습을 진행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연주와 행진 모두에서 우리의 표현이 그다지 이상적이지 못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와중에 제가 속한 줄이 방향을 틀 때 제대로 맞추지 못했고, 그 순간 그동안의 모든 연습이 거대한 무게로 변해 머리 위를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습니다. 마치 언제라도 저를 짓눌러 버릴 것만 같았습니다.
제가 속한 줄에는 한 연주자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고, 저 역시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30분이 남았을 때 소분대 책임자는 저와 그녀의 위치를 바꾸도록 했습니다. 저는 당연히 한숨 돌려야 했지만 실제로는 ‘그녀가 나를 신뢰하지 않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스스로 잘 걷고 있다고 느꼈음에도 그녀는 계속해서 저를 확인하며 걸음걸이와 연주, 전반적인 표현, 방향 전환에 대해 지적했습니다. 저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고 바로 옆의 연주자는 저보다 더 부족해 보였지만, 그녀는 오히려 저만 계속 주시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책임자가 저를 능력이 부족하고 철없는 사람으로 보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순간 저는 본래 마음을 가볍게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몸이 ‘반항’하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걸음이 흐트러지고 음을 틀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몸이 제 의지에 반하는 듯했습니다. 마음을 다잡으려 애썼지만 머릿속에는 질투와 책임자에 대한 원망이 가득 찼습니다. 이런 생각들 때문에 점점 더 행진이 어긋났고 마치 그녀의 평가를 스스로 증명하는 듯한 상황이 됐습니다. 저는 깊은 절망감을 느꼈습니다.
리허설이 끝난 뒤 저는 그녀에게 왜 자리를 바꿨는지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그 역할을 감당할 능력이 있었고, 저에게 책임은 매우 중요한 가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스스로 화가 나 있고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라 연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솔직히 말했습니다. 최대한 ‘유럽식 예의’를 지키려 했지만 마음은 매우 힘들었습니다. 그녀는 제 말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고 이렇게 솔직하게 감정을 나눠준 데 대해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다음에는 더 주의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심지어 미소를 지으며 받아들였습니다.
이후 우리는 호텔로 돌아갔습니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저는 그날 있었던 일들 때문에 이곳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처럼 느껴졌고, 다음 날 퍼레이드에 참여할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느낀 이유는 바로 제 안에서 강하게 일어난 질투심 때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나는 이미 20년 동안 연주해 왔고 음악대학 학위도 갖고 있어. 반면 그녀는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에 불과해. 나는 악단 내 모든 악기의 특성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한 음도 안정적으로 불지 못하고 걸음도 불안정해. 게다가 나는 과거 샌프란시스코 베이 지역에서 열린 퇴역군인 퍼레이드에서 천국악단을 대표해 독주를 한 적도 있어. 이는 그처럼 높은 수준의 악단이 나를 매우 우수하고 유능하며 성실한 음악가로 인정했다는 의미이기도 해. 그렇다면 왜 이렇게 중요한 역할과 책임을 그녀에게 맡기고, 나는 다른 사람의 인도를 받는 위치에 서야 하는 거지?’
그러나 곧 저는 깨달았습니다. 악단의 연주자가 된다는 것은 단지 뛰어난 색소폰 연주자가 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요. 다양한 상황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를 잘 처리하는 능력, 동시에 악단이 직면하는 여러 도전에 대응하는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 좋은 수련 상태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로는 마치 전사와 같아서 군대와 같이 각자가 자신의 몫을 제대로 해내야 합니다.
저녁 식사 후 방으로 돌아왔을 때 저는 그날 있었던 일로 인해 모욕감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모든 과정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겸손’의 의미를 이해하게 됐습니다. 대열에서 자신의 위치에 집착하지 않고, 더 중요한 것은 함께 움직이고 협력하며 결정을 내리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의 정체로서 행동할 수 있고 우리의 음악이 사람을 구하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저를 형성했고 저에게 매우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저는 악단과 함께 퍼레이드에 참여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소중히 여깁니다. 사실 매주라도 참여하고 싶지만 매주 연습이 있는 것은 아니기에 우리가 다시 모이는 매 순간이 저에게는 매우 귀중합니다.
저는 악단에서 배운 경험을 저 자신의 음악 창작에도 적용하고 있습니다. 일반인과 협업할 때조차도 개인적인 자아에 대한 집착을 줄이고, 전체의 성공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는 어떤 음악적 상황에 직면하더라도 더 이상 저 자신이나 저의 ‘생존’ 위치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먼저 제가 주변 사람들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능동적으로 관찰하고, 전체를 조망하며, 상황을 명확히 파악해 타인을 위해 봉사하고, 모두가 하나의 정체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을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우리가 서로 연결되는 방식을 찾을 때에만 함께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는 음악가로서 저의 전문성이 끊임없이 향상되고 있는 과정과도 밀접하게 관련돼 있습니다.
사부님께 깊이 감사드리며 경청해 주신 데에도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대법 음악인으로서의 제 길이 더욱 분명해지기를 바랍니다.
(천국악단 창단 20주년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6년 2월 20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2/20/506708.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2/20/506708.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