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후난성 대법제자 화자(華子)
[명혜망] 며칠 전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속에서 저는 어떤 사람과 함께 저의 집착심을 찾고 있었는데, 작은 종이 한 장에 글자가 빽빽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자비(自卑·열등감), 자오(自傲·오만함), 자강(自强·강함)’이라는 여섯 글자만 유독 선명하게 기억납니다. 그 사람은 “이것이 바로 너의 근본적인 집착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잠에서 깬 후, 저는 이 꿈이 저의 근본 집착이 무엇인지 명백하게 알려준 것임을 알았습니다.
저는 1950년대 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부모님은 모두 성실하고 정직한 분들이었습니다. 저 또한 특별한 재주도 없고 외모도 평범하며 일 처리 능력도 그저 그랬습니다. 하지만 성격은 소처럼 고집스러워서 그저 고개 숙여 일만 할 줄 알았습니다. 남과 비교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저는 열등감이 심했습니다.
동시에 가정에서 받은 전통 교육과 신성(神性)의 계발로 인해, 자신이 선량하고 정직하며 총명하고 유능해 남보다 못하지 않다고 여겨 오만하기도 했습니다. 전통과 정통에서 벗어나 도덕이 타락한 시대의 풍조를 따르는 이들을 깔보기도 했습니다. 또 중공(중국공산당)의 ‘9대 유전자’와 세뇌된 인생철학이 주입한 쟁투심, 출세욕, 강자가 돼야 한다는 관념 때문에 매우 강해지려 했습니다. 비록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제 방식대로 고집스럽게 살았습니다.
1996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얻게 된 후, 천년만년 지나도 얻기 힘든 고덕(高德) 대법임을 알게 됐습니다. ‘사람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며, 인간 존재의 목적은 무엇인지’라는 인생의 세 가지 궁극적인 명제를 깨달았습니다. 심신이 정화되고 승화돼 일편단심 사부님을 따라 수련해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집착심이 너무 많아 괴로웠습니다. 인간 세상의 오염된 진흙 속에 너무 오래 빠져 있었기에 변이된 관념과 집념, 망념이 매우 완고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9년의 수련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왔습니다.
아래에 열등감, 오만함, 강함, 그리고 이기심과 자아라는 집착을 제거한 두 가지 작은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직장 직원대회
1996년, 제가 막 법을 얻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입니다. 어느 날 저녁, 직장에서 인원 감축과 관련한 직원대회가 열렸습니다. 회의 도중 한 간부가 갑자기 제 이름을 언급했습니다.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내가 무슨 잘못을 했나’ 싶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저를 예로 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무개(저를 가리키며)를 보세요. 별 능력도 없으면서 우리 기관에서 이렇게 좋은 대우를 받고 있잖아요. 주택, 난방, 에어컨, 24시간 온수까지 말이죠.”(사실 저는 비싼 값을 주고 기관의 복지주택을 산 것 외에는 그런 혜택을 받은 적이 없었으며, 오히려 그런 혜택은 그들이 누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또 “그녀의 여동생은 능력도 외모도 뒤지지 않는데 실직해서 작은 가게를 차려 생계를 잇고 있습니다. 그녀가 왜 이런 대우를 받는가요? 단지 운이 좋을 뿐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200명이 넘는 동료들 앞에서 이런 말을 들으니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왜 나를 그런 예로 드는 거지? 내가 약하고 만만해서인가, 아니면 내가 너무 성실하고 무능해 보여서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큰 능력은 없어도 맡은 일은 충분히 해내고 있다. 그의 아내처럼 아무 일도 못 하며 빈둥거리는 것도 아닌데… 이 일을 따져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곧 다른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이미 대법제자다. 시험이 온 거다. 고비가 온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때려도 맞받아치지 않고 욕해도 대꾸하지 않는다”(시드니법회 설법)고 가르치셨다. 참아야 한다.’ 두 가지 생각이 줄다리기하다가 결국 이성이 부정적인 사유를 이겨냈고, 저는 눈물을 머금고 꾹 참았습니다.
퇴근하는 버스에서 동료들이 농담조로 “오늘 다 같이 아무개네 집에 가서 난방이랑 에어컨, 24시간 온수 좀 누려보자, 하하하”라고 말했을 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눈물이 왈칵 쏟아져 억울한 마음에 그저 소리 내 울고 싶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니 여동생 내외가 와 있었습니다. 제 표정을 본 그들은 사정을 알고 나서, 자기들이 그 간부를 찾아가 한바탕 망신을 주고 제 대신 분풀이를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말렸습니다. 하지만 마음속은 계속 편치 않았고 그 후 그 간부를 보면 전처럼 인사하기가 무척 거북했습니다.
나중에 ‘정진요지’의 ‘무엇이 참음인가(何爲忍)’를 외우다가 이 단락을 만났습니다. “참음(忍)은 心性(씬씽)을 제고하는 관건이다. 화가 나 원망하고, 억울해하면서 눈물을 머금고 참는 것은 속인이 해를 입을까 염려하는 참음이다. 화를 내거나 원망함이 전혀 생기지 않으며 억울함을 느끼지 않는 것이야말로 수련자의 참음이다.”
법을 읽는 순간 수련자의 참음과 속인의 참음의 차이를 단번에 깨달았습니다. 저는 대법 수련자이므로 이런 집착을 내려놓고 분노도 억울함도 느끼지 않는 것이 얼마나 가볍고 아름다운 일입니까! 사부님의 법이 단번에 제 마음을 풀어주셨습니다.
수련의 길에는 우연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제게 이런 집착이 있었기에 그것을 제거해 줄 기회를 만들어주는 사람과 일이 나타났고, 이런 난(難)이 있었던 것입니다. 제 심성을 제고하고 업력을 없애도록 도와준 그 간부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후 그를 만났을 때는 담담한 마음으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었습니다.
2. 중학교 동창회
2019년 11월, 중학교 동창회에 약 50명이 모였습니다. 모두 70세 전후였는데 그들에게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였습니다. 저는 진상 USB를 준비해 몇몇 동창에게 차례로 주며 진상을 이야기했습니다. 어떤 동창은 웃기만 하고 대답하지 않았고, 어떤 동창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음 날 식사 중에 한 남자 동창이 집안일이 있어 급히 떠나게 됐습니다. 저는 곧장 그에게 가서 작별 인사를 하며 진상 USB를 건네며 집에 가서 잘 보라고 했습니다. 그는 USB를 보자 갑자기 안색이 변하며 말했습니다. “이게 뭐야? 혹시 파룬궁 관련 아니야?”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맞아. 진상을 좀 알아봐.” 그러자 그가 더 거칠게 말했습니다. “아직도 이런 반당(反黨)적인 걸 나한테 선전해? 이번 동창회에 원래 너에게 연락하지 않으려고 했던 거 알아? 몇 명이 의논해서 한 동창이 널 보증하겠다고 해서 겨우 오게 한 거야.”
순간 시끌벅적하던 식사 자리가 갑자기 조용해지면서, 50여 명의 시선이 모두 우리에게 쏠렸습니다. 그와 가장 친한 다른 남자 동창도 다가와 말했습니다. “너, 아직도 이걸 하고 있구나….” 제가 해명했습니다. “파룬궁은 좋은 거야.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쳐….” 그러자 그가 말을 잘랐습니다. “아직도 그런 소리를 하네. 네 인생이 얼마나 실패했는지 알아? 아직도 가정 하나 제대로 못 이루고….” (그 말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여자라는 의미였습니다.) 저를 보증해줬다는 그 남자 동창도 나서서 저를 비난했습니다. “내가 보증해서 너를 오게 해줬는데, 네가 여기서….”
순간 머리로 피가 솟구치는 것 같았습니다. 모욕감, 억울함, 체면과 자존심이 산산이 조각나며, 누군가 제 뺨을 세게 때린 듯 얼굴이 화끈거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숨고 싶었습니다.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습니다. 이 상황과 말들은 제가 그동안 감싸고 있던 열등감, 오만함, 자아라는 가짜 나를 깊이 찔렀습니다.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힌 뒤,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제자는 왜 이렇게 무능합니까? 진상을 모르는 속인의 몇 마디 말에 이렇게 무너져 눈물을 흘리다니…. 신이라면 울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그들을 구하러 온 것인데, 어찌 이렇게 쉽게 상처받을 수 있습니까? 이는 자아를 너무 중하게 보고 중생을 가볍게 본 탓이며, 새 우주의 ‘선타후아(先他後我), 무사무아(無私無我)’ 특성에 순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홀로 식탁에 앉아 자신을 반성했습니다. 그때 한 여자 동창이 조용히 다가와 제 옆에 앉았고, 이어 두세 명의 남자 동창도 말없이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점점 10여 명의 동창이 제 주변에 모였고, 예전에 현장(縣長)을 지낸 남자 동창도 왔습니다.
그들은 제가 민망해할까 봐 직접 말을 걸지는 않았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 한때 부현장을 지냈던 남자 동창이 말했습니다. “나는 사실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 그러면서 그가 겪은 신기한 일들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해외에서 대법 진상을 들은 적도 있고, 제게 여러 차례 진상을 들었으며 제가 준 진상 USB도 받았었습니다. 또 자기 직장에서 대법제자들을 보호해준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건 개인의 신앙 문제야. 나는 그들(직장의 대법제자들)을 ‘학습반’(세뇌반)에 보내지 않았어. 그들은 단지 건강한 몸을 원할 뿐이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저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하고 위로하려 했으며, 다른 동창들도 이에 동조했습니다. 그때 저는 진상을 아는 중생들이 얼마나 대단한지 느꼈고 정말 감동했습니다.
저녁 식사 후, 현지 동창들은 집으로 돌아갔고 외지에서 온 동창들은 호텔에 묵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명백한 일면이 그렇게 해선 안 된다고, 도망쳐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마주해야 하고, 훗날 동창들이 진상을 알 수 있도록 좋은 밑거름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날 밤, 같은 방을 쓰는 여자 동창과 함께 여러 방을 돌며 인생, 자녀, 가정 이야기를 나누며 그들을 진심으로 배려해주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동창들의 전화번호를 전화 진상을 하는 두 수련생에게 주며 저 대신 ‘삼퇴’를 권해주고 대법의 자비로움을 전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중 한 수련생이 알려주기를, 거의 절반이 넘는 동창들이 진상을 알게 됐고 10여 명이 삼퇴했다고 했습니다. 베이징 군구(軍區) 출신의 한 동창은 진상을 매우 잘 알고 있었는데 삼퇴했을 뿐만 아니라 전화를 건 수련생에게 나중에 베이징에 오면 놀러 오라고 초대했다고 했습니다.
물론 진상을 이해하지 못하고 삼퇴하지 않은 동창도 있습니다. 그중 광저우 군구 출신의 그 동창(당시 저를 모욕했던 동창)은 수련생의 전화를 받고 제가 한 전화인 줄 알고는 끊지 않아, 결국 그 수련생과 1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다고 했습니다. 동창회 날 저에게 상처를 준 일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서로 협력해 준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번 동창회는 저의 열등감, 오만함, 강함이라는 집착을 제거하기 위한 모임이었습니다. 비록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고통을 겪었지만, 저의 근본 집착인 자아와 이기심을 찾게 해주었습니다. 저를 기쁘게 하고, 근심하게 하고, 화나게 하고, 슬프게 하고, 원망하게 하고, 상처받게 하고, 체면을 잃게 하고, 억울하게 하고, 열등감을 느끼게 하고, 오만하게 만들고, 강한 척하게 만든 모든 것은 ‘나(我)’라는 글자가 앞머리에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구세력이 안배하고 사악이 조종한 것이며, 후천적 관념으로서 중생을 해치고 대법제자의 의지를 소모시키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고, 해체하며, 수련해 제거하겠습니다. 또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을 건드리는 모든 일은 저를 단련하고, 제고하며, 순정하게 만드는 기회이니, 이런 기회를 잘 활용해 사람의 것을 제거하고 경지를 승화시켜 굳건히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신(神)으로 나아가 사부님을 따라 하늘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이상은 제가 자아와 이기심의 집착을 제거한 두 가지 작은 이야기입니다. 층차가 한정되어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6년 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6/1/22/505002.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6/1/22/505002.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