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2004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어머니 소개로 법을 얻었지만, 싫증을 잘 내는 나쁜 습관 때문에 수련을 꾸준히 하지 못하고 속인 생활에 빠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심각한 병업에 빠지셨는데, 어머니를 돕기 위해 저는 몇 달 만에 대법 서적 전부를 빠르게 다 읽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너무 갑작스러웠고 어머니는 결국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이 갑작스러운 충격을 받아들일 수 없어 매일 눈물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꿈에 어머니가 저를 보러 오셨습니다. 어머니는 아주 편안하고 좋아 보이셨고, 이 세상에 계실 때 본 적 없는 상서로운 미소를 띠고 계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하늘의 한 곳에 머물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제가 걱정스레 잘 지내시는지 여쭙자, 어머니는 ‘네가 잘 지내면 나도 잘 지낸단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순간 저는 대법제자에게는 책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일깨움 덕분에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습니다.
1. 홍콩에서 진상을 알리며 법을 실증하는 길을 열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홀로 홍콩에 가서 진상을 알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막 법을 얻었을 때의 열정으로 어떤 일이든 가리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뜨거운 땡볕 아래 몇 시간씩 서 있기도 했고, 거센 비바람에 온몸이 흠뻑 젖어도 자리를 지켰습니다. 한번은 태풍이 강하게 불어와 하루 쉬려고 했는데, 뜻밖에도 그날 중생들이 빗속을 뚫고 관광지에 와서 에포크타임스 신문을 찾으며 하루라도 안 보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가 쉬는 바람에 헛걸음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는 이것이 사부님의 일깨움임을 알았습니다. 또 매일 신문을 가져가던 한 중생은 출국하게 되자, 돌아올 때까지 매일 신문을 한 부씩 남겨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귀국하자마자 제일 먼저 신문을 받으러 달려왔습니다. 이를 보며 저희는 중생이 진상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홍콩에서 보낸 1년 동안 수만 명의 소중한 중국인과 만나며 파룬따파(法輪大法)와 박해의 진상을 깊이 이해하게 됐습니다. 이 경험은 제게 튼튼한 기초를 마련해 줬습니다.
2. 사람 마음을 내려놓고 에포크타임스에 투신하다
홍콩 경험을 통해 저는 중생을 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고, 인생의 행복이나 좋은 앞날 같은 것은 더는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0》 ‘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당신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속인 회사로 가서 생활문제를 해결할 필요가 없이, 자신의 신문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된다면, 전력으로 여기에 투입할 수 있고, 만약 이 신문이 속인사회의 하나의 정상적인 직장이 될 수 있고, 정상적인 급여를 가져갈 수 있다면, 당신들은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했을 뿐만 아니라 생활 또한 보장이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이것이 얼마나 좋은가?” 이 말씀을 듣고 저는 에포크타임스에서 전업으로 일하기로 결심했고, 어느덧 18년 가까이 됐습니다.
3. 사악은 수련생들이 매체에 전력으로 투신하는 것을 두려워해
초기에 다른 현이나 시에서 참여할 때는 자원이 부족해 수입이 아주 적었습니다. 몇 년간 뼈를 깎는 수련 속에서 많은 고난을 겪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조로워지기 시작할 무렵, 타이베이 본사로 가서 지원하라는 변화를 맞닥뜨렸습니다. 마음이 무척 흔들렸습니다. 안정된 지금 상황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수련이란 한 걸음씩 제고하는 것이고, 대법이 필요로 할 때는 주저 없이 책임져야 하기에 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출발 전날 밤 은행 계좌가 동결되고 가진 현금마저 다 써버렸습니다. 원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제게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습니다.
‘타이베이로 가겠다는 결정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그날 밤 서랍 속 동전을 모두 긁어모으니 400여 대만달러가 됐습니다. 한밤중 가장 싼 버스를 탈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가진 돈 한 푼 없이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이 막막하고 알 수 없는 앞날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습니다. 하지만 제 사명과 중생들의 간절한 눈빛을 생각하며 용감하게 나아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그 후 위기는 차례차례 해결됐고, 그것이 정말 하나의 시련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만약 그때 망설이며 제 문제부터 해결하려 했다면 그 뒤의 안배는 모두 달라졌을지도 모릅니다.
이 생생한 경험은 매체를 통해 진상을 알리는 것이 사람을 구하는 위력이 얼마나 큰지, 사악이 그래서 그토록 두려워하며 온 힘을 다해 막으려 하는지를 더 깊이 깨닫게 해줬습니다.
4. 법을 가장 크게, 중생을 가장 중시하니 기적이 여러 번 나타나다
1) 홍콩에서 진상을 알리던 어느 날, 몸에 붉은 발진이 생겼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나를 보살펴주시는구나! 업을 없애주시는 거야!’라고 생각하며 오히려 기뻤습니다. 다음 날도 기뻤는데, 며칠 뒤 발진이 팔과 목 전체로 번지고 얼굴로 번지려 했습니다. 그때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안 돼. 계속 번지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피부병 환자로 보고 전단을 받으려 하지 않을 거야.’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습니다. ‘더는 업을 없애주지 마세요. 만약 중생을 구하는 데 교란이 된다면 일단 멈춰주세요.’ 제 생각의 기준점이 개인의 제고가 아닌 사람을 구하는 데 있었기에, 저도 모르게 이 일을 부정한 것입니다. 놀랍게도 다음 날부터 발진이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이삼일 만에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그때 저는 처음으로 정념의 위력을 체험했습니다.
2) 한번은 아버지께서 전화를 걸어, 병원에서 암 진단을 받았고 여러 합병증까지 있다고 하셨습니다. 형제 중 한 명은 의료비를 벌고, 다른 한 명은 일을 그만두고 간호해야 할 상황이었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이 캄캄해졌습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뭔가 이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버지의 명백한 일면을 향해 말했습니다. ‘저는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제자이고 사람을 구하러 왔습니다. 만약 전생에 당신과 원한이 있어 이 시점에 당신이 병을 얻어 제가 사람 구하는 것을 교란한다면, 우리 함께 그것을 부정합시다. 과거의 원한은 저와 계산하지 마세요. 당신은 저를 낳아주셨으니 큰 복이 있을 겁니다.’ 그 후 저는 에포크타임스에서 사람을 구하는 하루하루를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지냈습니다. 그렇게 막막하고 무거운 압박감 속에서 견디기를 3개월, 어느 날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저는 덜컥 겁이 나 두려운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아버지는 저편에서 괜찮다고 하시며, 간호사가 진료기록을 잘못 본 해프닝이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은 마을 사람들과 단체로 버스를 타고 타이베이 네이후(內湖)로 놀러 오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이 고난을 해결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3) 또 다른 해에는 아버지께서 교통사고로 입원하셨습니다. 흉부와 늑골이 모두 부러져 2~3개월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병원에서 며칠간 아버지를 돌보다가 생각했습니다. ‘여기에 갇혀 있을 순 없어! 나는 나가서 사람을 구해야 해. 병원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야.’ 그래서 돈을 빌려 아버지를 요양센터에 보내드리기로 했습니다. 돈은 다시 벌면 되지만 중생의 생명은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열흘 뒤, 아버지가 너무 심심해서 혼자 집으로 돌아오셨다는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말을 듣고 웃음이 나왔습니다. ‘움직일 수 있다는 건 회복됐다는 뜻이구나.’ 제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는 다시금 기적을 보여줬고, 위기는 또 한 번 전환됐습니다. 3개월을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이 열흘로 줄어든 것입니다. 간호 비용도 아꼈고, 나중에 가해자가 위로금을 줬는데, 제가 처음에 이를 악물고 빌렸던 돈과 정확히 같은 액수였습니다.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또 하나의 고비를 넘었습니다.
4) 지난해, 병원에서 아버지가 화상을 입어 수술해야 하니 가족이 와서 서명해야 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시간을 놓치면 감염 위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날 저는 일에 발이 묶여 있었습니다. 한쪽은 일을 처리하지 못하면 신문에 구멍이 나 사람 구하는 데 영향을 미치고, 다른 한쪽은 수술 일정을 놓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양쪽을 다 만족시킬 수 없어, 저는 먼저 일을 처리하기로 하고 끝나자마자 병원으로 달려갔습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해 택시를 탔는데 가는 내내 신호등이 녹색 불이어서 고속철도역에 겨우 시간을 맞춰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역에서 내려 기차로 갈아타려고 승강장으로 달려가는데, 기차 한 대가 막 출발하려 했습니다. 계단을 몇 개 남겨두고 저는 기차를 보며 죽을힘을 다해 뛰면서 마음속으로 ‘기다려줘!’라고 외쳤습니다. 기차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다급하게 ‘사부님, 제발요, 기다려주세요’라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천천히 앞으로 가던 기차가 뒤로 물러나더니, 제가 승강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멈춰 섰습니다. 저는 재빨리 기차에 뛰어올랐고 기차는 다시 출발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도 어떻게 기차가 뒤로 갈 수 있었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수술실에 도착하니 정확히 12시였고, 마침 간호사가 나와 동의서에 서명을 받았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파룬따파의 위력을 느꼈습니다.
몇 번의 고비를 넘는 결정적인 순간마다, 저는 시종일관 사람을 구하는 것을 첫째 자리에 놓고 기준점을 바로잡았습니다. 저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이지, 과거의 개인 수련을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는 완전히 남을 위한 생명이고, 다른 하나는 개인의 해탈을 위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파룬따파 의해》 ‘창춘 파룬따파 보도원을 위한 해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대각자(大覺者), 그는 무엇을 위하는가?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을 위하는 것이다.”
저는 마음속에 오직 중생과 책임만 담았을 때, 법의 힘이 제 정념을 가지(加持)해 주고, 온 하늘의 신들이 저를 돕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생명이 파룬따파에 동화되는 과정이며, 만사는 안배돼 있고 낡은 관념은 타파되며 사악은 해체되는 것입니다. 이는 과거 제가 사적인 생각으로 파룬따파를 이용해 제게 닥친 어려움을 해결하려 했을 때 나타났던 상태와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5. 사악은 대법제자가 매체에 전력으로 투신하는 것을 두려워해
저는 사악이 대법제자가 매체에 전력으로 투신하는 것을 매우 두려워한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습니다. 진정으로 전업으로 투신해 단체 환경에서 매일 함께 법을 실증하며 어떻게 더 잘 사람을 구할지 이야기하는 것이 사악에게 얼마나 큰 위협이 되겠습니까! 그래서 늘 교란이 끊이지 않고, 종종 협력 과정의 갈등을 이용해 오해와 간극을 키워 실망해서 포기하거나 분한 마음으로 떠나게 만듭니다. 저는 어떤 항목이나 환경에서 마주치는 모든 갈등은 수련과 제고를 위해 연화돼 나온 가상이며, 거기에는 구세력의 법에서 벗어난 안배가 섞여 있어 우리가 여러 생에 걸쳐 쌓은 업력을 이용해 갈등을 만드는데, 그것은 모두 지극히 악독한 파괴성 시련이라고 생각합니다.
6. 바른 이치로 문제를 보며 명리정에서 걸어 나오다
매체를 운영하는 것은 아주 힘든 과정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인력, 물자, 재력이 모두 어렵습니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제게 자신의 미래를 위해 먼저 직장에 다니며 돈을 모아 생활 기반을 마련한 뒤에 참여해도 좋고, 또는 매체가 더 안정된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권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렇다면 나는 바로 그 속에 뛰어들어, 매체가 안정되는 데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매체는 어려운 가운데 오늘까지 걸어왔고, 영향력은 계속 커졌으며, 급여 수준도 점차 나아졌습니다. 더 많은 수련생이 참여할 수 있도록 계속 환경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련과 눈물도 있었지만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습니다. 저는 이것이 수련에 필요하고, 이 환경을 이용해 제가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 마음을 제거해야 함을 압니다. 이런 환경이 있기에 이곳에서 끊임없이 제 세계의 중생을 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어려움 속에서 방향을 잃고 막막해하기도 했고, 초심을 잃고 무감각해지기도 했으며, 억울함에 원망을 쏟아내기도 했습니다. 또 집착을 놓지 못해 도피하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매번의 충격과 곤경은 제게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근본적인 집착을 찾을 또 다른 기회를 줬습니다.
수련인은 반대로 된 상황 속에서 바르게 문제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어머니를 여의고 하소연할 데가 없어 사부님과 대화할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수련에 더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떠돌아다녔지만, 오히려 에포크타임스와 함께 정착하기가 편해서 다른 생각 없이 온전히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던 제가 초창기 어려운 매체 시절을 만난 덕분에, 한창 놀기 좋아할 나이에 세속의 화려함 속에서 길을 잃지 않았습니다. 전문 배경이 없었기에 오히려 관념과 한계 없이 다양한 가능성을 시도할 수 있었습니다. 회사의 부족한 제도는 제가 기다리거나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잠재력을 발휘하게 했습니다. 관리와 요구가 있었기에 안일하고 자율적이지 못했던 제가 과정에 바짝 따라붙어, 매일의 단체 법공부, 발정념, 진상 알리기에서 쉽게 뒤처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저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안배 속에서 오늘날까지 걸어왔습니다.
에포크타임스의 일을 하나하나 잘해나가는 과정은 마치 제 자신을 원만히 해나가는 과정과 같았습니다. 이를 깨닫고 나니 사부님께 무한한 감사를 느꼈습니다. 이것은 정말 덤으로 얻은 것입니다. 지금 시간은 너무나 소중하고 사람을 구하는 일이 시급하니, 반드시 매체가 지닌 광범위하게 진상을 알리는 우세를 신속히 발휘해야 합니다.
사부님께서는 《각지 설법10》 ‘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큰 영향이 있는 신문이고, 대법제자의 능력이 모두 아주 크며, 몸과 마음을 전력 투입해 이 일을 하는데, 시장(市場)이 크면 바로 해결될 것이므로, 이 방면에 마음을 쓰고 정말로 그것을 잘 운영해야 한다. 모두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해야 하며, 소수의 사람만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는바, 여러분이 모두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연장해주신 이 시간을 잘 파악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고,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부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상은 제가 여러 해 동안 수련한 소감입니다. 법에 있지 않거나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리며,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2025년 대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21/501676.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21/50167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