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대만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세요!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세요!
아래에서는 이직 과정 중 인상 깊었던 체험 몇 가지를 공유하겠습니다.
1. 직업 전환
저는 고등학교 시절에 법을 얻었고, 대학원을 졸업한 후 한 대기업 과학기술 회사에 들어가 일했습니다. 급여는 넉넉했지만, 회사가 효율성을 중시하기로 유명해 야근이 일상이었고 늘 늦게야 귀가했습니다. 저는 에포크타임스 교정원이기도 해 신문이 인쇄되기 전 지면을 교정해야 했습니다. 일주일에 이틀 있는 근무일에는 퇴근 후 일단 귀가했다가, 업무가 끝나는 밤 9시 넘어 다시 회사로 돌아가 야근했습니다. 야근을 마치면 새벽일 때도 있었고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출근해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이 3년간 반복됐습니다.
이 기간에 돈은 많이 벌었고 회사가 주는 명성도 누렸지만 ‘세 가지 일’을 늘 보장할 수는 없어 마음은 항상 공허했습니다. 이 회사가 제게 맞지 않는다고 느껴 결국 퇴사를 결정했습니다.
얼마간 실업 상태로 지내다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에는 정시 퇴근이 가능한 곳을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급여가 좀 적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내는 한편,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신기하게도 오랫동안 연락이 끊겼던 이전 동료가 갑자기 메시지를 보내 그가 직장을 옮겼다며, 그의 새 회사는 근무 시간이 아주 정상적이라고 했습니다. 확인해보니 미국계 기업이었고 제 전공에도 잘 맞는 직무였습니다. 전에 왜 이 회사를 미처 보지 못했는지 의아했습니다. 이력서를 내자 순조롭게 면접 제안을 받았고, 이후 다섯 단계의 면접도 무사히 통과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합격 통지를 받았지만 모두 상시 야근이 있는 곳이어서 제 마음은 이미 그 미국계 회사로 기울어 있었습니다. 하루빨리 그곳에서 합격 통지를 받기만을 바랐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면접에서 최고 책임자가 현장에서 합격이라고 말하면서도 “회사에서 계속 면접을 보고 있으니 담당자의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채용 절차를 시작할 겁니다. 결재 서류는 본사까지 올라가야 하고 모든 건 서면 계약서를 기준으로 합니다”라고 여지를 두며 말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좋은 일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인지, 그 무렵 저는 매일 면접으로 꽉 차 있었습니다. 한번은 면접을 마치고 보니 그 미국계 회사에서 부재중 전화가 와 있는 것을 발견하고 서둘러 전화를 걸었습니다. 면접에 너무 지쳤던 탓인지 저는 생각 없이 인사 담당자에게 “죄송합니다, 방금 면접 보느라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라고 말해버렸습니다. 말을 내뱉자마자 아차 싶었지만 때는 늦었습니다. 바로 어느 회사 면접이었냐는 질문이 들어왔고, 경쟁사라는 걸 알면서도 솔직히 말할 수밖에 없어 순간 분위기가 어색해졌습니다.
전화를 끊자 마음이 혼란스럽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이런 일이 회사에서 저를 보는 시각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전법륜(轉法輪)’에서 “우리 수련인은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름을 말하는데, 당신의 것이라면 잃지 않을 것이고, 당신의 것이 아니라면 당신은 다퉈서도 얻지 못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일을 자신을 제고할 좋은 기회로 여기고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일주일여 뒤에 합격 통지를 받았는데, 급여가 처음에 얘기했던 것과 달랐습니다. 소리소문없이 인상돼 이전 회사보다 훨씬 많아진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그저 근무 시간만 정상적인 직장을 원했을 뿐인데, 결국 소원을 이뤘을 뿐만 아니라 급여까지 예상보다 훨씬 많아진 것입니다. 저는 마음속 가득한 감사함으로 사부님께 “제자는 퇴근 시간을 잘 활용해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저는 인생길에서의 득실은 모두 정해져 있어 제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님을 깊이 깨달았습니다.
2. 업무에서의 시련
기대감에 부풀어 새 회사, 새 환경에 적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업무 내용은 흥미로웠고 상사와 동료들 모두 친절했습니다. 회사에서는 매일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했고 정시 퇴근도 가능했습니다. 상사는 제 업무량이 너무 많지는 않은지 자주 살피며 조절해주려 했고 휴가도 많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건 정말 내가 꿈에 그리던 직장이잖아. 이렇게 편안한 환경에서 제고하기가 어렵지는 않을까?’라는 걱정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롭기만 할 때 시련도 함께 찾아왔습니다. 어느 날 오후 갑자기 회의 소집 통보를 받았는데, 참석하고 나서야 회사에서 감원을 한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불어온 감원 바람이 저희 부서까지 닥친 것입니다. 바로 전날 함께 밥을 먹던 동료가 다음 날 갑자기 보이지 않았습니다. 수련인은 세간의 득실을 구하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그 일은 제게 큰 충격을 줬습니다. 그 동료는 아주 성실해서 저녁에도 늘 남아 일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제게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음을, 언젠가 저도 해고될까 봐 두려워한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하지만 수련인의 일생은 사부님께서 안배하시는 것이기에 저는 저와 일의 관계를 바로 잡았습니다. 감원 때문에 특별히 더 애써 일하며 제 자신을 드러내려 하지 않고, 이전처럼 평소대로 일하고 출퇴근하며 기회가 될 때마다 상사에게 진상을 알리고 션윈을 홍보했습니다.
3. 신용카드 분실
하지만 저는 당초 사부님께 마음속으로 했던 ‘퇴근 시간을 잘 활용하겠다’는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 무렵 다른 미국계 대기업에서 대대적으로 인재를 모집한다는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그 회사는 이 분야의 최고 기업으로, 전에는 마땅한 자리가 없어 지원할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공고에 제가 흥미를 느끼는 자리가 놀랄 만큼 많았고, 심지어 제 현재 업무와 상당 부분 겹치기까지 했습니다. 이것은 제게 천금같은 기회였습니다.
명리심이 크게 들끓었습니다. 더 높이 날아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습니다. 그 회사에 가면 명리를 모두 얻고 경력 면에서도 단번에 하늘에 오르는 셈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 서적을 많이 사서 퇴근 시간을 이용해 이직 준비에 열을 올렸습니다. 이력서도 정기적으로 갱신하며, 만약 해고되더라도 충격을 최소화하고 이직도 준비하는 일석이조의 계획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음속으로 흐뭇해하고 있을 때쯤, 어느 날 신용카드를 잃어버린 것을 알게 됐습니다. 그 순간, 저는 직장을 구하기 전 사부님께 했던 약속을 떠올렸습니다. 그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잊고 있었습니다. 제가 깨닫지 못하는 것을 보셨는지, 어느 날 밤 사부님께서 제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자애롭게 저를 격려하시며 제자에게 정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꿈속에서 사부님 몸이 갑자기 아주 커지셨고, 저는 사부님을 우러러보다가 꿈에서 깼습니다. 10여 년 수련하는 동안 사부님 꿈을 꾼 적은 거의 없었기에 마음이 아주 기쁘고 든든했습니다. ‘그래, 사부님께서는 항상 곁에 계셨지!’ 저는 퇴근 후 시간을 진지하게 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법공부 시간이 불규칙했기에 신문사 교정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에포크타임스의 온라인 법공부에 참여했습니다. 규칙적이고 안정적인 온라인 법공부는 제 수련 상태에 큰 도움이 됐고 회사 실적도 향상돼 일이 반으로 줄고 성과는 배가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법공부가 끝나면 늘 밤이 깊었기에 이직을 준비할 기력이 별로 없었고, 이직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점차 들었습니다. 비록 이따금 그 미국계 회사의 대규모 채용 소식을 보기는 했지만 ‘만약 정말 그 회사에 가야 할 운명이라면 이력서를 내지 않아도 먼저 연락이 와서 순조롭게 면접을 통과할 거야’라고 생각하며 점차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법공부를 아주 중요한 자리에 놓고 꾸준히 해나갔습니다. 하지만 하루하루가 지나도 그 미국계 회사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고, 오히려 어느 날 한 대법 항목으로부터 참여 제안을 받았습니다.
4. 대법 항목의 제안
새 회사에서 일한 지 1년 남짓 됐을 때, 한 대법 항목 책임자가 제 전문 분야에 상당히 관심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직접 만나 이야기하게 됐습니다. 솔직히 저는 거절할 생각으로 약속에 나갔습니다. 이 항목이 저를 찾아온 것이 절대 우연이 아님을 알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설득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주 컸습니다. 만나서 서로 소개를 마친 후, 저는 이 항목이 제 전공과 아주 잘 맞는다는 것을 알았고 진심으로 제게 적합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역시 그 자리에서 제게 항목 참여를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만족스러운 직장과 급여를 도저히 놓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내년에 승진할 예정이니 순리에 맡기시죠”라고 말하고는 농담조로 “만약 제가 회사에서 잘리면 이 항목이 사부님의 안배라고 믿겠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그 말을 하고 한 달여가 지난 어느 날 오후, 인사부서 책임자가 제 직속상사에게 다가가 귓속말하는 것을 봤습니다. 어렴풋이 제 이름이 들리는 것 같아 이전에 항목 책임자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설마 이번에 정말 내 차례인가?’ 마음속에 기대와 두려움이 교차했습니다. 잠시 후 저는 정말로 회의실로 불려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 상사가 맞은편에 앉아 저를 보고 있었습니다. 직속상사가 침묵을 깨고 말했습니다. “해고가 아닙니다. 축하해요, 급여가 인상됐습니다. 당신의 성과가 주목받았어요. 미국 본사 결정입니다.”
월급이 승진 후의 수준으로 올랐고, 거기에 놀랄 만한 보너스까지 더해진 것을 봤습니다. 뜻밖의 기쁨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는 서운함이 섞여 있었습니다. 저는 한 가지 생각을 보냈습니다. ‘사부님, 저는 이 항목에 참여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지금 월급이 올라 마음이 혼란스럽습니다. 만약 이것이 정말 제 사명이라면 제게 깨우침을 주십시오.’
신기하게도 월급이 오른 지 얼마 안 돼 회사 프로젝트가 새 단계로 접어들면서 업무 내용도 바뀌어 예전처럼 재미가 없었습니다. 권태감이 밀려왔고 얼마간 시간이 흐르자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로젝트가 일단락되면 바로 퇴사하거나 부서 이동을 신청할 생각이었습니다. 회사가 부서 이동에 개방적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부서를 옮기면 좋아하는 일을 계속하면서 괜찮은 월급을 받고 여유로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성적으로는 대법 항목이 제게 아주 적합하고 인력도 시급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위덕을 세울 이 좋은 기회를 놓쳐 어떤 후회도 남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제 앞을 가로막는 것이 명예를 구하는 마음임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줄곧 수입이 그 사람의 능력을 상징한다고 여겼기에 이 사회적 지위를 잃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언젠가는 버려야 할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조금 두려웠지만 사부님께서 ‘각지 설법 13-2015년 뉴욕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진상을 알리고 중생을 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당신이 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제외하고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으며, 이 세상에서 당신이 해야 할 것은 없다.” 마음속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저는 퇴사하고 전일제(풀타임) 항목에 참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5. 이익의 관련된 시련
하지만 회사 프로젝트가 마침내 일단락됐을 때, 퇴사 시점을 정하기가 아주 곤란하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보너스가 3개월마다 지급되기에, 가장 안전한 방법은 돈이 입금된 후에 퇴사를 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뭔가 옳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그렇게 하지만 수련인은 선타후아(先他後我)해야 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지 분명히 알면서도, 저는 주위의 직급 있는 수련생들과 교류하며 그들이 ‘보너스를 받고 나서 퇴사 의사를 밝혀도 괜찮다’는 식의 말을 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모두 상사라면 부하 직원의 퇴사 의사를 가장 먼저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습니다.
언젠가 한 수련생과 식사하며 들었던 이야기도 떠올랐습니다. 그 수련생이 전일제로 항목에 참여했던 바로 그해가 공교롭게도 회사에서 10년 만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할 정도로 보너스를 가장 많이 지급한 해였다고 합니다. 보너스 역시 3개월마다 지급돼 1년을 꼬박 채워야 전액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항목에 사람이 부족하자 그는 그해 수백만 대만달러에 달하는 보너스를 포기하고 곧바로 부름에 응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며 저는 ‘내가 그 수련생이었다면 항목 책임자에게 일단 시간제로 참여하다가 10년 만의 보너스를 다 받고 이듬해에 전일제로 전환하겠다고 말했을 텐데’라고 생각했습니다.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수련생이 저와 나이가 비슷하고 집도 차도 없이 작은 원룸을 임차해 혼자 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그렇게 큰돈을 포기한 것입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스위스법회 설법’에서 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라. 사람이 세상을 삶은 단지 명리를 위해서일 뿐이다.” 동시에 저는 질투심을 찾아냈습니다. 저는 그처럼 그 큰돈을 쉽게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일제로 항목에 참여하는 많은 수련생들 역시 세속의 넉넉한 수입을 포기하지 않았던가요?
저는 제게서 격차를 발견했습니다. ‘선타후아’ 원칙에 따른다면, 하루빨리 퇴사 의사를 밝혀 상사가 일을 처리하기 편하게 해줘야 하지만 그러면 보너스를 못 받을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반면 제 이익을 우선시하면 상사의 부담이 커집니다. 이 모든 것이 저의 이익을 탐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한 시련임을 깨달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지난 몇 년간 상사가 저를 매우 지지해주고 큰 도움을 줬기에, 제 자신만 생각해 그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저는 이 고비를 넘기로 하고 즉시 퇴사 의사를 밝혔습니다. 상사는 퇴사일을 보너스 지급일 이후로 정해 위에 보고했습니다. 그때 저는 ‘마음을 내려놓으니 마땅히 얻어야 할 이익은 조금도 잃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다음 날 상황이 급반전됐습니다. 회사에서 면담을 요청해 퇴사일을 보너스 지급일 이전으로 변경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사부님께서는 ‘2003년 워싱턴DC법회 설법’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으로서 세간의 득실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수련 자체는 원만과 생명의 영원한 영광을 위한 것이다.”
저는 이것이 시련임을 알았기에 다투지 않고 바로 서명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불과 십여 일만 더 버티다 퇴사 의사를 밝혔더라면 몇 달 치 월급에 해당하는 보너스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제가 올바른 선택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6. 맺음말
이 이직 과정을 돌이켜보면 수많은 시련과 심성 고비를 겪었지만 저는 시종일관 ‘세 가지 일’을 잘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이전 두 회사에서 겪은 모든 일은 현재의 항목을 위한 길을 닦는 과정이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수련인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것은 가장 좋은 안배였고, 모든 일이 서로 맞물려 있는 좋은 일이었습니다. 지금 저는 매일 대법 환경에 흠뻑 젖어 있습니다. 그동안 놓기 어려웠던 어떤 마음들은 수련 상태가 안정됨에 따라 점차 놓기가 어렵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됐고, 심성이 제고되는 기쁨과 행복도 자주 느낍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을 만나든 정념을 지키며 용맹정진하기를 희망합니다.
이상은 제 수련 체득입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감사드립니다!
(2025년 대만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2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21/50167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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