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관념을 바꾸고 포용을 배우다

글/ 호주 대법제자

[명혜망]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이번 법회 기회를 빌려 제 최근 수련 체험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나누고 싶습니다.

1. 매체 업무에서 쟁투심과 사심을 제거하다

매체에는 모두 수련생이어서 처음엔 넘어야 할 심성 고비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제가 고비를 잘 넘지 못해 수련 제고의 기회를 되레 밀어냈고, 결과적으로 제가 수련생에게 심성 고비가 된 것 같습니다.

저는 동료가 제게 일을 시키는 것을 가장 싫어했습니다. 사실 수련생 사이라 편하게 말한 것일 수 있는데도 저는 바로 견디지 못하고 말 한마디로 딱 잘라버렸고 태도도 좋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동료가 지면 하나를 더 편집해야 한다고 알려줬는데,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 “저보고 하라는 건가요?”라고 쏘아붙였습니다. 그 수련생은 수련이 잘돼 성격도 좋아서 당시 아무 말 없이 자리를 피했습니다. 그 순간 저는 제 태도가 좋지 않았음을 바로 깨달았습니다. 설령 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태도는 마땅히 친절하고 선의로 설명했어야 했습니다. 제 잘못을 깨닫고 저는 즉시 그 수련생에게 다가가 방금 태도가 좋지 못했다며 사과했습니다.

한 고비를 제대로 넘지 못했기에 다음 시험이 또 찾아왔습니다. 지면 문구에 문제가 생기자 관리자가 한 수련생에게 편집장에게 전화해 확인해보라고 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제게 전화를 걸어보라고 했고 저는 또 지시받는다는 생각에 “안 해요!”라고 한마디로 거절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당신들은 하나같이 사장이나 관리자감이라 남에게 일 시키기만 좋아하지’라고 생각했고 또 ‘나는 여기 오래된 직원인데도 남에게 이래라저래라 안 하는데 왜 당신들은 도리어 날 지시하려 들지?’라고도 생각했습니다. 어째서 제가 싫어하는 일이 자꾸 일어나는지 그때는 깨닫지 못했습니다.

며칠 뒤, 멜버른 지면 한 곳에 원고가 부족했습니다. 동료가 또 말했습니다. “제 지면이 좀 비었는데 반쪽 맡으실래요?” 저는 “아니요, 지면이 비면 편집장에게 말하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속으로는 ‘내가 받으면 또 조정해야 하잖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녀가 “저는 말 안 할래요”라고 하자, 속으로 ‘그러시든지’ 하고 넘겼습니다. 저는 또 ‘이런 일은 원래 편집장이 결정할 일이고 그가 어떤 내용을 넣을지 우리가 마음대로 정하면 안 된다. 괜히 했다가 적절하지 않으면 오히려 욕만 먹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참고 부드럽게 설명하지 못하고 이런 건 다들 아는 상식이라며 제 행동을 합리화했습니다. 결국 그 고비도 제대로 넘지 못했습니다.

이제는 주의해야 했습니다. 최근 이런 일이 벌써 세 번이나 반복됐습니다. 이제 보니 수련생이 말을 함부로 한 게 아니라, 다 같은 수련생이라는 생각에 제가 말을 함부로 했던 것이었습니다. 말할 때의 태도나 어조에서 ‘선(善)’을 지키지 못했고 상대 수련생의 마음을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만약 일반 회사 동료였다면 제가 과연 그렇게 대했을까요?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로잡아야 할 때가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역할분담은 관리하는 사람이 있고 관리 받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당신이 나를 관리한다면 내가 좋아하지 않고, 당신이 나를 지휘한다면 나는 좋아하지 않는다고 한다. (웃음) 사실은, 만약 여러분이 모두 내심에서 우러나와 이 신문을 잘 운영하고자 한다면, 가볍게 말하든 중하게 말하든, 누가 누구를 지휘하든, 누가 누구에게 복종하든 그건 모두 큰 문제가 아니다.”

“대법제자가 한데 있으면, 당신들은 흔히 누가 누구를 지휘하는 것을 가장 싫어한다. 그러나 당신이 만일 속인사회에서 일을 한다면, 회사의 그 사장이 어떻게 말하든 당신은 다 들으며, 그 속인이 당신을 어떻게 지휘하든지 당신은 모두 듣는다. 우리 자신들의 일은 왜 안 되는가?”(각지 설법 10-에포크타임스 회의 설법)

또한, 저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잘나서 남에게 일을 시키기 좋아한다고 느꼈습니다. 사실 이는 제가 아주 계산적이고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 강하다는 것을 반영한 것이었습니다. 동료는 사실 부탁하는 말투였지만 저는 꼭 받아치며 한 치의 여지도 주지 않았습니다. 제 직무 범위가 아니기에 저는 누구에게 일을 시키는 편이 아니었습니다. 아마 이런 관념과 습관 때문에 다른 사람의 방식이 제 생각과 다를 때면 강하게 반발하며 바로 맞받아쳤던 것 같습니다. 말이 거칠게 나가는 것 역시 제 안에 강한 쟁투심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최근 또 다른 일로 제 이기심이 드러났습니다. 어느 날 사장이 전화를 걸어와 그날 사무실에 물건을 사러 오는 사람이 있으니 정념을 보낸 뒤에 퇴근해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답했고 평소에도 정념을 마치고 퇴근했기에 문제없다고 생각하며 사장에게 다른 수련생 한 명도 사무실에 있다고 알려줬습니다. 통화 후 저는 그 수련생에게 곧 손님이 올 거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게 “밥을 좀 일찍 먹는 게 좋겠어요. 손님이 왔을 때 사무실이 비면 안 되니까요”라고 직접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수련생의 식사 시간을 정해주는 것이 좋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말을 절반만 하고 나머지는 상대가 알아서 짐작하길 바랐는데 이것 역시 당(黨)문화였을 겁니다. 그 수련생은 이곳(호주)에서 자라 그런 말투의 숨은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계속 바쁘게 일했고 발정념이 끝날 때까지도 식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언제 가세요?”라고 묻기에 저는 “곧 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녀는 문에 전화번호를 붙여두고 식사하러 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몇 분 뒤, 저는 시간이 거의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이 오기로 한 시간도 지났고 수련생도 밥을 일찍 먹지 않았으니… (이때도 저는 계속 외부에서 원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혹시 내가 나가려는 순간 그들이 오면 내 시간이 낭비되잖아.’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잠그고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마침 두 사람이 올라왔습니다. ‘아마 물건 사러 온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괜찮아. 전화할 테니. 수련생도 금방 밥을 사서 돌아올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엘리베이터를 내려 역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마음속으로 ‘제발 나한테 전화하지 마라. 괜찮을 거야. 수련생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굳이 나를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역 안으로 들어갔는데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확인해보니 이미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와 있었습니다. 전화를 받으니 그 수련생이 제게 사무실로 돌아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이런 작은 일도 처리 못 하나?’ 하고 투덜거리며 돌아가야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제가 사무실에 돌아가도 물건을 팔 수가 없어요. 열쇠를 안 가져왔거든요.”

결국 저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래는 제 시간을 아끼려 했는데 오히려 더 많은 시간을 허비하게 됐습니다. 어쩔 도리 없이 할 말을 잃고 웃으며 사무실로 걸어갔습니다. 저는 사람이란 이토록 미미한 존재이며 모든 것은 오직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는 것을 진정으로 체험했습니다. 사부님의 신묘한 안배로 저의 이기심이 드러난 것입니다. 저는 제 사심이 너무나 부끄러웠고 다음에는 반드시 잘해야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했습니다.

2. 안일심을 제거하다

제가 아직 중국에 있을 때 호주의 한 친척이 귀국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호주에서는 공원에서 많이들 연공하나요?” 그녀는 몇 명 본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당시 마음속으로 ‘그렇게 자유로운 곳인데 고작 몇 명만 나와서 연공한단 말인가?’ 하고 의아했습니다.

최근 수련생들이 산에 가서 진상을 알리고 연공한 교류를 몇 번 들으며 제 마음도 조금 움직였습니다. 저 역시 시간을 내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토요일이 유일하게 가능한 날이었습니다. 여러 해 동안 토요일에 천국악단 행사가 없으면 저는 플루트를 배우거나 집에서 연습하는 것이 습관이 됐습니다. 특히 코로나 시간 몇 년 동안 안일한 마음이 차츰차츰 자라났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제가 매일 아침 거주지 근처 연공장에서 동공(動功)을 한다는 점입니다. 보통 토요일에는 저를 포함해도 많아야 세 명 정도가 함께 연공합니다. 만약 토요일에 그곳에 가지 않으면 이곳에서 연공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는 인상을 주게 돼 좋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망설여졌습니다. 양쪽 다 놓치지 않으려면 집 근처에서 동공을 마친 뒤 산으로 올라가 연공하면 됩니다. 평일 출근할 때처럼 조금 바쁘더라도 시간을 잘 조절하면 충분히 가능했습니다. 그때는 이렇게 생각만 하고 실제로 행동에 옮기지는 않았습니다.

8월 중순의 어느 토요일, 저는 평소처럼 근처 연공장에서 동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산에 가서 연공을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망설였습니다. 날씨가 아주 좋았습니다. ‘산에는 수련생들도 많이 올라갔겠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컵을 씻으며 아침을 준비하던 중 컵이 우유 끓이는 냄비와 부딪쳤습니다. 둘 다 도자기라 ‘펑’ 하는 큰 소리가 났는데 제게는 마치 ‘경종’처럼 들렸습니다. 그 순간 사부님께서 산에 가라고 일깨워 주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아침을 먹고 8시 정각에 발정념을 한 뒤 짐을 챙겨 산으로 향했습니다. 산에 도착해 보니 의외로 연공하는 수련생이 세 명뿐이었습니다. 저는 급히 자리를 잡고 함께 연공에 들어갔습니다. 연공을 시작하려는 순간 한 관광객이 “파룬궁”이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렸고 그는 또 사람 수를 세더니 “네 명이네”라고 말했습니다. 마침 제가 왔기에 망정이지 아니면 세 명뿐이었을 겁니다.

한 수련생이 제게 매주 토요일마다 올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천국악단 활동이 없으면 올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녀가 “고마워요”라고 하자 저는 “고맙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중국 관광객들이 먼 곳까지 오기 쉽지 않으니 그들이 가는 곳곳마다 파룬궁을 볼 수 있고 파룬궁이 전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는 사실을 알기 바랐습니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현재 대법제자는 바로 가서 사람을 구해야 한다. 그러므로 나는 줄곧 각지의 진상 알리는 정황을 보고 있다. 일부 진상 알리기 거점은 아주 잘했다. 현재 대륙의 관광단은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사람에게 환경을 바꿔 진상을 듣도록 배치한 것이다. 사실 진상 거점 그곳이야말로 제1선이며, 진상을 알리는 제1선이다.”(각지 설법 12-2013년 미국서부국제법회 설법)

저는 단지 제 몫을 다하고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산에서 연공을 마치고 나니 마음이 참으로 든든하고 착실해졌습니다.

3. 이익심을 내려놓다

우리가 해외로 나오기 전 중국에 있던 부동산을 모두 정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시아버지와 시어머니께서 모두 반대하셨습니다. 그 당시 우리는 수련인의 기준에 따라 자신을 요구하며 그분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20년이 흘렀고 최근 집이 철거되면서 위임장 등 각종 서류를 처리해야 했습니다. 돈도 들고 시간도 들다 보니 마음이 번거롭고 짜증이 나면서 원망심이 올라왔습니다. 이미 무뎌졌다고 생각했던 ‘이익심’이 다시 고개를 들자 마음이 불편하고 들끓었습니다. 예전 일들까지 떠올랐습니다. ‘이 집으로 그동안 얻은 수익을 우리는 한 푼도 못 받았는데 이제 와서 오히려 돈을 써가며 서류를 만들어야 하다니.’

이 일을 내려놓지 못할 때는 속인처럼 그들을 상대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잘못된 생각임을 깨달았습니다. 사람의 방식으로 행동하면 그것은 속인의 행위이며 어쩌면 속인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수련인이므로 사부님의 법에 따라 행해야 합니다.

어느 날 법공부를 하다가 이런 구절을 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익을 절취당할 때 당신은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다투고 싸우지 않는다.”(전법륜)

맞습니다. 제 이익을 가져간 사람은 남이 아니라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인데 우리는 더더욱 다퉈서는 안 됩니다.

사실 호주에 온 지 여러 해가 됐고 우리가 번 돈으로도 충분히 생활할 수 있습니다. 그 돈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그 마음을 아직 내려놓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마땅히 수련에 힘써 명리정(名·利·情)을 내려놓아야 사부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시부모님은 십여 년 전에 시드니로 와서 우리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셨습니다. 생활비 대부분은 우리가 부담했고 명절마다 용돈도 드리고 선물도 사드렸으며 종종 외식도 대접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자발적으로 한 일이고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부모님께서 이것저것 더 사달라고 요구하실 때면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약간 억지로 해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저는 다른 사람이 제게 잘해주길 바랄 때 제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해줘야만 진정으로 잘해주는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런데 저 역시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려 할 때 상대방의 입장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합니다. 그렇다면 제 관념에 따르면 그것은 진정으로 남에게 잘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자아를 중심으로 한 것이니 진정으로 자아를 내려놓은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남을 위한다면 상대가 기뻐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대해야 합니다.

제자는 사부님의 가르침에 따라 정진하며 실질적으로 수련하겠습니다. 이상은 제 한정된 층차에서의 교류이므로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5년 호주 법회 원고)

 

원문발표: 2025년 10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10/14/501459.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10/14/501459.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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