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정념(正念)이 고비를 넘도록 돕다

글/ 중국 대법제자 구술, 수련생 정리

[명혜망] 저는 올해 일흔이 넘었으며 1998년에 법을 얻었습니다. 제 수련 심득(心得)을 정리하도록 도와준 수련생에게 감사드리며,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립니다!

1. 병업(病業) 고난 속에서 정념을 굳게 지키다

저는 성격이 시원시원하고 일 처리가 깔끔하며 열정이 많은 사람입니다. 고생이란 말이 제 인생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지만, 제게는 별것 아니었습니다. 가족 중에서나 직장에서나 저는 늘 가장 많이 일하고 남을 도왔지만, 항상 지적받기 일쑤였고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중년이 되자 온갖 질병에 시달렸는데 득법 전에는 심장을 제외하고 온몸이 병들어 심신이 모두 지쳐 있었습니다.

1) 득법의 기쁨

득법 후 처음 동공(動功)을 연마할 때, 터우첸빠오룬(頭前抱輪) 자세를 취하자 머리 위에서 ‘쌩쌩’ 하고 바람이 부는 것을 느꼈습니다. 수련생은 그것이 파룬(法輪)이 도는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정공(靜功)을 연마할 때는 또 다른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온몸에서 찬 기운이 뿜어져 나와 덜덜 떨릴 정도였는데, 주변 사람들도 제게서 나오는 무거운 냉기를 뚜렷이 느끼고는 난방기 옆자리를 제게 양보해주었습니다. 보름이 지나자 모든 병증이 사라졌고, 저는 병 없이 가뿐한 몸이 되어 무척 감격했습니다.

가부좌 통증은 수련하는 내내 여러 해 동안 저를 따라다녔습니다. 몸이 심하게 붓는 증상 때문에 손가락 관절마저 좌우로 혹처럼 부풀어 올랐고, 특히 다리는 더 심하게 부었습니다. 다리가 너무 굵어져 결가부좌가 무척 어려웠지만 저는 겁먹지 않았습니다. ‘나는 대법제자이고 사부님께서 도와주시니 두렵지 않다.’ 저는 힘껏 다리를 끌어 올린 뒤 끈으로 단단히 묶고, 아무리 아파도 한 시간을 버틴 후에야 다리를 풀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후 20여 년간 하루도 거르지 않고 그렇게 해왔습니다.

약 5년 넘게 소변을 보면 석고 같은 침전물이 생겼는데, 무언가로 저어도 흩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해 비워내기조차 어려웠습니다. 또 3년 넘게 소변이 젤리처럼 나오기도 했지만 저는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제 몸은 더는 예전처럼 병으로 고통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법을 얻었으니, 배울 수 있는 만큼 배우고 노력할 뿐 다른 아무것도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무엇을 주시든 그대로 받아들였고, 지금껏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사부님께서 연장해주신 생명이라 여기며 만족했습니다.

2) 고난 속에서 지켜낸 신념

한번은 자전거를 타고 가면서 질투심과 원망심에 사로잡혀 다른 생각을 하다가 정신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 잡는 것을 잊었는데, 길에는 벽돌과 돌멩이가 가득했습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자전거가 돌부리에 걸려 저는 공중으로 360도 회전하며 내동댕이쳐져 잠시 의식을 잃었습니다. 신발은 멀리 날아갔고, 자전거 앞바퀴는 제 엉덩이에 걸쳐져 있었으며, 두 무릎으로 땅에 떨어져 옷에 큰 구멍이 났습니다. 이것은 구세력이 강요한 박해였지만 저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사부님께서 시키신 바른 일을 아직 마치지 못했다. 주간(週刊)과 작은 카드를 수련생에게 빨리 전달해야 하니 여기 누워 있을 수 없다.’ 저는 서둘러 신발을 찾아 신고 일어나 자전거를 타고 가서 일을 마쳤습니다.

집에 돌아와 사부님께 다음 날 친척 결혼식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청했고, 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결혼식에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후부터 통증이 시작돼 20여 일간 계속됐고, 밤에는 눈을 깜빡이기조차 힘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낮에는 할 일을 모두 했고, 반가부좌로 연공도 꾸준히 했습니다. 나흘쯤 지났을 때, 집 안에 쌓아둔 나무를 둘 곳이 마땅치 않아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다락 위에 올려둬야겠다. 너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아픔을 참고 사다리에 올랐는데, 한 칸씩 오를 때마다 뼈를 에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습니다. 남편은 옆에서 구경하며 제가 억지를 부린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나는 안 아파요. 올라가면 다리가 안 아플 거예요”라고 말하며 모든 나무를 다락 위로 옮겼습니다.

한번은 치통으로 몹시 고생하다가 우물에 가서 찬물을 길어 입에 머금고 통증을 달래려 했습니다. 하루 밤낮으로 물 여섯 통을 머금었지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때 문득 ‘이것은 사람의 방법으로 고통을 덜려는 게 아닌가? 나는 정념을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이 아픔은 내가 아니다’라며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념이 굳건해지자, 통증이 마치 바람 빠진 공처럼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더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또 한번은 지붕에 올라갔다가 철 사다리가 넘어지면서 다리를 쳤습니다. 다리는 시퍼렇게 멍들었지만 통증은 느끼지 못했는데, 폐를 부딪쳐 숨을 쉴 수가 없었습니다. 폐 부분이 마치 수만 개의 강철 바늘로 찌르는 듯 괴로워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하지만 저는 즉시 ‘이 고통은 내가 아니다’라며 아픔을 부정했고, 인정하지도 느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때로는 자전거를 타다가 갑자기 내장이 이곳저곳 불편하게 느껴질 때도 있었는데, 일념으로 그 증상을 부정하자 거짓 현상은 금세 사라졌습니다.

제가 보기에 노년 수련생에게 병업 가상은 매우 큰 생사고비입니다. 비록 큰 고비이긴 하지만, 생사를 내려놓는 순간 아주 쉽고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이때 머리를 맑게 하고 정념으로 자신이 무엇을 선택하는지 헤아려야 합니다. 자신이 대법제자이자 수련인이며 생사는 사부님께서 안배하신다는 것을 즉시 깨닫고,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신 길을 바르게 걷겠다고 다짐한다면 무슨 의심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오직 사부님을 믿고 자신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의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굳건히 자신이 선택한 수련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어떻게 되든 사부님과 법이 계시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2. 사람을 구하며 대법의 신기함을 실증하다

1) 죽음만을 기다리던 사람

우리집에 세 들어 살던 한 여성은 네 살 때부터 심장병을 앓았고, 열여섯이 돼서야 겨우 바깥 활동을 할 수 있었으며 대부분 시간을 누워서 보냈습니다. 우리집에 왔을 때는 이미 아이까지 있었지만 병이 위중해 움직이지 못하고 온종일 이불을 덮고 누워만 있었습니다. 숨소리조차 미약했고 목소리는 모기 소리처럼 작았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매일 밤 몇 번씩이나 아내가 숨을 쉬는지, 아직 살아있는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그저 죽음을 기다리는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제가 문틈으로 그녀를 살피고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을 확인한 후, 그녀의 귓가에 다가가 말했습니다. “제가 대법 책을 읽어드릴게요. 들어보시겠어요?” 그녀는 아주 희미한 목소리로 “읽어주세요”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책을 읽어주자 얼마 후 그녀는 놀랍게도 몸을 일으켜 앉고 싶어 했습니다. 누워서 듣기가 죄송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녀를 부축해 앉혔습니다. 그녀는 잠시 더 듣더니 갑자기 힘 있는 목소리로 제게 말했습니다. “이렇게 바른 법이 있었군요!” 제가 조금 더 읽어주자 그녀는 또 외쳤습니다. “아이고! 몸이 왜 이렇게 편안하죠! 이렇게 편안했던 적이 없었어요. 마치 공중에 떠서 앉아 있는 것 같아요!”

그녀는 그날 법 한 강(講)을 다 들을 때까지 눕지 않았고, 저녁에는 직접 일어나 밥을 지었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에는 더러운 이불을 모두 뜯어 빨고 더는 자리에 눕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예전에 뼈만 앙상하게 말랐었고, 심장병 때문에 입술은 검붉고 얼굴은 창백했던 것을 기억했습니다. 병원에 갈 때도 남이 업어줘야 했습니다.

그녀가 건강을 되찾자 주변 사람들의 파룬궁에 대한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제게 그녀가 대법 수련으로 좋아진 것이냐고 묻곤 했습니다. 당시 박해가 매우 심각했지만 사람들은 대법을 이해하지 못하던 데서 지지하는 쪽으로 변했습니다. 그 후 그녀는 두부만두를 팔아 돈을 벌었고, 약 2년 뒤에는 밖에 나가 일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녀의 온 가족이 대법의 신기함을 함께 실증한 것입니다.

2) 뒤통수에 입은 심각한 부상

한번은 수련생과 함께 진상 스티커를 붙이러 나섰습니다. 겨울이라 길에는 꽤 넓은 빙판이 있었고 내리막길이었습니다. 저는 조심하지 못해 뒤로 넘어져 뒤통수를 얼음 바닥에 세게 부딪쳤고, ‘퍽’ 하는 소리와 함께 경사 아래로 미끄러졌습니다. 바닥에 주저앉아보니 피가 머리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순간 저는 ‘이것은 옳지 않다. 나는 대법제자다. 나는 스티커를 붙여야 한다. 나는 너를 인정하지 않으며, 너는 나를 시험할 자격이 없다. 너는 나를 막을 수 없다. 중생을 구하는 것은 나의 신성한 사명이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밖으로 쏟아지던 피가 다시 안으로 콸콸 흘러 들어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머리도 아프지 않았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수련생이 기다릴까 걱정돼 저는 안간힘을 쓰며 일어났습니다. 꼬리뼈가 무척 아팠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스티커 붙이는 일을 멈추지 않은 채 수련생을 뒤쫓아갔습니다. 그녀들은 늘 제가 자기들을 기다렸는데 이번에는 왜 이리 늦느냐며 이상하게 여겼지만,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집에 돌아와 온돌에 누우니 통증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저는 왜 넘어졌는지 자신을 돌아보았습니다. 아마도 제가 시어머니로서 너무 무심했던 탓인 것 같았습니다. 며느리가 고기를 먹지 않는다고 했을 때 저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사실 그녀는 임신 중이었습니다. 저는 서둘러 며느리에게 전화해 채소라도 사 먹고, 먹고 싶은 것을 사 먹으라고 했지만 며느리는 여전히 불쾌한 듯했고, 제 마음속에는 또 원망심이 싹텄습니다.

그때 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다른 수련생이 밤새 혼수상태로 누워 일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함께 가서 발정념(發正念)을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저는 다른 수련생을 찾아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습니다. 누워 있던 저는 벌떡 일어나 “찾을 필요 없어요. 제가 당신과 함께 가죠”라고 말했습니다. 길을 나설 때 저는 여전히 심한 통증으로 힘들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수련생 집에 도착해 발정념을 하는데 맞은편 수련생은 밤을 새워 손이 계속 아래로 처졌고, 40분간 잠이 들었는데 저도 덩달아 40분 동안 그녀를 지켜보기만 했습니다. 문득 ‘계속 그녀만 보는 것도 옳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저 스스로 40분간 발정념을 했습니다. 잠시 후 그 수련생이 깨어났습니다. 혼자 집으로 돌아올 때 저는 이미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었습니다.

3. 사람을 구하는 항목 속에서 마음을 닦다

1) 과중한 업무량

그해 우리 지역의 많은 수련생이 박해당했지만 사람을 구하는 항목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주간과 작은 카드를 다운받는 일부터 시작해, 한 걸음씩 나아가 최종적으로 진상 지폐를 인쇄하는 항목을 맡게 됐고 지금까지 10년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저는 밤낮으로 일했고 어떤 날은 밤에 두 시간밖에 자지 못했습니다.

과정 하나하나가 간단하지 않았습니다. 협력할 만한 적임자를 찾지 못해 모든 일을 저 혼자 해야 했습니다. 한 달 평균 4~5만 위안, 많을 때는 10만 위안에 달했습니다. 수련생들이 가져오는 돈은 상태가 제각각이었습니다. 저는 먼저 찢어진 돈을 붙이고 물에 적셔 천으로 깨끗이 닦은 뒤, 주름을 펴서 온돌에 말리고 눌러 평평하게 한 후 인쇄했습니다. 초기에는 처리 과정에서 돈을 여기저기 널어놓을 때가 많았는데, 저는 자주 돈을 보며 혼잣말을 했습니다. 가끔 남편이 문틈으로 엿보며 제가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궁금해했습니다. 저는 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는 모두 사람을 구하러 온 거야. 우리 모두 잘 해내자. 낡았든 찢어졌든 여기에 온 이상 너희에게는 사람을 구하는 사명이 있어. 수련생이 너희를 가져오기도 쉽지 않았단다. 내가 너희를 깨끗하게 씻어주면, 너희는 사명을 띤, 사람을 구하는 소중한 도구가 될 거야.”

인쇄할 때 낡은 돈은 기계를 더럽히기 일쑤였습니다. 돈에서 나오는 먼지도 아주 많아 가끔 기계를 청소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계에 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고, 고장 낼까 봐 두려워 늘 기술 담당 수련생에게 의존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의존하려 할 때마다 수련생들은 제 기계가 아무 문제 없이 잘 작동하니 볼 필요가 없다고 말했고, 그러면 어김없이 인쇄할 때 돈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가끔 돈의 액수가 맞지 않으면 제 돈으로 채워 넣었는데, 한번은 3천 위안이 부족했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잘못된 걸까?’ 반년 후, 저는 다른 방 온돌 자리 밑에서 그 돈을 찾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방에서 이 일을 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한번은 방 안 가득 돈을 펼쳐놓았는데, 누군가 대문을 ‘쾅쾅’ 하고 멈추지 않고 두드렸습니다. 저는 즉시 정념으로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부님의 제자다.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 마음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어보니 밖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어떤 형식의 교란이든 저는 인정하지 않았고, 항목의 정상적인 운영을 늦춘 적도 없었습니다.

인터넷에 접속해 주간을 내려받을 때도 인터넷 속도가 불안정해 밤부터 새벽 한두 시까지 걸리곤 했습니다. 일이 끝나면 다시 제가 사는 곳으로 돌아왔는데, 매주 그렇게 했고 한 번도 중단한 적이 없었습니다.

2) 대법이 열어준 지혜

몇 년간 매일같이 단련하는 과정에서 저는 점차 더 나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을 냄비에 넣고 3분 정도 찐 다음 꺼내 한 묶음씩 비닐로 싸서 끈으로 묶었습니다. 이렇게 하니 돈이 훨씬 반듯해졌습니다. 한 장씩 펴지 않아도 되니 시간이 많이 절약됐고, 누르는 것보다 묶는 것이 더 단단하고 평평했습니다. 하지만 새 지폐 위에 접착제가 있는 것은 찔 수 없었습니다.

저는 대법제자로서 의존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노년 수련생은 기계 수리 기초를 잘 배우지 못한다는 고정관념이 저를 여러 해 동안 가로막았습니다. 제가 기술을 너무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저는 과중한 업무량을 분산시키고 안으로 마음을 닦아야 했습니다. 육체의 고통을 극복하면서 구세력의 교란을 부정할 수는 있었지만, 기계를 수리할 때도 정념으로 그것과 소통하고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소홀히 했습니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더라도 개인 수련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됩니다. 과중한 일 때문에 법공부 시간이 많이 줄었고, 발정념을 할 때도 피곤해서 손이 처지거나 잠이 들곤 했습니다. 기술 수련생의 태도나 마주치는 어려움을 늘 같은 사고방식으로 대해서는 안 되며, 마음을 가라앉히고 안으로 찾아야 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마침내 한 수련생이 저와 협력하게 됐고, 그녀는 기술 방면에서 저보다 더 능숙했습니다. 덕분에 저는 법공부할 시간을 확보하고 발정념의 질을 보장할 수 있게 됐습니다.

4. 은사(恩師)의 보호에 감사드립니다

남편은 지난 여러 해 동안 묵묵히 제 곁을 지키며 힘닿는 데까지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제가 돈을 정리하는 것을 돕고 밥을 지어주었습니다. 수련생이 저를 찾아오면 대신 말을 전하고 처리해주었으며, 단 한 번도 불평하거나 원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주 대법 음향 스피커를 몸에 지니고 다니며 들었습니다. 평소 몸이 튼튼한 그에게 가끔 병증이 나타나면 저도 세심하게 돌보며 대법의 법리를 알려주었고, 그러면 그는 약을 먹지 않아도 금세 좋아졌습니다.

그는 대법을 인정했고 자녀들에게 대법을 알리는 것에도 동의했습니다. 자녀들도 저를 지지했고, 며느리는 제가 바쁘면 돕겠다고 말해주었습니다. 하지만 며느리도 두 아이를 돌봐야 해서 저는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저는 육체의 고생을 극복하는 면에서 사부님께서 하신 말씀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됐고, 제 몸에 대한 어떤 느낌도 내려놓았습니다. 인생의 전반을 고난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 속에 살았던 사람으로서, 지금의 매 분 매 초는 모두 사부님께서 제게 하사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더 이상 바라는 것도 원망도 없으며, 마음은 평온합니다.

대법 항목을 하면서 개인의 힘만으로 버티는 것은 소용없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단지 수련생과 중생에 대해 책임지려는 마음이 있을 뿐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교란이 있더라도 제자로서 굳건히 나아가야 하며 사악에 겁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압니다. 수련생이 박해받던 그 결정적인 순간에 풍파를 헤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직 사부님과 법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굳건한 정념, 그리고 이 한 점의 정념조차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며, 그것은 저의 믿음과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저의 모든 것은 사부님과 법에서 비롯됐기에 위대하신 사부님께 어떻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만약 더 많은 고생을 함으로써 사부님께서 저희를 위해 걱정하시는 것을 덜어드릴 수 있다면, 그 어떤 고생도 달콤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제가 매 걸음을 잘 걸을 수 있도록 보호해주시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10월 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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