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행복한 가족

글/ 허난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8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로, 20여 년의 수련 과정에서 여러 고비를 넘고 넘어지기도 하며, 심지어 중단했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했지만, 사부님께서는 저를 한 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보호해주시고 일깨워주시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셨기에 오늘의 제자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대법에서 받은 은혜를 글로 써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고자 합니다.

1. 나의 아버지

아버지는 중국공산당(중공)의 각종 정치운동을 겪으셨는데, 특히 ‘문화대혁명’ 시기에 자주 비판투쟁을 당하셔서 심리적으로 큰 상처를 입고 정신이 극도로 긴장해 여러 질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는 형제자매가 많았는데 아버지가 우리를 때리고 욕하는 것은 일상이어서 우리 모두 아버지를 무서워했습니다.

심한 신경쇠약으로 아버지는 자주 잠을 이루지 못해 술과 담배로 시간을 보내셨는데, 하루에 술 한 병, 담배 두 갑이 기본이었고 매일 약을 달고 사셨습니다. 그로 인해 몸이 극도로 쇠약해져 나중에는 걷기조차 힘들어지자 직장에서 조기퇴직을 권유해 50대 초반에 퇴직하셨습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아버지는 여러 기공(氣功)을 연마했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1995년경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하셨는데, 처음에는 연공하면서 약도 드셨지만 수련한 지 얼마 안 돼 약을 끊으셨습니다. 몸이 점점 좋아져 나중에는 무병하고 온몸이 가벼운 경지에 이르셨습니다. 그래서 법원에서 퇴직한 한 노신사와 함께 비디오 기기를 메고 시골 마을을 다니며 대법을 널리 알리기 시작해, 우리 현의 많은 인연 있는 사람들이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반본귀진(返本歸眞) 수련의 길에 들어서게 하셨습니다.

1999년 장쩌민 사악한 집단이 대법을 박해하기 시작했을 때, 아버지는 “눈 내리는 밤 문을 닫고 금서(禁書)를 본다. 배우지 말라고 할수록 더 좋은 책이니 더욱 열심히 배워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이미 70세가 넘으셨지만 중공의 괴롭힘과 협박을 여러 차례 받으셨고 세뇌반에도 끌려가셨습니다. 2003년에 향 파출소, 현 공안국, 시 공안국 등 여러 기관에서 많은 사람이 와서 아버지를 납치하려 했던 일이 기억납니다. 그들이 아직도 연공하느냐고 묻자 아버지는 “연공하지 말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연공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살겠습니까?”라고 답하셨습니다. 공안 요원이 또 “계속 연공하면 퇴직금을 주지 않겠다”고 하자 아버지는 “그것도 안 됩니다. 안 주면 내가 뭘 먹고 어떻게 생활하겠습니까?”라고 답하셨습니다. 시 공안국의 한 과장이 아버지를 현 공안국으로 데려가려는 듯한 신호를 보냈는데, 진상을 아는 소장이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연세가 많으신데(당시 아버지는 75세), 데려가서 뭐 하겠습니까?”라고 한마디 했습니다.

아버지의 대법에 대한 확고한 정념으로 사부님께서 아버지를 보호해주셔서 그 위험해 보이던 납치를 피할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어떤 힘도 흔들 수 없었습니다. 매일 법공부와 연공을 빼놓지 않으셨고, 80~90세의 나이에도 60대처럼 보이셨으며 걸음이 가볍고 동작이 민첩하셨습니다. 93세에 구세력이 병업의 형식으로 육신을 앗아갔습니다. 돌아가신 후 한 수련생이 문상을 갔는데 얼굴을 덮은 천을 들춰보니 웃는 얼굴이었다고 합니다. 화장 후 뼈가 매우 깨끗하고 하얗게 연분홍빛을 띠어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수련하지 않는 가족들도 보고 남다르다고 느꼈습니다. 저는 아버지가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으리라 믿습니다.

2. 대법이 나에게 준 새 생명

저는 농촌에서 자라 23세에 결혼하고 이듬해 임신했습니다. 임신 중에 한 점쟁이를 만났는데, 우리 일행 8명 중 다른 사람들은 모두 봐주면서 제 차례가 되자 봐주지 않겠다며 아무리 부탁해도 안 봐줬습니다. 그것은 제 운명이 좋지 않아 점괘 값도 안 된다는 뜻이었습니다. 과연 아이를 낳을 때 자연분만이 위험해 제왕절개를 했는데, 배를 열어보니 난소에 종양이 있어 즉시 종양제거 수술을 했습니다. 1년 반 후 난소에 또 종양이 생겨 두 번째 수술을 했습니다. 1년 반 동안 두 번 수술을 해서 몸이 매우 허약해졌고, 감기에 걸리면 오래 끌어 입원해서 수액을 맞아야 겨우 나았습니다.

그때 시어머니도 저를 무시하고 늘 트집을 잡아 괴롭히셨습니다. 억울함과 원망으로 인후염과 신경쇠약을 얻었고, 설상가상으로 요충병까지 생겼습니다. 눕지도 못하고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습니다. 며칠 만에 체중이 60kg에서 43kg으로 줄었습니다.

1998년 4~5월경 어느 날 친정에 갔는데, 아버지가 제 상태를 보시고 또 파룬궁을 연마하라고 권하셨습니다. 전에도 저를 볼 때마다 파룬궁이 얼마나 좋은지 말씀하셨지만 저는 믿지 않았고 마음속으로 아버지를 비웃기까지 했습니다. 이번에는 병의 고통 때문에 한번 해보기로 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 비디오를 보러 갔는데 잠시 후 잠이 들었고, 제1강이 끝나고 사람들이 다 가자 저도 잠에서 깼습니다. 신기한 것은 사부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모두 제 귀에 들어왔고 아주 또렷해서 책의 내용과 똑같았다는 것입니다. “어떤 소수의 사람은 또 잠을 잘 것인데, 내가 강의를 끝내면 그도 잠을 깬다. 무엇 때문인가? 그의 머리 안에 병이 있어 그에게 조정(調整)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머리를 조정하면, 그는 전혀 견뎌내지 못한다. 그래서 반드시 그를 마취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데, 그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청각부분에 문제가 없어 그는 잠을 달콤히 자지만 도리어 한 글자도 빠뜨리지 않고 모두 듣는다. 사람은 이때부터 정신이 나며 이틀을 자지 않아도 졸리지 않는다.”(전법륜) 저는 이치를 깨닫고 나서 매일 연공을 견지하고 대량으로 법공부를 하며 약을 먹지 않았습니다. 곧 무병하고 온몸이 가벼운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2005년 아들이 11살 때 남편이 바람을 피웠는데 저는 그를 욕했습니다. 그러자 제 입이 헐었습니다. 욕하는 것이 잘못인 줄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입이 헐어서 낫지 않자 남편이 판람근(板藍根)을 마시라고 권해 그대로 했습니다. 그런데 낫기는커녕 나중에는 입안에 끈적끈적한 것이 생겨 입이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다시 친정으로 돌아가 법공부와 연공을 하니 3일 만에 나았습니다.

그런데 집에 돌아와 남편이 계속 밖으로 나가 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보고 또 참을 수 없었습니다. 화가 나서 또 그를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욕하고 화를 내니 겨드랑이 밑에 혹이 생겼는데, 좋은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제 주변에 이 병에 걸린 사람이 병원에서 치료받다 못 고치고 죽었습니다. 저는 다시 친정에 가서 대량으로 법공부하고 연공해 10일 후 기본적으로 완치됐습니다.

그런데 남편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올라 때로는 그의 직장 상사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화가 나서 법도 들어오지 않고 공법도 연마하지 않고 이웃들과 카드놀이를 했습니다. 같은 마을의 한 수련생이 저를 찾아와 다시 수련으로 돌아오라고 권했는데, 수련생의 그 진실한 마음을 보고 “좋아요! 다시 연마하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날 밤 꿈을 꿨는데 장쩌민이 우리 집에 왔습니다. 그것이 또 저에게 물었습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 아나? 내가 누군지 아나?” 제가 말했습니다. “누군지 알지, 상하이에서 온 그 놈 아니냐!” 깨어나서 매우 놀랐습니다! 침착하게 생각해보았습니다. ‘이것은 내가 남편과 그 여자를 원망해서 이 사악한 것을 불러들인 게 아닌가?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아.’ 저는 단호히 결심하고 남편 일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습니다. 누군가 그에게 전화하는 것을 듣거나 봐도 억지로 참고 보지도 않았고, 누가 걸었는지 추측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리 참기 힘들어도 참아야 했고 반드시 이 정을 내려놓아야 했습니다.

제가 진정으로 내려놓자 남편도 그 여자와 왕래하지 않게 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여기까지 쓰면서 눈물이 흐릅니다. 사부님! 제가 무슨 덕이 있어 사부님께서 저를 위해 이렇게 많은 큰 고비와 난관을 해결해주셨습니까? 매 관마다 목숨이 걸린 사관(死關)이었습니다. 사부님! 이번 생에 우주대법을 수련할 수 있고 사부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매번 사부님 법상 앞에 무릎 꿇을 때마다 힘껏 몇 번씩 머리를 조아립니다. 큰 은혜는 말로 다할 수 없으니 제자는 오직 정진! 정진! 또 정진할 뿐입니다! 자신을 잘 수련하고 많은 사람을 구해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3. 다섯째 여동생 이야기

다섯째 여동생은 대략 2012년에 파룬따파 수련에 들어섰는데, 우리집에서 법을 얻어 수련한 5명 중 가장 늦은 사람입니다.

여동생의 큰아들(가명 퉁퉁)이 중학교 1학년 때 간질병에 걸렸는데, 농촌에서는 양고풍(羊羔風)이라고 부릅니다. 동생이 울면서 저에게 하소연하자 제가 말했습니다. “그렇게 많고 큰 병도 난 연공(파룬궁)으로 나았는데, 너도 한번 해보지 않겠니?” 동생도 믿고 퉁퉁을 데리고 매일 저녁 우리집에 와서 법공부와 연공을 했는데, 두 달여가 지나자 동생 남편이 아들을 병원에 데려가 검사하라고 재촉했고 동생은 확신이 없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루는 제 아들이 돌아와서 퉁퉁이 오늘 밤 안 온다고, 귀 뒤에 혹이 생겼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동생이 퉁퉁을 데리고 또 왔습니다. 보니 그의 귀 뒤에 고약을 붙였길래 제가 웃으며 말했습니다. “어머! 그 나쁜 것이 급하게 나가려는데 네가 막고 안 보내주네.” 그러자 퉁퉁은 고약을 떼어 버렸습니다. 다음 날 귀 뒤의 혹이 어디로 갔는지 고름도 피도 나오지 않고 그냥 사라졌습니다. 동생 남편이 또 병원에 가서 검사하라고 재촉하자 저는 동생에게 괜찮을 거라고, 아들을 데리고 검사받으러 가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퉁퉁을 데리고 시 병원에 가서 검사한 결과 뇌 속에 있던 그 음영이 없어지고 사라졌다고 했습니다.

동생은 대법의 신기함을 직접 목격했고 그래서 그 후 십여 년 동안 줄곧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광명한 길에서 확고히 걸어왔습니다.

4. 큰 오빠 뇌경색 후유증이 법공부와 연공 두 달 만에 완치

제 큰 오빠는 아버지를 돌보던 중 어느 날 아침 아버지가 그를 깨웠는데 꾸물거리며 일어나지 않자, 아버지는 그를 신경 쓰지 않고 혼자 나가셨습니다. 여동생이 아버지께 돈을 드리러 갔다가 오빠가 이상한 것을 발견했는데, 오빠가 방 안에서 문을 찾지 못해 나가지도 못하고 계단을 내려가지도 못해 급히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검사 결과 뇌경색이었습니다.

오빠가 퇴원한 후 뇌경색 후유증으로 걸을 때 비틀거리고 매우 느렸으며 침이 계속 흘렀습니다. 형수는 그런 남편을 매우 싫어해서 밥도 해줬다 안 해줬다 했습니다. 저는 오빠가 불쌍해서 우리집에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우리집 아이도 큰 외삼촌이 더럽다고 싫어했습니다. 저는 오빠에게 저와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하자고 제안했고 오빠는 동의했습니다. 매일 우리집 2층에서 함께 법공부와 연공을 했습니다. 매번 화장지 반 롤을 써서 침을 닦았습니다. 우리집에서 제2장 ‘파룬장법(法輪樁法)’(대원만법-2. 동작도해)을 연마할 때 그가 포륜(抱輪)하다가 팔이 아파서 내렸는데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동안 오빠는 다섯째 동생 집에서 연공했습니다. 포륜하다가 팔이 아파서 내리자 동생이 엄하게 “왜 내려? 올려!”라고 해서 감히 다시 내리지 못하고 사부님의 구령에 따라 동작을 완전히 끝마쳤습니다. 저를 만나자 오빠는 다섯째 동생이 너무 엄하다고 했습니다. 제가 오빠에게 말했습니다. “동생 말이 맞아. 오빠를 위한 거야. 포륜하다 힘들어서 팔을 내리면 연공 효과가 없어. 요구대로 끝까지 해야 효과가 있어.”

이렇게 약 두 달 후 오빠의 몸은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큰 언니가 오빠를 보고 놀라며 “정말 완전히 나았구나! 뇌경색을 앓았던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아”라고 했습니다.

아쉬운 것은 오빠가 아직까지 진정으로 수련에 들어서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오빠가 하루빨리 대법 수련에 들어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5. 둘째 언니와 넷째 여동생

먼저 둘째 언니 이야기입니다. 10여 년 전 오른쪽 가슴에 악성종양이 생겼는데, 언니는 ‘거미줄’이 가슴을 감싸고 있는 것 같아 매우 괴롭고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언니가 우리집에 와서 수술하고 싶지 않다고 하자 제가 그럼 파룬궁을 연마해보라고 했습니다. 언니는 우리집에서 법공부와 연공을 시작했는데, 6일째 되는 날 가슴을 감싸고 있던 ‘거미줄’이 갑자기 끊어져 매우 가벼워졌습니다.

그때부터 언니는 줄곧 법공부와 연공을 견지했습니다. 몇 년 후 또 반복이 나타났는데, 안으로 찾아 심성의 원인을 찾고 제때에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자신을 바로잡으니 곧 또 좋아졌습니다.

넷째 여동생은 야맹증이 있었는데, 의학적으로 야맹증이라고 합니다. 역시 파룬궁을 배우고 연마한 후 시력이 빨리 정상으로 회복됐습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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