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산둥(山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예순두 살이고 2005년 기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대법을 얻게 된 과정
2003년, 저는 우연한 기회에 단체 관광으로 홍콩을 방문했습니다. 거리와 관광지 곳곳에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 ‘하늘이 중공을 멸한다, 탈당하면 평안하다’, ‘장쩌민(江澤民)을 법에 따라 처벌하라’ 등의 현수막이 가득 걸려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중국에서는 볼 수 없는 광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보고 들은 것은 TV에서 본 부정적인 내용뿐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속으로 ‘만약 중국공산당(중공)이 선전하는 것처럼 그렇게 나쁘다면 왜 이렇게 많은 똑똑한 홍콩 사람들이 믿는 것일까? 왜 중국에서 말하는 것과 다를까? 혹시 이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고 무지한 것일까? 우리만 똑똑한 걸까?’라는 수많은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곳 대법제자에게 물었고, 그들은 하나하나 저에게 답해주었습니다. 그들은 파룬궁이 불가의 훌륭하고 높은 덕을 갖춘 수련대법이며, 사람들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중공은 무신론을 선전하며 거짓으로 ‘천안문 분신 자살’ 위조 사건과 ‘1400 사례’를 조작해 국민을 기만한다고 했습니다. 현재 파룬따파는 이미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전파됐는데, 유독 우리 중국에서만 수련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중국에는 1억 명이 넘는 사람이 수련하고 있었고, 많은 고급 지식인들도 각자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목격했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온 후, 저는 이렇게 좋은 공법이라면 반드시 ‘전법륜(轉法輪)’을 찾아보겠다고 결심했습니다. 2005년, 저는 한 대법제자를 만났는데 그가 하는 말이 홍콩의 대법제자와 똑같았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책 한 권 주실 수 있나요?” 그는 “네”라고 말했습니다. 며칠 지나지 않아 그는 귀한 책인 ‘전법륜’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절반도 채 읽기 전에 저는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이 너무 훌륭하다고 느꼈습니다. 사람들에게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고, 갈등을 겪을 때 ‘안으로 찾기’를 통해 자신의 도덕 수준을 높여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병을 없애고 몸을 건강하게 하는 데 아주 신기한 효과가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회처럼 도덕이 타락해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탐오, 부패, 절도, 강도, 살인, 매춘, 위조 등을 일삼는 것과는 달랐습니다. 책에 나온 내용은 중공의 선전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저는 비로소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이 중공의 오랜 기간 심각한 탄압과 온갖 방해에도 불구하고, 생사의 위험을 무릅쓰고 지금까지 견뎌낼 수 있었는지 깨달았습니다.
더 읽어보니 이것은 평범한 책이 아니라 사람을 선하게 수련하도록 지도하는 천서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귀한 책을 손에 들고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이것이 내가 그토록 오랫동안 간절히 찾던 것이었구나, 드디어 찾았어. 나는 세상에서 가장 복이 많은 사람이야.’ 그때부터 중공의 파룬궁에 대한 박해가 아무리 심하고 어떤 어려운 장애를 만나더라도 저는 수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선량함을 공격하는 것은 반드시 사악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저는 이 귀한 책을 결코 떠난 적이 없고 지금까지도 그러합니다.
이 귀한 책을 절반도 채 읽기 전에 사부님께서 저의 몸을 정화해주셨습니다. 계속해서 화장실에 갔지만 배는 아프지 않았습니다. 몸속의 오장육부가 마치 전부 크게 조절되는 것 같았습니다. 열흘 넘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는데 배고픔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굶어 죽었을 것입니다. 얼굴이 누렇게 떴는데 제 형부는 저를 보고 웃으며 “저 꼴이 돼서도 병원에 안 가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사부님께서 제 몸을 정화해주시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수년간 저를 괴롭히던 요추, 경추 증식증 등 각종 질병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몸은 병 없이 가볍고 편안한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심성 제고
끊임없는 법공부를 통해 심성도 끊임없이 제고됐고 마음도 넓어졌습니다. 몇 가지 사례만 들어보겠습니다. 시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신데 건물 하나를 갖고 계셨습니다. 저희 부부는 시내에 살면서 이미 건물이 있었기에 시아버지의 건물을 작은 시누이에게 주기로 했습니다.
심성이 제고되자 저는 이전처럼 사소한 이익을 위해 다투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한번은 10여 위안(약 2천 원)밖에 안 되는 물건 때문에 시어머니를 찾아간 적이 있습니다. 이 작은 일 때문에 온 가족이 불행해졌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우스꽝스럽고 진선인의 표준에서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었습니다. 지금은 갈등을 겪을 때 사부님의 ‘안으로 찾다’라는 법보(法寶, 법력이 있는 보물)에 따라, 먼저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찾고 더는 다른 사람과 다투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제가 수련하지 않았다면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전의 저는 화를 잘 내는 성격이고 공산당 당문화에 깊이 물든 사람이었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일을 처리하고, 하고 싶은 말을 바로 뱉어내며 남의 감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매우 강한 여자였고 전통문화와 거리가 멀었습니다. 자신의 본성을 완전히 잊고 제 생각과 맞지 않으면 참지 못하고 바로 폭발했습니다. 이로 인해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고, 특히 집에서는 모든 일이 제 뜻대로 돼야 하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과 다투며 제가 옳고 상대가 틀렸다는 것을 따져야만 직성이 풀렸습니다. 스스로 잘못했다고는 전혀 느끼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제가 대법을 수련한 후 이렇게 크게 변화한 것을 보고, 저를 변화시킨 ‘전법륜’에 대해 매우 흥미를 가졌습니다. 그렇게 제 남편과 언니도 대법 수련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저의 부모님, 세 명의 자매, 아들, 며느리, 손자는 수련하지는 않지만 대법의 신기함과 아름다움을 보았기에 모두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며 그들 역시 대법 속에서 은혜를 입었습니다. 특히 제 남편은 30년 넘게 운전하며 여러 차례 큰 교통사고를 겪었지만, 매번 놀라움만 있었고 위험은 없었으며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습니다. 온 가족이 부처님의 위대한 은혜 속에 살고 있습니다. 이는 파룬따파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도 합니다.
한번은 한 수련생이 저희집에 와서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다른 수련생이 제가 만든 대법 자료와 대법 서적의 품질이 좋지 않다고 불평하며, 다른 지역에 가서 자료를 받을지언정 제가 만든 것은 받지 않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저는 억울해서 눈물이 뚝뚝 떨어졌고 속으로 변명했습니다. ‘책 한 권 만드는 게 얼마나 힘든데, 난 이미 최선을 다했어, 더 이상 할 능력이 없어.’ 이 지역에서 책을 만들 수 있는 수련생이 거의 없어서 대부분 저와 다른 한 수련생이 만들었습니다. 수련생들이 필요한 것을 만들어야 했고 다른 일도 해야 해서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습니다. 저는 속으로 ‘어떻게 고마워하기는커녕 불평을 할 수 있지? 만약 품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더 이상 만들지 않겠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은 불평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습니다. ‘이것은 질투심이 아닌가? 난 너무 이기적이구나, 이 더러운 마음을 제거해야 해.’
또 한번은 한 수련생이 어떤 일로 저를 오해해서 저희집에 찾아왔습니다. 제가 아무리 설명해도 그는 듣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시 동요하지 않고 그가 계속해서 저를 비난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우연한 일은 없어. 다른 사람이 억울하게 만들 때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는지 보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서 저는 참아냈고 이전처럼 시비를 가리려 다투지 않았습니다. 마음이 넓고 편안해졌습니다. 그 수련생도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저에게 사과했고 우리는 모두 법리(法理)상에서 인식이 제고됐습니다. 저는 온몸이 뜨거워지며 ‘찌릿’하고 마치 사부님께서 나쁜 물질을 한꺼번에 제거해주신 것처럼 매우 가볍고 아름다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자료 거점 설립, 중생구도
저는 이렇게 좋은 대법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 그들이 모두 대법 속에서 은혜를 입고, 큰 재난 속에서 평안하게 지내며, 중공의 거짓 선전에 속지 않고, 하루빨리 진상을 깨달아 복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2010년, 저와 남편은 상의 끝에 저희집을 자료 거점으로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중국에서 자료 거점을 운영하려면 컴퓨터, 프린터, 종이, 잉크 등 소모품을 직접 돈을 내고 구매해야 합니다. 당시 가장 큰 어려움은 초기에 돈이 없고 기술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방법을 강구했습니다. 아들이 자신의 컴퓨터를 저에게 주었고, 기술 수련생이 프린터 한 대를 주었습니다. 저는 제 금반지를 팔아 1,000여 위안을 마련해 보태 썼습니다. 나중에는 다른 수련생들도 아끼고 모은 돈을 자료 거점에 기부해주었습니다. 수련생이 저에게 기술을 가르쳐주었는데, 저는 마우스 잡는 법도 몰랐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수련생도 매우 바빴고 먼 길을 오는 것도 쉽지 않았기에, 저는 먼저 아들에게 배우게 한 뒤 아들이 저에게 가르쳐주게 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조금씩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자료 거점이 설립됐습니다.
저의 자료 거점에서는 주로 진상 자료, 대법 서적,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등을 만들었습니다. 이어서 저는 CD 굽기, 진상 스티커 인쇄, 호신부(護身符) 만들기, 진상 달력 만들기, 진상 지폐 인쇄 등도 배웠습니다. 처음에는 저희 부부가 직접 자료와 스티커를 인쇄해 나가서 나누어주었습니다. 저희 지역은 도시가 그리 크지 않아 도시 전체를 거의 한 바퀴 돌았고, 작은 도시 전체에 우리의 발자취가 남았습니다.
나중에는 제 주변에 나이 드신 수련생이 많았는데 대부분 글을 잘 모르고 자료를 만들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자료를 인쇄한 후 밖에 나가서 진상을 알리는 수련생들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수련생들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 만들었습니다. 특히 3년 동안의 코로나 봉쇄가 심각했지만, 우리의 사람을 구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우리는 밤낮으로 진상 자료, 스티커, 주간지를 수련생들의 손에 전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70세가 넘으셨는데, 계단을 오르며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지만 힘든 줄 몰랐습니다. 이는 큰 재난 앞에서 세상 사람들이 진상을 깨달아 구원받고, 거짓 선전의 중독에서 벗어나 더 많은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중공은 1999년 7월 20일 대법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며, 파룬궁수련생들에게 ‘명예를 실추시키고, 경제를 파탄시키고, 육체를 소멸’시키는 탄압을 가했습니다. 납치, 감금, 강제노동, 징역, 심지어 생체 장기적출까지 저지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진상 자료 거점은 중공이 파룬궁을 박해하는 데 있어 눈엣가시입니다. 파룬궁수련생을 한 명 잡으면 제일 먼저 자료를 어디서 얻었는지 묻습니다.
한번은 저희 법공부 팀의 한 수련생이 밖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악의적인 신고로 납치돼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당시 우리는 모르고, 그의 집이 법공부 장소였기에 평소처럼 그의 집에 갔습니다. 저는 션윈(神韻) CD 한 봉지와 자료, 주간지 등을 가지고 이 수련생의 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경찰이 이미 이 수련생의 집을 수색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고, 엉뚱하게 다른 동의 다른 호실로 들어가 이 재난을 피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부님께서 저를 보호해주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지 모릅니다. 그때 한 수련생이 저에게 빨리 프린터, 컴퓨터 및 장비를 옮기라고 했습니다. 제 마음도 조금 흔들렸습니다. 프린터와 컴퓨터를 만지며 마음이 아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저는 이 법기들을 옮기고 싶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 계시니,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자!’ 그렇게 이번 난(難)은 사부님의 보호 아래 무사히 넘어갔습니다.
2022년, 저희 시 중공 악당 정부는 100명이 넘는 경찰을 동원해 파룬궁수련생 20명을 납치했습니다. 며칠 후 몇몇 수련생은 집에 돌아왔고, 일부는 처분보류됐습니다. 한 수련생은 세상을 떠났고, 세 명의 수련생은 지금까지 감옥에 갇혀 박해받고 있습니다. 저는 당시 이 수련생들과 자주 왕래했습니다. 한 수련생이 저에게 스파이가 법공부 팀에 잠입해 이 수련생들과 누가 연락하는지 알아보려 했고, 저도 언급됐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제 마음도 매우 침체됐습니다. 저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더 강화하고 안으로 찾았으며, 사부님께서 제 곁에 계심을 믿고 구세력의 모든 안배를 부정하며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걸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 마음을 보시고 법 한 구절이 제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완전히 법에 있는 사람은 누구도 움직일 수 없는데”(2005년 샌프란시스코 법회 설법). 원래 먹구름이 낀 것 같았던 마음이 순식간에 맑고 투명해졌습니다. 저는 두려운 느낌이 없었고 이것이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저를 보호해주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또 한번은 프린터를 사러 갔을 때 상인이 계속 저에게 프린터를 사서 무엇에 쓸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당시 생각 없이 “다른 사람 것을 대신 사는 거예요. 뭘 인쇄하는 데 쓰는지는 몰라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다시 “분명 당신이 쓸 거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듣고 바로 “당신은 장사하는 사람인데 손님이 사 간 물건을 뭐에 쓰는지, 누구에게 사주는지 꼭 물어봐야 해요? 저는 돈을 내고 당신은 물건을 주는 거죠. 이건 제 사생활이에요. 말할 필요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대법의 자비와 위엄은 동시에 존재합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 아래 저는 순조롭게 프린터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이런 사례는 여러 번 있었지만 지면 관계상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매번 사악한 교란이 있었지만 모두 우리가 중생을 구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고, 매번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놀람만 있고 위험은 없었으며 위험이 순조롭게 해결됐습니다.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때로는 방해가 매우 컸습니다. 한동안 프린터가 자주 고장 났는데, 저희 지역에는 수리할 줄 아는 수련생이 없었고 저도 수리할 줄 몰라서 작은 자전거에 싣고 일반인을 찾아가 수리해야 했습니다. 여러 대의 프린터를 동시에 사용하다 보니 위층에 놓을 자리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헛간에서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여름에는 몹시 더웠고 낮에도 검은 모기가 많았습니다. 겨울에는 추워서 덜덜 떨었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저는 수련에 대한 믿음이 흔들린 적이 없고, 어려움에 굴복한 적이 없습니다.
천 마디 말로도 사부님의 위대한 은혜를 다 말할 수 없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와 깨우침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20년을 평온하게 걸어올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입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은 만큼, 저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하고, 자신을 잘 수련하며, 새로운 우주를 위한 표준에 하루빨리 도달하고, 더 많은 중생을 구하여 제 소명을 완수하고 서약을 이행하겠습니다. 더 많은 중생을 이끌고 사부님을 따라 자신의 진정한 고향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9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23/49963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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