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20여 년간 수련하면서 수련생들은 모두 크고 작은 갖가지 일들을 겪었는데, 그 내용이 두꺼운 책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제게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몇 가지 일화입니다. 이런 경험들을 통해 저는 과거 이기적이고 무관심하며 향락을 추구하고 자기 일이 아니면 상관하지 않던 제 모습을 보게 됐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깨끗이 씻어 건져주셨고, 대법이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이치를 깨닫게 해 인생의 새 장을 열게 해주셨습니다. 이제 이 작은 이야기들을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적절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기 바랍니다.
1. 수련생이 어려울 때 도움의 손길 내밀다
한 수련생 가정에는 원래 일곱 식구가 있었는데, 가족 중 건강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고 모두 병이 있거나 장애가 있었습니다. 부인은 예전에 수련했으나 박해 이후 여러 차례 교란을 받아 지금은 정신이 혼미합니다. 남편과 막내딸은 몇 년 전 차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큰아들은 지금 뇌졸중으로 병상에 누워 있고, 큰손자는 오랫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둘째 아들 W는 제가 아는 사이로 예전에 수련했는데, 뇌졸중 후 식물인간이 되어 한 병원 중환자실에서 7~8년째 지내고 있습니다. 큰딸 L은 오른쪽 다리를 절단한 장애인인데, 과거 대법을 위해 세 차례나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가 돌아왔습니다. 이런 가정을 그녀 같은 사람이 지탱해야만 했습니다.
그 집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일에 저는 기본적으로 모두 참여했습니다. 둘째 아들 간호용 휴지와 물티슈는 제가 제때에 가져다주었고, 일정 기간마다 병원 비용 정산과 의료보험 환급 수속을 도왔습니다. 여러 차례 이사할 때 짐을 싣고 내리는 것부터 방 정리와 청소, 입원 수속과 약값 계산, 약 타기, 병실 간호와 생활 돌봄, 은행에서 기초생활보장금 찾기, 각종 생활용품 구입까지, 때로는 한밤중에 전화 한 통에 옷을 입고 바로 달려가야 했습니다.
그 가족 대부분은 고정 수입이 없어 적은 기초생활보장금으로 생활했습니다. 원래 재개발로 받은 세 채의 집 중 두 채는 이미 팔아 병원비와 생활비에 보탰습니다. 부인은 종종 제게 돈을 주며 필요한 물건을 사오라고 했는데, 때로는 만두나 채소, 과일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들의 돈을 아껴주려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바나나도 갈라진 싼 것을 샀습니다. 우리 집에 있는 과일, 차, 과자, 병에 든 식초 등을 가져다주어 그 집의 경제적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 했습니다.
제가 갈 때면 사부님께서 새로 발표하신 경문과 명혜망의 좋은 교류 문장을 가져가 보여주고, 연공과 발정념을 격려하며 정법 노정을 따라가도록 했습니다.
처음엔 괜찮았습니다. 부인이 저를 부르는 간격이 길어 저도 기본적으로 부르면 바로 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는 사흘이 멀다 하고 부르니 짜증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집안에 무슨 일만 있으면 나를 찾는구나. 이렇게 나에게만 의존하나? 다른 사람은 없나?’ 때로 그녀의 전화인 것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또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일이 많아? 스스로 먼저 처리할 수는 없나?’ 가는 것도 마지못해서였고, 만나면 주로 그녀를 나무라고 원망했습니다.
사실 상대방 입장에서 보면 그 집은 정말 너무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저도 일이 많아서 적당한 수련생을 찾아 대신 돌보게 할 수 없을까 생각했습니다. 이리저리 생각해도 적당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이건 짐을 떠넘기려는 마음이 아닌가? 어찌 남을 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것도 내 책임의 일부일 수 있으니, 선한 마음을 닦고 자신의 조급한 마음과 원망하는 마음을 제거하는 좋은 기회로 삼자. 좋은 일로 대하면 좋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훨씬 평온해졌습니다.
2. 친척이 어려울 때 힘껏 돕다
큰오빠의 사돈어른이 2년 전 갑자기 말기 폐암에 걸려 입원을 거부하고 집에 계셨습니다. 올케언니가 낮 간호를, 올케언니의 큰오빠가 밤 간호를 맡았습니다. 그분이 통증으로 밤새 신음하시는 바람에 올케언니는 밤에 전혀 잠을 못 자고 낮에 출근해 몹시 피곤했고, 며칠 만에 몸이 견디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큰오빠가 제게 전화해 며칠만 대신할 수 있는지 물었고, 저는 승낙했습니다. 가서는 제가 종일 돌보게 됐습니다. 어르신을 돌보기 위해 먼저 인공호흡기, 가정용 모니터 등 장비 사용법을 익히고, 제때 약을 드리고 하루 세 끼를 준비했습니다. 당시 그분은 몸이 쇠약하고 얼굴이 창백하며 온몸이 수척했습니다. 저는 그분께 “제 사부님께서 절 보내셨습니다.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믿으셔야 합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진상 걸이를 드렸더니 “이것은 가장 소중한 선물이군요”라고 하셨습니다. 또 진상 호신부를 드리며 저를 따라 위의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외우게 했습니다. 그분은 따라 외우셨습니다. 제가 “고통을 줄이려면 계속 외우세요”라고 하자 “알겠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런 인연이 있으니 먼저 사부님의 경문 ‘이성’을 읽어드리고, 이어서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동영상을 보여드렸습니다. 보신 후 “너무 좋네요! 저는 전에 리훙쯔 대사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예전엔 돈 버느라 바빠서 사람이 사는 목적을 몰랐어요”라고 하셨습니다. 사부님을 존칭으로 부르신 것이 제 예상 밖이었는데, 사부님을 존경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분의 동의를 얻어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녹음을 들려드렸고, 제가 떠날 때까지 네 강의 넘게 들으셨습니다. 그 사이 대법의 진상과 ‘삼퇴’의 의미를 설명드렸고, 이해하신 후 소년선봉대 조직을 탈퇴하셨습니다.
다른 일을 처리해야 해서 큰오빠 집에는 나흘만 있었는데,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못 잤습니다. 밤에는 기본적으로 선잠 상태였습니다. 어르신은 밤에 많을 때는 여러 번 대변을 보려고 하셨는데, 매번 한참 애써도 해결이 안 됐습니다. 그분이 부르시면 저는 바로 몸을 돌려 일어나 달려가 돌봤습니다. 때로는 이쪽에서 막 누우면 저쪽에서 또 부르기도 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원망, 질책, 짜증, 세심하지 못함, 남의 말을 듣지 않으려 함, 다른 사람의 감정을 배려하지 않음 등 사람 마음과 표현을 찾아냈습니다.
비록 나흘만 갔지만 큰오빠와 올케언니의 일부 관념을 바꿨습니다. 특히 큰오빠는 제가 ‘이성’과 ‘왜 인류가 존재하게 되었는가’ 등 사부님의 경문을 보여주자 아주 진지하게 한 번 읽었습니다. 이는 이전에는 감히 생각도 못했던 일입니다. 예전에는 이 문제를 이야기하면 싫어했고, 사부님의 경문을 보는 것은 더더욱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이로써 저는 남을 대신 생각하고 자신을 바꾸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비록 어르신은 결국 돌아가셨지만 분명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입니다. 한번은 꿈에 그분이 나타나셨는데 저와 함께 마차에 앉아 계셨습니다. 얼굴은 젊어지고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제가 “어디 가시는 길인가요?”라고 묻자, 위를 가리키며 “출근하러 갑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분이 하늘의 좋은 곳으로 가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3. 윗대의 원한을 아랫대가 풀다
올해 2월, 작은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입원하셨습니다. 작은아버지에게는 외지에서 일하는 딸 하나뿐인데 전화가 꺼져 연락이 안 됐습니다. 그래서 큰오빠가 제게 전화해 돌봐달라고 했습니다. 소식을 듣고 저는 다소 복잡한 마음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마음이 복잡한 데는 사연이 있습니다. 윗대의 일 때문에 우리집은 기본적으로 작은아버지 집과 왕래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집에서 둘째인데, 할아버지가 우파로 몰려 동북으로 가신 후 아버지는 하얼빈의 한 야간학교 교사가 되셨습니다. 1960년부터 부모님은 고향에 돈을 부치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월급이 적어 10위안을 부쳤고 나중엔 15위안, 20위안으로 올려 매달, 매년 부쳐 할머니와 어린 고모, 작은아버지를 부양했습니다. 그런데 매번 부친 돈 중 작은아버지는 할머니께 5위안만 드리고 나머지는 자기가 가졌습니다. 부모님이 고향에 돌아와 할머니와 이야기하다 사실을 알게 되어 작은아버지를 만나 사실 여부를 물었지만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형제 사이에 갈등이 생겼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때부터 부모님은 자주 송금 문제로 싸우셨고 집안이 늘 시끄러웠습니다. 그때 5위안이면 기본적으로 한 사람의 한 달 생활비였습니다. 우리는 네 남매에 여섯 식구였는데, 제가 태어났을 때 이미 집안 형편이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제대로 먹지 못해 영양실조로 중학교 때 같은 반 친구들보다 머리 하나는 작았습니다. 게다가 누렇게 여위어 자주 아버지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농담으로 “어이쿠, 늙은 병자가 어린 병자를 데리고 왔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계속 고향에 송금하셨고, 자식들은 제대로 못 먹고, 본인이 아파도 돈이 없어 어머니는 이웃과 친구들에게 빌려야 했습니다.
나중에 우리 가족 모두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한번은 집문서를 바꿔야 했는데, 문서를 작은아버지가 쥐고 바꾸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이 집은 아버지가 받아 할머니께 살게 해드린 것인데 나중에 돌려받으려 했기 때문입니다. 작은아버지는 수속을 밟고 인맥을 동원한다는 명목으로 부모님께 돈을 요구하고, 또 부모님 몰래 큰누나에게도 돈을 요구해 한 건으로 두 번 돈을 받았습니다. 가족들은 작은아버지의 신용을 의심하고 인품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으며, 저도 작은아버지에 대해 좋지 않은 견해를 갖게 됐습니다.
작은아버지에게는 딸 하나뿐인데, 그녀의 사채를 갚느라 집을 팔고 여기저기 돈을 빌렸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여러 번 빌렸습니다. 자신이 병이 있다고 거짓말하고 돈을 갚지 않아 친척 친구들이 모두 그를 멀리했습니다. 빚더미에 앉은 후 작은아버지는 떠돌이 생활을 했습니다. 옷은 더럽고 기름때가 묻어도 빨거나 갈아입지 않고, 수염도 깎지 않고, 끼니도 거르며 생활이 매우 불규칙했고, 거기다 마음까지 좋지 않아 결국 병이 났습니다.
이전 같았으면 저는 전혀 그를 돌보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수련하니 위급한 때 돕지 않고 죽어가는 사람을 못 본 체할 수 없습니다. 수련인에게는 적이 없고, ‘원한을 품고 증오를 품는다’는 공산당 문화스러운 것은 더더욱 말하지 않습니다. 윗대의 원한을 대대로 전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것은 중공 악당과 다를 바 없지 않겠습니까?
아, 말은 쉬워도 실천은 어렵습니다. 응급실에서 초췌한 작은아버지를 보니 170cm가 넘는 키에 40kg도 안 되게 여위고 이빨도 거의 다 빠져 있어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 기억의 조각들이 자꾸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저는 그런 좋지 않은 생각을 억누르고 계속 밖으로 배출하면서, 입으로는 그를 위로하고 마음으로는 자신을 달랬습니다. ‘그렇게 속 좁게 굴지 마. 작은아버지가 지금 어려운데 돌보지 않을 수 있겠어? 반드시 나서서 도와야 해.’ 그래서 저는 가져간 유심 없는 휴대폰을 켜고 마이크를 작은아버지의 귀에 가까이 대어 작은 소리로 사부님의 ‘광저우 설법’ 녹음을 들려줬습니다.
새벽 무렵 의사가 와서 칼륨 부족이 심각하다고 해서 서둘러 칼륨 보충 주사를 처방받아 놓아드렸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 혈압이 계속 올라 200이 되자 의사가 강압제 펌프를 추가해야 한다고 해서 또 서둘러 수속을 밟으러 갔습니다. 저는 몇 년째 일을 하지 않아 수입이나 저축이 없고, 생활비도 매달 500위안 이하로 관리하며, 가진 돈도 200위안 남짓이었지만 사람 구하는 것이 급했습니다. 저는 계속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이 가련한 생명을 구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새벽녘에 작은아버지의 상태가 어느 정도 안정되자, 의사의 동의를 얻어 새벽 3시에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물건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불, 휴지와 물티슈, 새 옷과 헌 옷, 세면도구 등을 큰 가방 두 개에 담고, 가려움 완화용 모기 기피제와 물파스도 챙겼습니다. 동시에 어머니께 좁쌀죽을 끓이고 토마토 달걀볶음을 만들어 도시락통에 담아 가져가게 했습니다. 먼저 밥을 먹이고, 이어서 면도와 세수를 시켜드렸습니다. 그때 여동생도 와서 저와 함께 소변이 묻은 솜바지와 겉옷을 벗기고 몸을 씻긴 뒤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혔습니다. 하룻밤 만에 작은아버지의 혈압이 내려가 수축기 혈압이 130 정도, 이완기 혈압도 정상이 됐습니다.
나중에 여동생이 직장에 휴가 수속을 밟으러 가고 제가 또 간병을 갔는데, 작은아버지에게 7~8시간 동안 사부님 설법을 들려드렸습니다. 작은아버지는 잠도 잘 자고 회복도 잘 되어 예전처럼 웅얼거려 못 알아듣는 게 아니라 귀에 대고 들으면 대략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날 하루에만 여섯 번 소변을 봤는데, 매번 종이 기저귀와 간호 패드를 갈 때마다 이리저리 뒤집어야 했고, 살이 없어 뼈가 닿으니 조심스럽게 뒤집어야 했습니다. 뒤집을 때마다 작은아버지는 아파서 “아이고, 아이고” 소리를 내셨습니다.
며칠 후 작은아버지는 드디어 위험한 시기를 넘기고 병원에서도 침술 마사지, 삼킴 연습 등 재활 치료를 시작했습니다. 이전 병원은 비용이 높아서 재활 병원으로 옮겼습니다.
이후 큰오빠가 돌아와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작은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 여동생이 작은아버지가 어젯밤 꿈에서 시험을 보러 갔는데 국어를 겨우 합격했다고 전했습니다. 저는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작은아버지의 생명이 보존되고 몸이 좋은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분명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누군가 대법 진상을 알려주고 불법(佛法)을 듣기를 기다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바로 이 일을 기다린 것일지도요. 사부님의 자비는 정말 어디에나 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큰오빠도 이 꿈에 대한 이해를 말했습니다. 그는 이 꿈이 좋은 꿈이며, 합격은 이 고비를 넘겼다는 뜻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큰오빠는 작은아버지 일가의 처지에 대해서도 감회를 느끼며 고훈을 떠올렸습니다. “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경사가 있고, 선을 쌓지 않은 집안에는 반드시 재앙이 있지.” 큰형은 또 말했습니다. “남은 것은 작은아버지에게 달렸어.”
맺음말
위에서 일어난 일들은 모든 대법제자가 적지 않게 겪었을 것이며, 수련생들도 모두 사부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려 하며 수련인을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동시에 저는 한 가지 문제를 생각해봤습니다. 이런 일을 하루 지속하기는 쉽지만 20여 년 지속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런 일을 한 사람이 하기는 쉽지만 거의 1억에 가까운 단체가 하기는 쉽지 않은데, 우리 대법제자는 해냈습니다. 우리가 닦는 것은 고덕대법(高德大法)이고, 여기는 한 조각 정토(淨土)이며,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 것이 우리 내심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공 악당은 폭력을 숭상하고 투쟁 철학을 내세우며,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증오 문화를 주입해 대대로 독을 전하고, 세대를 건너 독을 전해 대대로 중독되게 합니다. 이런 독화된 씨앗이 어릴 때부터 사람들 마음속에 뿌리내리고 자라나 악한 열매를 맺게 하고, 이렇게 악순환하며 대대로 중국인을 해치고 있습니다. 주하이 차량 돌진 사건, 끊임없이 일어나는 학교 폭력 사건이 바로 명백한 증거이며, 모든 죄악의 근원은 바로 중공이고, 그것은 바로 종양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잘해도 여전히 우리 수련 단체를 손가락질하고 다른 눈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그런 의도적인 시선을 개의치 않을 것이고, 사실이 아닌 보도에 동요되지도 않을 것이며, 오직 계속 견지하며 더욱 뛰어나고 좋게 해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한 1인 미디어 수련생이 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왜 당신들은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그토록 관대하면서 박해받는 자에게는 그토록 가혹합니까?” 왜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지 않고, 일어난 일들을 보면서 어떤 단체인지 생각하고 판단해보지 않습니까? 이 단체는 20여 년간의 잔혹한 탄압 아래, 심지어 투옥, 고문, 생체 장기 적출의 생사(死生) 대가까지 치르면서도 여전히 정의와 양심을 굳건히 지키고, 비폭력적이고 이성적 방식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진상과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에게 평화와 희망을 가져다줍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수련하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진선인(眞·善·忍)을 기준으로 삼는 수련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진심으로 중국인들이 중공을 명확히 인식하고 중공을 멀리하며,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여 신의 보우를 받고 건강과 평안을 누리기를 바랍니다.
제자가 사부님께 절을 올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18/49667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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