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1999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한 후 몸과 마음에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건강을 되찾고 월경도 정상으로 돌아왔으며 안색도 좋아졌습니다. 예전에는 피부가 거무스름해서 이웃들이 ‘검은 나한’처럼 보인다고 했는데, 지금은 ‘복숭아꽃처럼 화사하다’고 말합니다. 성격도 이기적이고 편한 것만 찾으며 게으르고 허영심과 질투심이 강하며 변덕스럽고 다투기 좋아하던 사람에서, 부지런하고 선량하며 관대하고 양보할 줄 알며 늘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했습니다. 일에는 책임감을 갖고 임하며, 가정을 세심하게 돌보고 남편을 도우며 자녀를 바르게 교육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자매를 존중하며 친척과 친구들을 예의 바르게 대했고, 하루 종일 밝은 미소를 잃지 않았습니다.
1999년 7월 중국공산당(중공)이 파룬궁을 미친 듯이 박해하기 시작한 후, 중국 대법제자들은 온갖 박해를 받았습니다. 저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박해로 잃었고, 강제로 이혼당했으며, 직장에서 불법 해고됐습니다. 이렇게 많은 박해를 당했지만 사부님의 가르침과 대법에 대한 확고한 신념은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매번 사악한 박해를 겪을 때마다 중공 악당의 사악함을 더욱 분명히 보게 됐고, 사악에 이용돼 박해에 가담한 중생들이 얼마나 불쌍하고 가련한지 느끼게 됐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사부님의 무한한 자비와 대법의 끝없는 위력을 체험하게 됐다는 점입니다. 진심으로 아직도 박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하루빨리 진상을 깨닫고, 더는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지 않으며, 자신이 저지른 잘못을 갑절로 보상해 자신과 가족의 아름다운 미래를 지켜나가길 바랍니다.
1. 국보대장이 나서서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
저는 휴가차 집에 돌아갔다가 사악한 자들에게 납치돼 불법으로 구치소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죄명을 만들어내려 했고, 제가 근무하던 단위의 국보(국내안전보위대: 파룬궁 탄압 담당 공안기구)를 시켜 이른바 ‘증거’를 찾는다며 샅샅이 뒤지게 했습니다. 국보대장은 제가 일하던 학교에 와서 조사를 했는데, 학생과 동료, 지도부 모두 저를 높이 평가했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제게 쓴 편지가 30~40통 정도 있었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미처 읽지 못하고 책상 위에 두었는데, 우연히 한 통을 열어보니 반에서 성적이 가장 뒤처진 학생이 쓴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은 ‘선생님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선생님입니다’라고 적어놓았습니다. 다른 학생들의 편지는 보지 못해 내용은 알 수 없었습니다.
그 국보대장은 모든 편지를 다 읽은 후 구치소로 와서 저를 만났습니다. 그 자리에는 평소 저를 모욕하던 국보 경찰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는 제 앞에서 자신이 교장과 교육국 국장을 대표해 저를 보러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만약 제가 문제가 있는 교사였다면 절대 그들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또한 학생들의 편지를 읽고 크게 감동받았다고 했습니다. “현 전체 농촌 교사가 천 명이 넘는데, 학생들로부터 이렇게 존경과 사랑을 받고 감동적인 편지를 받는 교사가 어디 있겠습니까?”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파룬궁 사부님 리훙쯔의 가르침인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학생들을 가르치고 직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농촌 유수아동’들을 대할 때 단순히 지식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생활도 돌보고 가능한 범위에서 도와주었으며, 심리 건강에도 세심하게 신경 썼습니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진심으로 대했기에 평균 성적이 20여 점대에서 2년도 안 돼 합격선에 도달했습니다. 생활이 어렵고 대부분의 학생이 의사소통조차 힘든 극빈 지역에서 이런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사부님과 대법의 인도 덕분이었습니다.
그가 제가 언제 어느 수업에서 학생들에게 진선인을 가르쳤냐고 묻자, 저는 “저는 매 순간 진선인에 따라 행동하고 일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지방 경찰들도 평소에는 저를 모욕하며 교사 자격이 없다고 했지만, 이 자리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 후 그는 여러 차례 다시 저를 보러 오겠다고 신청했지만 현지 국보 경찰들에게 거절당했습니다. 나중에 불법 재판이 열렸을 때 가족이 전해준 말에 따르면, 법정에서 판사가 제가 업무에 매우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임한다고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 후 알게 된 사실은 그 국보대장이 승진해 더는 선량한 사람들을 박해하는 국보대대라는 ‘죽음의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해 받은 복이었습니다.
2. 간부가 진상을 알고 대법제자를 위해 공정한 말을 하다
저는 법공부가 부족했고 연공도 꾸준히 하지 못했으며, 진상을 알리는 일은 더더욱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체제 내에서 파룬궁 박해에 가담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미움과 두려움뿐, 자비심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불법 구류에서 풀려나 집에 돌아오자마자 박해는 그림자처럼 따라붙었습니다. 지역 경찰은 가족을 통해 제 사진을 요구하고 연공하지 않겠다는 보증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이유는 ‘블랙리스트’에서 지워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고, 가족에게도 협조하지 말고 중공의 거짓말을 믿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후 경찰은 마을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보증서를 쓰도록 설득하게 했습니다. 저는 간부에게 진상을 알리며 박해에 가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이후 이른바 ‘제로 행동’이 벌어졌을 때 경찰이 집에 와서 저를 만나려 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부했지만 ‘왔다면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해 집에 들여 차를 내고 과일도 권했습니다. 그들은 먹지 않았습니다. 먼저 제게 무슨 어려움이 있냐고 묻기에, 저는 박해로 인해 정상적으로 일하지 못하고 어느 직장이든 그들이 찾아가 상사에게 저를 감시하게 만들었다고 말했습니다. 회사 상사는 “근무시간 8시간만 관리할 수 있습니다, 퇴근 후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 사직해야 했습니다. 새 직장에 들어가도 또 찾아와 괴롭혔고, 그 결과 여러 번 일자리를 잃어 지금은 먹고살기도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국보 경찰의 행위가 지나치다며 윗선에 보고하겠다고 했습니다.
그 뒤 여성 경찰과 함께 와서는 저를 ‘돌본다’는 핑계로 찾아왔습니다. 당시 제 마음이 좋지 않아 “저는 진선인을 믿는다는 이유로 박해를 당해 밥조차 먹기 어렵습니다, 당신들은 왜 온 것입니까? 진선인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는 게 무슨 잘못입니까?”라고 직접 물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 제복을 입고 있으니 당신들에게 압력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라며 어색하게 웃었습니다. 몇 마디 형식적인 말만 하고 떠났습니다.
이후 사부님의 설법을 배우면서 마음이 제고됐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생명들이고 자비로 진상을 알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명혜주간’에 실린 글을 보니 수련생들이 경찰에게 법적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찾아온 경찰에게는 집에 들이지 않고 물었습니다. “당신들이 우리집에 들어오는 근거가 되는 법률 조항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한 경찰은 두 걸음 물러섰고, 다른 경찰은 휴대폰으로 제 모습을 촬영하려 했습니다. 저는 “촬영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이는 불법 행위입니다, 저는 당신을 고소할 수 있습니다”라고 엄정히 말하자 그는 즉시 촬영을 멈추고 풀이 죽어 돌아갔습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참으로 가련하다고 느꼈습니다.
얼마 후 파출소장이 우리 지역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저를 만나고 싶다고 했지만 저는 집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가족에게 보증서를 쓰라고 강요하며 그렇지 않으면 계속 찾아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끝내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간부가 직접 전화를 걸어와 만남을 요구했을 때, 저는 오히려 진상을 알릴 좋은 기회라 생각해 동의했습니다. 간부가 경찰을 데리고 왔고, 모두 앉자마자 저는 말을 시작했습니다. “당신들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도둑질, 강도, 살인, 매춘, 도박, 마약을 보십시오. 어느 하나라도 파룬궁수련생이 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 사부님은 언제나 진선인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저는 진선인에 따라 착한 사람이 됐다는 이유로 이렇게 심한 박해를 받고 있습니다. 여러 번 일자리를 잃었고, 농촌에서 어렵게 자란 제가 새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얼마나 힘듭니까? 부모님은 온갖 고생을 하며 저를 키웠는데, 사회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가까스로 직장을 얻었는데도 제가 진선인을 따른다는 이유로 직장을 잃고 가족은 막대한 압력을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박해로 돌아가셨습니다. 이 박해는 우리집에 끝없는 고통을 가져왔습니다…” 제 말은 눈물로 이어졌습니다. 간부가 “맞습니다, 우리는 함께 자랐습니다”라고 덧붙였고, 소장도 “우리는 모두 농촌 출신입니다, 직장 구하기 어렵습니다”라며 동정했습니다.
간부는 “그녀는 직장을 두 번이나 잃었습니다”라고 했고, 소장은 “맞습니다, 어쩔 수 없지만 우리도 일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도 당신들의 어려움을 이해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들도 법정에서 이것은 ‘운동’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운동에는 끝이 있는 법입니다. 당신들이 그때 자신의 양심에 부끄럽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어 천안문 분신 사건의 의혹과 파룬궁 박해에 법적 근거가 없다는 점, 공안부의 14종 사교(사이비 종교) 목록에 파룬궁이 없다는 점, 국무원의 50호 문건이 이미 파룬궁 서적 출판 금지를 폐지했다는 점을 설명했습니다. 설명이 부족하다 싶어 제 고소 자료와 내부 문건을 보여주며 읽어보라고 했습니다. 소장은 “너무 길어 다 읽을 수 없습니다”라고 했고, 저는 “그럼 가져가서 보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들은 만약 제가 보증서를 쓰지 않으면 다시 찾아오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먼저 자료부터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나간 뒤 간부는 제게 “속이려면 가짜로 보증서를 써요, 마치 귀신을 속이는 것처럼 하세요”라고 권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물론 간부는 제게 선한 마음으로 더는 박해받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지만 저는 끝내 거절했습니다.
3. 민경(民警)이 진상을 알고 파룬궁을 위해 공정한 말을 하고 이성적으로 사직을 선택
나중에 지역사회 젊은 민경이 또 찾아왔습니다. 저는 곧바로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제가 당신들 소장에게 준 자료를 보지 않았나요?” 그들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부의 소송 자료를 꺼내 그들에게 보여주었더니 그들은 곧 사진을 찍으려고 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그냥 가져가서 보세요. 저는 또 한 부가 있습니다.” 그들은 그대로 떠났습니다.
마지막에 민경이 다시 제게 전화해 ‘업무’라면서 만나자고 했습니다. 우리는 만났고 저는 곧바로 물었습니다. “봤습니까?” 그는 위에다 올렸는데 아무 말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저는 이어 말했습니다. “제가 불법적으로 해직된 일에 대해 직장에 정식 해직 문건을 달라고 했지만, 그들은 감히 내주지 못했습니다. 그저 국보 경찰이 준 어떤 문건에 근거해 저를 해직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납득이 가지 않아 말했습니다. “어찌 국보 경찰이 준 어떤 문건이 법 집행의 근거가 될 수 있고, 법률 조문으로 사용할 수 있단 말입니까?” 이때 그가 침묵하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저는 다시 그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말했고, 진정으로 자비로운 마음으로 말했으며, 처음처럼 증오나 원망, 투쟁의 마음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그 세부적인 상황들을 이야기하면서 저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마도 제 심성이 제고됐기 때문일 것이고, 또 아마도 그도 국보의 문건이나 610사무실의 문건을 법률 근거로 삼아 박해에 참여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결국 그의 밝은 면이 드러나 드디어 진상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시 국민당과 공산당이 천하를 다투었을 때, 공산당은 당연히 국민당이 나쁘다고 했지요.” 저는 말했습니다. “그것은 정치투쟁이지요. 그러나 우리 사부님은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셨고,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 더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는 만날 때마다 문제를 해결해주겠다고 했으나, 제가 묻자 그는 난처해하며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는 떠났습니다.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저는 진심으로 그가 다시는 박해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랐고, 진심으로 그가 잘되기를 바랐습니다.
그 후 그는 분명히 진상을 들었는지 더는 ‘관심’을 이유로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사직했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저는 이 생명이 내린 올바른 선택에 정말로 위안을 느꼈습니다.
이 일을 통해 저의 심성이 높아졌습니다. 처음에 공안·검찰·법원 사람들을 두려워하고 증오하고 원망했던 마음이 동정, 가엾게 여기고 자비로 바뀌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그들을 구하고 싶었고, 그들이 진상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진심으로 권했습니다. “더는 파룬궁을 박해하지 마세요. 회개하면 바른 길이 열리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고 파룬궁을 선하게 대하면 복을 얻습니다. 중공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바치지 마세요. 그것의 순장품이 되지 마세요. 절대로 죽어서 마르크스를 만나러 가지 마세요! 우리는 모두 중국인입니다. 자기 생명을 스스로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두 번째 기회는 없습니다. 모두가 자기 위치를 바르게 잡아, 큰 재난이 오기 전에 구원받기를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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