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79세의 농촌 대법제자입니다. 배움이 짧지만 이 자리를 빌려 수련 과정에서 느낀 점을 사부님께 전하고자 합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한 지 20여 년이 됐고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사부님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수련 과정에서 사부님께서는 곳곳에서 저를 보살피고 보호해 주셨으며, 제 죄업을 대신 감당하시고 여러 방법으로 소멸시켜 주셨습니다. 이런 하늘 같은 복을 받았는데 어찌 사부님께 감사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두 차례 진상을 알리다가 진상을 모르는 사람에게 신고돼 파출소에 끌려갔지만, 그때마다 사부님의 가지(加持)로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진상 책자 세 권
2008년 남편이 타이위안(太原)에 계신 아버지를 뵙고자 떠났습니다. 남편은 성실하고 정직하지만 소심한 성격입니다. 저는 그에게 진상 소책자 세 권을 건네며 타이위안에 있는 두 여동생과 남동생, 그리고 부모님께 보여드려 진상을 알고 구원받을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는 무서워서 가져갈 수 없다며 거절했습니다. 당시 중공(중국공산당)의 파룬궁 박해가 매우 심해 버스나 배를 탈 때 몸과 가방을 수색했습니다. 남편이 다른 방에서 신분증을 찾는 동안 저는 서둘러 가부좌를 틀고 발정념을 했습니다. ‘진상 소책자야, 너는 영성이 있어. 우리는 모두 사람을 구하러 왔어. 좋은 사람을 만나면 모습을 드러내고 나쁜 사람을 만나면 숨어.’ 저는 진상 소책자 세 권을 남편의 조끼 안주머니에 몰래 넣었고, 그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남편은 타이위안에서 6일간 머물다 돌아왔습니다. 환하게 웃으며 기뻐하는 그가 첫마디로 “여보, 이번에 파룬궁을 정말 믿게 됐소”라고 했습니다. 기뻐하는 모습에 무슨 일인지 재빨리 물었더니 길에서 겪은 신기한 일들을 들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우리집에는 성(省) 내에서만 통화 가능한 휴대폰 한 대뿐이어서 남편은 가져가지 않았습니다. 칭다오(靑島)에 도착했을 때 조끼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리는 것 같았지만, 가져오지 않은 걸 알기에 신경 쓰지 않았답니다. 두 번째 울릴 때는 진동이 너무 커서 손으로 만져보니 진상 소책자 세 권이 진동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제가 몰래 넣은 걸 단번에 알아챈 그는 소책자가 진동하는 게 너무 신기해 기쁘고도 흥분했다고 했습니다. 타이위안에 도착해 남동생 집에 초대받았을 때, 남편은 진상 책자를 꺼내 “형수가 보낸 거야”라고 전했습니다. 남동생이 두 손으로 받아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던 중 갑자기 ‘펑’ 소리가 남동생 집 작은 불당에서 들렸습니다. 가보니 남동생이 모시던 큰 불상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바람도 비도 없는데 왜 떨어졌을까요? 두 사람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남편은 가져온 이 작은 책 세 권과 관련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저는 ‘사부님께서 중생에게 자비로우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 불상에 좋지 않은 것들이 있어 사부님께서 치워주신 것 같습니다.
발목이 부러졌지만 법공부와 연공으로 70일 만에 회복
2019년 5월 2일, 저는 큰 장터에 진상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하러 갔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려고 자전거를 타고 장터를 나온 지 얼마 안 돼 뒤에서 오던 오토바이와 충돌했습니다. 자전거 앞쪽으로 튕겨져 약 1m 앞으로 날아갔고, 윗입술이 크게 찢어져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한 젊은 여성이 다가와 휴지로 피를 닦아주며 “아주머니, 빨리 병원 가서 꿰매세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필요 없어요”라고 답했습니다. 충격으로 정신이 멍해져 머릿속이 텅 비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둘러싸고 빨리 병원에 가라고 했습니다. 누군가 “아드님 전화번호 아세요? 제가 연락드릴 테니 빨리 병원 가보세요”라고 물었지만 저는 여전히 “필요 없어요”라고 했습니다.
곧이어 수련생 두 명이 와서 “어머, 언니 아니세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들을 보니 마음이 기뻤고 든든한 기둥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저를 친 사람은 젊은 여성이었고 대여섯 살쯤 되는 아이가 함께 있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괜찮았습니다. 저는 “어른이 다친 건 괜찮아요. 아이가 안 다쳤으면 됐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아마 그녀도 놀라서 정신이 없었나 봅니다. 제 말을 듣고 “아! 맞아요, 맞아요. 아이가 다쳤으면 큰일 날 뻔했어요”라고 소리쳤습니다.
한 수련생은 택시를 잡으러 갔고 다른 수련생은 저를 지키며 “제가 부축해드릴게요. 일어나 보세요”라고 했습니다. “네”라고 답하고 수련생이 부축해 일으키자 저는 저도 모르게 ‘쿵’ 하고 주저앉았습니다. 발이 대롱대롱 매달린 느낌이었고 발목에 제대로 붙어있지 않은 것 같았는데, 실제로 부러진 것이었습니다. 잠시 후 택시가 왔고 수련생이 저를 부축해 태웠습니다. 저를 친 여성이 돈이 없다고 하자 “제가 있어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운전기사에게 돈을 주려 하니 그녀가 휴대폰에 돈이 있다며 내겠다고 실랑이했습니다. 수련생이 “그분이 내게 하세요. 그래야 마음이 편할 거예요”라고 했습니다. 수련생이 함께 집에 가려 했지만 운전기사가 좋은 사람이었고 파룬따파 진상을 알고 있어 “아무도 필요 없습니다. 제가 잘 모셔다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운전기사는 저를 집까지 데려다주었습니다.
평소 우리집에서 법공부하던 수련생이 이틀 밤을 함께 있어주었습니다. 이튿날 제 발은 퉁퉁 부었고 무릎부터 발까지 온통 검푸른색으로 변해 매우 무서웠습니다.
딸과 아들이 모두 왔고, 제 상태를 보자마자 병원에 데려가려 했습니다. 남매는 제가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울고 화내며 무척 초조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요양하면 괜찮아질 거야”라고 했습니다. 한참 대치하다 저를 어쩌지 못한 아들이 “엄마, 그럼 누나 집에서 요양하시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했습니다. 딸은 애원하듯 “엄마, 저랑 같이 가요. 네? 안 그러면 제가 매일 집으로 와서 엄마를 돌봐야 하잖아요”라고 했습니다. 딸은 우리집에서 10km 떨어진 곳에 살면서 직장도 다녔습니다. 저는 알겠다고 했습니다.
딸의 집에서 저는 매일 발정념하고 법공부했으며, 아침저녁으로 연공했습니다. 제대로 설 수 없을 때는 침대 옆에 앉아 쉬었다가 다시 연공했습니다. 포륜을 할 때 머리 위든 양옆이든 자세를 유지했습니다. 이렇게 닷새를 버텼습니다.
딸의 친구가 왔을 때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했습니다. 사돈댁 두 여동생이 왔을 때도 진상을 알려 삼퇴를 권했습니다.
18일째 되던 날 한 시간 동안 결가부좌를 할 수 있었습니다. 아침 식사 후 딸과 사위가 모두 출근하고 저 혼자 집에 있었습니다. 처음 화장실에 갈 때는 두 무릎과 두 손으로 기어갔습니다. 대법을 증명하고 딸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아파도 이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 후 거실에서 천천히 걸어다닐 수 있었습니다. 하루하루 건강해지니 정말 신기했습니다! 이렇게 큰 고통을 사부님께서 제자를 위해 대신 감당하셨다는 생각에 감사의 눈물이 저도 모르게 또다시 흘러내렸습니다.
두 달 후 집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딸이 며칠 더 요양하라며 붙잡았습니다. 결국 10일을 더 머물러 딸의 집에서 총 70일을 지낸 후 완전히 회복됐습니다. 집에 돌아온 지 이틀 만에 수련생이 전동스쿠터로 저를 큰 장터에 데려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큰 물결에 다시 합류했습니다.
정법은 이미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반드시 세 가지 일을 잘해 사부님께서 저를 고생스럽게 제도하신 은혜와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위대한 사존께 절을 올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허스(合十)
원문발표: 2025년 7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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