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허베이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농촌에 거주하는 노년 여성 대법제자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착실하게 수련하며 사부님께서 가르치신 대로 실천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최근 몇 년간 수련하면서 체득한 소소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1. 수련생의 교류문 작성을 돕다
저는 배운 것이 없지만 수련생들의 교류문 작성을 도울 수 있는 능력은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부여하신 것입니다. 매년 저는 인근 네 개 향(鄕)에 거주하는 수련생들의 교류문 작성을 돕고 있습니다. 수련생들이 구술한 체득을 글로 정리한 뒤 컴퓨터로 입력하는데, 낮에는 글을 쓰고 밤에는 타자를 칩니다.
저는 몇 무(畝)의 밭을 경작해 생계를 유지하며 연간 3~4천 위안을 법니다. 어떤 수련생은 우리집에서 20~30리(1리는 0.5km), 40~50리 떨어진 곳에 살았는데, 저는 자비로 교통비를 부담하며 원고를 전달했습니다. 원고는 현(縣) 소재지에도 보내야 했는데, 현 소재지는 우리집에서 130리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현 소재지를 다녀오느라 다른 사람들이 밭농사를 다 끝낸 뒤 며칠이 지나서야 저도 농사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가을이 되자 제 옥수수 수확량은 줄지 않았습니다.
어디를 가든 불편해서 삼륜 오토바이를 한 대 구입했습니다. 그해 옥수수를 팔아 4천 위안을 벌었는데, 3,800위안으로 오토바이를 사고 남은 200위안으로 기름을 넣었습니다. 저는 매달 100여 위안의 노령연금으로 생활했습니다. 지금은 다행히 최근 3~4년간 아들이 매년 1~2천 위안을 주고 석탄 3톤을 사줘서 충분히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수련생의 가정 자료점 개설을 돕다
저는 현 소재지의 한 수련생에게 “수련생들의 자료점 개설을 돕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제 말을 듣고 즉시 물품을 구입해 왔습니다. 저는 문맹인 A 수련생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아무리 가르쳐도 익히지 못해 기기를 B 수련생에게 옮기기로 했습니다. B는 학식이 있어 이번에는 쉽게 가르칠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아무리 가르쳐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당시에는 기억했다가도 제가 떠나면 곧 잊어버렸습니다.
서너 차례 방문했지만 여전히 안 돼서 다시 A에게 기기를 가져다줬으나 그도 여전히 익히지 못했습니다. 결국 그의 아들에게 배우도록 했는데, 그의 아들은 수련하지 않았고 학력도 없었지만 기억력이 매우 좋아 가르치자마자 익혔습니다. 이후 몇 차례 더 방문한 끝에 A의 아들이 모두 숙달했습니다. 나중에 C 수련생의 가정 자료점 개설도 도왔는데, 비록 조작이 아직 능숙하지 않지만 운영할 수 있게 됐습니다.
당시 저는 이륜 전동스쿠터를 탔는데, 그때는 수련생과 협력해 정법(正法) 일 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춥든 덥든 상관없이 수련생에게 일이 생기면 남쪽 수련생은 오토바이를 타고, 저는 동쪽에서 스쿠터를 타고 갔습니다. 저희 둘은 40~50리나 떨어져 있었지만 수련생에게 일이 생기면 즉시 달려갔습니다. 가정 자료점을 개설할 때도 저와 남쪽 수련생이 많이 다녔습니다. 명혜망에서 자료점이 곳곳에 꽃피우기를 제창했기에 저희는 최선을 다해 실현하려 했습니다.
3. TV 안테나 설치
저와 남쪽 수련생은 네 개 향(鄕)을 모두 다녔는데, 때로는 신호를 조정하고 때로는 대형 안테나를 설치했습니다. 그때는 모두 구형 기기였고 TV도 구형이었습니다. 저희 둘은 TV와 셋톱박스 조정, 안테나 설치를 모두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중계기 조정 기기, 나침반, 전선, 수평계, 반원자까지 구입했습니다.
어느 날 저와 남쪽 수련생은 약속한 장소에서 만나 안테나를 가지러 가기로 했습니다. 그날 바람이 매우 강하게 불었는데, 안테나를 가져올 곳에서 설치할 곳까지 30~40리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대형 안테나는 사람이 사용하는 큰 솥뚜껑만큼 컸고 이미 조립이 완료된 완제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설치하지 않겠다고 해서 다른 집으로 가야 했습니다. 당시 도로가 아직 포장되지 않아 모두 흙길이었고 울퉁불퉁해서 매우 가기 어려웠습니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저는 안테나를 어깨에 메고 남쪽 수련생의 오토바이에 올라탔습니다. 저는 수련생의 오토바이에 밀착된 것처럼 앉았고,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태산처럼 안정적이었으며 그 큰 안테나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험난한 길이었지만 남쪽 수련생은 빠르고 안정적으로 운전했습니다. 이 구덩이를 빠져나오면 저 구덩이에 빠지고, 크고 작은 돌멩이와 굽은 길뿐이었습니다. 30여 리를 가서야 도착해 설치를 마쳤는데 이미 날이 저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도시 수련생들이 자주 우리집에 와서 저희를 이끌고 세 가지 일을 했고, 제가 성숙해져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이끌어줬습니다. 그 후로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보호가 없었다면 제자는 결코 해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4. 수련생을 이끌어 함께 정법을 실증하다
한번은 남쪽 수련생이 북쪽의 D 수련생을 만났습니다. 남쪽 수련생이 D에게 진상을 알리자 D는 “저는 수련생입니다. 방금 모처에서 돌아왔는데 거기서 며칠 더 머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쪽 수련생이 이 일을 제게 알려주며 북쪽의 D를 찾아가 보라고 했습니다. 제가 찾아가서 방문 목적을 설명했는데 D의 큰딸도 있었습니다. 제가 D에게 “다시 모처에 가실 겁니까?”라고 묻자 그는 “확실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제가 “그곳 수련생들과 교류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그는 “교류는 할 수 있지만 다른 일은 할 수 없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럼 돌아오세요. 북쪽 지역을 책임지세요. 그곳에서 법공부와 연공만 하면 진상을 알릴 수 없고 세 가지 일을 할 수 없어 서약을 이행할 수 없습니다. 돌아와서 북쪽 지역을 책임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나중에 D는 돌아왔지만 진상 알리기는 여전히 부족했습니다. 제가 몇 차례 도왔습니다. 첫 번째는 제가 D와 그의 누나를 데리고 함께 갔습니다. 먼저 다른 마을로 가서 진상을 알렸는데, 첫 번째로 방문한 집이 한 진(鎭) 정법위원회 서기의 어머니 집이었고 마침 정법위원회 서기도 그곳에 있었습니다. 저희는 그와 마주쳐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하게 했으며, 《9평 공산당》(공산당에 대한 9가지 평론) 책과 진상 달력 한 부를 줬는데 그는 모두 받았습니다. 그가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라고 묻자 저는 “진상을 알리고 달력도 나눠드리러 왔습니다. 절대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네, 가보세요”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희는 한 마을 전체에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또 몇 차례 수련생들을 데리고 갔고, 그들은 스스로 진상을 알릴 수 있게 됐습니다. 지금 D는 무엇이든 잘 해내고 있습니다. 진상을 알리면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는데 한 가구도 빠뜨리지 않습니다. 날씨가 좋든 나쁘든 상관없이 가고, 정법을 실증할 일이 생기면 부르는 즉시 와서 시간을 지체하지 않습니다.
5. 자신을 잘 수련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전염병 기간에 모두에게 백신을 맞으라고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어머니 댁에 갔는데 마침 그들이 어머니께 백신을 놓으러 왔습니다. 진(鎭)에서 의사를 포함해 10여 명이 왔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다가와 백신을 맞으라고 하자 저는 “저에게는 신앙이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무슨 신앙입니까?”라고 묻자 저는 “파룬궁을 믿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다음 날 향진 서기와 조직부장이 왔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전염병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천안문 분신’ 조작극의 진상, 공산당이 역대 정치운동에서 수천만 중국인을 살해한 사실, 장쩌민(江澤民)이 파룬궁을 박해한 것은 소인배의 질투 때문이었다는 점을 알려줬습니다. 그리고 석 달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키겠다고 했지만 오늘날까지도 실패했고 파룬궁은 전 세계에 널리 전파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우리가 왜 사람들에게 삼퇴를 권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삼퇴하지 않으면 하늘이 공산당을 멸망시킬 때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두 분도 삼퇴하세요”라고 말하자 그들은 “알겠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마을 서기에게 전화해 오라고 한 뒤 방금 한 말을 모두 명확하게 전달했고 그도 삼퇴했습니다. 저는 “상부에서 여러분에게 파룬궁을 박해하라고 지시했지만 문건도 없습니다. 여러분은 대법제자를 박해해서는 안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 진의 한 마을에 가서 집집마다 진상을 알렸는데, 모두 낮에 가서 진상 소책자, 진상 USB, 《9평 공산당》, 《공산주의의 최종 목적》을 나눠줬습니다. 한번은 《9평》과 진상 USB를 나눠주러 갔는데, 큰 방 안에 마작을 하는 사람이 5~6개 테이블에 20~30명이나 있었습니다. 제가 들어가자 어떤 사람이 “파룬궁이 또 왔네. 무슨 좋은 물건 가져왔어요?”라고 외쳤습니다. 저는 두 개의 책가방에 진상 자료를 가득 채워갔는데, 잠시 후 많이 나눠줬습니다. 바로 그때 갑자기 안쪽 방에서 한 사람이 나와 “누가 당신에게 《9평》을 나눠주라고 했어? 빨리 가!”라고 말했습니다. 진상을 아는 사람이 “가지 마세요! 당신이 무슨 권리로 막습니까? 나눠주세요!”라고 말하자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계속 나눠줬고 책가방 두 개에 책이 두세 권 남았을 때 떠났습니다.
한번은 또 다른 마을로 가서 진상 자료를 나눠주며 진상을 알렸습니다. 길거리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고, 저는 가서 진상 달력, 소책자, USB를 나눠줬습니다. 어떤 사람이 갑자기 “이거 어디서 구했어?”라고 물으며 듣기 싫은 말을 많이 했습니다. 진상을 아는 사람들이 나서서 “남이 어디서 구했든 당신이 상관할 바 아니야. 원하면 가져가고 원치 않으면 그만이야. 이건 사람을 구하는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 저는 이 사람의 집에 다시 갔는데, 이번에는 저를 매우 잘 대해줬고 저도 그를 삼퇴하게 했습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9평》 책과 진상 USB를 달라고 했습니다.
가끔 저희 네 개 향의 수련생들은 함께 협력했습니다. 저희는 집안일을 끝내고 진상을 알리고 진상 자료를 전달하러 갔습니다. 저희 네 개 향의 수련생들은 매우 잘 협력했습니다. 큰 차가 필요하면 큰 차를 운전하고, 작은 차가 필요하면 작은 차를 운전했습니다. 저는 삼륜 오토바이가 있습니다. 저와 남쪽의 여성 수련생은 자주 협력하는데, 일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갔습니다.
6. 대법의 법리로 손자를 잘 이끌다
한번은 큰 손자가 저에게 “할머니, 제가 냄비 한 번 닦으면 1위안 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얘야, 할머니가 책 한 권 보여줄게”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네”라고 답했습니다. 저는 그에게 《전법륜(轉法輪)》을 보여줬습니다. 책을 읽은 후 그는 “할머니, 저 돈 안 받을래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 돈을 안 받으려고 하니?”라고 묻자 큰 손자는 “책에서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한다고 했어요”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대법의 법리를 깨달았습니다.
중공 바이러스(우한 폐렴) 전염병 기간에 학생들이 방학했는데, 큰 손자는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삼퇴(중국공산당의 3가지 조직 탈퇴)를 하게 했고, 어떤 친구는 큰 손자가 직접 삼퇴시켰습니다.
한번은 제가 아이들에게 삼퇴를 시킨 후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기억하라고 알려주는 것을 잊었습니다. 큰 손자가 “할머니, 잊으셨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왜?”라고 묻자 그는 “할머니가 그들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알려주지 않았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제 둘째 손자는 서너 살 때부터 매우 의젓했습니다. 한번은 제가 그에게 사부님의 설법 녹음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는 잠시 들은 후 “할머니, 저도 진선인(眞·善·忍)의 좋은 아이가 돼서 모두가 저를 좋아하게 할래요”라고 말했습니다. 가끔 제가 발정념할 때 그가 밖에 나가 놀고 싶어하면 저는 “할머니 발정념 끝나고 나가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는 울거나 보채지 않고 기다렸고, 제가 발정념을 마친 후에야 “할머니, 발정념 끝났어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그를 데리고 잠시 놀러 나갔습니다.
법에 부합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의 자비로운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9월 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9/7/4988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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