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80세가 넘었고 수련한 지도 20년이 됐습니다. 그동안 우여곡절을 겪으며 나름대로 괜찮게 해왔고 별다른 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어느 날 딸이 현지 파출소에 납치됐고 아들까지 연루됐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제가 잘못해 아들마저 납치당했습니다. 아들과 딸은 각자 자녀를 저에게 맡겼습니다.
당시 저는 정말 청천벽력 같았고 모든 희망을 잃었습니다. ‘아들과 딸은 평소 수련생이나 동료와 한 번도 다툰 적이 없고 수련에서도 빠진 게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지?’ 꿈에서 저와 딸은 한 시험장에 있었는데 둘 다 답안지를 다 작성하지 못했고 작성한 만큼만 점수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사부님께서 저와 딸이 수련에서 똑같은 누락이 있고 문제도 매우 심각하다고 알려주시는 것임을 알았습니다.
1. 80대 노인, 청원의 길에 오르다
저는 당시 너무 큰 충격을 받아 법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었고 안으로 찾는다는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이 일에서 차분히 법공부를 하고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아들을 구하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갈피를 못 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집에 있지 못하고 매일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찾았습니다. 법공부가 안 돼 법에서 이 일을 인식하지 못하고 온통 사람마음과 사람의 상태였습니다. 밥도 잠도 잊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A 수련생을 배치해 제가 이 난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그녀는 늘 저와 교류하며 제가 제고하도록 도왔습니다.
저는 험난한 청원의 길에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바람이 불든 비가 오든, 번개가 치든 눈보라가 몰아치든 그저 걸었습니다. 80세가 넘은 저에게는 정말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제가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가지(加持)가 없어서는 안 됐습니다.
그 무렵 저는 매일 아침 A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고, 그녀는 매번 인내심을 갖고 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녀는 장사를 했지만 저와 교류할 때 아무리 급한 일이 있어도 조급해하지 않고 차분하게 인내심을 갖고 말해주었습니다. 때로는 그녀의 집을 나왔다가 층계를 내려가기도 전에 또 잊어버리고 돌아가서 다시 물었는데, 그때마다 그녀는 여전히 웃으며 인내심을 갖고 말해주었습니다. 매번 그녀의 집을 떠날 때면 어제의 문제는 이해됐지만 오늘은 또 스스로 직면해야 할 문제가 생겼습니다. 층계를 내려갈 때마다 감사함과 막막함이 교차했고 눈물이 끊임없이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저의 수련의 길이므로 스스로 가야 한다는 것을 이성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아들 일로 저는 매일 혼자 뛰어다녔습니다. 손자는 저와 함께 가지 않았고, 저에게는 스마트폰 내비게이션도 없어서 혼자 걸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청원을 위해 저는 처음으로 노면전차를 탔습니다. 정류장에 도착해보니 전차 양쪽에 차 머리가 있어 어느 쪽으로 타야 할지도, 어디서 내려야 할지도 몰랐습니다. 사부님께서 자비롭게 총 6명의 대학생을 보내 길을 안내해 주셨고 저를 법원까지 데려다주셨습니다. 육교를 건너야 할 때는 높고 긴 육교를 바라보며 가슴이 두근거리고 다리가 후들거렸으며 너무 힘들다고 느꼈습니다. ‘아들이 고통받고 있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계속 사부님을 부르며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眞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하고 사부님께 어려운 감정과 두려운 마음을 없애달라고 가지를 청했습니다.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오면서 처음에는 힘들고 어찌할 바를 몰라 몸과 마음이 모두 아팠지만 나중에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게 됐습니다.
2. 수련생들과 전체적으로 협력해 구치소에서 사악과 대전을 벌이다
아들은 구치소에 갇힌 후에도 전향하지 않았습니다. 검찰과 법원 및 관련 부서는 증거를 조작하고 녹취록을 수차례 고치고,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몰래 영상으로 재판을 열었으며 대충 절차를 진행해 2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아들은 서명하지 않고 상급 법원에 항소했습니다.
이때 B 수련생이 왔고, A와 B가 협력해 정의로운 변호사를 선임했습니다. 수련생들의 발정념과 사부님의 도움, 그리고 다른 수련생들의 협력으로 변호사는 1심과 2심 법원에서 성공적으로 사건 기록을 열람했습니다. 변호사가 아들과 면회 약속을 한 날, 구치소 안에는 가슴에 명찰을 단 사람들이 많이 서 있었고 분위기가 긴장됐다고 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는 아들을 순조롭게 만났고 그에게 정념을 전했습니다. 결국 제가 어려운 마음에 사람마음이 일어나 끝까지 견지하지 못했고, 그 결과 2심 법원은 또다시 몰래 구치소에서 영상으로 재판을 열어 억울한 판결을 유지했습니다.
구치소는 계속 가족 면회를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A와 B는 교류 끝에 구치소에서 아들을 구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수련생들은 협력해 구치소, 검찰, 법원에 진상편지를 보냈고 전화해 아들 면회를 요구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 아들을 보러 간 날, 10여 명의 수련생이 함께 가서 저를 지원해 주었고, C가 구치소 소장에게 진상을 말했으며 다른 수련생들은 발정념으로 협력했습니다. 결국 구치소는 면회를 허락했습니다. 저는 아들을 만났고 그에게 정념을 전했습니다.
그 후의 구출 과정에서 제가 주연을 맡아야 할 때 두려운 마음이 생겨 또다시 실수를 저질렀고, 결국 아들을 구출하지 못했습니다.
아들이 출소하는 날, 수련생들이 자발적으로 협력해 견고한 정체(整體)를 형성했고 각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했으며, 마침내 사부님의 가지 아래에서 아들을 순조롭게 집으로 데려올 수 있었습니다.
3. 회고와 반성
저는 파출소부터 공안국, 검찰, 법원, 청원 사무실, 구치소, 마지막으로 감옥까지 길을 걸어왔습니다. 비록 아들을 구출하지는 못했지만 그 과정에서 저의 의지가 단련됐고 아들의 정념이 강해졌으며, 동시에 구치소 소장의 선념을 일깨웠습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마음과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경지는 저를 감동시키고 격려했으며, 저는 절망하지 않았고 결코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아들과 딸이 납치된 때부터 지금껏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러 많은 일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자신을 반성해보니 저는 그동안 법공부를 진지하게 하지 않았고 깊이 있게 하지 않았으며, 수련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했고 엄숙하게 대하지 못했으며 어떻게 수련해야 할지도 몰랐고, 일을 하는 것을 수련으로 여겼으며 원망심, 자아 등 각종 사람마음과 생각, 정을 제거하지 못해 이 난을 초래했습니다. 제자로 인해 사부님께서 마음 쓰시고 대신 감당하게 했으며, 수련생들에게 많은 폐를 끼치고 정법으로 사람을 구하는 데 손실을 가져왔습니다. 앞으로는 더 이상 어수룩하게 앞으로 나아가서는 안 되며, 오직 모든 시간을 아껴 법공부를 많이 하고 세 가지 일을 잘하며 착실하게 수련하고 자신을 제고해야 합니다.
자비롭게 제도해 주시는 사존께 감사드립니다. 사심 없이 도와주신 수련생들께 감사드립니다. 우리 사부님께서는 영원히 가장 높은 하늘 꼭대기에 우뚝 서 계시며, 대법의 찬란한 빛이 영원히 온 우주를 비출 것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1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15/496427.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5/7/15/4964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