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서적 |

대법을 얻어 원한을 덕으로 갚다

글/ 충칭 대법제자 순진(純珍)

[명혜망] 저는 1943년 충칭 변두리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중국공산당(중공)이 없던 시절, 제 고향은 참으로 산이 푸르고 물이 맑았으며 사람들의 마음씨도 고왔습니다. 아버지는 그 지역에서 제법 이름난 의사였고 부처님을 깊이 믿으셨습니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로부터 신령을 공경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았고, 아버지는 종종 수련자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려서부터 ‘나도 커서 꼭 스승을 모시고 도를 닦으며 수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악당이 정권을 탈취하자 집안이 풍비박산 나다

제가 여섯 살이 되던 해에 중공이 정권을 빼앗았습니다. 집권 후 사람을 해치는 갖가지 운동이 끊이지 않았고, 피비린내 나는 바람이 불어닥쳤습니다. 날마다 살아있는 사람들이 중공 악당의 앞잡이들에게 묶이고 매달려 구타당하며 투쟁당하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토지와 재산, 집까지 모두 ‘분배’한다며 빼앗았고(결국 모두 공유화되어 중공 소유가 됨), 그런 다음 사람들을 끌고 가 총살했습니다. 그때부터 어린 저는 중공 악당의 잔인함과 살육, 공포, 투쟁에 온몸이 떨릴 정도로 무서워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저는 중공 악당의 거짓·악·투쟁의 세뇌 교육에 중독되어 점점 무감각해졌고, 이런 비극이 우리집과는 아직 거리가 멀다고 착각했습니다. 그러나 뜻밖에도 문화대혁명 10년 동안의 재앙이 닥치자, 재앙이 바로 우리 집에 떨어졌습니다. 중공 인원들이 우리집에 들이닥쳐 마오쩌둥 초상화도 없고 마오 어록도 없으며 벽에는 산수화만 걸려 있다고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들은 이것들이 모두 봉건·자본·수정주의의 물건이며, 봉건·자본·수정주의의 길을 가고 생활을 한다고 모함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평소 담소 중에 “앞으로 전화기가 손바닥만 해져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누구나 하나씩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한 말을 왜곡해, 그것이 전화기가 아니라 틀림없이 발신기이며, 우리집이 해외와 연결되어 있고 해외 관계는 곧 적과의 특무(스파이) 관계라고 뒤집어씌웠습니다. 그렇게 우리집은 외국과 내통하는 특무 집안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이런 터무니없는 ‘이유’로 아버지를 체포해 매일 거리로 끌고 다니며 투쟁 집회를 열었고, 밤에는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게 했습니다. 민병들이 교대로 감시하며 아버지에게 특무 활동 상황을 써내라고 자백을 강요했습니다. 한겨울 가장 추운 시기에 아버지는 30여 일간 고문을 당한 끝에 심하게 기침을 하고 피를 많이 토하다가 결국 피가 멈추지 않아 억울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향년 겨우 55세였습니다.

저의 큰오빠는 중학교 국어 교사로 글씨를 잘 써서 학교의 표어와 현수막을 도맡아 썼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보름도 안 되어 중공 악당은 큰오빠를 불법적으로 고향에 끌고 와 임시 감옥인 마을 사무실에 가두었습니다. 온종일 그를 고문했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온몸이 성한 곳이 없었습니다. 큰오빠는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먼 곳으로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며칠 후 중공 악당의 앞잡이들이 또 우리집에 와서 그를 찾았습니다. 당시 어머니는 연이은 충격으로 몸이 무너져 서 있을 수도 없어 간신히 벽을 붙잡고 힘겹게 물으셨습니다. “아들이 무슨 죄를 지었습니까? 무엇을 했단 말입니까?” 민병대장은 터무니없이도 “그가 그렇게 글씨를 잘 쓰는 것은 국민당에 충성하기 위해서다”라고 모함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차례 불법적으로 가택수색을 하며 값나가는 물건은 모조리 빼앗아 갔고, 그들이 필요 없다고 여긴 아버지의 의학 서적, 서화, 과학 잡지 등은 모두 마당에 쌓아놓고 석유를 부어 며칠 밤낮을 태워버렸습니다. 그 후 또다시 가택수색을 왔을 때는 더 이상 가져갈 것이 없자, 책상 위에 있던 열다섯 살 셋째 남동생의 중학교 숙제 공책을 발견했습니다. 펼쳐보니 안에 명나라 우겸(于謙)의 시 ‘석회음(石灰吟)’이 베껴져 있었는데, 그 숙제 공책마저 빼앗아 갔습니다. 하루가 지나자 그들이 다시 우리집에 와서 78세 할머니가 보는 앞에서 셋째 동생을 꽁꽁 묶어 끌고 갔습니다. 셋째 동생의 처참한 비명소리에 할머니는 기절해 쓰러지셨고, 병상에 누운 채 일어나지 못하시다가 비참하게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는 셋째 동생이 어느 구치소로 끌려갔는지도 몰랐습니다. 3개월간 박해를 당했는데 도저히 죄목을 씌울 수 없자 집으로 돌려보냈지만, 마을에서 강제 노동개조를 시켰습니다. 아무런 노동 보수도 없이 매일 과중한 노동에 시달렸고, 다른 사람이 투쟁당할 때마다 동생도 함께 묶여 동반 투쟁을 당해야 했습니다. 투쟁을 당하고 돌아올 때마다 온몸이 피투성이였지만, 다음 날이면 또 강제로 끌려나가 돌을 나르고 자갈을 져야 했습니다. 셋째 동생은 이렇게 6년간 박해를 받았습니다. 한창 꽃다운 스무 살 청년이었지만 여러 번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더 이상 살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문화대혁명이 끝났을 때 그는 이미 몸과 마음이 모두 망가져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어린 시절의 선한 마음과 양심을 중공 악당의 폭악함에 완전히 잃어버렸고, 마음속에는 분노와 증오, 억울함과 원한만 가득했으며, 온종일 어떻게 복수하고 원한을 갚을까만 생각했습니다. 제 세계에는 친구도 친척도 없고 모두가 적이라고 여겼습니다.

제가 39세 때 뇌혈관 경화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의사는 “마흔도 안 된 사람이 어떻게 80대 노인의 병을 얻었습니까? 분명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을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저는 중공 악당 문화에 세뇌되어 ‘계급의 한을 잊지 말고 피눈물의 원수를 기억하라’는 생각만 했습니다. 하지만 원수도 못 갚고 한도 풀지 못했습니다. 이어서 모든 내장과 사지가 병들기 시작했습니다.

대법을 얻어 원한을 덕으로 갚다

1999년 정월 초, 의사는 제 가족에게 “더 이상 치료할 방법이 없으니 집으로 모시고 가서 장례를 준비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제가 세상을 떠나려는 가장 위급한 순간,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사람을 통해 보서 『전법륜(轉法輪)』을 제 손에 전해주셨습니다. 저는 기쁘게 대법을 얻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같이 보잘것없는 생명을 버리지 않으심에 감사드립니다.

저는 갈증 난 사람이 물을 마시듯 법공부를 했습니다. 사부님의 설법은 저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한 구절 한 구절이 모두 제 마음에 새겨졌습니다.

끊임없이 법공부를 하면서 대법은 제 오염된 사상을 정화시켰고, 변이된 심령을 바로잡아 주었습니다. 저는 인생의 진정한 의미와 업력윤보의 이치를 깨달았습니다. 제 마음속 깊이 얼어붙었던 원한의 단단한 얼음이 녹아내렸습니다.

2005년 5월, 저는 한때 상처투성이였던 곳, 제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곳 사람들에게 진상을 알려주려 했습니다. 그들도 구원되어야 할 중생이기 때문입니다!

고향에 도착하니 마당에 사람들이 가득 모여 있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무언가 이야기하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울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이번 홍수로 강폭이 넓어져서 제 초등학교 동창의 손자인 여섯 살 아이가 강을 건너지 못하고 물에 휩쓸려 멀리 떠내려갔는데, 지금도 시신조차 찾지 못해 모두 슬퍼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왜 다리를 놓지 않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생산대장이 “큰누님, 몇십 년 동안 돌아오지 않으셨잖아요”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향을 떠난 지 30여 년이 되었습니다.) 돌아오자마자 이런 일을 만난 것도 우연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가난해서 다리를 놓을 수 없어요! 정부는 돈을 주지 않고, 사원들도 돈이 없고, 토지는 이미 몇 번이나 바뀌어서 청묘 비용(농작물이 수확되기 전에 미리 빌리는 돈)조차 낼 수 없습니다.” 저는 청묘 비용이 얼마나 되는지 물었고 대장은 천여 위안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내겠습니다. 저는 대법을 수련한 후 몇 년 동안 약 한 알도 먹지 않았고 주사 한 대도 맞지 않았으며, 지금 몸이 아주 건강합니다. 또한 제가 절약한 의료비를 모두 여러분이 다리와 길을 놓는 데 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대장은 당장 제 두 손을 잡으며 “큰누님, 우리가 바로 대회를 열어 감사드리겠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감사하지 마시고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저를 구해주시고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셨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즉시 천여 위안을 꺼내 그에게 주며 먼저 청묘 비용부터 지불하게 했습니다.

그날 집으로 돌아와 남편과 아들에게 다리와 길을 놓는 일을 상의했습니다. 그들도 매우 기뻐하며 찬성했습니다. 그들은 대법이 제 몸에서 나타낸 신기한 일들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당신 제안이 아주 좋아요. 사람은 꼭 선한 일을 많이 해야 해요”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곧바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2005년 9월, 다리와 길이 정말로 모두 완성되었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이 저를 고향으로 초청해 감사를 표시하겠다고 했습니다. 제가 고향에 도착했을 때 큰길에는 감사의 말을 적은 현수막이 여러 개 걸려 있었고, 모두 제가 고향 후손들을 위해 복을 지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제가 고향에 막 도착하자 생산대장, 대대 서기, 대대장이 모두 와서 저에게 감사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감사하지 마시고 빨리 현수막을 내리세요. 제가 후손들을 위해 복을 지은 것이 아니라 대법이, 우리 사부님이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사부님은 우리에게 명예를 구하지 말고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명예나 이익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니 빨리 그 현수막들을 모두 내리세요”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에게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당시에도 사악이 대법을 박해하는 것이 매우 심했습니다. 저는 공개적으로 그들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대법은 불법(佛法)입니다. 대법은 우주의 대법입니다. 대법은 사람을 구원하는 고덕대법(高德大法)입니다. 대법은 사람들에게 진선인(眞·善·忍)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는 대법입니다! 만약 제가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지 않았다면, 사부님이 저에게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지 않으셨다면, 원한을 잊고 원수가 없다고 가르치지 않으셨다면, 제가 이런 일을 하겠습니까?! 저는 여러분을 미워하지 않았겠습니까? 어떻게 다리를 놓고 길을 닦겠습니까? 복수하기도 바쁠 텐데요! 모두 우리 사부님의 가르침 덕분에 제가 다리를 놓고 길을 닦으려는 것이니, 여러분이 감사하려면 우리 사부님께 감사하세요! 파룬궁은 TV에서 모함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사부님은 가장 자비롭고 위대하십니다! 우리 수련하는 사람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며, 진선인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입니다! 여러분이 그들을 박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앞으로 파룬궁수련생들이 진상 자료를 전하거나 진상을 알리러 오면, 절대로 그들을 밀고하지 마시고 꼭 선하게 대하세요. 이것이 바로 여러분 자신에게 좋은 일이며, 여러분에게 행복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져다주고 복을 받게 할 것입니다.”

대대장과 마을 서기가 모두 말했습니다. “누님, 안심하세요! 만약 앞으로 정말 대법제자들이 우리 이곳에 와서 진상 자료를 전하고 진상을 알린다면, 우리가 반드시 그들을 보호하겠습니다. 우리가 직책에 하루라도 있는 한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안심하세요!”

우리는 자비롭고 위대하신 사부님께서 제자들을 자비로이 제도하시고 온 우주 중생들에게 헤아릴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심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이 글을 쓴 것은 사부님께 대한 저의 무한한 감사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표현하고자 함입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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