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산둥성 대법제자
[명혜망] 저는 올해 일흔 살이고 대법을 얻은 지 20년이 됐습니다. 리훙쯔(李洪志)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대법을 수호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제가 수련의 길에서 겪은 경험 일부를 글로 써서 수련자들과 나누고자 합니다.
장쩌민 고소 편지를 부칠 때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다
2015년 5월 25일 오전 10시경 저는 한 수련자와 함께 택배 본부에 장쩌민 고소장을 부치러 갔습니다. 직원이 보더니 “우리 회사에서 이렇게 높은 곳으로 편지를 보낸 적이 없는데요. 무슨 큰일이 있어서 지방에서는 해결이 안 돼 그렇게 높은 곳까지 가야 하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장쩌민 고소라고 하면 거부할까 봐 “살인 사건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직원이 “빨리 처리해 주세요. 지방에서 해결할 수 있으면 여기까지 오겠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편지는 발송됐습니다. 다음날 저는 접수증을 받았고 나중에 깨달았습니다. 이것도 사부님께서 제게 지혜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사부님께서 곁에 계십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사부님과 대법을 믿어 뜻밖의 해결책을 만나다
2012년 손자가 곧 태어날 무렵 아들이 저와 상의했습니다. 때가 되면 와서 아이를 봐달라고 했습니다. 아들은 다른 도시에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 말을 듣는 순간 제 마음이 조마조마해졌습니다. ‘지금 사람을 구하는 일이 이렇게 급한데 어떻게 해야 할까? 낯선 곳에 가면 수련자도 없고 그곳은 내 수련 환경이 아닌데! 나는 갈 수 없어.’ 저는 일념을 냈습니다. “사부님 저는 꼭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아이를 돌보러 갈 수 없습니다.”
이 일념을 낸 지 10여 분쯤 지나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엄마 우리 둘이 상의했는데 엄마는 오지 않으셔도 돼요. 아내가 먼저 사직하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다가 아이가 유치원에 가면 다시 일자리를 찾겠대요.” 저는 그 순간 눈물이 쏟아졌고 사부님께 대한 무한한 감사로 가득 찼습니다. 당시 며느리는 큰 회사에서 요직을 맡고 있었는데 스스로 사직하고 아이를 돌보겠다고 나서다니요.
이 일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정말로 “수련은 자신에게 달렸고 공은 사부에게 달렸다”(전법륜)였습니다. 사부님과 대법을 믿으면 모든 것을 사부님께서 안배해주십니다. 며느리가 사직한 후 원래 평범했던 아들의 수입이 뜻밖에 계속 올라 예전보다 몇 배가 됐습니다. 아들 가정은 화목하고 즐거웠고 저 또한 줄곧 진상을 알려 중생을 구하는 길을 꾸준히 걸으며 한 번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전염병 기간에 정념정행하다
전염병 봉쇄 기간에 저는 다섯 개 아파트 단지의 수련자들에게 주간지를 전달했습니다. 출발 전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반드시 이 주간지들을 수련자들에게 전달하겠습니다”라고 청했습니다. 첫 번째 수련자 집은 직장 가족 주택단지였습니다. 경비가 저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나를 보지 마라. 나는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때 경비가 묻기도 전에 간부처럼 보이는 사람이 제 옆을 지나가며 경비와 인사를 나누자 경비가 문을 열어주었고 저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경비는 제가 있다는 것을 잊은 듯 묻지도 않았습니다. 수련자 집에 도착하자 수련자가 놀라며 “어떻게 들어오셨어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주민과 함께 들어왔어요”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아파트 단지도 문이 닫혀 있었는데 제가 “아저씨 잠깐 문 좀 열어주세요. 동생한테 물건 전달하고 바로 나올게요”라고 하자 경비가 들여보내 주었습니다. 나머지 몇 곳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는 일념을 굳게 지켰고 매우 순조롭게 모두 들어갔습니다. 시시각각 가지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정념정행으로 사람 구하기를 멈추지 않다
2008년 올림픽 기간 중공 악당의 교란이 심했습니다. 그때 제 마음은 매우 순수했고 잡념이 없었으며 오직 빨리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어느 날 오후 수련자와 함께 진상을 알리러 나가기로 했는데 그 수련자가 일이 있다며 못 가게 됐습니다. 저는 조금 실망했습니다. 당시 우리 지역은 진상 자료가 매우 부족했습니다. 저는 집으로 돌아와 연하장에서 진상 두 장을 오려내고 풀을 가지고 나갔습니다. 신호등이 있는 곳에 도착해 “여기는 사람이 많이 다니니 여기 붙여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모두 볼 수 있게 하자”고 생각하고 주저 없이 붙였습니다.
한 블록 더 가서 신호등 교차로 광고판을 찾아 풀을 바르고 막 붙이려는데 고개를 돌리니 한 청년이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는 무의식적으로 붙인 진상을 떼어내 재빨리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이때 그 청년이 빠르게 제 곁으로 왔습니다. 그제야 제복을 입은 경찰임을 알았습니다. 그가 광고판을 자세히 보았습니다. 저는 어디서 용기가 났는지 “뭘 보세요?”라고 물었습니다. 그가 “당신이 뭔가 붙였잖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사부님의 도움을 청하며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제가 뭘 붙였다는 거예요? 여기 아무것도 없잖아요. 날씨도 더운데 빨리 가세요.” 그 경찰은 “지금은 특별 시기니 아무거나 붙이면 안 됩니다”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저는 정념을 견지해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사부님께서 이 난관을 해결해주셨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저는 다른 눈에 띄는 곳을 찾아 그 진상을 붙였고 그사이 세 사람에게 대법 진상을 알렸습니다.
한번은 정류장에서 한 인연 있는 분을 만났는데 여든 살쯤 돼 보였습니다. 제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자 “일흔여덟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럼 아저씨라고 불러야겠네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아직 본격적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가 갑자기 “당신 파룬궁수련자지? 공산당이 당신에게 돈을 주는데 공산당이 없으면 뭘 먹고살 거야? 그런데도 이런 일을 하러 나오다니. 많은 사람이 내게 이런 얘기를 했는데 난 듣기 싫어”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제가 입을 열었습니다. “아저씨 화내지 마시고 빨리 앉으세요. 제가 잠깐 얘기 좀 할게요. 사람은 건강한 몸과 좋은 마음을 갖는 게 무엇보다 좋지 않겠어요? 제가 젊었을 때 시어머니가 제 아이를 안 봐줘서 시어머니만 보면 화가 났고 화병까지 생겼어요. 나중에 『전법륜』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야 알았어요. 사람이 만나는 모든 기쁜 일이나 기쁘지 않은 일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나 못되게 구는 사람 모두 전생의 인과이고 병은 화에서 온다는 것을요. 그때부터 저는 화를 내지 않았고 시어머니를 원망하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시어머니를 정말 잘 모셔요. 한번은 마을 사람이 제가 시어머니를 잘 모신다고 하니 제 동서가 ‘언니는 파룬궁을 수련해서 그래요.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라고 말하더군요. 이게 바로 이 공법이 좋다는 증거 아니겠어요! 전에는 하루 종일 남편을 욕하고 원망했는데 지금은 진선인(眞·善·忍)대로 하려고 노력하니 남편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남편도 ‘파룬궁이 정말 좋구나. 당신의 고집스러운 성격을 다 바꿨네’라고 말해요.”
제가 이어서 말했습니다. “공산당의 탐관오리들은 탐한 돈을 다 쓸 곳도 없어요. 작은 관리는 크게 탐하고 큰 관리는 엄청나게 탐하며 관리치고 탐하지 않는 사람이 없어요. 우리 서민들은 집 한 채 사느라 죽도록 고생하며 대출금을 갚아요. 이건 사람이 뭘 하려는 게 아니라 하늘이 그것을 멸하려는 거예요. 당시 주먹을 들고 목숨을 바치겠다고 맹세했잖아요. 저는 당신 돈 한 푼도 원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평안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그는 나중에 조용히 제 말을 들으며 계속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마지막에 제가 “성씨가 어떻게 되세요? 예전에 가입한 당·단·대에서 탈퇴시켜 드릴게요. 오직 당신이 평안하기 위해서예요”라고 묻자 꼬박 두 시간 동안 입이 마르도록 말했는데 사부님께서 끊임없이 제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는 마지막에 계속 “알겠습니다. 정말 알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마음속으로 진심으로 사부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한번은 역에서 키가 1미터 80이 넘는 청년을 만났는데 매우 활기차 보였습니다. 제가 다가가 “총각 정말 잘생겼네요. 어디 가는 길이에요?”라고 말을 걸자 그는 집에 잠깐 들른다고 했습니다. 삼퇴로 평안을 보장받는다는 말을 들어봤냐고 묻자 들어봤다며 자기 가족은 모두 당원이고 모두 국가 간부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온 가족이 다 덕이 있고 복이 있는 분들이네요”라고 말하고 이어서 “공산당은 너무 탐욕스러워요”라고 하자 그는 “공산당이 없으면 우리의 오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공산당이 없으면 더 좋을 거예요. 공산당은 능력이 없고 그저 죽이고 빼앗기만 해요”라고 하자 그는 “당신들은 정치를 하는군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말했습니다. “우리 같은 할머니들이 무슨 정치를 하겠어요? 우리 사부님도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그저 사람을 구하러 온 거예요. 많은 예언가들이 장래에 재난이 많을 거라고 했잖아요. 할머니는 그저 당신이 평안하게 재난을 넘기기를 바라는 거예요. 저는 수련한 지 오래돼서 지금 마음도 좋고 상태도 좋아요. 이렇게 오래 약 한 알도 안 먹었어요. (원흉) 장쩌민이 3개월 안에 파룬궁을 소멸시킨다고 했는데 이렇게 오래됐고 20여만 명이 그를 고소했어요.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런 일이 없었어요. 이 법이 바르지 않다면 파룬궁이 지금까지 견지할 수 있었겠어요? 타도되기는커녕 수련하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고 현재 이미 해외 백여 개 국가에 전파됐어요… 만약 우리 둘이 무슨 일을 저지른다면 며칠도 안 돼서 우리를 잡아갔을 거예요. 어떻게 이렇게 오래 가능하겠어요?” 이렇게 제가 말하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고 어느새 1km 길을 걸었습니다. 그가 “아이고 여기서 할머니 말씀만 듣다가 우리집을 지나쳤네요”라고 하자 저는 “할머니는 정말로 당신이 평안하기를 바라는 거예요. 할머니가 탈퇴시켜 드릴게요. 좋죠?”라고 했습니다. 그도 매우 감동해서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한 학생을 만나 제가 “얘야 대학 갈 때가 됐지? 참 잘생겼네”라고 하자 그가 “할머니 저한테 파룬궁 얘기하시려는 거죠? 몇 년 전에 할머니가 저를 탈단시켜 주셨어요. 저는 지금 대학 3학년이에요. 제가 중학교 때 할머니가 탈퇴시켜 주셨어요. 그때 할머니가 쌍성 운동화 신고 빨간 솜옷을 입으셨던 걸 기억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었습니다.
또 한 남학생이 있었는데 제가 막 말을 걸려고 하자 그가 “할머니 저한테 벌써 몇 번이나 말씀하셨어요. 저는 자주 할머니를 만나요. 저를 못 알아보시나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웃으며 “할머니가 자세히 안 봤구나. 미안해. 이건 네가 바로 이 인연이 있다는 거야. 너는 선량한 아이야. 다른 사람은 한 번도 내 말을 못 들을 수도 있는데. 공부 열심히 해. 명심해라. 네가 마음을 다해 공부하면 반드시 아름다운 미래가 있을 거야. 장래에 부모님의 양육 은혜에 꼭 보답해야 해. 할머니는 네 학업이 성취되고 모든 일이 순조롭기를 바란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오랜 세월 수련하면서 진상을 알리고 삼퇴를 권유하는 길에서 온갖 사람과 일을 만났는데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겠습니다. 구체적으로 몇 명인지 통계를 낸 적도 없습니다. 위에서 제가 한 모든 것은 다 사부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었다면 오늘의 저도 없습니다. 지금 저에게 가장 행복하고 가장 즐거운 일은 바로 사람을 구하는 것입니다. 사부님께서 제게 가장 신성한 칭호인 ‘정법시기 대법제자’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 우주는 너무나 큽니다. 우리는 반드시 사부님 말씀을 들어야 하고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을 느슨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원문발표: 2025년 8월 23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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