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자몽(慈夢,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시간이 참 빠르게 흘렀다. 6년 전 뉴욕으로 와서 법회에 참석한 이후 매체 항목과 인연을 맺게 됐다. 최근 1년간은 법난(法難)이 갑작스럽게 닥쳐왔고, 경영진 교체에 이어 매체 파동이 연쇄적으로 발생하면서, 격변하는 상황 속에서 내 수많은 사람의 마음과 집착이 드러났다. 그 대부분은 과거에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은밀한 집착들이었다. 내 심경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기복이 심했다. 순정한 마음가짐을 유지하려 애썼지만, 이해관계와 감정에 휘둘리다 보니 종종 심신이 지치고, 심지어 사고도 예전처럼 명료하고 유연하지 않다고 느꼈다. 도대체 무슨 일인가?
이 1년간 나는 여가 시간마다 자주 사부님 법상 앞에 정좌하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사부님, 저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무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올바르게 하고 있는 걸까요? 제가 잘못한 건가요?……’ 등등.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은 정말로 문서나 데이터 문제 해결보다 훨씬 어렵다. 한때는 피로감을 느꼈고, 심지어 평온한 삶을 그리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떠나는 게 나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런 생각이 어디 대법제자다운가? 안 된다, 버텨야 했다!
다음은 내가 이 1년간 집착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얻은 몇 가지 체득과 경험이다. 이를 나누어 여러분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나 자신에게는 실타래를 풀어내어 소극적 상태에서 벗어나는 과정이기도 했다.
1. 전문성을 향한 매체 전환: 충돌 중에서 협력하고 규범 속에서 성장하다
새로운 경영진이 취임하면서 나는 서양 수련생들이나 서양 일반 회사에서 근무했던 수련생들과 더 빈번하게 협력하고 교류할 기회를 가졌다. 나는 이런 협력 과정을 매우 즐겼다. 그들은 사고가 명확하고 표현이 직접적이어서, 굽이굽이 돌려 추측하는 번거로움을 덜어주어 함께 일하는 것이 더욱 즐거웠다. 그들은 밝은 거울처럼 나의 적지 않은 문제들을 비춰줬다. 급하게 지름길을 찾으려 하고, 장기적 관점은 무시한 채 오직 당장의 성과만을 추구하는 것 등이다.
물론 그들과 배우고 협력하는 과정에서 나를 초조하게 만든 때도 없지 않았다. 우리는 매체에서 여러 해 동안 일해오며 내부 세부사항들도 비교적 잘 알고 있어서, 막 들어와서 아직 업무를 잘 모르는 수련생들에 비해 확실히 어느 정도 경험이 축적되어 있었다. 교류 중에 때로는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고 어조도 온화했지만, 사실 마음속은 이미 파도가 치고 있었다.
어떤 때는 그들이 제시한 방안이 언뜻 보면 매우 완벽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현재 상황과 너무 동떨어져 있어서 전혀 실행할 방법이 없었다. 나는 여러 번 타이핑으로는 명확히 설명할 수 없어서 급해서 바로 전화를 걸었다. 통화를 마쳐도 내 마음은 오랫동안 평온해지지 않았다.
집으로 가는 기차에 앉아 나는 반성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럴까?’ 표면적으로는 조급함이지만, 더 깊은 층에는 각종 은밀한 집착들이 숨어 있었다. 질투심, 이익심, 명예욕, 열등감, 심지어 교만까지. 겉으로는 참을성이 없어 보이며 상대방이 아무것도 모르면서 지도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질투심과 열등감이 작용한 것이었다.
그들의 유창한 영어, 전문적인 표현, 현지 문화에 대한 자연스러운 친숙함. 반면 나는 일상 대화부터 전문 용어까지 거의 모든 것을 별도로 학습해야 합격점을 받을 수 있었다. 마음속으로는 사실 극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또한 그들이 규칙적으로 일하고, 정시에 퇴근하고, 생활할 시간이 있고, 원격근무를 할 수 있는 것을 질투했다. 반면 우리 중국에서 온 수련생들은 마치 천성적으로 고생을 감내하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처럼, 어떤 긴급 업무든 당연히 맡아서 해야 하고 불평해서는 안 되는 것 같았다. 내 마음속 불균형감은 극에 달했다.
얼마나 강렬한 질투심인가! 하지만 집착을 발견하는 것이 바로 수련으로 제거하는 첫 번째 단계다. 갈등이 없다면 내 이 마음이 어떻게 드러날 수 있겠는가? 생각을 바꿔보니, 우리가 업무에서 더 많이 담당하는 것은 주도적이며, 법에서 깨달은 후 자원해서 하는 것이다. 잘하면 위덕은 자신이 얻는 것이니 비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서양인 수련생들의 업무가 비록 겉으로는 여유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효율이 극히 높고 질서정연하다. 이렇게 생각하니 내 마음이 점차 평온해졌고, 원래의 불평과 불만도 더 협력하여 함께 일을 잘해보고 싶은 바람으로 바뀌었다.
2. 묵묵히 보충하고 협력하며, 수련으로 사심을 제거하다
올해 회사는 준법성 강화를 위해 시스템 권한 관리가 더욱 엄격해졌다. 내가 원래 담당했던 일 중 일부는 전날까지 내가 처리했는데, 다음날은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어떤 업무 그룹에서는 아무런 예고 없이 내가 제외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들이 때로는 나를 당황하게 했다.
나는 자신에게 묵묵히 보충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마음속으로 정말 ‘무사무아(無私無我)’를 했을까? 한 가지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쉽게 한 가지 잠재의식이 생긴다. ‘이것은 내 일이다’, ‘이는 내가 담당하는 영역이다’, ‘너는 모르니까 내가 결정한다’. 이런 마음이 바로 집착이고, 사심이다.
한번은 그룹 안의 한 동료가 나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왜 그룹에서 쫓겨났어요?” 나는 깜짝 놀라며 말했다. “무슨 그룹이요? 제가 어떻게 몰랐죠?” 부정적 감정이 밀려왔다. 자신의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고,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느끼며, 심지어 손을 놓고 떠나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는 자신에게 물었다. ‘당신이 이런 일을 하는 것은 무엇을 위해서인가?’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을 최우선으로 보아야 하며, 대법 항목을 잘 수호함으로써 그것이 사람을 구하는 작용을 잘 발휘하도록 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생각할 것이고 해야 할 것이다.”(관건 시각에 사람 마음을 본다)
항목이 순조롭게 운영되기만 하면 누가 담당하든 중요하지 않다. 현재 담당자가 익숙하지 않다면 내가 협조하고, 인계하고, 프로세스를 작성할 수 있으니 상관없다. 일만 지체되지 않으면 모든 것에 협력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자 마음속이 훨씬 가벼워졌다.
나는 몇 년 전 꾸었던 꿈을 아직도 기억한다.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도시에서 전쟁의 불길이 휘몰아쳐 모든 사람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었다. 내 앞에 고층 빌딩 하나가 서 있었고, 곧 전쟁의 불길에 휩싸일 것 같았다. 나는 마음속으로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한순간에 나는 이 빌딩을 나 자신의 작은 세계로 옮겨놓았다. 내 작은 세계는 평온한 작은 마을 같았고, 이 고층 빌딩은 그렇게 기초도 없는 상황에서 공터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았다. 도시의 전쟁이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그것을 옮겨 두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것이 바로 내가 이 몇 년간 매체에서 보인 모습이 아닌가? 나는 사실 매체 배경이 별로 없지만 배움이 빨랐고, 게다가 매체 인력 유동이 크고 업무 인계가 단절되어 나는 그렇게 많은 전임자가 남긴 프로젝트들을 맡게 됐다. 많은 일이 정식 임명도 별로 없었고, 어떤 것은 내 능력 범위를 벗어났지만 어쩔 수 없이 용기를 내어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 빌딩처럼 잠시 안정적으로 내 곁에 두고 마음속으로는 생각했다. ‘적합한 사람이 오면 그에게 돌려주겠다.’ 그리고 아직 아무도 담당하지 않는 동안에는 내가 묵묵히 보충하며 최대한 노력해서 잘해보려 했다.
3.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 신이 무엇을 하려면 일념이면 바로 이루어진다
현재의 곤경에 직면하여, 많은 프로젝트가 모두 ‘닭이 먼저인가 달걀이 먼저인가’라는 교착상태에 빠졌다. 누가 앞장설 것인가? 어떻게 전개할 것인가? 그렇게 제자리에서 막혀 있었다.
어느 날 새벽, 사부님의 법이 갑자기 내 뇌리에 들어왔다. “신이 무엇을 만들려면 일념이면 바로 이루어지며”(각지설법11 – 대법제자는 반드시 법공부를 해야 한다).
그 며칠간 나는 이 말씀을 반복해서 사색했다. 나는 경영 부문에서 광고 수입 운영을 맡고 있는데, 현재 매체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바로 브랜드 안전(Brand Safety)이다. 지난 몇 년간의 보도로 인해, 일부 매체 평가 기관들이 우리에게 극히 낮은 점수를 주어 대량의 광고주, 광고 플랫폼, SSP가 잇달아 협력을 차단, 거부, 또는 종료했다. 우리는 법적 절차에 호소해야 할지, 정치 정세 전환을 기다려야 할지 고민했다. 그저 기다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었다.
개인적 이해로는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운영하라고 하신 것은 당당하게 주류사회에 자리 잡은 매체다. 그런데 주류 평가 기관이 극히 낮은 평가를 준다면, 이것은 일반인들이 보기에 한 매체가 공신력을 잃었다는 상징이다. 이런 상황은 우리가 갖춰야 할 이미지에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진상을 알려 사람을 구하는 난이도를 증가시킨다. 이런 국면은 반드시 반전시켜야 한다!
바로 내가 ‘반드시 뭔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을 때 기회가 나타났다. 작년 2월, 나는 갑자기 출판업체를 대상으로 한 대형 행사 초청을 받았는데, 숙박비와 행사 비용이 모두 면제됐다. 나는 경험이 전혀 없었지만 이것이 진상을 알릴 기회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어 초청을 받아들이고 혼자 떠났다.
이번 활동은 내 시야를 넓혀주었고 그 이후로 우리는 더 많은 업계 활동에 참여할 수 있게 되어 업체와 동업자들과 직접 교류하며 진상을 전할 기회도 점점 많아졌다. 최종적으로 팀과 각 부서의 협력 아래 우리는 한 평가 회사와 다시 연락을 취했으며 성공적으로 우리의 평가 점수를 회복했다.
올해 3월, 광고계 고위층 의사결정자들이 모이는 또 다른 행사도 우리의 일정 계획에 포함됐다. 마치 사부님께서 우리에게 이런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신 것처럼, 내가 비싼 입장료 때문에 고민하고 망설이고 있을 때 나와 동료는 운 좋게도 단 30개뿐인 무료 자격을 얻었다!
놀라움과 동시에 나는 공개된 무료 명단에서 익숙한 이름 하나를 보았는데, 또 다른 평가 회사의 사장이었다. 나는 본래 얼굴을 잘 구별하지 못해서 행사 현장 수백 명 중에서 그녀를 알아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그녀가 행사 휴식 시간에 마침 내 바로 앞에 나타났다. 그야말로 ‘우연의 일치’였다. 우리는 다시 연락을 취하고 대화의 다리를 구축했다.
이 모든 것이 정말 미리 안배된 것 같았다. 이로 인해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떠올랐다. “수련 중 어떤 환경이든 어떤 계층이든 당신이 어떤 신분이든, 당신은 자신이 한 이러한 일을 우연으로, 다행으로 혹은 불운으로 생각하는데 당신이 만약 정말로 보게 되면, 그것은 모두 당신의 소원이 촉성한 이 한 갈래 길로서 우연이 아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각지 설법13 – 2014년 샌프란시스코법회 설법)
4.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청년 대법제자의 책임과 담당
이 1년간 매체 안팎의 변화무쌍한 상황 속에서 나도 감정의 기복과 침울함을 경험했다. 과거 몇 년간은 심야까지 일해도 활력이 넘쳤는데, 최근에는 일찍 쉬어도 자주 피로를 느꼈다. 나는 계속 자신에게 물었다. 왜 수련하는가? 왜 매체에 들어왔는가?
나이 든 수련생들은 대부분 인간 세상에서 탐색을 거친 후 대법에 들어와 능동적으로 수련한다. 그런데 나는 많은 젊은 수련생들처럼 어릴 때부터 부모를 따라 수련했고, 수련에 대한 이해는 주로 감성적인 데서 나왔다. 나는 ‘진선인(眞·善·忍)’이 좋다는 것을 알고, 그것에 동화되기를 원하며, 이 원칙으로 자신을 요구한다. 하지만 이것은 감성적인 공감이지, 이성적으로 수련의 오묘함과 원만의 내포를 인식하는 것이 아니다.
박해 반대와 진상 전파로 사람을 구원하는 것에 대해서도 나의 이해는 주로 인간 중의 ‘충(忠)’, ‘의(義)’ 감정 층에 머무르고 있다. 나는 어릴 적부터 어머니 수련생으로부터 나의 출생이 기적이고 내 목숨은 대법과 사부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나는 줄곧 감사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고, 일반인 중의 그런 ‘보은’, ‘희생’, ‘봉사’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대법이 재난을 당하고 공산 악당에 의해 탄압받고 누명을 쓰는데, 우리가 어떻게 수수방관할 수 있을까? 내가 매체에 들어온 것도 상당 부분 이런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이런 출발점은 어떤 층차에서는 좋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 더 높은 층차에서 보면 이런 인식이 사실 아직 비교적 감성적이고, 아직 정(情) 중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나를 쉽게 ‘일하는’ 상태에 빠뜨린다. 하는 일이 겉으로 보기에 성과가 있거나 진상 알리고 사람을 구원하는 것과 비교적 직접적인 관련이 있기만 하면, 나는 의욕이 있다고 느끼고, 그렇지 않으면 마음이 쉽게 태만해진다.
게다가 연공이 장기적으로 따라가지 못하고 본체(本體)가 전화되지 않아서 시간이 오래되자 몸이 정말 감당할 수 없었다.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 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처리하는 것이었다.
과거 몇 년간 나는 자신이 담당한 업무만 묵묵히 완수하면 됐다. 광고 집행이든 기술 개발이든 배우기만 하면 되고, 도표에 따라 하면 됐다. 하지만 최근 1~2년간 나는 업무를 완수해야 할 뿐만 아니라 부서 간 협력 조정, 신입 직원 교육, 인수인계 처리, 대외 소통, 심지어 프로젝트 기획 참여까지 해야 했다. 서로 다른 지도자, 서로 다른 스타일과 의견에 직면하여 나는 중간에서 각 방면의 균형을 맞추고 중점 사항을 앞으로 추진해야 했다. 압력과 난이도가 크게 증가했다.
나는 경영진의 나에 대한 기대와 배양을 느꼈지만, 마음은 있어도 힘이 부족하며 내가 도달하고 싶은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고 느꼈다. 때로는 심지어 회피하며 갈등을 만들어내는 것이 두려워 차라리 ‘당신이 뭐라고 지시하면 내가 뭘 하겠다’고 하는데, 결과는 바로 미혹과 내부 소모에 빠지게 됐다.
하지만 내가 점점 더 노력해서 나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익 쟁탈에서 더는 그리 신경 쓰지 않게 되자, 나는 내가 정말 정념을 품고 보답을 구하지 않는 마음으로 일할 때 나 자신이 오히려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발견했다. 병 속의 더러운 것을 조금 쏟아내면 조금 떠오르는 것처럼 층차도 자연히 제고됐다. 당시 날 괴롭혔던 많은 부정적 감정들을 지금은 아무리 노력해도 떠올릴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감성적 인식에서 이성적 인식으로 가는, 법 중에서 제고하는 과정이 아닌가? 수련이 착실해야만 더 큰 책임을 담당할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리 마음이 있어도 감당할 수 없다. 적지 않은 나이 든 수련생들이 그해의 그들에 비해 우리 청년 제자들이 훨씬 못하다고 개탄하는 말을 듣고서, 나는 마음속으로 깊이 부끄러워하며, 또한 자신이 하루빨리 바로잡아 더 큰 책임을 담당하기를 기대한다.
맺음말: 이 만남을 소중히 여기며 함께 나아가자
식사 시간 잡담에서 수련생들이 그들의 득법 경험을 나누는 것을 들으며 나는 푹 빠져들었다. 어떤 인연인지 모르지만 세계 각지에서 온 우리가 매체 플랫폼에 모여 함께 나아가며 매체의 힘으로 진상을 전하고 중생을 구원한다. 이 인연은 극히 소중하고, 나도 각별히 소중하게 여긴다.
본 교류문에서 쓴 갈등이 적지 않아 보이지만, 실제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 서로 간 협력이 매우 좋다. 모든 분이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고 서로 보완하며 다 함께 수많은 난관을 극복한다. 어떤 이는 대외 소통과 관계 구축에 능하고, 어떤 이는 내부 조정과 운영에 정통하며, 어떤 이는 팀 사기를 격려하고, 어떤 이는 창의력이 넘치며, 또 어떤 이는 날마다 착실히 견지한다.
사부님께서 법 중에 반복적으로 강조하신 것처럼, 항목에서 서로 협력해야 한다. 앞으로의 길에서 제자는 반드시 법공부, 착실한 수련[實修], 잘 협력하는 것을 견지하여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바를 해내겠다!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7월 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5/7/2/4966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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