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60세가 되어가는 여성 대법제자이며, 대법을 수련한 지 27년이 됐다. 지난 1년간 정법 수련을 하면서 심성이 크게 제고되었는데, 여기에는 사부님의 끝없는 자비와 노고, 그리고 주변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이 있었다. 나는 그 과정을 이번 중국 대법제자 법회에서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들과 교류하려 한다.
1. 휴대폰에 대한 집착을 버리다
나는 20여 년간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하는 과정에서 수련에 누락이 있어 일곱 번이나 납치당했다. 박해 초에 가장 오래 수감됐는데, 구치소에 두 달 넘게 갇혀 있었다. 당시 내가 25일 간 단식해 생명이 위험해지자 구치소에서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때 나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생겼다. 7년 전 또 두 번 납치당한 후부터는 두려움 때문에 진상을 알릴 엄두를 내지 못했다. 나는 나의 사명을 생각하지 않으려고 인터넷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을 마비시켰다. 그러다보니 점점 스마트폰의 늪에 깊이 빠져들었고, 각종 욕망에 사로잡혀 법공부, 연공, 발정념을 소홀히 하거나 대충하기에 이르렀다.
1999년 이전에 법을 처음 얻었을 때가 생각난다. 당시 나는 심오한 대법 법리를 보고 전율을 느꼈고, 감사와 행운을 느꼈으며, 반드시 수련 원만하겠다고 다짐했다. 또 만약 이번 생에 대법을 수련하지 못하면 차라리 형신전멸(形神全滅)하겠다고 맹세했다. 하지만 현실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수련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면서 마귀와 한패거리가 되어 대법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하늘로 돌아갈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나는 괴로웠지만 두려움 때문에 정법 노정을 따라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대법을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사부님께 말씀드렸다. ‘사부님, 저는 잠시 쓰러져 있을 뿐입니다. 나중에 반드시 정진하겠습니다.’
그 기간 사부님께서는 꿈속에서 여러 번 일깨움을 주셨다. 높은 곳에서 바다로 떨어지거나, 깊은 심연에 빠지기도 하고, 시험에 늦거나, 시험 문제를 못 풀거나, 교실에서 내 자리를 찾지 못하기도 했으며, 버스가 늦게 도착하거나, 내가 늦게 가서 버스를 놓치기도 했다… 그러다가 사부님께서 발표하신 신경문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와 ‘험악(險惡)을 멀리하라’를 보고, 사부님의 방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대법수련은 엄숙한 것이다’를 외우면서 눈물을 흘렸다. 사부님을 뵐 면목이 없고 중생에게 미안했다. 나는 더 이상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다가는 중생을 구하지 못할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까지 억만년을 기다려왔는데, 하늘로 되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인터넷 중독을 끊으려고 하니 잘 되지 않았다. 정진하는 수련생들을 찾아가 교류하면서 보니 모두들 정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평소 자연스럽게 법을 제1위에 놓고 시간을 다그쳐 법공부와 연공을 하고, 진상을 알렸다. 그들은 거의 매일 사람을 구하고 끊임없이 안으로 찾아 끊임없이 경지를 제고했고, 사람들을 구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었다. 그들의 정념정행에 감화되어, 집에 돌아온 후 나의 인터넷 중독은 대부분 사라졌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즉시 생각과 행동을 바로잡고 세 가지 일을 했으며, 반드시 교훈으로 삼고 더 이상 스마트폰에 빠지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1년 동안 나는 인터넷에서 잡다한 것들을 전혀 보지 않았다. 물론 스마트폰의 유혹은 살아있는 영체여서, 처음에는 나의 머리를 조종해 나쁜 것들을 보게 하려고 여러 번 시도했다. 그것은 나를 마약 중독자처럼 모든 것을 제쳐놓고 스마트폰에 다시 빠지게 하려고 했다. 다행이 그때 사부님께서 갑자기 다른 일을 배치해주셨는데, 일을 마치자 스마트폰에 대한 관심이 사라졌다. 그 후부터 그것의 힘은 약해져서 나를 지배할 수 없게 되었다. 느낌상 지금 그것은 이미 죽어버렸다.
사실 전에도 나는 인터넷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당시 아무리 애써도 되지 않자 사부님께 도움을 요청했는데, 즉시 몸에서 안개 같은 것이 ‘쏴’하고 사라지더니 인터넷 중독도 사라졌다. 그 후 나는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세 가지 일을 열심히 했다. 밖에서 진상을 알려 사람들을 구했고 끊임없이 제고했다. 하지만 두렵기도 하고 고생스럽기도 하여 다시 움츠러들었는데, 마침 4개월 후 코로나 방역 봉쇄가 시작되었다. 그때 휴식하면서 스마트폰을 보기 시작하여 다시 마(魔)에게 통제됐다. 다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지만 사부님은 바로 도와주시지 않고 이번 일을 교훈으로 삼게 하셨다. 그리고 다른 수련생의 정념정행을 보게 하신 후 인터넷 중독을 제거해주셨다. 나는 사부님께서 사실 나의 진심을 보고 도와주셨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다시는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일깨워주려고 한다!
2. 두려운 마음을 제거하다
20여 년 전 구치소에서 박해받을 때 생긴 두려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몇 년 전 다시 구치소에 갇혔을 때 나는 정념이 없어서 두려운 마음이 더 심해졌다. 다른 수련생이 감옥에서 잔혹한 박해를 받은 사례를 생각하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너무 두려워서 심지어 수련 전 우울증에 걸렸을 때처럼 죽는 게 훨씬 낫다는 생각까지 여러 번 들었다. 구치소에서 나온 후 나는 다시는 박해를 받고 싶지 않아 어디까지 수련하면 어디까지 하자고 생각했고, 더 이상 사람들을 구하고 싶지 않았다. 법리는 모두 알고 죽는 것도 두렵지 않았지만 박해를 받는 것이 두려웠다. 박해를 감당하지 못해 대법에 죄를 저지를 바엔 숨어서 어디까지 수련하면 거기까지만 수련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년 동안 그 자리에 쓰러져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며 정법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심지어 어느 수련생의 세계에서 중생이 되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사부님의 설법은 ‘전법륜(轉法輪)’만 읽고 박해 후의 설법은 거의 읽지 않았으며, 중생을 구하는 부분은 잘 보지 않아서 법리도 이해하지 못했다. 수련생들이 이 부분의 법리를 교류하면 이해하긴 했지만 여전히 박해가 두려웠다. 수련생들은 두려움은 내가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분명 나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두려움은 큰 산처럼 수련에서 나의 앞길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한번은 노수련생을 찾아가서 교류했는데 수련생인 그의 딸도 집에 있었다. 내가 두려움이 심하다고 했더니 그녀는 즉시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 순간 ‘쏴’하고 두려운 마음이 사라졌고, 나는 그녀의 말을 즉시 받아들였다. 두려움은 정말 내가 아니었다. 그동안 주변 수련생이나 명혜주간에서 수련생들이 이렇게 말해도 공감하지 못했고, 두려울 때는 털이 곤두서며 소름까지 돋았다. 하지만 그 수련생이 이렇게 말하자 나의 몸에 붙어 있던 두려움의 물질이 제거되었다. 그녀는 잘 알고 지내던 수련생이 아니었지만, 교류를 해보니 아주 순수하고 확고하며 정념이 강했다. 수련을 잘하는 수련생은 정념이 강하고 위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그때 느꼈다.
그날 두려움이 대부분 사라진 것도 좋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두려움을 제거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었다. 그래서 나도 밖에서 사람들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비록 가끔 두려움이 나오고, 때로는 어리석어 그 두려움을 나라고 착각하기도 하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그것을 제거하기가 쉬워졌다. 예를 들어 명혜주간에서 수련생들이 박해받은 소식을 볼 때 종종 두려운 마음이 나왔지만, 명백해졌을 때 나는 생각했다. ‘두려움은 내가 아니다. 나는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완전히 해체하고 제거해야 한다. 나는 대법제자다. 박해는 나와 무관하다. 나는 사부님께서 돌봐주시기에 누구도 건드릴 수 없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결정하신다.’ 진상을 알릴 때 사진을 찍고 녹음하고, 신고하는 사람들이 있어도 나는 모두 이렇게 생각했고 결국 아무 일도 없었다.
나는 아직 두려운 마음을 완전히 버리지는 못했지만 그 마음이 올라오면 바로 구분하고 제거할 수 있다.
3. 악몽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다
악몽에 대한 두려움도 이미 오래되었다. 박해가 시작된 초기에 꿈에서 개나 뱀을 보면 낮에 박해나 다른 나쁜 일이 일어나곤 했다. 다른 수련생들도 이렇게 말해서 악몽이 영험하다는 것은 나의 관념이 되었다. 당시 악몽을 꾸면 항상 장시간 발정념을 했지만 나쁜 일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는 나에게 누락이 많아 사부님께서 미리 알려주시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으로 찾고 발정념을 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몇 달 전 어느 날 아침, 나는 또 악몽을 꿨다. 꿈속에서 두 사람이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내 옆을 지나갔는데 그 중 한 마리가 갑자기 돌아서서 내 발을 물었다. 나는 다른 발로 그 개를 차다가 깨어났고, 그 후 두려움에 휩싸였다. 지금까지 악몽을 많이 꿔도 개에게 물리는 꿈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납치되기 전에 개가 나오는 꿈을 꾼 적이 있지만 물리지는 않았다. 나는 나에게서 문제를 찾아보았다. 세 가지 일을 모두 잘했고 명백한 누락도 없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일까? 공포, 불안, 좌절이 극에 달했다. 더 큰 박해가 닥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련하지 않는 남편이 옆에서 달콤하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남편은 그동안 계속 나 때문에 마음고생을 하다가 이제 겨우 평온을 찾았는데, 이제 또 어떤 일이 생길지 몰랐다.
나는 너무 불안해서 발코니로 나갔다. 아직 새벽이어서 동네가 조용했고 아무 이상이 없었다. 나는 원래 낮에 진상을 알리러 나가려고 했고, 또 한 수련생과 만나기로 약속했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됐다. ‘갈까 말까?’ 마음이 혼란스러워 발정념을 해도 효과가 없었다. 오전에는 별일 없었다. 수련생과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자 나는 일단 가기로 마음먹었다. 미행하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없을 것 같았고, 수련생과 악몽에 대해 교류도 하고 싶었다. 그 수련생을 만난 후 나의 상황을 말하자 그는 말했다. “악몽이 현실이 된다는 건 거짓말이에요. 난 절대 믿지 않아요. 나도 악몽을 많이 꿨지만 다 무시하고 믿지 않았어요. 꿈에서 진상을 알리다가 개나 경찰에게 쫒기기도 했어요. 간혹 붙잡히기도 했지만 신경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계속했어요.” 그녀의 말을 듣고 나는 놀라면서 물었다. “그럼 그날 진상을 알릴 때 문제가 없었나요?” 그녀는 말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런 꿈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다 믿지 않고 인정하지 않아요. 사부님과 대법만 믿어요. 게다가 우리의 길은 누구도 볼 수 없는데 어떻게 미리 알 수 있겠어요?”
그 수련생의 말을 듣고 나는 크게 각성했다. 나는 내가 어디가 부족한지 조금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랜 세월 형성된 관념은 단번에 깨끗이 제거할 수 없었고, 안전 문제라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나는 그날은 진상을 알리지 않고 집에 돌아가 잘 생각해보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그 수련생의 말을 되새기고 사부님의 법을 되새기니 법리가 점점 명확해졌다. 수련생의 말이 맞았다. 꿈속의 것은 모두 외래 정보가 아닌가? 그동안 나는 이 문제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갔다. 나는 법으로 가늠하지 않고 외래 정보를 받아들여 교란을 받았으며, 구세력의 속임수에 빠졌다. 악몽이 영험하다는 관념 때문에 구세력이 악몽을 이용한 것인데, 나는 그대로 믿고 인정했다. 나는 문제를 인식한 후 발정념을 강화하고 자신을 바로잡았다.
그 후부터 다시 악몽을 꾸거나 비슷한 문제를 만나면 나는 자신에게 말했다. ‘이 모든 것은 거짓이며, 구세력의 교란과 박해다. 외래 정보를 믿지 말고 사부님의 안배만 믿자. 사부님의 안배가 아닌 것은 모두 거부하고 해체해야 한다. 꿈으로 수련을 지도해서는 안 된다.’ 때로는 사악이 방법을 바꿔 내가 가부좌할 때 그런 것들을 보게 했지만, 나는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고 정념을 지켰다. 악몽에 신경 쓰지 않고 해야 할 일을 하니 밖에서 진상을 알리는 것도 순조로웠고, 악몽은 더 이상 영험하지 않았다. 마음이 안정되자 악몽을 거의 꾸지 않았다.
4. 가시덤불 앞에서 더 이상 물러서지 않다
최근 몇 년간 진상을 알리면서 욕하고 신고하는 사람들을 여러 번 만났다. 그때마다 나는 정신적 압박과 좌절감 때문에 집밖에 나오지 못하고 움츠러들었다. 그 다음에는 긴장을 풀려고 스마트폰을 봤고, 그러면 사악이 파고 들어 집착에 빠지게 했다.
2024년 2월, 내가 다시 진상을 알리기 시작하자 사악은 또 예전처럼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을 조종해 나를 교란했다. 5~6월 쯤 되자 욕하고 신고하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또 위축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들은 공산 악령에게 조종되어 이성을 잃고 난폭하게 행동했다. 한 남자는 노발대발하며 때리려고 했고, 한 아주머니는 스마트폰을 내 얼굴 가까이에 대고 촬영하며 소리를 질러댔다. “감히 ×교를 선전해? 계속 말하면 110에 신고할 거야!” 그녀는 마치 나에게 아들을 빼앗기기라도 한 듯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또 다른 아주머니는 내가 한 노동자에게 진상을 알릴 때 큰 소리로 욕하며 방해했다. 나는 “당신에게 말하지 않았어요”라고 하고 계속 진상을 알렸는데, 그녀는 어느새 삽으로 모래를 떠서 내 발 옆에 던졌다. 근처에 있던 남편도 거들면서 신고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나마 괜찮은 사람들은 조용히 신고하거나 몇 마디만 하고 지나갔다.
하지만 당시 나는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정념이 무엇인지 알았고, 사부님을 굳게 믿고 법을 굳게 믿으면 누구도 나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진상을 알릴 때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선의의 미소를 지으며 진심으로 사람을 구하려 했다. 나는 사부님께서 곁에 계시고 바른 신들께서도 나를 돕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동시에 나는 계속해서 안으로 찾아 사람마음을 닦고 자신을 제고했다. 그때는 이런 상황에서 내가 제대로 했기에 사부님께서 많은 중생을 구하게 해주셨고, 나도 중생을 구하는 기쁨을 느꼈다. 정말 우리가 법에 부합하기만 하면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해주셨다.
하지만 나중에 이런 일이 너무 많았고, 매번 안으로 찾아봐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다. 점차 나는 진상을 알리러 나가면 누군가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며 나를 위협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혔다. 정말 가시덤불을 만난 느낌이었다. 다른 수련생들은 이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들은 매일 진상을 알려도 아무 문제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교란이 많을까? 나는 문제를 찾지 못했고 감당 능력이 한계에 달한 것 같았다. 느끼한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더 이상 들어가지 않을 때와 같았다. ‘나는 사람을 구하기가 왜 이렇게 어려울까? 업력이 너무 큰 걸까? 속인이 말하는 액운을 끌어들이는 체질인가?’ 나는 상처받고 좌절했으며 두려웠다. 그럴수록 사람을 잘 구하지 못했다. 가끔은 연 며칠 한 명도 삼퇴시키지 못했고, 이미 삼퇴를 했거나 반면으로 간 사람만 자주 만났다.
나는 너무 지쳐서 또 잠시 멈추고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깨달았다. ‘이건 또 다시 사악의 교란 앞에서 물러선 것이 아닌가? 구세력은 이렇게 해서 나를 여러 번 끌어내렸다. 이번에는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나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시키신 일을 하겠다. 모든 것을 사부님께 맡기겠다.’ 정념이 생기자 갑자기 내 몸이 거대해지고 정념이 넘치면서 두려움과 불안이 모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이 일념이 분수령이 될 줄은 몰랐는데, 그 후부터 진상을 알릴 때 교란이 매우 적고 안정적이었으며 삼퇴도 많이 시킬 수 있었다. 그 일념은 사부님과 법에 대한 굳은 믿음에서 비롯되었고, 사심 없는 정념이었으며, 내가 있는 층차의 법의 기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사악은 스스로 물러났다. 내가 새로운 층차에 도달하자 사부님께서는 더 많은 중생을 배치해 구원받게 하셨다.
5. 자신을 잘 수련해 더 많은 사람을 구하다
2019년은 내가 크게 제고된 한 해였다. 그해 사부님께서 경문 ‘깨어나라’를 발표하셨는데 나는 읽은 후 정말로 각성했다. 사부님의 정법이 법정인간(法正人間)으로 넘어가고 있는데, 나는 아직 법의 기준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무엇 때문일까? 깊이 반성해 보니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사부님을 믿지 않고 법을 믿지 않는 것이었다.
나는 어렸을 때 신화 이야기를 좋아했고 신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중국공산당의 무신론 교육을 받아 확고한 무신론자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신을 갈망하고 신의 구원을 바랐다. 그래서 법을 얻은 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뻤고, 반드시 수련 성취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초범적인 법리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반신반의했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일단 한쪽에 놓아뒀다. 박해가 시작된 후에도 위험할 때 사람의 방법이 더 효과적이고 현실적이라고 생각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정념정행은 허황하고 신뢰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박해를 받을 때 사람의 방법으로 저항했다. 법공부를 해도 머리에 들어가지 않아 법리를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자비심이 무엇인지, 신념(神念)이 무엇인지 몰랐다. 머릿속은 구세력을 인정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신을 박해받는 위치에 두고 구세력에게 끌려다녔다. 그래서 대법 일을 해도 늘 두려웠고, 사람이 사람을 박해하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에 구한 사람이 적었다. 개인 수련에서는 심성을 끊임없이 제고하고 많은 사람마음을 버렸지만 여전히 허공에 붕 떠있는 것 같았다. 사부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반공중에 멈추면 제도받기 어렵도다’(홍음-태산에 올라).
나의 가장 큰 문제가 사부님과 법을 믿지 않는 것임을 깨달은 후 나는 사부님과 법을 100% 믿기로 결심했다. 마음가짐을 바로잡고 법공부를 하자 모든 것이 달라졌다. 새로운 법리를 많이 보게 되었고, 특히 박해 이후 사부님께서 노심초사하시며 모든 것을 말씀해주셨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믿지 않아서 보지 못했을 뿐이었다. 사부님과 법을 믿은 후 나는 고층차의 법과 신념(神念), 정념정행이 무엇인지 등을 알게 되었다. 내 잘못이 무엇인지, 대법제자의 올바른 길이 무엇인지 알게 되자 올바른 방향을 찾았다. 수련생들과 교류할 때도 달라졌다. 그들이 깨달은 깊은 법리와 경험, 교훈은 모두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주변 수련생들의 도움으로 두려움과 스마트폰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은 후, 사부님과 대법에 대한 나의 믿음은 더 커졌다! 아무리 훌륭한 수련생에게 문제가 생겨도, 다른 사람이 아무리 나를 비방 중상해도, 박해가 오래가든 오래가지 않든, 전혀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다. 대신 자비심이 있게 되었고 흔들리지 않는 정념이 생겼으며, 사람을 구하는 지혜와 힘이 있게 되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내가 법에 부합한 후 사부님께서 해주신 것이다. 나는 수련에 대한 자신감을 되찾았고, 더 이상 허공에 머물러 있지 않고 위로 올라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 후 나는 큰 강을 건너는 꿈을 꿨다. 강은 그리 깊지 않았는데, 내가 강가에 다다르자 갑자기 강물이 해일처럼 밀려왔고 강둑도 가파른 절벽처럼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나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위로 올라가자, 위로 올라가자’고 생각했다. 그러자 저도 모르게 용처럼 하늘로 솟구쳐 올라갔다. 잠에서 깨어난 후 나는 정말 기뻤다. 이는 내가 사부님의 도움으로 정념정행하여 큰 관을 돌파했다는 의미였다. 나는 또 꿈에서 교실에 돌아가 공부했고, 길을 가다가 버스를 세워 타기도 했다.
5월에 들어서면서 우리 지역에 또 다시 먹구름이 몰려와 수련생들이 경찰에게 협박을 당하거나 납치됐다. 나는 법공부와 발정념을 많이 하는 외, 냉정하게 안으로 찾아 두려움을 제거하고, 박해하는 자들에 대한 원한 등 사람마음을 제거했다. 또한 정념을 강화하여, ‘나는 사부님이 돌봐주시기에 박해는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고, 구세력의 모든 배치를 부정하고 사부님께서 안배하신 길을 따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구세력이 내 머리에 때려 넣는 일사일념(一思一念)을 포함해, 대법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것, 사부님의 안배가 아닌 것, 조사정법(助師正法)에 불리한 것, 박해와 연관된 모든 염두를 해체하고 제거했다. 동시에 기점을 바로잡고 계속해서 사람을 구했다. 기세등등하던 사악은 수련생들의 정념으로 얼마 지나지 않아 해체됐다.
며칠 전 한 수련생이 나를 찾아와 은행카드 사용이 중지되었다면서 대법과 관련된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구세력의 안배에 따라 생각하다 보니 생각할수록 두려워졌다. 나는 그녀에게 다 가상이라고 알려줬다. “그건 구세력의 안배이고 외래 정보일 뿐이지 사부님의 안배가 아니예요. 우리는 대법제자예요. 법의 요구에 따라야 하고, 사부님과 법을 굳게 믿어야 해요. 우리가 하는 일은 사부님이 하라고 한 일이며, 가장 바르고 위대한 일이에요.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어요. ‘진상을 밝혀 중생을 구하는 것을 구세력은 감히 반대하지 못하는데, 관건은 일을 할 때의 심태(心態), 그것이 빈틈을 타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2002년 보스턴법회 설법) 그래서 두려움을 버려야 해요. 사부님께서 우리를 봐주세요. 두려워하면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니겠어요? 우리는 마음을 움직이지 말아야 해요. 거센 바람이 불어도, 산과 땅이 흔들려도, 우리가 마음을 움직이지 않으면 누구도 우리를 움직일 수 없어요.” 그러자 그 수련생은 “맞아요, 병업 가상과 같아요”라고 했고, 나는 “맞아요,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라고 대답했다. 그 수련생은 올 때는 불안에 떨었지만 돌아갈 때는 마음이 안정되었다.
사부님께서 이 제 구실을 못하는 제자를 포기하시지 않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오랫동안 낙오한 제자를 자비로 일깨워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자는 세 가지 일을 잘하여 사부님의 은혜에 보답하겠습니다.
법에 있지 않는 곳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사부님께 엎드려 감사드립니다! 수련생들의 사심 없는 도움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5년 5월 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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