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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의 역할’에 대한 작은 깨달음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우리가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은 가족입니다. 속인 각도에서 보면 그들이 우리를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밖에선 여러 방법으로 자신을 포장하고 단점은 감추며 장점만 보여주지만, 집에선 비교적 편하게 있기에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련의 관점에서, 법에 비추어 보면 사부님께서 다른 사람의 입을 빌려 제자를 일깨워주시는데, 가장 편안한 방식이 바로 남편의 입을 통해서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남편 말을 무시할 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제 수련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일깨움(사부님의 암시), 시범, 거울 등이 그 역할입니다. 제가 느낀 바를 다른 수련생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일깨움’과 ‘시범’ 역할

남편은 속인인데도 제 단점을 아주 ‘정확하게’ 짚어냅니다. 다만 그럴 때마다 저는 인정하지 않고 남편과 옥신각신하곤 합니다. 하지만 지나고 보면, 때론 몇 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됩니다. 남편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었던 건, 한편으론 그가 저를 잘 알고 있어서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부님께서 그의 입을 통해 저를 일깨워주셨기 때문입니다.

일깨움 외에도 가족은 ‘시범’ 역할도 합니다. 저는 모든 생명이 다 장단점이 있고, 수련하는 사람도 인식하고 없애야 할 사람마음과 관념이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와 동시에 속인에게도 참고할 만한 좋은 면들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마음과 관념은 굉장히 고집스러워서 스스로는 잘 인식하기 어렵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오랫동안 잘못된 사고방식을 써왔는데도 올바르고 좋은 방식이 어떤 건지 모르고 있기도 합니다.

남편이 저에게 많은 올바른 사고와 행동 방식을 ‘시범’하며 보여주고 있다는 걸 점차 깨달았습니다. 물론 그 배후엔 다 사부님의 심혈이 깃든 배치가 있을 것입니다. 다 아주 사소한 일들이지만 많은 관념의 전환이 바로 그런 가장 사소한 일 속에서 이뤄진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이것은 가장 간편하고 착실한 방법입니다. 옛말에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전통적인 가정에서 자란 어린아이는 세 살, 다섯 살 때 이미 성격과 도덕, 행동 면에서 좋은 기초를 닦게 되는데, 그게 다 가장 기본적인 작은 일에서 습득한 게 아닐까요?

예를 들어 저는 예전에 집안일을 대충대충 했습니다. 시간이 빠듯하니 그럭저럭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이 잔소리를 했지만 저는 오히려 불만이었습니다. 남편은 제가 빨리하면 마음을 안 쓴다고 하고, 천천히 꼼꼼히 하면 능률이 떨어지고 방법이 잘못됐다고 합니다. 남편 앞에서는 어떻게 해도 안 되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남편 말이 다 맞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빨리하다 보면 너무 많은 세부적인 것들을 놓치게 되고 그래서 ‘제품의 질’이 떨어지게 됩니다. 때로는 씻은 채소에 흙이 묻어있기도 했습니다. 반면 제 생각엔 진지하게 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그럴 때는 사실 효율성을 놓치고 있었습니다. ‘제품의 질’은 합격했지만 너무 질질 끌어 시간 낭비가 심했습니다. 사실 ‘머리를 써서 방법을 찾는’ 단계가 빠져 있었던 겁니다.

나중에 남편이 일하는 걸 관찰해보니 저에 비해 확실히 질도 좋고 효율성도 높았습니다. 이게 바로 제가 배워야 할 점이었습니다. 그는 일찍이 제가 일할 때 남을 관찰하고 배우려 하지 않고, 생각하고 결론 내리는 걸 잘 못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습니다. 이것도 확실히 저의 문제였습니다. 지금은 계속 개선하고 있어서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습니다.

​’만사는 서로 통한다’는 이치

표면적으로 보면 집안일을 잘하든 못하든 별 영향이 없고, 수련과 관련된 일만 중요해 보입니다. 하지만 저는 만사가 다 서로 통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속인 속의 일이든 수련 중의 일이든, 그 배후에는 같은 관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집안의 사소한 일들을 좀 더 꼼꼼하고 진지하게 하게 된 후, 법공부할 때도 더 마음을 잘 쓰게 됐습니다. 예전엔 법을 읽을 때 형식에 그쳤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컴퓨터를 사용할 때도 점점 더 간편하고 효율적인 방법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예전엔 ‘정신이 딴 데 가 있는’ 습관 때문에 좀 둔한 방법만 써왔는데 몇 년간 계속 그래왔습니다.

씻은 채소에 흙이 남아 있는 건 사실 작은 일이 아닙니다. 이런 대충대충 하는 습관을 없애지 않으면 수련의 방방면면에서 드러나게 됩니다. 사실 자신이 ‘작은 일’이라며 얼렁뚱땅 넘어가는 데는, ‘큰일’을 해내 공을 세우려는 마음, 높고 먼 곳만 바라보는 당문화(黨文化, 공산당 문화)에서 비롯된 사람 마음 등이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다 수련에 영향을 미칩니다.

화를 내는 데서 드러나는 관념

남편은 좀 성미가 급한 편입니다. 저는 몇 년간 이 점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제가 그에게 말할 때 태도가 좋은데, 그는 저에게 말할 때 태도가 좋았다 나빴다 했습니다. 저를 존중하지 않는 것 같아 억울하고 불공평하게 느껴졌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깨달았는데, 저는 너무 편협한 관념으로 문제를 보고 있었던 겁니다. ‘태도가 좋냐 나쁘냐’에만 집착하고 있었는데, 사고를 좀 더 확장하고 깊게 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얼마 전에 제가 어떤 생각을 고집하자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큰 소리를 질렀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저는 도저히 참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뭘 잘못한 게 없고 그저 서로 의견이 다를 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무례할 수 있지? 나도 자신의 생각을 가질 권리가 있는데 말이야.’ 예전이었다면 격렬한 말다툼이 벌어졌을 것이고 며칠간 기분이 좋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 그 일이 갑자기 터지자 저도 물론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다행히 심하게 끌려가진 않았습니다. 좀 실랑이하긴 했지만 금방 진정됐고 그 후 제 문제도 빨리 인식하게 됐습니다.

저는 나중에 남편이 크게 화낸 까닭을 깨달았습니다. 사실은 제 완고한 관념이 그 일에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그 관념은 늘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저 스스로는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누군가 큰 소리로 말해주지 않았다면 저는 아예 문제를 발견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 관념이란, 자신이 좀 번거롭다고 느끼는 일을 미리 걱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면에는 부정적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른바 ‘귀찮은 일’에 긍정적으로 믿음을 갖는 게 아니라, 부정적이고 초조해하면서 늘 걱정했습니다. 법에서 깨달은 바로는, 좋고 나쁨은 일념(一念)에 달렸습니다. 올바른 사고방식이란 마주한 일을 좋은 쪽으로 생각하는 것이지 부정적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제 이 잘못된 관념은 사실 수련의 각도에서 봐도 큰 문제였습니다.

그 일이 지난 후 저는 번거롭고 두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관념을 바꿔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마음속으로 ‘괜찮아, 분명 해낼 수 있어’라고 생각해야지, ‘큰일 났네, 골치 아파, 절대 안 돼’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물론 아주 사소한 일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과거에 걱정하던 일들이 막상 다 별문제 없이 해결됐습니다. 이건 제 자신감을 크게 북돋워줬습니다. 관념이 초보적으로 전환됐다고 느꼈습니다. 일을 맞닥뜨릴 때 ‘긴장하고 초조해하기’보단 ‘담담하고 여유 있게’ 대하게 됐습니다. 물론 실천 속에서 꾸준히 올바른 사고방식을 강화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날 남편이 저에게 호통을 친 것에 대해 특별히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 관념을 고칠 수 없었을 겁니다. 생각해보면, 누군가 한 번 호통치는 걸로 관념 하나를 전환할 수 있다면 정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입니다. 일부러 추구해도 얻기 어려운 기회입니다.

남편은 제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늘 잔소리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자신은 남에게 잔소리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는 저에 대해 말할 수 있지만, 저는 기본적으로 그에 대해 말할 수 없습니다. 예전엔 이것 때문에 마음의 균형이 무너졌습니다. ‘대체 왜 저러지?’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가 저에 대해 말해주는 덕에 저는 많은 문제를 인식하고 제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건 저의 확실한 수확입니다. 반면 그가 남의 말을 듣길 원치 않는 건 그의 선택입니다. 사람마다 선택이 다른 법이니 제가 굳이 남을 강요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실 누가 남의 지적을 들을 줄 안다면 그 사람이 더 많은 이득을 보게 됩니다. 손해 보는 게 아니라 착실히 앞서가는 겁니다.

동시에 저는 발견했습니다. 남편이 드러내는 일부 문제점들도 거울이 되어 제 문제를 비춰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남이 지적하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사실 저도 뼛속 깊이 그런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은 많이 고쳤지만 그렇다고 안심할 순 없습니다.

많은 일들을 겪고 난 후 이제 저는 남편의 잔소리에 기본적으로 ‘좋아하고 반기는’ 태도를 갖게 됐습니다. 남편이 정말 여러 면에서 제 수련을 도와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간단하고 쉽게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대도는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대원만법-공법의 특징) 저도 몸소 “극히 간단하고 극히 쉽다”는 이치를 체득했습니다. 어떤 관념은 완고해 보이고 어디서부터 고쳐야 할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실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고치는 건 복잡하지 않고 가족이 일깨워주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면 됩니다. 모르겠으면 가족의 ‘시범’을 유심히 관찰합니다. 그렇게 서서히 배워가면 되는데 이렇게 간단합니다.

저는 가족뿐 아니라 친구, 동료, 다른 수련생들도 모두 저를 도와주고 있다고 느낍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시범, 거울, 암시 등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 깨달은 게 있습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를 도울 방법이라면 뭐든 강구하시며 우리의 수련이 성공하기를 바라신다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 많은 심혈을 기울여 배치하시고, 법신을 통해 시시각각 곁에서 보호해주고 계십니다. 복잡하고 어려운 방식이 아닌 간단하고 쉬운 방식으로 우리를 도와주려 하십니다. 다만 사람들은 흔히 ‘쉽게 얻으면 쉽게 잃는다’고들 합니다. 간단하고 쉽게 얻은 것에 대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소중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근 저는 정말 작은 일에서 관념을 전환하는 ‘달콤함’을 맛보았습니다. 생각과 행동 방식을 조금씩 바로잡아가는데 간단하고 쉬웠습니다. 때로는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걸 느낍니다.

이상은 최근 저의 작은 체득입니다. 부적절한 점이 있다면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지적해주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29/47558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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