简体 | 正體 | 대법서적

박해당하는 중에 대법을 실증하고 사람을 구한 체험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2012년, 내 유일한 가족이 내가 박해당하는 동안 세상을 떠났다. 비록 혼자가 됐지만 고독하지는 않다. 나에게는 사부님, 대법, 그리고 많은 수련생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함께 사부님께서 하라고 하신 일을 하고 있어서 충실하고 행복하다. 여기에서 박해당하는 중에 대법 실증하고 사람을 구한 경험을 써보겠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지적해주시길 바란다.

1. 사람마음을 제거하지 못해 납치되다

2014년, 우리 지역 대법제자들이 권리수호 변호사들과 함께 세뇌반에서 불법 감금된 수련생 구출을 위해 세뇌반 밖에서 석방을 외쳤다. 수련생들은 박해당했고 심지어 변호사, 정의로운 사람들 또한 심한 박해를 받았다. 이 일은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 변호사들과 민주화인사들이 잇따라 중공(중국공산당)의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냈다.

그런 상황에서 다들 다시 세뇌반에 가서 석방을 외친다는 말을 듣고 두려운 마음이 일어났다. 세뇌반에 직접 가서 경찰과 대면하는 것이 집에서 법 실증하는 것보다 안전할 리 없다고 생각했다. 나도 만약 박해당하면 날 구출해달라고 할 가족이 없어서 갈지 말지 고민했다.

출발 전날, 몇몇 수련생이 이미 가기로 결정했다는 것을 알았다. 이 사악한 세뇌반을 해체하는 것은 결코 수련생 몇 명의 책임만은 아닐 것이고, 나도 거기에 속해 있으니 나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심 두려움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때 나는 사람마음에서 벗어나는 것이 정말 어렵다는 것을 느꼈다. 결국 세뇌반에 가서 사람들을 구출하기로 결심했다. 이 결정을 내리자 정말 눈물이 나려 했다. 드디어 자아를 내려놓고 전체에 협력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출발하기 전 아침, 두 명의 수련생이 일찍 우리집에 와서 엄숙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안 가시면 안 되나요? 다른 사람으로 바꾸면 안 될까요? 꼭 당신이 가야만 하나요?” 나는 매우 이상했다. ‘내가 전체에 협력해서 무언가를 할 때마다 수련생들은 항상 기쁜 마음으로 날 격려했는데 이번엔 왜 나를 막으려 하는 걸까?’ 수련생이 말했다. “제가 연공할 때 어떤 목소리가 들렸어요. 이번에 ○○(날 가리키며)를 박해해 죽이겠다고요.” 이 말을 듣고 난 큰 충격을 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생사 앞에서 나는 아직 금강부동하지 못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은 사부님의 배치가 아니므로 인정할 수 없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대법제자가 해야 할 일만 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수련생들과 교류했고 수련생들은 “만약 당신이 사악의 배치를 승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당신의 결정을 지지하고 전력을 다해 격려할 겁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난 납치됐다. 자세히 생각해보면 역시 사람마음이 깨끗이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2. 사람마음을 내려놓고 더 많은 사람을 구하다

성(省)은 이 일을 ‘큰 사건’으로 규정했고 성 공안청에서 직접 감독했으며, 각급 수사관들이 빈번히 불법 심문을 했고 여러 명이 둘러싸고 우리를 공격했다. 압력은 거대한 그물처럼 우리를 향해 압박해왔다. 나는 함께 납치된 수련생들과 서로 격려했다. “사부님이 계시고 법이 있으니 반드시 해낼 수 있을 겁니다.” 심문하는 사람들이 한 차례 한 차례 바뀌었지만 나는 오직 대법 진상만 알렸을 뿐 그 밖의 것들은 협조하지 않았다.

수사관들은 반복해서 물었다. “누가 조직한 거지? 누가 너더러 참여하라고 했지? 한 사람의 이름만 대도 돼.” 나는 말했다. “저는 말하지 않겠습니다. 제가 말한다면 다른 사람도 저와 같은 처지에 놓일 것이고, 박해당할 겁니다. 이런 행위는 수련하지 않는 일반인에게도 경멸받는 일인데, 하물며 수련하는 사람이 하겠습니까? 저 자신을 위해 다른 사람을 팔아넘기는 일은 하지 않겠습니다.”

그중 한 수사관은 대법제자 수련단체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많다고 하면서 나와 여러 화제로 토론했다. 나는 내가 대법 수련으로 심신이 모두 이롭게 됐고, 일이 있으면 자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나 찾아보며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사람은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 “당신은 전혀 안으로 찾지 않습니다. 당신이 안으로 찾았다면 오늘 여기 앉아있지 않을 겁니다.” 그의 말은 사부님께서 내가 자신을 찾아야 한다고 일깨워주신 것이었다. 나는 자신에게 아직 일을 하려는 마음, 과시심, 질투심, 자신을 실증하는 사람마음이 있음을 발견했고, 정념으로 이런 마음들을 제거했다.

그 후 매번 심문을 받고 나서 내가 아직 어떤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는지 늘 안으로 찾았다. 때로는 사람마음을 내려놓지 못해 괴로워하면서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었다. ‘왜 담담히 내려놓고 중생의 구원만을 생각할 수 없는 거지?’ 나는 진상을 알릴 때 상대에게 마음을 터놓지 못하는 것이 사악이 나에 대한 박해를 가중할 만한 빌미를 줄까 봐 두려워서였음을 깨달았다.

1) 수사관들에게 진상 알리기

한 달 넘게 지난 후, 수사관이 불법 체포영장을 나에게 전달하자 앞으로 그들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상을 모르는 생명은 가장 가련하다. 내가 정말 그들을 위해 생각하자 두려운 마음이 순식간에 사라졌고 연민의 마음이 절로 생겨났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체포하든 말든 저에겐 중요하지 않고 당신들에게 중요한 말을 하겠습니다.” 나는 진심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더는 대법제자 박해에 가담하지 마세요. 그렇지 않으면 매우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겁니다. 저우융캉(周永康) 등 중공 고위간부들이 박해에 가담해 얼마나 말로가 비참한지 보세요. 사람이 하는 일은 하늘이 다 보고 계십니다.” 시간이 제한돼 있어 많이 말하지는 못했지만 그들에게 인터넷 차단을 우회해 진상을 알아보라고 했다. 그들은 나에 대해 동정을 표하며 자신도 원치 않는 일이고 임시로 맡겨진 일이라고 했다.

2) 국보(國保) 대대장에게 진상 알리기

국보(국내안전보위대) 대대장이 날 불법 심문할 때 말했다. “당신은 체포됐습니다. 정말 안타깝습니다. 당신은 사회에서도 능력 있는 사람인데 감옥에 가게 될 겁니다.” 나는 그의 말은 신경 쓰지 않고 그야말로 박해당하는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평온하게 말했다. “당신이 박해에 참여하기 싫어한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상부가 강요해서 어쩔 수 하시는 것이겠죠. 제가 보기에 성 공안청장이 당신에게 우리를 박해하라고 지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박해의 결과는 당신이 책임져야 해요. 불법(佛法)을 박해하는 죄는 매우 큽니다. 이번이 당신이 마지막으로 이런 일을 하시는 것이면 좋겠습니다. 앞으로는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마세요.”

이후에 내가 변호사를 선임하겠다고 하자 국보 대대장은 변호사 전화번호를 적으면서 말했다. “이건 베이징 변호사 아닌가요? 제가 베이징 변호사를 불러다가 우리를 공격하게 할 순 없지요. 이렇게 합시다. 저에게 다른 일을 시키면 머리로 땅을 기어서라도 해드리겠습니다.” 이 국보 대대장은 파룬궁 박해의 선봉이라고 공인된 사람이고 사람들은 그가 매우 사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나는 그에게도 선한 면이 있고 이 생명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3) 법원 수사관들에게 진상 알리기

2심 항소 기간에 법원의 두 수사관이 상황 확인차 왔는데, 그들에게 반드시 진상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막 입을 열어 진상을 말하려 하자 그들은 꾸짖으며 제지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구세력에 의해 이런 방식으로 대법제자와 인연 맺도록 배치된 것이다. 만약 진상을 알지 못하고 박해를 멈추지 않는다면 그들에겐 미래가 없다.’ 나는 마음속으로 조용히 사부님께 도와달라고 청했다.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을 보니 직위를 매우 사랑하시는 것 같군요. 저도 당신처럼 제 직위를 사랑합니다. 제가 일하기 시작한 지 2년 만에 ‘노동모범’이 됐고, 18년 연속 ‘노동모범’으로 선정됐으며, 몇 해는 그룹의 ‘특등 노동모범’으로 평가되기도 했지요. 노동수용소에 가기 전까지는 계속 노동모범이었습니다.” 그들은 내가 그렇게 훌륭하다는 것을 알고는 더는 나를 배척하지 않았다. 이어서 나는 말했다. “저는 바로 파룬궁을 연마한다는 이유로 강제노동 처분을 받은 겁니다.” 내가 박해당한 경험을 그들에게 들려주자 그들은 충격을 받은 듯했다.

3. 불법재판 과정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1) 사부님께서 변호사를 찾도록 도와주시다

불법적인 재판 법정에서 변호사가 나에게 물었다. “자유를 잃은 상황에서 어떻게 저와 연락하셨나요?” 나는 납치된 후 계속 변호사를 찾으려 했고, 구치소 간수, 공안국 경찰, 검찰원의 체포과 수사관에게 차례로 변호사 연락을 도와달라고 요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개정 직전 검찰원 수사관 ○○의 도움으로 드디어 변호사와 연락이 닿았다고 했다. 이 곡절 많고 어려웠던 과정을 듣고 재판정에 있는 사람들은 매우 감동했다.

나는 자유의 몸이 된 후에야 변호사가 변론석에 앉아 감당해야 할 압력과 어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비로소 알게 됐다. 친구가 나에게 말해줬다. 변호사와 우리 몇몇 파룬궁수련생이 납치된 후, 내가 찾은 변호사도 우리를 도와주려 했다가 마찬가지로 납치, 구타를 당했고 뇌진탕 진단을 받았으며, 이후에 경찰이 그에게 ‘참회서’를 쓰라고 강요하고 더는 이 일에 관여하지 말라고 강요했다고 한다. 사부님의 도움 하에, 수련생들의 정념 하에 이 변호사는 변호사로서의 직업 도덕을 견지하고 내 의뢰를 받아들였다. 나는 이것이 내가 마음으로 대법을 실증하려 하자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 사부님께서 날 위해 이 변호사를 찾아주신 것임을 알았다.

2) 첫 번째 불법재판

첫 번째 재판은 3일간 진행됐다. 개정 전에 법정이 여러 구실로 변호사의 개입을 저지할까 우려돼 변호사와 나는 ‘어떤 경우라도 난 ○○변호사에 대한 위임을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협의서를 작성했다. 내가 석방된 후 알게 된 바로는, 변호사 역시 ‘어떤 경우에도 내가 피고인 ○○에 대한 변론 의무를 포기하지 않겠다’는 협의서에 서명하고 합의부에 제출했다고 한다. 변호사는 계속 약속을 지켰는데, 법정에서 그의 휴대폰이 한 번 진동했다는 이유로 변론 자격을 강제로 박탈당할 때까지였다.

휴정한 후 감방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재개정하면 날 변론해 줄 변호사가 없기 때문이었다. 나는 안으로 찾아보았다. 이는 내 의존심 때문에 초래된 결과였고 법정에서 내가 주인공의 위치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낙담해 있을 때 변호사는 변론 자격을 박탈당한 상황에서도 장애를 뚫고 구치소에 날 보러 왔다. 여러 겹의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그는 나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는 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휴대폰이 한 번 진동했다는 이유로 법정이 그의 변론 자격을 강제 박탈한 위법행위가 인터넷에 폭로되어 조회수가 6만 건이라고 했다.

나는 우리가 바로 사악을 폭로하고 박해를 저지하러 온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일을 통해 더 많은 민중이 악당의 본질을 알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바가 아니던가? 이 일로 사부님께서는 내가 박해받는다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도록 일깨워주셨다. 대법제자는 사람을 구하는 것인데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즉시 깨달았고,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됐다.

3) 두 번째 재판에서 주인공이 되다

재차 개정할 때, 악당은 박해가 폭로되는 것을 두려워해 매우 외진 농촌 소도시 법정에서 재판을 열었다. 3시간 넘게 이동하는 동안 나는 계속 중생에게 어떻게 진상을 알리고 법을 실증할지 생각했다. 막 개정하자마자 나는 즉시 손을 들고 말했다. “제 변호사는 여러분이 강제로 변론 자격을 박탈했는데 이는 법적 근거가 없고 위법입니다. 제 다른 변호사는 여러분이 그가 변호사 사무소에 통지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그의 변론권을 박탈했는데, 그건 저에 대해 무책임한 처사입니다. 개정 전에 왜 철저히 조사하지 않았나요? 그렇게 긴 시간 동안 확인하지 않다가 개정 직전에 와서 이를 구실로 그의 변론권을 박탈하다니, 이는 제 합법적 권익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법정은 내 항의를 무시하고 절차를 강행했다. 재판장이 방망이로 두들겨 내 말을 막는 것을 피하기 위해 기소장 내용에 따라 파룬궁은 사이비교(주: 중공이 진정한 사이비교)가 아니라는 등 문제에 대해 조목조목 변론했다. 심문 시 한 수사관이 나에게 물은 적이 있다. “세뇌반은 당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당신도 그곳에 있어 본 적 없으며, 당신은 그 지역 사람도 아닌데 왜 거기 가서 구호를 외치려 했습니까?” 그의 질문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사람이 파룬궁 이 단체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한 대법제자가 박해를 당하면 전 세계 각국, 각 인종, 각 피부색 대법제자들이 모두 나서서 목소리를 내고 이 일에 반대합니다. 그래서 많은 경찰들이 우리가 잡힌 후 그들 휴대폰에 해외 대법제자들의 전화가 폭주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가 세뇌반에 가서 구호를 외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는 계속해 말했다. “그들은 우리 몇 명의 노인과 변호사들에게 위법행위가 있다는 아무런 증거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이 권리수호 변호사들은 우리 몇 명의 노인들이 약간의 돈으로 매수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들은 대법제자 집단이 현재 사회에서 도덕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에 있는 사람들임을 알고 있고, 대법제자들에게 발생한 인권 참사를 목격했기에 현행 법률에 의거해 정의로운 목소리를 냈던 것입니다.”

나와 함께 납치된 세 분의 수련생도 서로 협력해 각기 다른 각도에서 진상을 알렸다.

법정 최후 진술 단계에서 재판장이 나에게 더 할 말이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진상을 알릴 기회를 반드시 놓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성(省) 정법위원회, ‘610’, 공안청, 그리고 검찰원과 법원 사람들이 모두 2층에서 재판 녹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일어나 마이크를 잡고 녹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여기서 여러분은 대법제자의 진심 어린 몇 마디 말을 들을 수 있는데, 이는 저에게나 여러분에게 모두 소중한 기회입니다. 지난 16년간 저는 중국의 수천만 대법제자들과 마찬가지로 납치, 감금, 강제노동, 강제 전향, 고문 등을 겪었습니다. 엄청난 고난 속에서 저와 제 동수(同修)들은 ‘진선인(真·善·忍)’에 대한 신념을 견지하며 오늘날까지 걸어올 수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의 견지 덕분에 더 많은 사람이 파룬궁을 알게 됐고 여러 방식으로 지지를 표명해주셨습니다.”

나는 또 내가 처지가 매우 어려웠을 때의 일도 말했다. “구치소에 한 유명한 여경이 있었는데 그녀가 저에게 무슨 일로 들어왔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파룬궁을 연마한다고 하자 그녀는 감방의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모두 하늘과 땅을 해치는 일을 저질러 들어왔는데, 이 파룬궁수련생만 나쁜 일을 하지 않았어요. 그녀를 괴롭히지 마세요.’ 저는 이 경찰이 저를 위해 말해줬다고 해서 그녀에게 아첨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자신의 사고방식으로 문제를 생각했고, 상부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았으며, 상부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지도 않습니다. 대법제자와 접촉하는 과정에서 그녀는 이성적으로 대법제자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판단했습니다. 또한 많은 일반 민중도 파룬궁 진상을 알게 된 후 순박한 방식으로 대법제자들에 대한 지지를 표현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다시 한번 이 자리에 계신 분들이 진상을 알아보고 스스로 밝은 미래를 선택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와 제 동수들은 모두 파룬궁의 아름다운 연공음악이 다시 중국 대지에 울려 퍼질 수 있기를, 저와 제 동수들이 공원과 광장, 그늘진 길에서 자유롭게 연공할 수 있기를, 더는 폭력적인 납치가 없기를, 더는 경찰의 구타가 없기를, 더는 강제 전향이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날은 반드시 올 것입니다.”

내가 진심을 다해 진술을 마친 후 다른 수련생들도 각자 다른 각도에서 진술했다. 법경들은 우리에게 재판기록에 서명하라고 요구했지만 우리는 모두 협조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나오자 우리를 호송하는 몇 명의 법경들이 말했다. “처음에 저희는 여러분이 걱정돼 어쩔 줄 몰랐어요. 변호사가 한 명도 오지 않아서 당신들 몇 명 노인들이 두려워 떨 줄 알았는데, 당신들이 이렇게 정신이 똑바르고 이렇게 잘 말하는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옆에 있던 여법경이 말했다. “그녀는 영업사원이니 당연히 말을 잘하겠지요.” 나는 말했다. “물건 파는 것과 오늘 말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겁니다. 이건 대법이 저에게 지혜를 열어준 거랍니다.”

4. 전체가 협력해 사악을 해체하다

재판이 끝나고 우리 몇몇 대법제자들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감방의 한 젊은 여성이 나에게 물었다. “왜 파룬궁 양형에는 기준이 없나요? 어떤 수련생은 아침시장에서 몇 장의 진상자료를 줬다고 4년 형을 받았고, 어떤 수련생은 거리에서 CD 한 장 돌렸다고 5년 형을 받았는데, 당신들은 이렇게 큰 사건을 저질렀으면서 고작 2년 형이라니요.” 나는 대답했다. “밖에 있는 대법제자들이 계속 전력을 다해 우리를 구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수련생들은 날 위해 차례로 네 명의 변호사를 선임해 주었다. 변호사가 올 때마다 나는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수련생들은 내가 공능이 생겼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밖에 있는 수련생들이 변호사와 전력으로 협력하고 정념을 발해서 거대한 에너지가 날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변호사가 올 때마다 밖에 있는 수련생들이 막대한 인력과 물력을 들여야 했기에 나는 변호사와의 만남을 매우 소중히 여겼다. 한 변호사가 와서 면회할 때는 6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다가 구치소 경찰이 와서 제지하고 나서야 멈출 수 있었다.

1심 개정 때 사악은 수련생들의 방청을 막기 위해 대량의 경찰력을 동원해 도로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했다. 그때는 마침 북방의 혹한기였는데, 수련생들은 영하 30도가 넘는 혹독한 추위 속에서 사악의 겹겹의 봉쇄를 뚫고 구출에 참여했다. 자가용을 타고 온 사람도 있고, 버스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으며, 택시를 타고 온 사람도 있었다. 주변 시, 현, 농촌 수련생들이 사방에서 재판 현장 주변으로 달려와 정념을 발했다. 많은 수련생이 파출소로 끌려가 신분 조회를 당했고, 현지 공안에 통보되어 집에 돌아간 후에도 괴롭힘을 당했다. 성 전체 대부분 수련생들도 개정할 때 정념을 발하고 있었고, 천목이 열린 수련생은 사부님께서 다른 공간에서 사악을 제거하시고 하늘에 ‘정법(正法)’ 두 글자를 쓰시는 것을 보았다.

2심 판결이 내려지자 구치소에서는 우리를 감옥에 보내려 했다. 수련생들은 전체적으로 협력해 사악을 해체했고, 구치소에서는 세 번이나 보내려 했으나 모두 성공하지 못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자신에게 아직 매우 강한 두려운 마음이 있음을 발견했다. 감옥에 가는 것이 두렵고, 강제 전향(수련 포기)을 당할까 두렵고, 고생을 감당할까 두렵고, 자신의 길을 바르게 걷지 못해 수련에 오점을 남길까 두려웠다. 이때 수련생들이 ‘2015년 미국서부법회 설법’을 전해주었고 나는 감방에서 서둘러 그 설법을 배웠다. 이후 설법 앞부분을 능숙하게 암기할 수 있었다. 매일 밤 나는 오랫동안 정념을 발했다. 어디에 있든 법을 실증하고 박해에 반대하며 사람을 구해야지 다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두려운 마음은 점차 수련되어 없어졌다. 마지막으로 구치소에서 우리를 감옥으로 보낼 때, 나는 다른 두 수련생의 상태도 매우 좋아 보이는 것을 보았다. 우리 모두 전체적으로 제고되어 올라왔다. 우리가 감옥에 가는 차를 기다리고 있을 때, 경찰이 전화를 받더니 큰 눈으로 길이 막혔다면서 보내지 않겠다고 했다. 사실 그때 땅에는 가는 눈이 살짝 깔려 있을 뿐이었다. 나는 이것이 사부님께서 다시 한번 우리를 구원해주신 것임을 알았고, 수련생들이 전력을 다해 협력해 사악의 배치를 해체한 것이었다.

이 2년간 사부님께서는 계속 날 보호해 주셨다. 법을 실증해야 할 때는 사부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가지(加持)해주셨다. 내가 방황할 때는 법리로 깨우쳐주셨고, 내가 의기소침할 때는 격려해주셨다. 납치된 후 꿈에 내 집이 예전보다 3, 4배나 커졌는데, 부유하고 웅장하며 금빛으로 빛나는 것을 보았다. 재판 후에는 꿈에 내가 구술시험을 통과하고 수많은 면접관의 평가를 거쳐 대학에 진학했는데, 그들은 나에게 “당신은 대학에 다닐 자격만 있을 뿐 졸업하려면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라고 일러주었다.

검은 소굴에서 걸어 나온 후 마음속이 감사함으로 가득 찼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에 감사드리고, 수련생들의 한결같은 정념의 가지에 감사드립니다.

 

원문발표: 2024년 4월 29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4/4/29/468894.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4/4/29/4688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