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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질투심을 찾다

글/ 중국 대법제자 요원(了願)

[명혜망] 저는 큰 도시에서 일하며 혼자 수련합니다. 휴가 때가 되면 고향에 가는데, 갈 때마다 어머니(수련생)는 그곳 수련생들과 교류할 시간을 마련해주십니다. 그곳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게 좋았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게 됐습니다. 모두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배려해주신 것입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올해는 시간이 유난히 빠른 것 같습니다. 눈 깜짝할 사이에 2024년이 됐고, 한 달 정도 지나면 설 연휴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설에 네가 사는 도시에 갈까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니? 내키지 않으면 동생과 함께 고향에서 만나도 되고.” 동생은 아이가 둘이 있어서 고향으로 설을 쇠러 가지 말고 이곳 도시에서 설을 보내고 싶었는데, 아버지를 통해 제 의견을 듣고 싶어 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설날 후 곧바로 개학이라 외손자들이 돌아가야 하므로 이곳 도시에서 가족이 모이면 보름 정도 더 함께 있을 수 있어서 더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물론 동생의 의견일 것입니다.

그 통화가 있고 나서, 며칠 동안 아버지와 동생은 매일 전화로 일정을 조율하는 듯했습니다. 저는 좀 궁금했습니다. ‘갑자기 왜 여기로 오신다는 거지? 어머니는 원치 않으실 것 같은데.’ 저녁에 아버지께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됐는지 문의드리자 “아직 최종 결정이 난 건 아니다. 동생이 최종결정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의견을 말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안돼, 너는 그냥 다른 사람의 의견에 따르면 돼”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동생이 제 의견을 물었습니다. 저는 “난 상관없어. 어디서 설을 쇠든 마찬가지니 네가 결정해”라고 하자 “어머니도 오시기로 했으니 언니는 내년에 고향에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줬습니다. 사실 저는 이번 설에 고향에 꼭 가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년간 기다려 왔습니다. 설에 고향에 가지 못해 수련생들을 만나지 못하는 게 아쉽기도 했고, 설 연휴 내내 셋집인 우리집에만 머물러 있을 걸 생각하면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동생은 저와 같은 아파트단지에 살고 있습니다. 연휴 기간 내내 동생 집에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니 저는 부모님과 함께 지내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동생만 편애하며 큰딸인 저를 너무 편파적으로 대해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결국 이기적인 동생 때문에 제가 혼자 부모님을 챙겨드려야 할 것이 뻔해 화가 났습니다.

화난 마음을 잠시 진정시키려고 했을 때 ‘속인을 원망해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생각해봤습니다. ‘아버지는 설에 고향 친척들을 방문하며 선물 돌리기를 싫어하시고, 동생은 항상 부모님의 도움을 좀 더 받고 싶어 하지. 나에게 마음을 닦으라는 건가?’

명혜망에 접속하자 두 편의 글만 뜰 뿐 더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중 한 편은 수련생의 질투에 관한 글이었습니다. 수련자에게 일어나는 일은 모두 우연이 아닙니다. 이전에 어머니가 저에게 질투심이 있다고 여러 번 지적하신 적이 있었지만, 전 질투심도 없고 남이 잘되는 걸 바라지 않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으므로 수긍하지 않고 반박했습니다. 그러나 사부님께서 깨닫지 못하는 절 보시고 이런 형식으로 일깨워주신 게 아닌가 해서 안으로 잘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또 한 가지 일이 생각났습니다. ‘평소 시간 나는 대로 동생 집에 가서 아이들을 돌봐주고, 요리도 해주고, 돌아올 때는 쓰레기도 치워주는 등 도와주는데, 동생은 고마워하지도 않고 날 배려해주지도 않는구나.’ 마음이 상한 저는 ‘다음부터 동생 집에 가지 말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사실 이런 마음 역시 질투심이고, 질투는 원망과 함께 있는 극히 좋지 않은 것입니다.

얼마 전 동생의 작은 아이가 열이 나며 밤새 우는 바람에 동생은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런 동생의 상황을 보고도 동생을 이기적이라고 불평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이기심 아닌가? 오직 나만을 생각하는 것, 그게 바로 이기심 아닌가? 나는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에 가서 수련생들을 만나 싶다, 집도 없이 타향의 셋집에서 혼자 있는 내가 불쌍하다, 나는 동생 집에서는 식사하는 것조차 불편하다, 어찌 내 집만 할까 등 생각은 전부 ‘나’를 위주로 한 것이다. 동생을 이기적이라고 원망한 것 역시 내 이기심 때문이다.’

수련인은 속인과 같아서는 안 되고 대법제자의 풍모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론 동생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혼자 고향에 가서 설을 쇠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선과 악 사이에서 갈팡질팡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때 ‘어디가 집인가’라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천국이 너의 집이 아닌가? 그곳에서 수많은 중생이 널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라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이 바로 저의 집입니다. 저는 바로 사부님을 도와 법을 바로잡는 정법시기 대법제자입니다. 사부님과 서약을 맺은 저는 반드시 사부님을 따라 집에 가야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건 지나가는 연기와 구름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의 배역에 너무 몰입해선 안 됩니다.

저는 동생만 편애하는 아버지에게 동생처럼 관심을 받고 싶었으므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지금의 제 생에는 없는 것입니다. 인연이 다르고, 덕이 다르므로 얻는 것이 다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저를 잘 대해주기를 바라거나 강요할 수 없는 일입니다. 마음이 평온치 않은 건 사람의 정인 질투심입니다. 사고의 방향이 명확해지자 결과에 집착하지 않게 됐으며 자연스럽게 되어감에 따르자고 생각했습니다. 12시가 되어 발정념 준비를 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 평소처럼 동생 집에 가서 일하면서도 설 모임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고 생각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 그런 모습에 동생은 조금은 의외라고 생각하는 듯했습니다. 직장에서 점심 식사할 때 어머니가 전화로 저에게 설 모임 문제의 의견을 물어보셨습니다. 저는 전화로 말하기가 좀 불편했지만 저의 의견을 말했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고 했습니다. 어머니 제 말을 듣고 “네 생각을 알게 되어 다행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를 불편하게 하고 싶지 않아. 설에 고향 집에 가기로 했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문제가 원만히 잘 해결됐고 설날에 고향 집에서 수련생들을 만날 수 있게 되어 기뻤습니다. 제가 이 문제를 안으로 찾자 사부님께서 도와주신 겁니다. 즉시 사부님 말씀이 떠오르게 해주셨고 지혜를 주셨습니다. 저는 알았습니다. 아무리 기분 나쁜 일이나 어려운 일이라도 안으로 찾아야 한다는 이 일념이 있어야 합니다. 이 일념이 바로 정념입니다. 정념이 나오면 사부님께서 도와주시고 지혜를 주실 수 있습니다. “일마다 대조하여 해내어야 수련이로다”(홍음-착실한 수련). 해내어야만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저는 비로소 저에게 질투심, 이기심, 승복하지 않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고생을 낙으로 삼는 걸 해내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법을 더 잘 배우고 더 잘 수련해 중생을 구하겠습니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험입니다. 여러분과 함께 비학비수(比學比修)하고 정진하겠습니다.

 

원문발표: 2024년 2월 5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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