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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수련생이 대법을 수련한 체험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나는 2021년 초에 운 좋게도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사부님의 자비에 감사드리며 여러분과 수련 체험을 공유하려 한다.

안일함을 극복하고 밖에 나가 단체 새벽 연공에 참가하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단체 법 공부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남겨준 것이고, 단체 연공은 내가 여러분에게 남겨준 것이다. 박해가 극히 엄중한 상황을 제외하고 중국대륙 이외의 기타 지역은 모두 이렇게 해야 한다. 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으로, 그것은 미래의 사람들이 법을 얻고 수련하는 문제와 관련된다. 그러므로 단체 연공과 단체 법 공부는 없어서는 안 된다.”(각지 설법14-2016년 뉴욕법회 설법)

하지만 9일 학습반에 참가해 공법을 배운 후 나는 단체 연공에 나가기 싫어서 계속 집에서 연공했다. 사실 나에게는 안일한 마음, 편안하려는 마음(집에서 연공하면 여름에 에어컨이나 선풍기를 켤 수 있고 겨울에도 춥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있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으나, 매일 연공을 견지하기만 하면 집에서 연마해도 되며, 왔다 갔다 하는 시간을 절약해 법을 공부하면 된다고 자신에게 구실을 찾았다.

어느 날, 아래층 이웃(친척의 세입자)이 우리집 문에 쪽지를 붙였다. 위층 가족들이 내가 아침마다 가구를 옮기는 바람에 잠을 자기 어렵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즉시 화가 났고, 억울해서 친척을 통해 내가 아침 일찍 일어나 연공을 하지만 한 자리에 서 있거나 앉아 있어서 소리가 날 일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세입자는 계속 소리가 난다고 주장했다. 친척은 어쩔 수 없이 내 말을 세입자에게 전달했다. 나중에 나는 ‘이건 나에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는지 시험하는 게 아닐까’라고 생각했고, 그 후 일어나면 좀 더 조심스럽게 움직였으며 연공 음악도 최대한 소리를 낮췄다. 그 후 몇 번이고 내가 가구를 옮기지 않았다고 설명하자 세입자는 오래된 아파트라서 다른 층에서 나는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마지못해 동의했다. 하지만 여전히 메모지를 떼지 않고 2층 복도에까지 한 장을 더 붙였는데 ‘모든 층의 이웃 여러분, 제발 새벽에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세요’라고 적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사부님께서 나에게 밖에 나가 연공하라고 암시해주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렇게 2022년 12월 겨울부터 드디어 공원에 나가 새벽 연공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추운 겨울부터 더운 여름까지, 비가 내리지 않는 한 계속 나갔다. 이 기간 많은 집착을 닦아버렸고 늦잠 자는 것을 극복했다. 처음에는 좀 더 자고 싶다거나 원망심이 있었고, 졸립다 등 여러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이러한 생각이 계속 나타나도록 내버려 두면 교란이 악순환으로 이어져 나가기 싫어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알람이 울리면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조용히 외우면서 머릿속의 다른 생각을 대체했는데 효과가 좋았으며 더 이상 늦잠을 자지 않는다. 처음에는 모기에 물리거나 파리가 얼굴에 붙을까 봐 두려워서 망사 모자를 쓰고 머리를 가렸다. 이후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것이 물든, 기어다니든 상관하지 않고 소업(消業)으로 여기고 모자를 벗었다.

그러나 나는 일부 집착심을 아직 깨끗하게 제거하지 못한 것을 알고 있다. 일어나서 빗소리가 들리면 오늘은 공원에 가서 연공할 필요가 없다고 은근히 기뻐했다. 자신을 바로잡고 이 안일한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전히 가끔 나타났고, 심한 경우에는 내일 날씨가 어떤지 계속 지켜봤다. 날씨가 추워져서 파리나 모기가 줄어들길 ‘기대’하는 두려움도 있었다. ‘오늘 아침은 꽤 추우니 모기가 물지 않겠지’라고 생각할수록 더 물렸고, 생각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없었다.

이런 식으로 나는 때때로 나타나는 이런 집착심을 제거하고 바로잡았으며 견지한 후 이웃의 메모지가 여전히 같은 위치에 붙어있었지만, 친척은 나에게 아무런 말도 전하지 않았다.

법공부와 교류에 참가하면 제고에 도움이 된다

매주 단체 법공부나 항목팀 온라인 법공부 시간에, 최근에 어떤 심득 체험이 있는지 묻는 수련생이 항상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얼굴을 붉히며 쩔쩔매면서 체험을 좀 말했는데 말을 잘하지 못하면 체면이 깎일까 봐 두려워하면서 무의식적으로 어떻게 말을 꾸며야 더 좋을지 생각했고, 지나고 나면 또 ‘진(眞)’을 행하지 못해 후회하기도 했다. 항상 속인 회의에서처럼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과시심이 나왔다.

그 후 법공부를 더 많이 함에 따라 교류할 때 나는 점차 그리 긴장하지 않았고 천천히 생각하면서 체험을 교류할 수 있었다. 정말로 ‘진’을 닦았다면 말을 보태거나 꾸며서 말하지 말아야 한다.

단체 교류에 많이 참여하는 것도 도움이 됐다. 수련생이 어떤 문제를 법에서 어떻게 깨달았다고 하면, 자신의 인식과는 달라서 더 이치에 맞을 수도 있고 옳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든 여러 사람이 법에서 사고할 수 있도록 북돋워주는 것을 체험했다.

또한, 단체 교류에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수련생이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가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가족 수련생과 교류할 때면 참지 못하고 의견을 말하며, 정말 많은 집착심이 계속해 나오는 것을 발견했다.

어머니는 파룬궁 공법을 배운 지 이미 2년이 되셨지만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을 아직까지 한 번도 읽지 못하셨다. 몇 달 전 병업(암 진단)이 생기고 나서야 실제로 수련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나와 여동생(수련생)은 어머니가 여전히 속인의 사고방식을 갖고 병업을 대하시고, 때로는 대법을 믿지 않고 자신이 수련해 올라갈 수 없다고 생각하시는 걸 발견했다. 어머니의 법에 대한 이해 정도를 알아보기 위해 나와 여동생은 지난 몇 주간 주말마다 어머니와 함께 법을 한 단락씩 공부하고 교류하는 시간을 보냈다.

교류할 때 서로 가족이기에 느슨해져서 상대방 말을 인내심 있게 다 들어주지 못하고 계속 서로 말을 중단시켰다. 몇 마디 하지 않았는데 당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당신은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했으며, 종종 한 주제를 다 교류하기도 전에 다른 주제로 전환해 많은 시간을 낭비했다. 몇 가지 대법 용어를 어머니께 좀 명확하게 설명해드리기도 했지만, 나와 동생은 우리에게도 문제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어머니 입장에서 문제를 보지 않았다. 어쨌든 어머니는 정말 막 수련을 시작한 속인일 뿐이고, 평생 이웃과만 왕래하신 수련의 개념이 전혀 없는 노인인데 신사신법(信師信法)의 정도가 어찌 대법 책을 수십 번, 수백 번 본 사람과 같을 수 있겠는가? 어머니는 여전히 두려우실 것이다! 어머니 마음속에는 ‘몸이 불편하면 무슨 병이니 무엇을 먹어야 된다’라는 속인의 개념이 ‘수련인은 병이 없고 소업일 뿐이다’라는 믿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조급함과 인내심(진지하게 듣지 않음)이 없고, 무례하며(때때로 매우 흥분해서 말함), 원망(왜 항상 어머니는 자신의 병만 생각하시면서 다른 사람에게 돕게 하는가) 이외에 마음 깊은 곳에 ‘어머니가 빨리 수련해 올라와 몸이 좋아지시면 우리는 이렇게 많은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없겠지’라는 이기심도 있었다. 냉담하고 불친절한 마음도 나왔다. 동생은 어머니가 일상적인 집안의 자질구레한 일이나 케케묵은 지난 일을 말씀하실 때마다 내가 말은 안 하지만 얼굴에는 들을 가치가 없다는 표정을 짓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는 어머니와 교류한 후 우리의 심성이 부족한 점을 보았고, 앞으로도 교류할 때 심성을 지킬 수 있도록 서로 일깨워주자고 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다. “많은 대법제자가 가족에 대해 늘 어떤 태도를 지니고 있는가? ‘그는 나의 친인(親人)이니 가족에 대해 좋은 점이 있는 일은 내가 결정한다. 일부 일들은 내가 그들을 위해 했는데 어쨌든 나는 그들이 잘되게 하려는 것이다.’ 이런 것이 아니다. 당신들이 일단 수련하기만 하면 당신들은 바로 수련생이며 각자 각자의 천국으로 되돌아간다. 누가 수련을 잘했으면 그가 돌아가고 누구도 그를 대신하지 못한다.”(각지 설법8-2007년 뉴욕법회 설법)

우리는 법리를 알고 있지만 종종 자신의 인식으로 어머니의 언행을 대했기에 서로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아무튼 진정한 대법 수련자답지 못한 상황이 나타난 것은 나와 동생에게 여전히 제거하지 않은 집착심이 있고 ‘선(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우산을 잃어버린 일에서 집착을 찾다

법을 얻고 지금까지 나는 이미 우산을 여러 개 잃어버렸는데, 그중에는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우산도 있었다.

처음 우산을 잃어버렸을 때는 그래도 이익에 대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원망과 짜증 내는 마음은 한참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잊어버렸을 때마다 이익에 대한 집착을 없애려고만 생각했고, 많이 생각하면 집착심이니 너무 많이 생각하지 말자고 자신을 일깨웠을 뿐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것을 깊이 파헤치고 철저히 제거하지 않았음을 발견했다.

이번에도 법공부 장소에서 우산이 또 사라져서(누군가 가져간 것임)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 처음에는 다른 수련생에게 누군가가 잘못 가져갔을 수 있다고 말했지만 마음은 여전히 불편했다. 집에 돌아와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니 나는 이익에 대한 집착을 깨끗이 제거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불평하는 마음과 원망, 내가 옳다고 여기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산 지 3개월도 안 됐고 몇 번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법공부 장소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는 생각이 반복해 나타났다.

나중에 명혜망에서 수련생이 공유한 ‘모든 고난은 우연이 아니다’를 읽었다. “우리는 미혹 속에서 수련하고 있기에 이전에 무엇을 했는지 이번 생에서는 모른다. 우리가 예전에 나쁜 짓을 했다면 그 채권자들이 빚을 받으려 하지 않겠는가? 따라서 우리가 겪는 모든 고난은 우연이 아니라 모두 인연 관계가 있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겪은 요만한 고난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부분 감당하시고 남은 일부분일 뿐이다.” 이 부분이 나에게 많은 감동을 줬다. 빚을 졌으면 갚아야 하는데 내가 우산 몇 개를 잃어버린다고 갚을 수 있는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 갚으신 것이 훨씬 더 많지 않겠는가? 하지만 나는 여전히 불평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우주의 쓰레기 더미 속에서 어떤 것이 내 것이겠는가? 우리 수련자가 이런 것에 미련을 가져서야 되겠는가? 이렇게 깨닫고 나니 정말로 마음을 내려놓은 것 같았다.

이상은 현재 층차에서 이해한 내용이므로 부적절한 부분은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원문발표: 2024년 1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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