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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깨어나 대법을 얻고 시련 속에서 정념정행하다

글/ 중국 대법제자 정심(淨心)

[명혜망]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고 어릴 때 아버지와 함께 무술을 배우며 의지를 단련했습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는 항상 승려가 되거나 명산대천(名山大川)의 무술 고수를 찾아 무술을 배우고 곳곳으로 여행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협객이 되고 싶었습니다.

대학 입시를 앞두고 저를 아껴 주셨던 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마음이 너무 아팠고, 충격으로 고등학교 때 배운 것을 전부 잊어버려 입시를 치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군대에 가고 싶었습니다. 당시 둘째 형이 마을에서 징병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는데, 같은 반 친구 중 한 명이 입대를 원했지만 선발되지 않았습니다. 제가 선발됐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큰 열등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제가 군인이 된다는 이유로 두 집안이 갈등을 빚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서 둘째 형에게 저 대신 그가 군대에 갈 수 있게 부탁했습니다. 저는 대신 작은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과수원에서 과일을 도매로 사서 50km 이상 떨어진 도시로 팔러 갔습니다. 저와 함께 과일을 팔던 동료들은 너무 피곤하고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해 차례로 그만뒀습니다. 저는 이런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계속 버텼습니다. 추수가 끝나면 직접 음식을 가공해 도시에서 판매했습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생활이 점차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공장에서 사업을 했고 그러다 작은 회사를 차렸습니다. 사악한 공산당의 부패한 통치 아래서 사회도덕은 급속도로 타락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모든 것이 돈 중심이 되는 세상 속에서 시대 조류에 휩쓸려 부정한 방법으로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저는 자신이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을 많이 했습니다.

1. 꿈에서 깨어나다

1998년 배달을 하러 외출했다가 돌아와 보니 집 탁자 위에 아내가 빌려온 책 두 권이 놓여 있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독서를 좋아했기 때문에 책들을 펼쳐보았습니다. 파룬궁 사부님의 저작 ‘정진요지’와 ‘미국법회 설법’이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좋은 책을 읽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서둘러 파룬궁의 주요 저작 ‘전법륜(轉法輪)’을 구했습니다.

저는 허기진 마음으로 이 귀중한 책을 보았습니다. 책을 절반 정도 읽었을 때 깨닫게 됐습니다. ‘이건 수련하는 책이야! 이 책은 너무 좋고, 진선인(真·善·忍)은 너무 좋아. 내 마음과 뼛속까지 구구절절 와닿았어!’ 저는 막 꿈에서 깨어난 것 같았습니다.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의 법리를 분명히 알고 난 저는 삶을 되돌아보며 제 뺨을 때렸습니다. ‘왜 진작 이 책을 읽지 않았을까? 파룬따파의 진선인 법리를 일찍 이해했다면 그렇게 많은 업을 짓지 않았을 텐데.’ 그래서 저는 좋은 사람이 되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하고 대법 수련에 들어갔습니다.

우리 부부는 단체 연공과 단체 법공부에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내는 정수리가 열린 것처럼 법공부만 하면 정수리에서부터 법이 끊임없이 안으로 쏟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연공할 때는 손이 치지(氣機)에 따라 움직였습니다. 저도 매일 꾸준히 연공했으며,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건강해졌고 담배와 술도 끊었습니다. 사부님의 법리를 따르고 일에 부딪히면 먼저 타인이 감당할 수 있는지 생각했기에, 제 몸과 마음은 대법에 의해 정말 정화됐습니다. 두 아들도 우리를 따라 잇따라 법을 배우며 수련했으며, 우리 가족은 대법 불광(佛光)의 혜택을 받으며 행복을 누렸습니다.

2. 베이징에서 대법을 실증하다

대법은 우리 마음속에 뿌리를 내렸고 세계관이 완전히 바뀐 우리는 매일 행복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1999년 7월 20일, 사악한 공산당은 파룬궁을 탄압하기 시작했고 수련생들은 계속해서 잔혹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법을 실증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톈안먼 광장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현수막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글꼴을 골라 스티커에 멋지게 인쇄해 현수막에 붙이려고 했는데 인쇄소들은 무서워 인쇄하지 못했습니다. 일부 가게 주인은 “당신이 30만 위안을 줘도 해줄 수 없어요. 그들은 저를 죽일 겁니다. 저는 살고 싶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잠을 푹 자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시 한 편이 머릿속을 맴돌았고, 그 시 속에 현수막에 붙일 문구가 숨겨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시를 갖고 인쇄소에 갔습니다. 가게 주인이 “좋은 시를 쓰셨네요, 도가(道家)의 것인가요?”라고 말하면서 기분 좋게 시를 인쇄해줬습니다.

2001년 1월 초, 현수막을 만든 후 우리 부부는 두 아들과 함께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베이징에 도착하자마자 택시를 타고 톈안먼 광장으로 갔습니다.

그날은 눈이 많이 내린 흐린 날씨였지만 눈 덮인 땅은 매우 깨끗하고 멋졌습니다. 눈 때문에 톈안먼 광장은 평소처럼 붐비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톈안먼 광장과 사당(邪黨: 공산당) 기념비 아래에 도착했고, 우리는 깃대 앞에서 사람들을 향해 현수막을 펼쳤습니다. 아내와 저는 현수막 양쪽 끝을 잡았고, 아이들 둘은 가운데 쪽을 잡았으며 함께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우리는 잠시 남쪽 사람들에게 보여준 다음 현수막을 서쪽을 향했습니다. 그 당시 어떤 사람은 우리를 사진 찍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현수막을 펼쳐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 우리 마음속에는 ‘파룬따파는 결백합니다. 사부님은 결백하십니다’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때 경비 근무를 서던 키 큰 무장 경찰이 우리를 발견하고 당황한 나머지 울타리 밖으로 뛰쳐나와 현수막을 빼앗았습니다. 우리는 톈안먼 공안국에 부당하게 수감됐고 그들은 우리를 데려가려고 우리 지역 경찰서에 연락했습니다.

3. 웃음으로 참혹한 매질을 대하다

우리 지역 경찰은 베이징에 도착해 우리에게 “당신들은 엄청난 일을 저질렀어!”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베이징 주재의 현지 사무실로 끌려갔는데, 그곳 책임자 중 한 명이 바닥에 펼쳐진 현수막을 보고 겁에 질려 다리를 떨며 경찰에게 “왜 수갑을 채우지 않습니까!”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일 때문에 그의 상사가 해임될 거라며 우리에게 수갑을 채우라고 경찰에게 요구했습니다. 우리는 나중에 현지 공안국으로 다시 끌려갔습니다.

그날 밤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아내는 난방 파이프에 수갑이 채워졌고, 아이들은 다른 방에, 저는 등을 뒤로 해 난방 파이프에 수갑이 채워졌습니다. 키가 작은 경찰관이 저를 심문했고 그는 제 얼굴을 좌우로 세게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가 불쌍해서 얼굴에 미소를 띠고 악마 같은 표정의 그를 쳐다봤습니다. 때리다가 손이 아프니 그는 매우 두꺼운 책으로 필사적으로 제 얼굴을 계속 때렸는데 책마저 갈라졌습니다. 40분 정도 때리다가 지쳐서 헐떡거리던 그는 저의 웃는 얼굴을 보고 “내일 다시 와서 혼내줄 거야!”라며 화를 냈습니다. 사부님의 도움으로 저는 전혀 아프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그 경찰이 다가와 저를 좌우로 살펴본 후 제 얼굴이 붓거나 다친 곳이 없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그는 어리둥절하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갔습니다. 그 후 여러 경찰이 차례로 와서 허세를 부리며 나무 의자를 부수고 의자 다리를 집어 들고 한쪽 끝을 수건으로 감싸며 저를 구타할 준비를 했습니다. 저는 가장 바른 일을 했기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의자 다리로 저를 때렸고 한 경찰은 제 머리를 계속 때렸습니다. 지칠 정도로 저를 때린 그는 미소를 띤 제 얼굴을 보더니 화를 내며 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경찰은 제 관절들을 계속 때리다가 지쳤는데 제가 웃고 있는 것을 보고는 씩씩거리며 가버렸습니다. 또 다른 경찰은 제 팔다리를 계속 때리다가 지쳤고, 제 웃는 모습을 보더니 그 역시 씩씩거리며 떠났습니다. 여러 명의 경찰이 왔고, 어떤 경찰은 고의로 제 발목과 발가락을 때리며 다양한 방법으로 저를 구타했습니다.

나중에 한 경찰이 와서 제 옷깃을 잡고 제 명치를 심하게 때렸는데 이는 치명적인 살인 수법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말하는 ‘훌륭한 교육’인가요? 그들은 사람을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그가 저를 계속 때려도 저는 고통을 느끼지 않았고 단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것만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저를 대신해 맞으신 겁니다! 제자는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후 우리는 시 구치소에 20일 넘게 부당하게 감금됐다가 풀려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4. 사악한 세뇌반을 해체하다

집으로 돌아온 후 우리는 계속해 세상에 진상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아내와 저는 다시 경찰에 납치돼 세뇌반에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저를 세뇌시키기 위해 7~8명의 변절자(파룬궁을 배반한 사람들)를 데려왔습니다. 방에 들어온 후 그들 중 일부는 의자에 앉고 일부는 침대에 앉았으며, 저를 둘러싸고 그릇된 논리를 주입하려 했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여러 사람이 함께 말하면 알아들을 수 없으니 한 사람씩 말하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한 사람씩 자신들의 그릇된 깨달음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들이 모두 말을 마친 후 저는 첫 번째 사람에게 “방금 말씀하신 것에 대한 사부님 말씀은 이런 뜻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두 번째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하면서 대법 법리로 하나하나씩 바로 잡아줬습니다. 제가 모두 대법에서 말했기에 그들은 저를 이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온종일 저와 이야기를 나눴지만 결국 저를 세뇌시킬 수 없었고 모두 풀이 죽어 돌아갔습니다.

세뇌반에 온종일 저와 함께 있었던 한 공무원이 있었습니다. 24시간 저를 감시하도록 ‘610(파룬궁 탄압기구)’이 보낸 사람이었습니다. 지난 이틀 동안 선과 악의 대결을 통해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목격했습니다. 그 변절자들이 떠난 후 그는 저에게 “그 노인이 아침 일찍 일어나 힘들게 헐떡이며 당신을 보러 왔는데 당신은 말 한마디로 그를 화나게 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제가 잘못 말한 건 아니죠? 전 그냥 질문을 했을 뿐입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한 말은 모두 옳습니다. 그 무리들은 전혀 이치가 없습니다. 그들이 왜 저를 여기로 불렀는지 아십니까? 당신이 자살할까 봐 두려워서예요! 그런데 다른 사람은 자살해도 당신은 그럴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당신을 감시하지 않고 집에 가서 잘 겁니다.” 그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저는 미소 지으며 “아침에 와서 식사하는 걸 잊지 마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알았어요, 당신과 같이 아침을 먹을게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제가 10일간 부당하게 감금된 후 세뇌반 두목들은 저를 정말 ‘전향(수련 포기)’시킬 수 없고, 오히려 제가 그들을 ‘전향’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저를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 저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하자 저는 “제 아내를 풀어주지 않으면 안 갈 겁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아내도 풀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내 역시 대법의 올바른 깨달음으로 변절자들의 세뇌에 저항했습니다.

5. 박해 속에서 마음을 닦다

2004년 어느 날, 갑자기 경찰차 수십 대가 우리집을 에워쌌습니다. 그들은 저를 납치하기 위해 집에 침입했고, 제가 집에 없자 아내를 먼저 납치했습니다. 저도 타지에서 돌아오는 길에 납치됐습니다. 우리는 구치소로 끌려갔고 아내는 나중에 무죄로 풀려났습니다. 법원은 저에게 터무니없는 혐의로 8년 형을 부당하게 선고하고, 본 지방의 악명 높은 감옥 중 가장 사악한 감옥에 던져 넣었습니다.

감옥에 도착하자마자 경찰은 제 개인 옷을 모두 빼앗고 이불 구석구석을 샅샅이 수색했습니다. 그런 다음 저는 엄격한 관리반에 던져졌습니다. 그곳 감방은 약 4평방미터 크기에 7~8미터 정도의 2층 높이로 된 공간이었습니다. 주위는 모두 두꺼운 스펀지 블록으로 둘러싸여 있었고, 밤에는 200도 전구가 방 안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습니다. 수감자 6명이 3교대로 저를 감시했고, 저는 24시간 내내 수갑을 차고 있었습니다.

저는 단식하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박해에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경찰은 저에게 하루에 한 번 액체 음식을 부어 넣었고, 저를 감시하던 수감자들이 저와 대화하는 것마저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며칠 후 감옥은 저를 ‘전향’시키기 시작했고 하루에 한두 시간 밖에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10시에 잠자리에 들고 12시부터 심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전향’에 협조하지 않자 경찰은 하루 24시간 벽을 마주 보고 서도록 강요했습니다. 저는 몸 전체에 파룬이 회전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느꼈는데 너무나도 편안하고 미묘했습니다. ‘이것은 연공하는 것이 아닌가?!’ 사부님께서 제자를 돕고 계셨습니다!

몇 시간 서 있다가 보니 양쪽 뒤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마치 발바닥에서 두 개의 큰 못이 올라오는 것처럼 아팠습니다. 참으며 버텼는데 어느덧 72시간이 지났고, 다리의 큰 못이 사라지고 다리가 아프지 않은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 감옥경찰이 와서 보고 “이런 고통을 참다니, 됐어요! 서 있지 말고 자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혼자 생각했습니다. ‘고비를 넘었구나!’

감방에 갇혀서 외출하지 않으면 아무도 만날 수 없을 텐데 어떻게 진상을 알려 사람들을 구할 수 있을지 생각했습니다! 저는 먹기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정도 지나서 저는 엄격한 관리반에서 감옥 작업장으로 압송되어 강제 노역을 하게 됐습니다.

그 당시 저는 아직 자유롭게 법공부하고 연공할 수 있는 환경을 개척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박해에 저항하려면 먼저 제 누락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후 매일 발정념을 강화하며 두려움, 색욕, 쟁투심, 원망심을 깨끗이 씻어냈습니다. 매일 사부님의 법리를 되새기며 사람의 마음을 내려놓자 자연히 마음이 평온해지고 박해를 받지 않게 됐습니다.

6. 수감자들에게 양심과 정의를 일깨우다

저는 작업장에 일하러 갔을 때 많은 수감자가 사당이 사회를 부패시킨 이유로 나쁜 일을 저질렀고, 또 많은 사람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매일 노역하며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법이 있고 사부님께서 지혜를 열어주셨기에 저는 작업장에서 좋은 기술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할 때 우둔하고 힘들게 하는 작업 방법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죄수들과 경찰들 모두 저를 존경하게 됐습니다. 저는 수련자로서 일을 할 때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에, 수감자들은 저를 가깝게 대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도움을 청했습니다. 이 기간에 부당하게 감금된 다른 대법제자도 알게 되어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작업장에는 종종 ‘정보원’으로 활동하는 수감자, 즉 경찰에 밀고하는 수감자가 있었습니다. 저는 수감자들에게 매국노가 될 때의 불이익과 전통문화의 아름다움, 악비(岳飛)의 충성심, 진회(秦檜)의 치욕에 관해 이야기해 수감자들이 ‘정보원’이 되지 말아야 함을 깨닫게 하고 그들의 정의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정보원’들을 이해시키는 데 1년 이상이 걸렸고, 그때 저는 매일 연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작업 구역의 모든 사람이 “우리가 하는 말(내가 진상을 말하는 것)을 누군가 퍼뜨리면 죽여버리겠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당시 경찰은 제가 진상을 알리고 있다는 것을 간혹 알았지만, 그것은 단지 일부 사람의 고자질일 뿐이었습니다. 2년이 지나자 경찰은 제가 작업장에서 진상을 알려도 몰랐습니다.

나중에 그곳 죄수들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서 탈퇴)를 해주고서 저는 여러 경로를 통해 삼퇴 명단을 밖으로 전했습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 아래 한 수련생이 소중한 책 ‘전법륜’을 빌려줬습니다. 저는 조용히 법을 베끼고 암기했습니다.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베낀 후 다른 수련생에게 전했습니다.

7. 감옥경찰이 사과하다

이 악명 높은 감옥에는 대법제자들을 전문적으로 박해하는 610 감옥경찰들이 있습니다. 특히 610의 경찰 과장은 대법제자들을 매우 사납게 대했지만 저는 그가 두렵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는 신통가지법을 연마하기 위해 침대에서 가부좌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오늘 왜 이렇게 조용한지 궁금해 눈을 떠보니 그 경찰 과장이 침대 앞에 서서 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뭐 하는 거야?!”라고 소리쳤습니다. 저는 침착하게 “안 보이세요? 연공하고 있잖아요.” 그는 제가 겁먹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멍하니 있더니 잠시 후 “연공하지 말고 자요”라고 말하고는 떠났습니다.

한 수련생이 감옥 대장에게 전기봉으로 전기 충격을 당했습니다. 이 수련생을 위해 저는 항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대법제자와 저는 감옥장을 찾아가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무슨 근거로 그에게 전기 충격을 가했습니까? 감옥 대장이 술을 마시고 주사를 부리며 수련자에게 화풀이를 할 수 있습니까? 오늘 그 대장을 처리하지 않으면 저는 상부를 찾아갈 겁니다! 감옥에서 신경 안 쓰면 계속 상부를 찾아갈 겁니다. 오늘 이 일에 대해 납득할 만한 이유를 밝혀야 합니다!”

나중에 감옥장이 상황을 파악한 후 우리에게 “반드시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수련생들과 저는 그 대장에게 전기 충격을 당한 수련생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하루 반나절이 지난 후 감옥 측은 우리에게 와서 사과를 받으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찰들은 체면이 손상될까 봐 공개적으로 사과할 용기가 없었습니다. 수련생에게 전기 충격을 가한 대장은 사무실에서 우리 몇몇 대법제자들과 다른 구역장들 앞에서 전기 충격을 당한 수련생에게 사과했습니다. 그 대장은 “다시는 그런 짓을 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8. 붉은 깃발에 ‘진선인’을 적다

한번은 원자재 더미를 관리할 때 감옥 꼭대기에 붉은 깃발을 세워야 했습니다. 원자재가 너무 많아서 더미가 언덕만큼이나 높았습니다. 저는 노란색 페인트 반 통을 찾아서 더미에서 쐐기 하나를 뽑아 깃발에 ‘진(真)’과 ‘선(善)’ 자를 썼습니다. 진상을 분명히 알고 삼퇴한 죄수가 제가 하는 일을 알아차리고 “세 번째 글자는 제가 쓰게 해주세요!”라고 간청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그에게 쐐기를 주었습니다. 그는 ‘인(忍)’자를 정성스럽게 썼습니다!

저는 원자재 더미 위로 올라가 ‘진선인’이라고 적힌 깃발을 맨 위에 꽂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볼 수 있었고 깃발이 바람에 펄럭였습니다. 그날 감옥 전체에 대한 검열이 있었는데 경찰들은 매우 긴장했습니다. 검열이 끝난 후 경찰 대장이 갑자기 깃발에 대해 알고 즉시 저를 찾아왔습니다.

그의 사무실에는 우리 둘만 있었는데 그는 “깃발에 적힌 문구를 직접 쓴 건가요?”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제가 썼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그는 점점 더 불안해하며 “검열 중에 상사가 이걸 봤다면 전 해고됐을 겁니다!”라고 말하고는 “저는 뭐든 할 수 있는 당신과 달리 밖에서는 아무것도 할 줄 몰라요”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실제로 이 경찰들은 매우 불쌍합니다. 적은 월급을 위해 사당과 공범이 되어 대법제자들을 박해해 큰 죄와 업을 빚었습니다. 일단 사당에 가입하면 오염되지 않을 수 없고, 그들은 사람을 괴롭히는 사당의 명령만 수행하는 도구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들은 그들이 의존하는 부패한 시스템을 떠나면 기본적인 업무와 고난을 견딜 수 있는 용기가 부족합니다.

나중에 ‘인’자를 쓴 사람은 복을 받아 형기를 반년 감형받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9. 감옥 구역장이 삼퇴하다

감옥 구역장은 저를 처음 본 순간부터 제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저에게 “연공하는 여러분은 남을 위하는 정말 좋은 분들입니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남을 위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가 저를 존경하고 저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저는 그에게 진상을 알려줬습니다. 그는 차츰 대법 진상과 사당을 따르는 것의 위험성을 분명히 알고 삼퇴를 선택했습니다.

구역장이 삼퇴한 후 저는 밤에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저는 검은 옷을 입은 많은 사람을 보았고 행렬에서 누군가가 사당 깃발을 들고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마치 장례식처럼 매우 큰 관을 들고 한 방향으로 가는데 행렬 끝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저는 새까맣게 있는 사람들 속에 서서 앞뒤로 왔다 갔다 하며 걸어 나갈 수 없었습니다. 다급한 나머지 저는 “모두 엎드려!”라고 외쳤고 순식간에 모두가 쓰러졌습니다. 저는 사당 깃발이 하나 서 있는 것을 보고 깃대를 잡고 꺾어 버렸습니다.

10. “저는 사부님께서 책임지시기에 반드시 집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석방되기 전 제가 부당하게 감금됐던 그 대대에는 100명 이상이 있었고, 전체 작업장 4개 대대에 수백 명이 있었는데, 보수적으로 추산해도 그중 90% 이상이 삼퇴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새로 사람이 올 때마다 저는 삼퇴를 해줬습니다. 수감자들도 진상을 알게 된 후 삼퇴를 권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들 중 일부는 새로 온 사람에게 “당신은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에 가입한 적이 있나요? 탈퇴하세요! 이 사당이 얼마나 더 지탱할 수 있을까요? 탈퇴하세요!”라고 권했습니다. 8년 후 출소할 때 작업장 사람들은 저에게 작별 인사를 했고, 저는 그들에게 위험에 처했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진심으로 염하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석방되던 날, 감옥경찰 몇 명이 으스대며 “당신은 집에 갈 수 없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소위 ‘전향’을 하지 않았기에 610이 감옥 밖에서 제가 나오길 기다리다가 납치해 세뇌반으로 끌고 가리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경찰들에게 “당신들이 결정하지 못합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책임지시기에 반드시 집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믿지 않았지만 저는 사부님께서 제 곁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념으로 감옥을 걸어 나갔습니다.

감옥 밖에서 가족들이 모두 온 것을 보았고, 610 차에 앉아 있는 덩치 큰 사복경찰 4명을 보고 곧장 그들을 향해 걸어가 미소를 지으며 “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차 안의 사람들은 마치 김빠진 공처럼 무기력해 보였습니다. 그 우두머리는 “가족 상봉을 했으니 이제 집으로 가세요”라고 말하고 더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가족들과 함께 차에 올라타 집으로 향했습니다.

저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계속해서 사부님의 정법을 도우며 중생을 구하고 있습니다.

 

원문발표: 2023년 12월 2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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