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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처할만한 공이 어디 있는가?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공을 자처하는 마음은 거의 사(私)에서 기원한다. 사의 주도 하에 자신이 바친 대가가 자신이 원하는 인간세상의 보답을 받지 못하면 불공평하다고 여겨 원한을 품거나 질투한다. 사실 이 세상에 온 모든 사람은 다 자신만의 사명과 책임이 있는 것으로, 사명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인연을 맺고 원한을 풀며 자신의 업을 갚고, 자신을 깨끗이 씻고 수행한다.

도덕성이 상대적으로 꽤 높았던 고대에는 사람들이 자신의 본분을 지키며 운명을 믿고 인연에 순응했다. 남자는 밖에서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했고, 여자는 안에서 남편을 내조하고 자녀를 가르쳤다. 각자 본분을 지켰으며 가정이 비교적 안정적이고 화목했다. 하지만 현대 사회는 강상[綱常, 삼강(三綱)과 오상(五常)을 아울러 이르는 말. 곧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과 예법이 어지럽혀졌고, 운명을 불신해 인연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사람마다 이기적이어서 타인에게서 얻으려고만 하지 감사할 줄 모르며 만족하지 못하면 원망한다. 진심으로 타인에게 베풀려 하지 않고 베풀더라도 목적을 갖고 있다. 이 역시 최근 각종 사회문제가 두드러지는 원인이다.

‘상선약수, 수이만물이부쟁(上善若水, 水利萬物而不爭)’이라 했다. 아주 높은 선(善)은 물과 같은데, 물은 선하여 만물을 이롭게 하지만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뜻이다. 신우주의 생명은 무사(無私)하고 타인을 이롭게 하며, 진선인(真·善·忍)에 동화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본래 모습인데, 무슨 자처할 공이 있겠는가?

사부님께서는 대궁(大穹)을 위험에서 구하시면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감내하셨다. 우리는 사부님께 감사드리고 겸허한 마음을 품어야만 자신을 잘 수련하고 사은(師恩)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동서고금의 지사인인(志士仁人)은 자신들에게 혜택을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이 없음에도 타인과 국가를 위해 인간세상의 대의(大義)와 책임을 감당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은 평생 기구한 일을 겪었지만 자신의 사명과 책임을 실천했다. 몽골 민담에서 하이리부(海力布)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돌로 변했다. 정법시기 대법제자로서 우리가 구우주에서 탈태해 나올 수 있을지, 완전히 이타적인 생명이 될 수 있을지는 정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한다.

층차의 한계가 있으니 맞지 않는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 여러분께서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 하는 데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22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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