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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지고 잘난 체하면 스스로 망치기 쉽다

글/ 중국 대법제자

[명혜망] 수련 과정에서 어떤 마음은 비교적 분별하기 쉽고 간단히 제거할 수 있지만, 어떤 마음은 아주 깊숙이 완강하게 숨어있다.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마음에 대한 내 인식은 길고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지금은 비교적 명확해졌다. 사부님의 최근 두 편 신경문을 통해 이 마음에 대해 더욱 깊이 인식하게 됐다. 다음은 개인적인 체험과 심각한 교훈인데 수련생들이 참고하고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1. 쓰라린 개인적 교훈

나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고 칭찬 속에 자라서 나도 모르게 ‘남보다 낫다고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마음을 길렀고, 많은 일에서 하나를 알면 열을 알게 되어 자신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만약 대법을 수련하지 않아 여러 법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여러 인연을 알지 못했다면,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나는 틀림없이 인생길에서 기구한 길을 걸으며, 평생 한을 품었을 것이다.

나는 1999년 이후에야 법을 얻었는데, 자비로운 사부님께서 나를 대법의 문에 들어서게 해주셨다.

수련 후 나는 내가 이렇게 무지하고,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천박해 보인다는 것을 깨닫고서 놀랐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리를 나는 들은 적이 없었고, 대법은 내 인생의 모든 곤혹스러웠던 문제를 해답해주었다.

사부님께서 단번에 나를 이끌어 주셔서 내가 많은 것을 알도록 해주셨다. 하지만 나는 대법의 광대무변함에 감탄하기보다 오히려 자만심을 키워 스스로 과대평가하는 마음을 강화했다. 겸손을 닦지 못해 일에 부딪히면 자신을 살피지 않았고, 안으로 찾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수련 초기에 연달아 두 번을 곤두박질쳤다.

처음 사고가 났을 때, 당시 나는 수련의 엄숙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수련이 매우 고달프다고 느꼈으며, 속인의 생활에 미련을 뒀다. 사고 나기 전에 사부님의 일깨움이 뚜렷했다. 어느 날 아침 출근할 때, 사무실 건​물 입구 측면에 유리가 깨져 큰 구멍이 나서 주위에 가드레일이 설치돼있는 것을 발견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큰 구멍이구나. 누가 이처럼 큰 누락이 있을까?’ 자신을 찾아보지 않고 오히려 이렇게 큰 사무청사에 수련자는 틀림없이 나뿐만이 아닐 텐데, ‘아마도 다른 사람에게 일깨움을 주셨을 거야’라고 여기며 지나쳐 버렸는데 일에 부딪혀 안으로 찾지 않는 교훈은 심각하고 참혹했다.

두 번째 곤두박질친 원인은 겉으로는 진상을 알리다가 함정에 빠져 좋은 직장을 잃었기 때문이지만, 심층적인 원인은 여전히 오만과 관련이 있었다.

대법을 얻은 초기에 나는 굶주린 듯이 법공부를 했고 발전이 매우 빠르다고 느꼈으며, 매번 법공부를 할 때마다 법리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오만함 때문에 나는 이 우주대법이 얼마나 큰지 전혀 인식하지 못했다. 시간이 흐른 뒤 ‘전법륜(轉法輪)’을 한 번 볼 때마다 ‘​이렇게 많은 법리를 봤는데, 다음번 볼 때도 새로운 법리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이것이 얼마나 시건방지고 또 불경스러운지를 그 당시에는 깨닫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그때 나는 오만한 마음에 사로잡혀 내가 얼마나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깨닫지 못했다.

자아에 집착하고, 박해와 관건적 시련 앞에서 사람 생각이 너무 강해 대법의 위력을 완전히 굳게 믿을 수 없었고, 자아를 내려놓고 자신을 완전히 사부님께 맡길 수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할 수 있었다면 직장은 지켜낼 수 있었을 것이다.

2. 오만함은 제고와 사람을 구하는 것을 방해한다

최근 몇 년 동안 많은 마음이 제거되지 않고, 많은 방면에서 발전이 더딘 것도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오만함과 관련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예를 들어 질투심을 말하면, 개인적으로 주로 두 가지 표현이 있다.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점을 보지 못하는 것이고(달리 표현하면, 남의 재앙을 보고 고소하게 생각함), 다른 하나는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이다. 나도 줄곧 이 마음을 제거하고 있었는데 어쩐지 깨끗하게 제거되지 않은 것 같았다. 수련생의 문장에서 그에게 좋은 일이 있다고 하면 가끔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글쓴이의 묘사를 보면 그가 이렇게 수련 성취되었는데 어찌 이런 좋은 일이 있겠는가?’ 늘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데 습관적인 사고 방식인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질투는 오만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오만함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보다 잘 수련하지 못했다고 느끼며, 정작 자신은 없는데 상대방이 어떻게 좋은 것을 가지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오만하기 때문에 지혜가 매우 제한되어, 다른 사람의 복덕이 전생에 쌓은 복덕에서 온 것임을 볼 수 없다. 자신을 중시하기 때문에, 똑같이 박해받으면서도 자신에게 닥친 난관이 다른 사람보다 크다고 생각하고 마음이 흔들리지만, 자신의 업력이 크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또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오만과 교만으로 중생의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항상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그들의 표면적인 모습에만 신경을 쓰고 업신여기며, 연민과 자비심이 생기지 않아서 의도적이든 의도적이지 않든 항상 마음속에 업을 짓는다. 중생은 모두 구원을 얻기 위해 가장 더러운 삼계로 내려와서 모진 풍상과 고통을 겪는데 나는 단지 그들보다 운이 좋아 일찍 법을 얻고 진상을 알았을 뿐, 다른 사람을 무시할 자격이 없다.

또 한 예를 들면, 자신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구했는지 계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하늘의 공(功)을 탐내는 발상도 오만방자한 표현이다. 사람을 구하는 것은 이다지도 큰일인데 보잘것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인가? 그것은 사부님께서 모든 것을 다 잘 배치하신 후 중생을 내 앞에 보내 이 입만 놀리게 하셨을 뿐이다. 그것은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 대법의 무한한 위덕의 체현이며, 실질적인 일은 모두 사부님께서 하신 것이고, 제자가 진상을 알리는 지혜와 능력조차도 모두 사부님께서 하사하신 것이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보호가 없다면 제 목숨조차 지킬 수 없었을 텐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한다고 말할 수 있는가? 진상을 알릴 수 있는 모든 기연은 그 과정에서 만나는 여러 가지 모순과 마련(魔煉, 마난 중의 수련)을 포함하여 사부님의 질서 정​연한 안배 속에 있으며, 우리에게 제공되는 수련 기회이므로 하늘의 공에 욕심을 내지 말고 더없이 소중히 여기고 감사해야 한다.

건방지고 잘난 체하는 이 마음은 여러 방면에 반영될 것이므로, 여기서는 자세히 말하지 않겠다.

3. 역사상의 교훈 참조

2018년 명혜망 기사, ‘당나라 두 공신 이야기에서의 시사’를 얼마 전에 다시 살펴본 적 있다. 이정(李靖)과 후군집(侯君集)은 모두 능연각(凌煙閣) 24명 공신의 이름에 올랐다. 이정은 당나라의 장군으로 평생 공방 전투에서 패한 적이 없는 불패의 명장이다. 예로부터 보기 드문 공적과 덕망을 쌓았고, 언변이 뛰어났으며, 시작과 끝을 잘 맺는 인물이었다. 그는 당 태종을 대할 때 비할 데 없이 겸손하게 “신은 과거에 천자의 위력을 빌어 약간의 공헌을 했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반면 참조 인물, 후군집은 공을 믿고 자만하며, 권력과 재물에 연연하고, 태종의 거듭되는 관용에도 불구하고 성은을 저버린 채 반란을 도모했지만, 결국 실패하여 처형당하는 비운을 맡아 사람들을 탄식하게 했다. 역사를 거울삼아 대법제자는 어떠한 성취 앞에서도 겸손하고 공손해야 하며, 항상 창세주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우러러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 예를 들면 자만, 시건방, 교만, 자기도취, 자화자찬, 늘 자신이 옳고, 지적받기 싫어하는 등등의 많은 마음이 일단 발전하면 매우 무서운 결과를 가져온다고 나는 이해한다. 만약 수련인이 강대한 주의식으로 이런 마음을 배척하고 제거하지 못하면 모순에 부딪혀 늘 밖으로 질책하고 불평하다가 결국 다 마로 변하게 되며 수련인 자신을 망치게 되므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실 사부님께서도 이미 전통문화에 자리 잡고 계신다. 주역 64괘 중 ‘겸’ 괘만 육효가 모두 길하다. 늘 겸손한 마음을 가진 수련인은 자신의 문제를 더욱 쉽게 볼 수 있고, 제 때에 바로잡아 심성을 높일 수 있으며, 수련의 길도 더욱 거침없고 온건하게 걸을 수 있다.

이상은 개인적인 체득이므로 부당한 점은 수련생 여러분이 자비롭게 바로잡아주시길 바란다.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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