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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깨어나라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사람 마음으로 문제를 본다는 것은 법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을 존중하지 않고 아끼지 않는 것이며, 특히 대법과 사부님을 존중하지 않고 심지어 모욕하는 것이다. 이는 작은 일이 아니므로 장기간 이런 상태에 있으면 큰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다른 공간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시시각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당신이 대법제자의 자격이 있는지 보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신 법을 받아들이고 실천하는지 본다. 이런 사실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이에 대해 중시했는가? 잘못한 결과를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최후 결산 때 우리는 사심과 자아에 대한 집착이 명예와 이익을 더 많이 얻게 한 것이 아님을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은 사실 진정한 자신에 대한 배신이고, 당신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중생에 대한 배신이며, 사부님의 은혜를 당연시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1999년 이후 대법제자 환경에 들어온 사람은 일단 말하지 않겠다. 1999년 전에 대법제자 환경으로 들어왔지만 지금도 입만 열면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일을 잘 못했다”, “나는 이런 걸 먹으면 배탈 난다”, “나는 허리와 다리를 다친 적이 있다”, “나는 어려서부터 말을 안 들어서 부모님도 속수무책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이러이러한 속인 생활을 동경했다.” 이렇게 말하며 자신의 속인스러운 행위를 변호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데, 이는 이 문제에서 자신을 수련인으로 보지 않은 것이다. 이들은 사람의 정에 집착하고 개인의 득실을 따지며 질투심, 쟁투심, 명예욕, 금전욕, 불평불만, 밖에서 추구하고 밖으로 미는 등 많은 집착을 내려놓지 못하고 그것들을 자신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당신은 어느 해부터 수련했는가? 사부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셨는가? 당신은 왜 사부님의 법으로 자신을 대조하고 요구하지 않는가?

또 아직도 적지 않은 사람들은 입만 열면 속인 동료, 동창이나 가족이 어떻게 말했고, 속인 이론은 어떠어떠하다고 한다. 속인이 말한 것이 법인가? 예를 들어 거짓말에 대해 말해보자. 현대인은 거짓말을 ‘인격이 성숙된’ 표현이며, 사회 생활에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특히 중국인들은 거짓말을 생존의 필수 기능이라고 공공연히 주장한다. 그래서인지 중국 수련생들은 자녀의 페이톈(飛天)학교 지원서를 제출할 때도 100% 진실하게 쓰는 경우가 매우 드물다. 하지만 ‘전법륜’에서는 자녀를 교육할 때 이익만 좇지 말며 나쁜 것을 따라 하지 말도록 가르치라고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것을 표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속인의 표준으로 보면 1999년 이후 공산당의 부패치국 방침에 통제된 중국인들은 너무나 ‘성숙’하고 너무나 ‘똑똑’하다.(사실은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그러면 당신은 그들 중 한 명이 되려 하는가? 아니면 법에 용해된 대법제자 중 한 명이 되려 하는가?

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고, 다른 사람에게서 아무리 많은 것을 받아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되며, 다른 사람이 자신을 도와줘도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여기에는 사부님께서 그를 지옥에서 건져주시고, 소업(消業)해주시고, 복잡하게 얽힌 업력 관계를 처리해주시고, 시시각각 보호해주시고, 심성이 제고된 후 층차를 높여주시는 것을 당연시하는 것이 포함된다. 그러면서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면 속인 중에 가서 추구하고 밖을 보며 원망하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장기간 버리지 못한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이 물질로 쌓이면서 초래된 것으로, 대법제자의 진념에서 온 것이 아니다.

매일 사람의 생각이 생활을 주도하고 밖에서 추구하고 밖으로 원망하면 그것은 사람의 상태다. 진정한 자신이 백기 투항하고 자신을 포기해 사람으로 전락한 것이다. 최후 정법시기에 사람으로 전락한다면 어찌 중생을 구하는 서약을 실천할 수 있겠는가?

매일 사람과 일을 대할 때 첫 번째 일념이 사람 생각, 사람 마음, 사람의 정인지 아니면 법의 요구인지? 안으로 찾는지, 아니면 밖으로 보는지? 이에 따라 ‘사람’과 ‘수련인’을 구별할 수 있다. 물론 수련 중의 사람은 완벽하게 잘할 수는 없다. 그렇지 않으면 수련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잘하지 못했을 때 그것을 의식할 수 있고, 빨리 사람의 생각을 내려놓고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어야만 수련인이고 제자들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시는 사부님께 죄송하지 않게 된다.

그렇다면 후천적 관념에 물든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어떻게 식별하고 없앨 수 있는가? 진념은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해야 나타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진념이 자신을 주도하게 할 수 있는가? 이는 우리 수련인들이 시시각각 고민해야 할 과제다.

어떤 사람은 대법을 접촉한 지 오래됐는데, 수련 햇수만 보고 자신을 고참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든 어떤 일이든 거침없이 말하면서 마치 모르는 것이 없다는 듯이 행동한다. 이들은 한담하기 시작하면 피곤한 줄 모르고 속인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어떤 사람은 대법 일을 언급하면 즉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부터 생각하며 공공연히 흥정하고 사람 마음과 사람의 정에서 개인의 득실을 가늠한다. 또한 갈등이 생기면 주변 수련생과 수련하는 가족을 돕는다면서 속인 중으로 끌어간다. 이런 수련생들은 갈등을 보고 무엇을 찾았는가? 수련했는가?

과거의 서당 학생들은 스승을 존중하고 도를 중시하며 도덕성과 학식을 겸비한 인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지금의 학생들은 학교에 학비를 내면 학교와 선생님이 자신을 졸업시켜 줘야 하고 졸업장을 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는 이미 썩을 대로 썩어 한계를 넘어섰다. 그런 것을 표준으로 삼는다면 우리가 법에 있을 수 있겠는가? 되돌아갈 수 있겠는가? 사부님께서 우리를 천국의 집으로 보내주시겠는가? 우리가 무엇을 얼마나 하고 후천적인 오염을 얼마나 씻어버려야 사부님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우주의 그 위치에 갈 수 있겠는가? 이는 진심으로 수련해 돌아가려는 사람이라면 사람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이성적으로 대해야 할 문제다.

말을 강하게 한 것은 그만큼 일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도 ‘좋은 약은 입에 쓰고, 충언은 귀에 거슬리는 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현대인은 연줄을 중시한다. 동양에서 과거에는 먼 곳에 계시는 부처님의 한두 마디 설법을 들으러 가기 위해 인피(人皮)가 벗겨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른 사람이 있었고, 서양에도 하나님을 따르게 하려고 자신의 인피를 벗기게 한 성도가 있었다. 지금 우리는 너무나 쉽게 법을 얻었다. 사부님께서 온갖 방법으로 우리를 찾아내시고, 우리가 생생세세 빚은 죄업을 감당하시고, 대법으로 우리를 깨끗이 씻어주시고, 우리의 제고를 도와주셨는데 우리는 오히려 소중히 여기지 못한다. 이는 큰 응보를 초래하게 될지 모르는데,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것인가? 진정한 수련자라면 빨리 깨어나야 한다. 법 바깥에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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