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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으로 문제를 가늠하는 것은 함정

글/ 해외 대법제자

[명혜망] 최근 한 유럽 수련생이 중국에 다녀왔다는 말을 들었다. 그녀가 중국에 갔을 때 현지 공안이 그녀를 불러 이른바 ‘지식이 있고’, ‘내막을 아는’ 위차오(虞超)의 동영상을 보여줬다고 한다. 개별적인 해외 노수련생들도 중공(중국공산당) 스파이가 추천한 위차오에게 집착했다. 소수 사람은 평소 명혜망을 보지 않았는데 명혜편집부 통고가 발표된 후 오히려 그의 영상에 호기심과 관심을 가졌다. 이 때문에 그는 더욱 철저하게 떨어지게 됐다.

수련의 각도에서 보면 이 이야기에 나타난 문제는 모두 기본적인 문제여서 쉽게 판단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사자들은 법의 요구에 따라 하지 않고, 사부님께서 신경문 ‘험악(險惡)을 멀리하라’에서 지적하신 것처럼 “사람 마음·사람 생각·사람의 정으로 문제를 가늠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귀국하는 문제에 관해

우선, 왜 중국에 가는가? 1999년 박해가 발생한 후 사부님께서는 해외 수련생들에게 중국에 가서는 안 된다고 특별히 말씀하셨다. 그러나 늘 여러 가지 사람의 정과 사람 마음 때문에 “중국에 가야 할 이유가 있다”, “중국에 갔다 와도 아무 문제 없었다”라고 강조하거나 “컴퓨터나 휴대폰을 안전하게 세팅했다”며 중국에 가는 해외 수련생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유독 자신의 마음이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보지 못한다. 그들은 사부님의 설법 앞에서 왜 항상 자신은 예외라고 생각하는가? 이 우주에서 누가 법의 바깥에 있는가? 아무도 없다. 솔직히 말해서 1999년 이후 허락 없이 귀국한 수련생들은 모두 사람 마음과 사람의 정으로 수련을 대한 것으로, ‘대법 일’을 했든 안 했든, 얼마나 했든 모두 사람 마음과 사람의 정으로 귀국 문제를 가늠하고 결론을 내린 것이다.

다음으로, 이른바 귀국해도 문제없다는 주장에 대해 말해 보자면, 귀국 전과 후 그의 마음에 정말 문제가 없었는가? 아니면 더욱 사람 속에 있게 됐는가?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법으로 가늠했는가, 아니면 사람의 정으로 가늠했는가?

마지막으로, 중공 스파이들이 당신의 행적을 손금 보듯 잘 알고 있는데, 평소 중국 내 사람들과의 이런저런 관계를 내려놓지 못해 스파이들에게 많은 정보를 제공한 탓이 아닌가?​

둘째, 스파이에게 시장을 주는 것에 관해

우선, 진정으로 수련하는 대법제자와 내막을 아는 사람들은 위차오가 영상에서 자랑을 늘어놓은 우정과 이른바 영웅 스토리를 들으면 모두 웃고 넘어간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일부 사람들은 늘 이런 자화자찬에 시장을 주고 있다. 어떤 사람들인가? 사람의 정이 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자아에 집착하며, 법을 이론으로 삼아 다른 사람을 가늠하면서 자신은 대조해 보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사람의 이치를 말하지만 대법제자는 수련의 이치를 말하며, 심성 수련과 사람을 구하는 기점에서 문제를 생각하므로 ‘사람’과 대법 수련자는 당연히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 ‘사람은 끼리끼리 모이는 법이다.’ 스파이들이 이용하고 장난칠 수 있는 부분은 바로 ‘사람’의 집착과 약점이다.

다음으로, 위차오와 쩡(曾)모 등은 대법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 그에 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을 잘못된 길로 이끌어 피해를 줬는가? 이런 빚을 어떻게 계산할지는 신께서 결정하는 것이지 사람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수련생은 감옥에서 너무나 두려워 사악에 적극 협력하고 비위를 맞추면서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지식수준이 낮은 수련생들을 ‘전향(수련 포기)’시키고 대법을 비방하게 하는 등 행위를 했는데, 그런 업력이 얼마나 큰지 사람이 상상할 수 있는가? 엄정성명을 써서 한바탕 변명하면 없었던 일이 될 것이라고 당연하게 생각해선 안 된다. 그가 이른바 ‘지식이 있다’고 하는데, 명문대를 다녔으니 문맹보다는 지식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를 이용해 다른 사람을 ‘전향’시킨다면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이는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명문대를 다니지 않아도 판단할 수 있는 문제로, 지식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라 도덕성과 인간 됨됨이의 문제다.

“새롭게 수련하라”, “배로 만회하라”라는 사부님의 두 마디 말씀은 사부님께서 우리를 위해 감당하시고 우리에게 자비를 베풀며 전무후무한 관용으로 우리를 아껴주고 계심을 보여줬다. 하지만 우리는 이 말씀의 무게를 정말로 알고 있는가? 법을 얻고 지금까지 사부님께서 이끌어주신 수련생들도 매일 한 걸음 한 걸음 어렵게 걸어가고 있는데, 자신에게 거대한 관을 조성한 사람들은 자신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어떤 위험에 직면해 있는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이들 주변 사람도 마찬가지다.

표면상 뜻으로 봤을 때 “새롭게 수련한다”라고 하면 신수련생이 된다는 것이다. 사부님께서도 설법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기억하는가? 왜 어떤 사람은 원칙적인 문제에서 자화자찬하는 사람들의 말은 잘 기억하면서 사부님의 설법은 잊어버리는가? “배로 만회한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박해가 시작된 후 박해를 폭로하고 진상을 알린 매 한 가지 일은 모두 수많은 대법제자가 함께 완성한 것이지, 어느 한 ‘영웅’이 해낸 것이 아니다. 얼마나 많은 수련생이 심혈을 기울이고 심지어 생명의 대가를 치렀는데 한 사람이 감히 공적을 훔치려 하는가? 너무 추하고 염치없지 않은가? 한두 가지 좋은 일을 했다고 해도 평생 우려먹을 수 있는가? 좋은 일에 좀 참여했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당신에게 빚을 진 것이고, 자신을 제도하는 사부님을 공개적으로 비방하고 맞서도 된다는 말인가? 이런 사람은 품행이 어떤지 한눈에 알 수 있는데, 스파이에게 이끌린 사람들은 왜 보아내지 못하는가? 이들은 본인도 사부님의 자비를 장난으로 여기고 자신의 문제를 고치려 하지 않으며, 갈등 속에서 자신을 수련자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사람 마음과 사람 생각, 사람의 정을 방임할 수밖에 없다.

그가 이른바 ‘내막을 안다’고 하는데 무슨 내막인가? 수련생들이 심성을 단련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어려움을 말하는가? 아니면 소업(消業) 과정의 고통을 말하는가? 또 아니면 정법 수련에서 말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과 관련된 일인가? 이런 것은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수련하지 않는 사람이 옆에서 왈가불가할 일이 아니며, 한 무리 스파이들과 함께 중국공산당을 도와 다른 사람들을 세뇌시켜 그들의 생명을 망치는 일을 하는 것은 더욱 아니다.

1999년 이전에 대법을 접한 수련생 중 많은 수련생은 왜 20여 년의 박해 기간을 거치면서 점점 속인처럼 되고 있는가? 이는 그들이 여전히 사람 마음, 사람 생각, 사람의 정으로 다른 사람과 일을 사고하고 판단하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이 되는 것에 익숙해지고 재미를 느껴 이 세상에 온 사명을 잊었다. 그들은 자신이 이곳을 지나가는 길손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인간 세상을 집으로 여기고 있다.

나는 수련 환경 중에 이성적이지 못하고, 사람의 정과 사람 생각을 기준으로 하는 기풍이 장기간 존재하고 있는 것을 늘 안타깝게 생각했다. 수련은 자신을 수련하는 것으로 남에게 강요할 수 없기에 평소에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몇 마디 했는데, 공감하더라도 그런 사람들에게 화낼 필요가 없고, 제멋대로 하면서 언변이 좋은 사람도 튀어나와 변명할 필요가 없다. 신경문이 발표됐으니 우리 모두 사부님과 대법을 소중히 여기고 법을 배우도록 하자. 더 이상 ‘당연히’, ‘마땅히’​, ‘밖에서 추구하려고’ 생각해선 안 된다. 자신의 수련을 위해, 자신이 책임진 중생을 위해 모두 내려놔야 한다.

이상 개인적인 생각을 수련생들과 교류하는 바이다.

 

원문발표: 2023년 9월 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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