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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구치소에서 정념과 선행으로 사람 마음과 환경을 바꾸다

글/ 후난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자비롭고 위대한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1996년에 법을 얻은 대법제자입니다. 2017년, 현지 경찰은 어느 날 여러 장소에서 대법제자들을 납치했는데 저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그 후 저는 불법적으로 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남을 위한 기점에서 박해를 반대해 ‘특별안건’을 폐지시키다

가족들은 변호사를 선임해줬습니다. 변호사와의 만남에서 경찰이 개인 이익을 위해 납치된 모든 대법제자들을 하나의 안건으로 묶어 이른바 ‘특별안건’으로 모함하고 있음을 알게 됐습니다. 담당자는 저에게 최근 몇 년간 구금됐거나 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사람은 이번에 3년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다고 떠벌렸습니다. 앞서 이 지역 수련생 몇 명도 같은 사정으로 불법 징역 4년을 선고받았습니다.

구치소 안은 상당히 사악했습니다. 감옥 경찰은 대법제자를 핍박해 대법을 헐뜯게 하고 수련을 포기하게 하려고 죄수들을 이용했습니다. 죄수들에게 온갖 혜택과 감형까지 해주면서 그들을 이용해 대법제자를 고문으로 괴롭히며 대법을 모함하는 동영상을 보게 하고 수련 포기 각서를 쓰도록 강요했습니다.

사부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대법제자들 마난(魔難)을 겪지만 훼멸되는 것은 중생이라네”[1].

사악이 이런 박해 형식으로 중생을 망치고 있으니 저는 반드시 이번 박해를 막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단식으로 박해를 저지하며 또한 그들의 양심을 일깨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수련생이 예전에 단식했기에 오히려 박해가 가중됐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사부가 있고 법이 있는 한 무엇이 두려운가?”[2]라고 말씀하신 사부님 법이 머리에 떠오르자 바로 정념이 나왔습니다.

다음 날 아침 식사부터 저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경찰이 왜 안 먹느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사건처리 부서에서 저를 이곳으로 납치한 후 밖에서 소문을 퍼뜨려 저와 다른 대법제자들을 소위 ‘특별안건’으로 날조했는데 몇몇 대법제자를 저는 본 적도 없어요.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남도 해치고 자신도 해치며 심지어 그들 가족까지 연루될 수 있어요.” 그녀는 받아들이지 못해 말했습니다. “안 먹겠다고? 이곳 많은 사람은 당신을 먹일 방법이 있어. 하지만 매우 고통스러울 거야.” “악인을 도와 나쁜 일을 저지르지 않기를 바랍니다. 좋은 사람을 괴롭힌다면 당신에게도 좋을 것이 없어요.” 그녀는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다시 한번 말했더니 그녀는 일이 있다며 가버렸습니다.

이후 그녀는 출근할 때마다 어디 아프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단식하는 상황과 원인을 사건처리 부서에 보고하고 나머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단식 3일째, 경찰은 의무실에 가서 진찰을 받으라며 불편한 점은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의무실에 들어서자 사람들이 가득했습니다. 경찰이 저에게 구치소 정치위원, 소장, 경찰, 의사 등 10여 명을 일일이 소개해줬습니다. 검사하러 왔다고 하지만 그들의 목적은 정맥 주사를 놓으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저를 침대에 고정시키고 이렇게 추운 날(당시 설날이 가까웠음)에 밥을 먹지 않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며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이 책임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몇 사람이 제 손을 잡고 주사를 놓으려 했습니다. 제가 내용물이 뭐냐고 묻자 포도당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주사를 거부했고 필사적으로 몇 차례 벗어나자 그들도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남은 포도당을 마시라고 했고 제가 안 먹겠다고 하자 우유를 마시라고 했습니다. 며칠간 물을 마시지 않아 입술이 말랐기에 저는 우유로 입을 헹구고 입술을 적시고는 뱉어버렸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들에게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사부님의 보호가 있어 별일 없다는 진상을 알렸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분명히 아시나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정위(정치위원)는 말했습니다. “이 공을 연마하면 병에 걸려도 약을 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연마하면 병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믿을 수 없어요.” 저는 그들에게 말했습니다. “대법 사부님에 대한 당신의 이해는 장쩌민 집단의 거짓말과 속임수로서 그것은 100% 거짓입니다. 가장 발언권 있는 대법제자가 알려준 것만이 사실입니다. 모든 대법서적은 모두 우리 사부님께서 쓰신 것입니다. 대법제자의 수련을 지도하는 주요 저서 ‘전법륜’에서 “真(쩐)ㆍ善(싼)ㆍ忍(런)은 좋고 나쁜 사람을 가늠하는 유일한 표준이다”[3]라고 명시하셨습니다. 수련하는 사람은 이 표준에 따라 사람이 되고 일을 행해야만 병이 낫고 공이 자랍니다.”

“책에서는 또 ‘德(더)를 중히 여기지 않으면 병도 나을 수 없으며’[3]라고 명시하셨습니다. 저는 원래 저혈압, 혈소판 감소 자반병, 심한 빈혈, 편두통, 구강 궤양, 관절염 등을 앓았고 약을 먹고 주사를 많이 맞으며 각종 기공도 연마했지만 도움은커녕 더 심해졌습니다. 파룬궁을 수련한 후 덕과 업력, 업력과 질병의 관계를 알게 됐고, 진선인 기준에 따라 좋은 사람이 되기 시작했어요. 명예와 이익을 담담히 보고, 무슨 일이든 남을 위해 생각하고, 갈등 앞에서 자신을 찾았는데 이 병들은 아주 빠르게 하나하나 치료하지 않고 치유됐어요.”

현장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반신반의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에게 진상을 더 많이 알리기 위해 앞으로 저는 정위, 소장, 경찰, 대대장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단식 8일째, 사건을 처리하는 국보(국내안정보위국) 대장이 와서 ‘특별안건’이 철회됐으니 그만 단식하고 밥을 먹으라고 했습니다. 경찰은 제게 곧 설이 다가오는데 계속 단식하면 집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단식의 목적은 이 특별안건을 해체하고 가능한 한 빨리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저에게 아직 미흡한 부분이 있기에 이 최종적인 효과에 달성하지 못했지만 특별안건 해체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음식을 먹기로 했습니다.

이 며칠간 제가 먹지 마시지도 않고 나타낸 기적을 모든 감방 사람이 직접 보았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 추운 곳에서 다른 사람들은 밥을 먹어도 추워서 힘들었지만, 저는 지난 8일간 단식단수를 하고도 추워하지 않았고 살만 좀 빠졌을 뿐 기력도 좋았습니다. 그동안 이불과 솜옷은 제가 직접 빨았습니다. 여러 명이 빨아주려 했으나 저는 사양했습니다. 감방에 있던 19살 소녀가 말했습니다. “아주머니, 며칠간 안 드시고 이렇게 기운차게 이불을 빠시다니 파룬궁은 정말 신기해요. 우리 할머니는 하루도 밥을 안 드시면 안 돼요.”

감방 사람들이 제가 밥을 먹기로 한 것을 알고 즉시 각자 맛있는 음식을 꺼내 저보고 먹으라고 했지만 모두 사양했습니다. 일부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걸 아까워했지만 이번에는 저에게 주었습니다.

제가 음식을 먹겠다고 하자 경찰이 뭘 먹겠냐고 물었습니다. 죽을 조금 먹겠다고 했더니 없다고 했습니다. 경찰은 그럼 영양 국수는 어떻냐고 물었습니다. 감방에서 국수는 맛있는 음식이라 저는 좋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그들은 연속 다섯 끼를 국수로 만들어줬는데 저는 먼저 네 끼를 모두 감방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남은 국물만 조금 먹었습니다.

“그녀 말을 듣고 보니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

어느 날 감옥 경찰에게 정위를 만나고 싶다고 했더니 바로 사무실에서 만나게 배치해줬습니다. 정위는 예의를 갖췄고 제게 자리에 앉으라며 물을 따라줬습니다. 그는 네 가지 문제를 제기했는데 저는 세 가지 반을 맞게 답했습니다. 그가 계속 말하자 저는 속으로 사부님께 도움을 청했습니다. ‘제가 온 것은 그의 말을 들으려 온 것이 아니라 그를 구하러 온 것입니다. 주인공인 제 말을 듣게 해야 해야 합니다. 반드시 그가 진상을 분명히 알도록 할 것입니다.’

저는 “미안하지만 저는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이런 것들은 사흘 밤낮 말해도 끝이 없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그럼 당신 말을 들어봅시다”라고 말을 돌렸습니다. 저는 그에게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이 자녀와 손자, 며느리에게 가져다준 아름다움과 건강에 나타난 기적을 들려줬습니다. “대법제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며 이런 일은 제가 직접 경험하고 본 것들입니다.” 그리고 말하는 내내 정념을 발했는데 그는 매우 진지하게 듣고 있었고 이렇게 한 시간 정도 이야기했습니다. 나중에 정위는 제 아들과 변호사를 만나고 싶다며 집에 돌아가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오겠다고 했습니다.

대화가 끝날 무렵 그는 경찰을 불러 “그녀 말을 듣고 보니 파룬궁은 정말 대단해”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 자신을 만나고 싶으면 경찰에게 말하면 되고 몸조심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고맙다고 인사했습니다.

이번 대화로 대법과 대법제자에 대한 정위의 인식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나중에 제가 억울한 징역형을 당한 후 그는 감옥에 검사하러 오면 항상 와서 괜찮은지 물어보곤 했습니다. 한번은 또 자신이 권한이 있으면 저를 집에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진상을 분명히 알게 된 그는 선의로 대법제자를 대하며 자신의 생명을 위해 밝은 미래를 택했습니다.

진상을 즐겨 듣던 여성이 복을 받다

어느 날 한 여성이 휴대폰 사기로 수감됐습니다. 감방에는 새로 들어온 사람은 모두 화장실 청소를 해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습니다. 오후에 그녀가 화장실을 청소할 때 끊임없이 기침했는데 큰 징을 치듯 온 감방이 진동했습니다. 청소를 마친 후 그녀에게 진찰을 받은 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먹는 약이 여기에 없어서 집에서 1천 위안 이상 어치의 약을 보내왔다고 했습니다. 그녀의 기침은 기관지 천식이었습니다.

그녀에게 진상을 알렸더니 열심히 들으면서 이따금 질문했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남에게 양보하고 너그럽게 대하는 사람 됨됨이를 가르치셨다고 했습니다. 대법 진상을 깨달은 후 그녀에게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를 해주고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는 9자진언(九字真言)을 진심으로 염하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녀는 잘 받아들였고 다음 날 청소할 때는 좀 조용해졌습니다. 며칠간 계속된 이른바 ‘학습 시간’에는 원래 자리가 정해져 있는데 그녀는 자리를 바꿔 제 곁에 앉았습니다. 며칠 후 잠자리를 조정할 때도 마침 제 곁으로 옮기게 돼 그녀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그 후로 그녀는 잠꼬대나 배도 자주 아팠던 증상들이 사라졌습니다. 그녀는 저와 함께 있으면 편안하다며 돌아가서도 파룬궁을 배우겠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바꾸자 마약 중독녀도 변하다

2019년 어느 날, 감방에서 자리 조절을 할 때 저를 마약 중독녀와 한 침대(둘이 한 이불을 씀)에 배치했습니다. 이 여자는 키가 크고 혈관 교체 시술을 받았는데 동작이 원활하지 않았습니다. 평소 대화에서 그녀는 사람들에게 재주가 많고 식견이 넓다는 느낌을 줬습니다. 그녀는 대법 진상에 대해 시큰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반감을 느꼈습니다.

그날 자리를 옮겼을 때 두 사람이 제게 말했습니다. “그녀와 한 침대를 쓰지 마세요. 그녀는 덩치가 커서 차지하는 면적이 큰 데다가 사귀기도 어려워요. 우리 쪽으로 오세요. 우리 셋이 같이 자면 좋을 것 같아요.” “먼저 함께 지내볼게요. 키가 크면 제가 많이 양보하면 돼요.” 그런데 정말 그녀 둘의 말이 맞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 제가 동공을 연마하고 가부좌하고 법을 외우고 있을 때 그녀는 욕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외우면 대단한 거야? 잠을 자도 대단한 줄 아네?” 또 제게 ‘감방장’, ‘악질 죄수’라고 험하게 욕했습니다. 그래서 선의로 설명했는데 듣지 않어서 저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마음이 울렁거렸습니다. ‘자는 게 뭐가 잘못이지? 당신 같은 덩치에 둘이 이불을 하나 쓰면 나는 뭘 덮겠어? 나 말고 누가 당신이랑 같이 자려고 해? 이곳 감방장은 내가 아닌데 내가 왜 감방장이고 악질 죄수야?’ 생각하면 할수록 기분이 언짢았습니다. ‘여기에 1년 넘게 있으면서 내 사람 됨됨이를 다들 눈여겨보고 존중해줬는데 다들 보고 있는 데서 그렇게 심하게 욕하다니.’ 저는 체면이 좀 깎이는 것 같았습니다.

이때 안으로 찾는 법을 생각하자 즉시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다음 날 저녁 당직을 맡은 그녀가 작은 의자에 앉아 있었지만 몸은 벽에 기대어 있는 것이 매우 힘들어 보였습니다. 당시 한창 연공하던 저는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고 어디가 불편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녀가 불쌍히 여겨진 저는 비록 어제 그렇게 욕했지만 미워하지 않고 잘 대해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연공을 멈추고 즉시 그녀를 부축해 침대로 눕힌 후 대신해 당직을 마쳤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뒤, 전 감방 사람들은 파룬궁을 연마하는 사람은 정말 좋다며 만약 그녀들이라면 절대 그렇게 할 수 없을 거라고 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녀의 태도도 바뀌면서 저를 존중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진상을 알리면 기꺼이 받아들였고 공청단, 소선대 조직에서도 탈퇴했습니다.

두 차례 독감은 수련자와 무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연말과 연초에(구체적인 해는 기억나지 않음) 구치소에 독감이 두 차례 발생했습니다. 그때 감방에 사람이 많을 때는 20명 정도였는데 제가 가장 나이가 많았고 다른 사람은 20~50대 사이였습니다. 매일 24시간, 먹고 마시고 모두 한 방에 있었습니다.

두 차례 독감 기간 감방 안은 예방을 위해 온종일 쑥을 태웠습니다. 하지만 저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독감을 피할 수 없었고 또 어떤 사람은 재차 감염됐는데 저만 괜찮았습니다.

한번은 제 뒤에 앉은 사람이 “아주머니, 전염되지 않게 저리 가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괜찮아요, 저는 아무렇지도 않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파룬따파의 신기함과 비범함을 목격했고 몇몇은 집에 돌아가 파룬궁을 연마하겠다고 했습니다.

공정한 말을 한 고위관리 여동생이 복을 받다

감방 안의 한 사람은 오빠가 잡혀서 연루됐습니다. 그녀의 오빠는 고위관리였는데 뇌물수수 혐의였고 그녀는 뇌물공여 혐의를 받았는데 액수가 1천만 위안(약 18억 원)이 달했습니다. 가족들은 50만 위안을 들여 유명한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반년이 넘도록 변호사는 그녀를 만나지도 못했습니다.

제가 구치소에 수감됐을 때 그녀와 같은 감방이었습니다. 그녀는 여태껏 야간 당직을 선 적이 없는데 당직을 할 차례가 되면 돈을 내고 다른 사람이 대신하게 했습니다. 진상을 말하자 그녀는 무시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언행이 남다른 저를 보고 먼저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여러 차례 진상을 알리자 그녀는 탈당했고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성의껏 염했습니다.

신기하게도 이후에 변호사가 그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그녀에게 반년 전 사건처리 부서에서 면회를 막았고 변호사 비용 중 70%를 돌려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건이 매우 복잡하다며 가족이 또 다른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했습니다. 한번은 심문을 받고 감방에 돌아온 그녀는 변호사가 10년 이상 형을 선고될 거라고 했다며 울먹였습니다. 그녀 말에 따르면 수감 장소를 몇 번이나 옮겼고 사건처리 부서도 여러 번 옮겼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걱정하지 말라며 일을 도모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지만 성사시키는 것은 하늘에 달려 있다고 위로해 줬습니다. 그녀에게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성심성의껏 염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대법을 위해 바른말을 할 수 있다면 결과가 달라질 거라고 알려줬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안정됐습니다.

그녀가 대법 진상을 깊이 이해함에 따라 저에 대한 신뢰와 호의가 깊어졌습니다. 집에 돌아가면 파룬따파를 연마하겠다고 했습니다. 때론 제가 없을 때 진상을 모르는 사람이 대법을 나쁘다고 하거나 저에 대해 뭐라고 하면 그녀는 대법을 위해 공정하게 말하고 저를 대신해 해명했습니다. 그녀는 누군가가 저에 대해 뭐라고 하거나 대법에 관해 나쁘게 말하면 마치 자신을 나쁘다고 말하는 것처럼 느꼈습니다.

사건처리 부서에서 다시 심문하러 오자 그녀는 매우 긴장했습니다. 그녀는 저에게 당국에서 사람이 왔는데 이번에는 또 어떤 결과일지 모르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즉시 말했습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실 거예요.” 그녀가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저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저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생명은 모두 법을 위해 왔고 그녀는 여기에 와서 이미 대법 진상을 깨닫고 삼퇴도 했으며 법을 수호하기 시작했으니 복을 받을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녀는 감방에 돌려보내지도 않은 채 바로 석방됐습니다. 그녀는 떠난 지 10여 일 후, 구치소에 와서 저에게 감사의 표시로 영치금 500여 위안을 저축해줬습니다.

소장 “이 어르신은 신발을 신고 가부좌해도 됩니다”

구치소에 1년 넘게 있으면서 제 모든 행동은 같은 감방 사람들에게 인정받았습니다. 감방 사람들은 저를 따라 밥을 거의 버리지 않게 됐습니다. 저는 그들에게 대법 사부님께서 제자에게 행동으로 모범을 보여주신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그래서 저도 밥을 거의 버리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다 먹지 못한 밥을 대부분 화장실에 쏟아버렸지만 이후부터 가능한 한 밥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점차 구치소 경찰의 인정도 받았습니다. 2018년 섣달 어느 날, 날씨가 무척 추워서 감방 사람들은 줄지어 제자리 달리기를 했고 저는 침대 위에서 가부좌하고 ‘홍음’을 외우고 있었습니다. 감방을 검사할 때 소장은 곧장 제 앞으로 다가와 “이 어르신은 신발을 신고 가부좌해도 됩니다”라고 공손히 말했습니다. 여기서는 돈이 있고 권력 있는 사람이라도 경찰은 모두 이름을 부르지만, 권력도 없고 돈도 없는 저를 소장이 이렇게 공손히 대하는 것은 대법의 위덕입니다.

맺음말

저는 젊었을 때 머릿결이 좋지 않았는데 흰색 아니면 노란색이었고 모발은 건조해 갈라졌습니다. 1996년에 수련한 후, 새 머리카락으로 바뀐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병업 고비를 넘길 때였는데 처음에는 머리카락이 다 빠졌습니다. 저는 3개월 동안 밖에 나가지 않았고 마침 겨울이라 모자를 쓰고 가릴 수 있었습니다. 봄이 되자 새 머리카락이 자라기 시작했는데 새로 자라기 시작한 머리카락은 새까맣고 깔끔했습니다.

지난번 감옥에서 박해를 받은 후 집에 돌아가는 날 저는 다시 백발이 됐습니다. 저를 데리러 온 아들이 이 모습을 보고 엄마라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 후 저는 계속 염색을 했습니다. 2017년에 박해로 구치소에 간 후 머리카락의 흰색이 다시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감옥 경찰이 저를 데리고 이발하러 갔는데 머리를 보면서 “검게 변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거울이 없는 상황이라 그냥 칭찬하는 줄 알고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습니다. 집에 와서도 아들이 갑자기 머리가 검게 변했다며 사진을 찍어서 보여줬습니다. 그제야 정말 많은 머리카락이 검게 변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구치소 식사는 배불리 먹을 수 있을 뿐 영양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저는 약을 먹지 않고 주사를 맞은 적이 없어도 건강할 뿐만 아니라 백발에서 검은 머리로 변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요구하신 세 가지 일에 최선을 다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구치소에는 대법 책이 없었기에 기억한 만큼만 외웠고, 연공과 발정념을 하는 데는 영향 받지 않았으며 이곳에 온 인연이 닿은 사람에게 진상을 분명히 알렸습니다.

제가 구치소에서 만난 사람 중 90%가 모두 삼퇴했습니다. 구치소를 떠나기 전날 감방 사람들이 환송회를 열고 ‘파룬따파하오’ 노래를 가르쳐 달라고 했습니다. 수준의 한계로 인해 구치소에서 겪었던 다른 이야기들을 쓰지 못했습니다.

제자의 오늘이 있도록 보살펴주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글을 쓴 것은 파룬따파를 실증하기 위해서입니다. 사실 저는 아직 잘하지 못한 점도 많고 여러 가지 사람 마음도 있습니다. 앞으로 열심히 잘하면서 사부님의 자비로운 제도를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시사(詩詞): ‘홍음3-세세생생 금생을 위해’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시드니법회 설법’
[3]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6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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