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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법회] 시련 중에서 갈수록 정념이 확고해지자 중급법원이 기소 취소

글/ 중국 대법제자

[밍후이왕] 저는 1998년에 수련을 시작한 대법제자입니다. 당시 저는 30세도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아이를 낳고 나서 각종 질병이 도졌습니다. 심장박동이 고르지 않은 데다가 신경쇠약, 류머티즘, 저혈당 등 병을 앓고 있어 온종일 기력이 없었습니다. 늘 머리가 무겁고 허리와 등에 통증을 느꼈습니다. 3~4년간 약을 먹었으나 소용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병이 많아 평생 약을 달고 사셨습니다. 당시 시어머니와도 맞지 않았고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커졌습니다. 육체적인 병에 마음의 화까지 더해져 저는 삶에 자신감을 잃었습니다.

나중에 다른 사람의 소개로 파룬궁을 수련하기 시작했는데 한 달 만에 모든 병이 사라졌습니다. 어릴 적부터 앓던 인두염과 비염도 전부 좋아졌습니다. 저는 파룬궁이 수련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어릴 때 모호했던 것을 끝내 찾았습니다. 그리고 사람 사이의 인연 관계도 어찌 된 영문인지 알게 됐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는 수련을 중시하지 않았고 잠재의식에 인간 세상의 아름다운 삶을 아직 누리지 못했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했습니다. 2015년 장쩌민을 고소했다고 납치됐고 가택수색도 당했습니다. 일주일간 감금돼 있다가 감옥으로 가게 됐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저는 안으로 찾았습니다. 저에게 안일심, 명예심, 이익심, 쟁투심, 원망과 증오심, 질투심, 색욕심, 과시심, 뒤에서 남을 평가하는 마음과 조급함 등 집착이 있었습니다. 저는 속으로 기왕 이렇게 된 바에 어디에서 수련하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우며 사람들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발정념

저는 매일 발정념을 강화했습니다. 일하는 시간과 밥을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두 발정념을 했는데 하루에 20번 정도 했습니다. 정념이 강해질수록 정신이 더 또렷해졌습니다. 잘 때도 한 시간에 한 번씩 발정념 했는데 정각 5분 전이면 반드시 일어나 15분간 발정념을 하고 다시 잤습니다. 당직을 서는 2시간 내내 저는 발정념 했습니다.

저를 조사한 서류가 어디에 있으면 저는 그 부서를 향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서류가 파출소에 있으면 파출소를 향해 정념을 발했습니다. 천목으로 다른 공간에 있는 사악을 보면 큰 소철나무 같았습니다. 발정념을 며칠간 했을 때 그 큰 소철나무는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으나 저는 동요하지 않고 발정념을 계속했습니다.

저의 서류가 검찰원에 가 있으면 검찰원을 향해 발정념을 했습니다. 천목으로 보니 다른 공간에서는 5~6층 높이의 금속 설비가 있었는데 기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중심부에 금속 기둥이 하나 있었는데 그 설비의 주요한 기둥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설비는 구세력의 시스템 같았는데 아주 엄밀히 배열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에게는 사부님께서 주신 불법신통(佛法神通)이 있기에 그것을 승인하지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발정념을 강화함에 따라 제 공간장이 갈수록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매일 휴식 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하늘을 쳐다볼 때마다 하늘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법 암기

오전과 오후 감방에 있을 때는 법을 외웠는데 그때야 제가 외운 법이 너무 적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감방에서 파룬궁 수련생들은 서로 간격을 두고 있어야 했습니다. 저는 생각나는 만큼 법을 외웠는데 집에 있을 때 법공부를 많이 하지 않고 법을 외우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저는 저녁 시간에만 다른 수련생들과 함께 법을 배우고 외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사부님께서 A 수련생을 같은 방으로 배치해주셨습니다. 그 수련생은 많은 법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저는 매일 저녁 그 수련생에게서 법을 배우고 이튿날 낮에 다시 외웠습니다. 그 당시 힘들게 지냈으나 법에 용해돼 매일 보람찼습니다. 늘 한 줄기 뜨거운 기류가 전신을 관통하면서 에워쌌는데 따뜻하고 행복한 감이 들었습니다.

당시 사부님께서 오신 것을 몇 번이나 진실하게 느꼈습니다. 사부님께서 입구 쪽 베란다에 서 계시면 자비가저를 에워쌌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저도 모르게 입구 쪽을 바라보면서 격동된 마음을 금치 못했습니다. 사부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제자가 정진하지 못하고 착실히 수련하지 못해 사람 마음이 심해져 마굴(魔窟)에 빠졌지만, 사부님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고 이 못난 제자를 보호하고 도와주셨습니다.

사람 구하기

저는 휴식 시간과 저녁 자유시간에 될수록 많은 사람을 만나 진상을 알렸습니다. 사람마다 모두 불성과 마성이 있는데 저는 그들의 선한 일면을 일깨워줬습니다. 저와 매일 접촉한 사람들은 제 언행을 보고 저를 좋은 사람이라고 인정했고 제 말을 들으려 했습니다. 보통 90%의 사람들이 삼퇴(중공의 3대 조직인 공산당, 공청단, 소선대 탈퇴)했는데 감방장도 삼퇴했습니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50세 되는 한 시골 여성은 식당에서 일했는데 주방장과 다른 직원들이 그녀를 업신여겼습니다. 그녀는 주방장에게 원한을 품고 주방장의 전동스쿠터를 숨겨놨습니다. 주방장은 스쿠터를 잃어버렸다고 생각해 매우 애를 태웠습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마음이 약해져 주방장에게 스쿠터를 숨긴 곳을 알려줬습니다. 주방장은 스쿠터를 찾은 후 그녀를 신고했고 그녀는 절도죄로 감옥에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그녀와 같은 방에 있는 마약범은 화가 나면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욕했습니다. 그녀는 무서워 말도 못 하고 속만 태우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밖에서도 수모를 당했는데 감방에서도 수모를 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그녀에게 잃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이치를 이야기해주니 그녀는 듣기 좋아했습니다. 그녀는 “여태까지 살았어도 이런 이치는 처음 들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녀를 원망할수록 그녀는 더 심하게 욕할 것이고 그녀가 욕할 때 원망하지 않고 웃어넘기면 그녀의 태도가 좋게 변할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그 후 마약범이 그녀를 욕할 때마다 그녀는 그냥 웃어넘겼습니다. 그러자 마약범도 그녀를 보고 웃었고 더는 그녀를 욕하지 않았으며 나중에는 늘 칭찬 했습니다. 그 후부터 그녀는 기분이 좋아졌고 더 예뻐 보였습니다. 그녀는 매일 ‘9자진언(九字真言)’인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염했는데 저에게 “제가 이렇게 좋은 것을 얻게 됐으니 여기에 온 보람이 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당신은 전화위복 되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저에게 사람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는 것을 보신 사부님께서는 길을 배치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늘 방을 옮겼는데 저는 더 많은 사람을 만나서 불법적으로 감금됐던 19개월 동안 200여 명에게 삼퇴를 시킬 수 있었습니다.

방을 아무리 옮겨도 A와는 늘 같은 방이었습니다. 그녀의 도움으로 저는 많은 법을 외우게 됐습니다. 여기서 사심 없이 저를 도와주신 그 수련생분께 감사드립니다.

박해 저지

감옥에는 오전과 오후 한 번씩 바람 쐬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 시간에 통상 체조, 광장 춤, 기타 기공을 연마하고 옷을 빨거나 자유 활동을 합니다. 모든 대법제자는 다른 기공 연마를 거절했습니다. 감옥경찰이 제게 말했으나 우리는 여전히 불이법문(不二法門)을 고수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은 대법제자를 박해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상의 활동에 참가하지 않으면 물건을 구매할 자격을 박탈했는데 거기에는 휴지나 생리대, 샴푸 등 생필품이 포함됐습니다. 그리고 벌로 오후나 밤에 2시간씩 당직을 서야 했습니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대법제자에게 생필품을 빌려주지 못하게 해 대법제자들을 고립시켰습니다.

그 당시 감옥에는 네 명의 대법제자가 있었는데 우리는 모두 부체(附體)가 있는 기공을 연마하지 않았습니다. 감옥경찰은 나이가 가장 어린 제 이름을 부르면서 앞장서서 연마하라고 했습니다. 제가 응하지 않자 그녀는 화가 나서 다른 사람들에게 부체 기공을 계속하게 했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들은 우리 때문에 빨래도 할 수 없게 됐다며 우리를 이기적이라고 하면서 눈가림으로 흉내라도 내라고 했습니다.

우리 대법제자들은 그들에게 협조하지 않았습니다. 체면을 구긴 경찰은 제 이름을 부르면서 하지 않으면 수감자들의 사물함 박스를 가져가겠다고 협박했습니다. 사물함 박스 안에는 일용품, 식품, 밥그릇, 컵 등 생필품이 들어있었기에 박해가 심해질수록 사람들의 우리에 대한 불만은 더욱 커졌습니다. 마약범은 욕하기 시작했고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우리에게 협조해달라고 빌기까지 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협조하지 않으면 한여름인데 방 안의 물까지 끊긴다면 도저히 살 수 없다면서 우리에게 협조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녀들은 우리 때문에 자신들이 고생한다고 원망을 퍼부었습니다. 구세력의 통제로 경찰은 그런 비열한 방법으로 우리를 박해해 목적을 이루려 했습니다.

그때 긴급호출이 떨어졌습니다. 어떤 중대한 일인지 모르지만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 긴장감이 흐르는 속에 모두 문을 향해 제자리에 앉으라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때 무거운 족쇄 소리가 들렸는데 한 대법제자가 걸어오고 있었습니다. 족쇄는 바닥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음을 내 귀가 아팠습니다. 그 대법제자는 모든 방문 앞에서 멈추었는데 방 앞에 멈출 때마다 경찰은 “이 사람은 파룬궁을 선전했으므로 족쇄를 차고 독방에 일주일간 갇힐 것이다. 모두 교훈으로 삼아라!”라고 말했습니다. 나는 독방에 갇힌다 해도 부체 기공은 연마할 수 없고 믿음을 확고히 하리라 마음먹었습니다.

오후에 저는 경찰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저는 신앙을 견지한다는 이유로 여기에 갇혀 고통을 겪는데 파룬궁을 수련하다가 여기까지 왔으므로 오직 파룬궁만 수련할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건강을 위해 준비한 활동인데 당신이 하지 않으면 규정을 어기는 거예요.”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소장을 찾아가서 이야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소장을 찾으면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무능하다고 여길 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러면 나 혼자서 벌을 받으면 되니 다른 사람들은 제외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화가 나서 저에게 매주 야간당직을 한 번씩 추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일반 수감자들은 야간당직을 아주 꺼렸습니다. 두 시간 동안 곧은 자세로 서 있으면 허리와 등이 아프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발정념을 하고 법을 외우기 좋은 것이어서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생각이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그것도 부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그것이 저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변호하는 글을 쓰다

불법 재판이 열릴 무렵, 가족들은 변호사를 찾아 변호하게 했는데 유죄 변호였습니다. 저는 그 변호를 거절했습니다. 두 번째로 찾은 변호사는 먼 친척이었는데 그도 감히 무죄 변호를 하지 못하자 저는 스스로 무죄 변호 할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나 감옥에서는 파룬궁수련생에게 변호 용지 한 장만 주었습니다. 다른 죄수들에게는 페이지 수를 제한하지 않았는데 어떤 경제범은 20~30장까지도 주었습니다. 게다가 파룬궁수련생의 변호 용지는 반드시 경찰에게 검사받아야 했습니다.

오후에 재판이 열리기로 됐습니다. 오전에 저는 변호 문장을 적어 경찰에게 주었습니다. 경찰은 한 번 보고 꾸겨서 땅바닥에 던지고 크게 화를 내면서 “이렇게 쓰면 안 돼, 형벌이 더 엄해져! 반드시 죄를 승인해야 형벌을 가볍게 받을 수 있어!”라고 말했습니다. 겉으로는 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법제자에 대한 박해이고 저의 언론권을 침해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전 내내 발정념을 했습니다. 그러자 오후에 재판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2개월 후, 두 번째 재판이 다가왔습니다. 한 변호사가 와서 무죄 변호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가족들이 바른 선택을 한 것에 기뻐했습니다. 저는 경찰에게 변호 용지를 요구하면서 “가족들이 제 무죄를 변호할 사람을 찾았어요. 적극적으로 협조할 테니 한 장의 용지로는 부족해요”라고 넘치는 정념으로 말했습니다. 제 말을 들은 경찰은 정말 놀라워했습니다. 우리 지역에서 그때까지 파룬궁을 위해 무죄 변호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녀는 “몇 퍼센트 승산이 있어요?”라고 물었고 저는 잘 모르겠으나 노력해봐야겠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몇 장이 필요한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두 장을 주면서 부족하면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 생각이 바르니 모든 것이 저를 위해 사용되고 제가 주역이었습니다.

재판장, 배심원, 서기 등이 모두 자리하고 드디어 재판이 열리게 됐습니다. 재판이 열리기 전까지 저는 수갑을 차고 있었기에 큰 소리로 “재판장님 저는 죄인이 아닙니다. 수갑을 풀어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재판장은 침묵하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큰소리로 한 번 더 말하자 재판장은 수갑을 풀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열쇠를 갖고 있지 않아서 밖에 나가서 열쇠를 가져다 수갑을 풀어줬습니다. 제가 요구하지 않으면 그들은 풀어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앉으라고 했는데 제가 보니 호랑이 의자였습니다. 저는 다시 “재판장님, 저는 죄수가 아니므로 다른 의자로 바꿔주세요.”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또 큰 소리로 반복하자 재판장은 바꿔주라고 지시했습니다. 경찰 두 명이 호랑이 의자를 들려고 했지만 들지 못했습니다. 경찰은 무척 애를 써서야 겨우 의자를 끌어 한쪽으로 치우고 등받이가 있는 푹신한 의자로 바꿔줬습니다.

변호사는 법률을 따지면서 제 무죄를 변호했습니다. 변호사는 “14가지 사교 중에 파룬궁이 없습니다. 어떤 법률에도 파룬궁을 사교라고 명확히 규정하지 않았습니다. 형법 300조를 지목한 것은 맞지 않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검찰관은 “예전의 모든 파룬궁 안건은 모두 이 법률을 적용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장쩌민을 고소할 수 있는 것은 법률이 국민에게 준 권리입니다. 심사제도에서 입안 제도로 개편됐기에 저에게 장쩌민을 고소할 기회가 생기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범죄가 성립되는 4가지 요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제가 법률 몇 조를 어겼습니까? 어느 정도로 어겼습니까? 사회에 어떤 위험을 조성했습니까?” 그러자 검찰관은 말문이 막혔습니다.

마지막에 저는 법정에서 건강을 되찾은 것과 가정의 화목은 대법 법리대로 해서 얻은 것이라고 진술했습니다. 그리고 총구를 1cm 높이는 이야기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공무원법’에 따르면 정확하지 않은 법을 집행하면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고 규정했다는 것과 문화대혁명 10년 재난은 국가와 사회에 큰 상처를 입혔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파룬궁을 박해한 지 이미 17년이 됐는데 이 박해가 종결되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파룬궁 안건에서 총구를 1cm 높였으면 합니다.”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법정에서 큰 소리로 사부님의 법을 읽었는데 다른 공간의 사악한 요소를 타파하기에 충분했습니다. 저는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법정을 제대로 이용해 재판장과 검찰관에게 진상을 명확히 알렸습니다. 평소에는 그들과 접촉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은 저에게 3년 형을 선고했습니다.

제가 항소한 지 2개월 만에 중급법원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통상 파룬궁 안건은 중급법원에서 재판하지 않습니다. 재심해도 3~5분이면 결과가 나오고 원심을 유지하는 것이 통상적입니다. 그날 두 명이 왔는데 저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제가 법률 몇 조를 위반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판사는 “당신은 법률을 어기지 않았는데 왜 여기에 갇혀 있습니까?”라고 말했고 저는 “제가 법률 몇 조를 위반했습니까? 사회에 어떤 해를 끼쳤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판사는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보좌관이 옆에서 지켜보다가 주먹으로 벽을 치며 불같이 화를 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은 화를 낼 자격이 없어요. 저는 영문도 모르고 여기에 갇힌 지 1년이나 됐고 거의 2년이 돼가요. 그동안 체중도 20kg 넘게 빠졌어요. 저는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몰라요. 1심에서 재판장도 이야기해주지 않았어요. 2심을 기다려 당신들이 왔는데 제가 무슨 죄를 지었는지 말해보세요.”

그때 옆방의 중급법원 판사들이 몰려와 말렸습니다. 저는 말투를 낮추고 낮은 소리로 “미안합니다. 저는 ‘진선인(真·善·忍)’을 수련하는데 격동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라고 말하고 나서 다시 말했습니다. “파룬궁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합법입니다. 오로지 중국에서만 박해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 많은 국가와 각지 정부에서 파룬궁에 수천 개나 되는 상을 수여했고 지지하는 편지들을 보냈습니다. 매년 5월 13일은 세계 파룬따파의 날입니다.”

저는 계속해 말했습니다. “저는 수련해 병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법의 법리는 시어머니와의 갈등을 해결해줬으며 부부 사이 갈등과 업무상 갈등을 해결해줬습니다. 가정은 사회의 세포로서 가정이 화목해야 사회가 안정됩니다. 파룬궁의 ‘진선인’ 이념은 나라와 민족에게 백 가지 이로움만 있을 뿐 한 가지 해로움도 없습니다.”

“파룬궁 안건을 다룰 때 총구를 1cm 높이시기를 바랍니다. 문화대혁명이 종결된 후 중공은 한 무리 희생양을 살해했습니다. 당신들이 집행한 비밀 명령은 판사로서는 평생 책임져야 합니다. 여러분은 속지 말고 자신을 위해, 가족과 부모, 자녀를 위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자 판사와 보좌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열심히 듣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에 판사가 저에게 어떻게 기록하면 좋을지 물었습니다. 저는 사실이 명확하지 않고 증거가 부족하며 적용된 법률이 부당하다고 기록하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회의는 한 시간 넘게 계속됐습니다. 두 달 후 감옥경찰이 저를 찾았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말할 때 항상 미소를 짓는데 무슨 기쁜 일이 있어요?”라고 물었고 저는 웃으며 머리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녀는 “당신의 심성은 정말 좋아요. 마음도 아주 강하고요.”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대법을 수련하여 닦아낸 선(善)으로부터 오는 정념이라는 것을 그녀가 어찌 알겠습니까? 그녀는 “당신의 안건은 재심하기로 했어요. 일반적으로 재심이 열리면 형량이 줄어요.”라고 말했습니다.

감옥 안에 파룬궁을 수련하는 사람은 저만 남았고 다른 수련생들은 다른 감옥으로 보내졌습니다. 저는 여전히 세 가지 일을 하고 발정념을 하며 법을 외우고 사람들을 구했습니다. 2개월 후, 검찰에서 기소를 취소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또 2개월이 지나자 저를 무죄로 석방했습니다. 그렇게 저는 모두 19개월을 갇혀 지냈습니다.

사부님의 은혜에 무한한 감사를 드립니다! 저는 대열에서 낙오한 대법제자입니다. 불법적으로 갇혀 있던 동안에 안으로 찾아 제가 사람 마음이 중하고 집착이 많으며 착실히 수련하지 않아 박해를 불러왔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자는 법리의 요구대로 착실히 수련했을 뿐인데 사부님께서는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저는 사부님께서 제자를 대신해 얼마나 많은 것을 감당하셨는지 모릅니다!

사부님께서는 “수련을 처음과 같이 하면, 반드시 성취할 수 있다.”[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속인 사회의 유혹이 정말 커서 저는 점차 느슨해졌습니다. 이번 법회교류 문장을 쓰면서 정진의 동력을 되찾았습니다. 제자는 반드시 사부님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얼마 남지 않은 최후의 시간 동안 착실히 수련해 제 역사적 사명을 완성하겠습니다. 제자는 오로지 정진해야만 사부님 은혜에 보답할 수 있습니다.

부족한 부분은 수련생 여러분께서 자비롭게 바로잡아 주시기를 바랍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각지설법12-세계 파룬따파의 날 설법’

(밍후이왕 제19회 중국 대법제자 수련심득교류회)

 

원문발표: 2022년 11월 14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正體 https://big5.minghui.org/mh/articles/2022/11/14/451570.html
简体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22/11/14/45157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