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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룬따파의 보호 속에서 자란 대학생

글/ 캐나다 수련생

[밍후이왕]

존경하는 사부님 안녕하십니까!
수련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저는 대학교 3학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와 저는 사부님(파룬궁 창시자)의 자비로운 보살핌 아래 함께 파룬따파(法輪大法, 파룬궁)를 수련해왔습니다. 지난 몇 년간 저는 많은 폭풍우를 이겨냈고 많은 장애를 극복했습니다. 파룬따파 전파 30주년이 되는 이 해에 저는 사부님께 보고드리고 수련생 여러분과 제 수련 여정을 나누고 싶습니다.

올바른 가정에서 태어난 행운

할머니와 어머니는 제가 태어나기 전부터 수련을 시작하셨습니다. 1995년에 할머니는 심각한 위장 문제가 있었습니다. 베이징에 있는 여러 병원에 갔고 의사를 많이 만났지만, 결과는 모두 같았습니다. 할머니의 병은 불치병이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우리에게 할머니가 드시고 싶은 것은 뭐든 드시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약간의 한약만 처방하고 할머니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얼마 후 베이징에 있는 친척 한 명이 할머니의 건강 문제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 친척이 할머니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하고 연공을 가르쳤습니다. 할머니는 ‘전법륜(轉法輪, 파룬궁 수련서)’도 집에 가져오셨습니다. 그런 다음 할머니는 약을 드시지 않으셨습니다. 법공부를 시작했고 매일 혼자 연공하셨습니다. 할머니의 건강은 나아지기 시작했고 마침내 병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할머니의 인생이 바뀌는 모습을 본 어머니도 수련에 전념하기 시작하셨습니다.

1999년, 제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가 일이 바빠 저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것이 대법과 제 인연의 시작이었습니다.

할머니는 제가 어렸을 때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쩐싼런하오(真善忍好-진선인은 좋습니다)”를 외우는 것을 가르쳐주셨습니다. 사부님의 ‘홍음(洪吟)’을 외우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파룬따파는 가혹한 박해를 받았기 때문에 할머니는 밤에 어둠 속에서 연공하셨습니다. 매일 고요한 밤 저는 항상 바로 앞에서 빛나는 작은 붉은 빛을 봤습니다. 할머니가 연공 음악을 틀던 녹음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저는 그 음악을 들으면서 잠들곤 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을 때 저는 그 작은 빨간불을 오랫동안 바라봤는데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수련의 길에 있는 어린 대법제자를 보살펴 주신 사부님

유치원에 들어가면서 저는 부모님과 함께 살게 됐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가르침 아래 수련을 계속했습니다. 저는 어렸기에 이야기를 듣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밍후이 어린이 제자 수련세계’와 ‘중국 전통문화’ 프로그램에서 오디오 파일을 받아 제게 들려주셨습니다.

그때 홍음의 시를 더 많이 외웠지만, 전법륜(轉法輪)의 깊은 뜻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밍후이 어린이 제자 수련세계’에서 어린이 대법제자들의 수련 경험을 들으며 착한 어린이들은 진선인(真·善·忍) 원칙에 따라 산다고 배웠습니다. 저는 또 ‘중국 전통문화’ 프로그램에서 고대 지혜를 적용해 여러 상황에 대처했습니다. 대법의 지도와 보살핌으로 저는 착한 아이가 됐습니다. 어머니와 저는 대법의 원칙이 우리를 더러운 진흙에서 피어나는 깨끗한 연꽃처럼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유치원에 다니는 동안 저는 큰 교통사고를 세 번이나 당했습니다. 첫 번째 사고는 제가 조수석에 앉았을 때였습니다. 제가 실수로 잠겨있던 문을 열어 차에 매달려 끌려갔는데, 무릎을 꿇은 채로 끌려가 뼈가 드러났습니다. 당시 아버지는 큰 도로에서 운전 중이셨기에 갑자기 차를 세울 수 없었고 점차 속도를 줄여야 했습니다. 뒤에서 오던 트럭 운전사가 계속 경적을 울렸습니다. 그것이 제가 처음으로 죽을 뻔했던 사건이었습니다.

사고는 두 번 더 있었는데 오토바이에 치여 기절하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전법륜을 읽을 때 저는 그러한 상황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저는 종종 밍후이왕에서 대법제자들이 불치병에서 완전히 회복되고 사부님께서 그들의 생명을 구해주셨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제 저는 사부님께서 제 생명을 구해주셨음을 압니다. 사고로 죽을 수도 있었지만 사부님께서 보호해주신 덕분에 저는 부상에서 회복했습니다. 이로 인해 저는 더욱 부지런히 수련하게 됐고 대법의 기적에 대한 믿음이 더욱 굳건해졌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와 저는 밤에 길가에 파룬궁 진상 알리는 표지판을 붙였습니다. 그 당시 저는 너무 어려서 겁을 먹었습니다. 어머니는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 ‘파룬따파는 정법(正法)이다’란 표어를 만드신 후 발정념을 하면서 ​​각 마을 입구에 붙이셨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가 근처 전신주에 표어를 붙이러 나갔을 때 제가 차 뒷좌석에 앉아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전신주에 접근했을 때, 저는 한 점 붉은빛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 저건 감시카메라구나.’ 저는 즉시 입장(立掌)하고 발정념을 시작했습니다. 또한 감시카메라에 찍히지 않도록 어머니를 보호해달라고 사부님께 부탁드렸습니다. 어머니가 다 마치고 돌아오실 때까지 계속 발정념을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그 일을 말씀드렸더니 어머니는 기뻐하며 제 머리를 쓰다듬으며 옳은 일을 했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더운 여름밤을 기억합니다. 집에 돌아와 수박을 먹었는데 정말 달콤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제가 옳은 일을 했다고 격려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학습량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법공부와 연공 시간이 많지 않았습니다. 저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만 어머니와 함께 법공부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저는 제가 잘못이 있어 갈등을 일으켰는지 항상 안으로 찾았습니다. 사부님 말씀도 떠올라서 저는 제대로 집착을 찾아내 버릴 수 있었습니다.

매체 활동을 통해 성장

저는 해외에 나가서 운 좋게 매체에 합류하게 됐습니다. 처음에 저는 진상을 알리는 방법을 모르는 수줍음이 많은 소녀였습니다. 이제는 혼자서도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젊은 기자로 성장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사부님의 가지(加持)와 수련생 여러분의 격려가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제가 매체 일을 시작했을 때 사부님께서 인연 있는 중생을 제게 데려다주셨습니다. 저는 항상 특별히 친절한 인터뷰 상대를 만났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집착이 깊었는데, 이러한 배치가 두려움을 어느 정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행인들을 인터뷰하고 그들에게 진상을 알린 후에 그들은 종종 이렇게 말했습니다. “잘하고 있습니다, 계속하세요!” 저는 그들이 진상을 안 후에 제게 이 말을 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제가 더 많은 사람에게 진상을 알리길 원했습니다. 인터뷰를 통해 중생에게 계속해 진상을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사부님의 격려였습니다.

작년에 저는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정부 관리들이 보낸 서한을 보도하는 프로젝트에 합류했습니다. 처음에는 편지 정리나 사진 찾는 일 등 아주 기본적인 일만 했습니다. 올해는 대부분 일을 책임지라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이 중요한 책임을 맡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습니다.

VIP 팀, 번역팀 및 보도팀의 공동 노력으로 올해 파룬따파의 날에는 국회의원 서한 36통, 지역의원 서한 11통, 시장과 시의원 서한 50통을 포함 총 120통의 캐나다 의원들의 축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20여 년간 정부 각계각층에 진상을 알리기 위해 노력해 온 많은 수련생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로 캐나다가 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축하 편지를 받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기사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저는 또한 많은 집착을 발견했습니다. 일에 대한 집착, 과시심, 원망심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처음에는 축사를 몇 통만 받았습니다. 올해 서한은 정리하기 정말 편하고 별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파룬따파 깃발 게양식 보도라는 새로운 책임과 함께 축사가 계속 늘어나니 마음이 뭉클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습니다. 저는 늘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왜 또 편지를 잘못된 폴더에 넣었지?” “그녀는 왜 아직 번역을 보내지 않았지?” “왜 프로세스를 변경해 내가 다시 일해야 하지?”

동시에 저는 여름 계절학기를 수강하고 있어서 수업에 대한 압박이 많았습니다. 수업을 듣는 동안 업데이트해야 할 내용에 대한 협조인의 문자메시지를 자주 받았습니다. 저는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내가 왜 이 항목을 맡았지?’라는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까지 이르렀습니다.

당시에 포기할까 생각도 했지만, 항목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억지로 했습니다. 항목을 진행하면서 협조인에게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그녀의 격려와 응원에 힘입어 계속하다 보니 자신이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 차 있음을 차츰 깨닫게 됐습니다. 협조인과 대화를 나눈 후 저는 모든 축사가 진상을 알리기 위해 헌신한 많은 수련생의 오랜 노력의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오랫동안 진상을 알리기 위해 끈질기게 노력했는데, 저는 이제 막 일을 시작했고 심지어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또한 사부님께서는 오랜 세월 기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에서 제가 포기하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침에 법공부를 하면서 저는 ‘전법륜’에서 읽은 모든 단어가 제 집착을 가리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안으로 찾으며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문제에서 나는 어떻게 다른 수련생을 비난할 수 있는가? 나에게는 문제가 없었는가? 그건 불가능하다.’

나중에 계속 안으로 찾으면서 저는 제 불평 뒤에 숨어있는 많은 집착을 발견했습니다.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는 속상했습니다. 저는 항상 제 관점에서 사물을 보았고 타인을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문제를 깨닫고 나서 저는 제 상태와 생각을 조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상응하는 문장과 이미지, 번역물을 차례로 내려받았습니다. 축사가 잘못된 폴더에 있으면 두 번 내려받은 것은 아닌지 확인했습니다. 진행 상황에 대해 확신이 서지 않을 때는 먼저 견본을 협조인에게 보내고 프로세스가 완료된 후에야 파일 정리를 시작했습니다.

상태를 조정한 후 이전에 불평했던 모든 것에 대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된 후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사부님께서 이번 기회에 심성(心性)을 제고하도록 제게 배치하셨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사부님의 격려

세계 파룬따파의 날을 기념하는 첫 번째 파룬따파 깃발 게양식은 나이아가라 지역 세인트캐서린스에서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고 있을 때 비가 내렸습니다. 가는 길에 저는 생각했습니다. ‘어떡하지? 게양식 때 비가 오지 말아야 할 텐데!’

우리가 게양식을 준비하는 동안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해가 나올 기미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행사가 시작되자 기적적으로 먹구름이 걷히기 시작했습니다. 수련생들과 시 의원들이 연설하는 동안 햇빛이 우리를 비추어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게양식이 진행되는 동안 햇빛이 파란색 파룬따파 깃발을 눈부시게 비췄습니다. 게양식이 끝나자마자 하늘이 다시 어두워지고 짙은 구름이 몰려들었습니다.

이러한 초자연적 현상은 노스베이시에서도 나타났습니다. 시내로 가는 길에 하늘은 흐리고 소나기가 잠깐 내렸습니다. 행사를 준비하는 동안 하늘이 잿빛이었는데 행사가 시작되자마자 맑아졌습니다. 시장도 “여러분이 오니 날씨가 좋아졌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사부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셨습니다! 게양식 내내 날씨가 화창해 행사에 참여하는 중생이 대법의 경이로움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대법 깃발을 포함해 4개의 깃발이 게양됐습니다. 하지만 바람도 없고 깃발도 펄럭이지 않아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없었습니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속으로 사부님께 간청했습니다. ‘사부님 바람을 보내주세요. 제대로 된 사진을 찍는 데 필요합니다.’ 저는 카메라를 들고 있는 동안 사부님께 조용히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대법 깃발이 펄럭이기 시작해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네 개 깃발 중 대법 깃발만 펄럭였습니다. 돌이켜보니 게양식에 처음 참여한 젊은 기자를 위한 사부님의 격려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때 게양식 행사 사진을 처음 찍어봤습니다. 경험이 전혀 없어서 깃발이 게양되는 동안 고화질 사진을 찍지 못해 소중한 취재 기회를 허비하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하지만 사부님의 가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이 사진은 우리 매체에 실렸었으며 매우 고무적이었습니다.

사부님의 배치는 언제나 최고

어느 날, 우리는 게양식을 위해 그레이터 나파니(Greater Napanee) 마을에 갔습니다. 게양식 장소에 도착했을 때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모두 놀랐습니다. 차량 몇 대만 지나갔습니다. 주위는 핀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조용했습니다. 저는 동료 기자에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깃발 게양을 위해 여기까지 차를 몰고 왔는데 누가 볼까요? 시간 낭비네요.”

행사 후에 끝났다고 생각하고 저는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곧 협조인이 와서 시청 앞으로 가서 사진을 좀 더 찍자고 했습니다. 저는 ‘이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쨌든 가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사진을 찍는 동안 라디오 방송국의 한 여성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녀는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해했습니다.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시청 건너편에서 일해요. 여기에서 사진 찍는 걸 봤는데 여기서 뭘 하고 있는지 궁금했어요.”

한 수련생이 그녀에게 파룬따파를 소개했습니다. 그 여성은 듣자마자 녹음기를 꺼내며 “잠시 인터뷰를 해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수련생이 기꺼이 응하며 우리는 파룬따파 전파 30주년을 축하하러 여기에 왔다고 자세히 말했습니다. 그 수련생은 또한 그녀에게 진선인(真·善·忍)의 아름다움과 중국에서 파룬따파가 박해당하는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그녀가 말했습니다. “저는 파룬따파에 대해 처음 들었는데 모든 사람이 진선인(真·善·忍) 원칙을 마음에 새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는 또한 이 메시지를 많은 사람과 공유해 더 많은 사람에게 파룬따파를 알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녀와 대화하고 난 후 많이 느꼈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께서 배치하신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부님께서는 우리가 구해야 할 중생을 만날 수 있도록 이미 배치해 놓으셨습니다. 그냥 나가서 만나기만 하면 되니 시간 낭비 같은 건 없습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저도 원망심을 찾았습니다. 모든 것은 사부님의 배치인데 불평할 이유가 있을까요? 게양식에 참석하기 위해 이곳에 오기로 했으니 온 마음을 다해 이곳에 온 것입니다. 다른 관점에서 생각하니 그 지역에 행인이 몇 명 없어도 지나가는 차들은 여전히 ​​우리를 봤을 겁니다. 아마도 시골 풍경에 놓인 독특한 파룬따파 깃발이라 사람들이 더 잘 보지 않았을까요?

맺음말

‘파룬따파하오’를 외우던 어린이가 이제 대법 매체 항목을 통해 세계에 진상을 알리는 젊은 수련생으로 성장했습니다. 젊은 대법제자로서 저는 운 좋게 중국공산당 문화에 오염되지 않은 대법제자 가정이라는 수련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중국을 떠나 이렇게 중요한 대법 매체 항목에 합류한 것은 영광입니다. 저는 법을 실증하는 제 수련의 길을 찾았습니다. 사부님의 모든 배치에 감사드립니다.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으신 수련생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사부님 감사합니다.
수련생 여러분 감사합니다.

(2022년 캐나다 수련심득교류회 발언고)

 

원문발표: 2022년 7월 2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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