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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육의 정 앞에서 일사일념이 순수해야 한다

글/ 산시(陝西) 청년대법제자

[밍후이왕] 혈육에 대한 집착은 질투심, 원망하는 마음, 색욕심 등 쉽게 알 수 있는 집착과 비교하면 그다지 중시를 일으키지 못한다. 왜냐하면 질투심, 원망하는 마음, 색욕심은 속인 중에서 좋지 않은 것이지만 혈육에 대한 정은 속인 중에서 나무랄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약 속인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마음만 버리면 그것은 단지 좋은 사람에 지나지 않으며 속인의 층차를 벗어날 수 없다. 최대한 속인에 부합해 수련하는 것은 사실 더욱 어렵다. 세속의 미혹 중에, 속인의 반대 이치 속에서 조금만 느슨히 하면 집착에 빠져도 자신은 모를 수 있다.

사례를 들면 나와 어머니(수련생), 외할머니의 혈육 간의 정이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났기에 나는 어렸을 때 늘 할머니 집에서 살았다. 할머니는 지식이 없었으나 소박하며 착하고 근면한 농촌 사람이다. 우리가 살기 어려웠을 때 할머니는 나와 어머니를 잘 대해주셨다. 후에 직장을 다니면서 우리는 할머니와 멀리 떨어져 지내게 되었고 1년에 한 번도 가보지 못할 때도 있었다. 우리는 명절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용돈을 드렸고 평소에는 할아버지, 할머니에게 옷을 사 드렸으며 세탁기, 밥솥 등 시간과 에너지를 아낄 수 있는 일용품은 물론 할머니가 반평생 마련한 적이 없는 금목걸이, 먹지 못한 음식까지 물심양면으로 즐기게 했다.

효를 다하는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혈육에 대한 집착을 자양했다. 특히 어머니 수련생은 최근 표현이 두드러졌다.

아래에 나는 이 방면의 일부 체득을 교류해 이와 유사한 집착이 있는 수련생들에게 나의 옅은 깨달음으로 수련생 여러분의 좋은 의견을 들을 수 있는 효과가 있기 바란다.

사실은 이러했다. 며칠 전 전화 통화하다가 외출한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집으로 돌아오지 않자 할머니는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 마음이 급해 심장병이 도진 것을 알았다. 어머니는 마음 아파했고 가족이 고통을 받자 정(情)을 움직였다. 나와 어머니는 할머니에게 핸드폰을 사드리자고 결정했다. (할머니 집에는 핸드폰이 하나 있는데 평소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핸드폰 두 대면 돈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전화요금은 우리가 내고 할아버지가 외출하면 두 분은 연락하기 편리하다.

하루는 할머니가 핸드폰을 사용하는지 물으려고 전화하니 할아버지가 받았다. 할아버지는 할머니가 옆집 외삼촌 댁에 병아리 넣을 닭장 만들러 갔는데 외숙모는 언니 집에 놀러 갔다고 말했다. 외숙모는 다년간 닭, 오리, 양, 개 등 동물을 키우면서 관리하지 않아 동물을 사육하는 것은 할머니 몫이 되었다. 할아버지와 어머니는 줄곧 이에 대해 불만이 많았다. 오늘 할아버지는 또 한바탕 불평하셨고 어머니도 심성을 지키지 못했다. 할머니가 집으로 돌아오자 어머니는 할아버지와 함께 설득했다. “어머니는 이젠 나이도 75세고 몸도 예전 같지 않은데 올케는 놀러 다니고 있어요. 어머니는 노인인데 올케 일을 해주면 어머니를 바보로 여깁니다. 이후 올케가 동물을 관리하지 못하면 키우지 말라고 하세요!” 할머니는 의외로 태연하고 평온하게 말했다. “괜찮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건데 말릴 필요 없다. 하지 못할 때는 하지 않을 거다. 집에 있으면 할 일이 없다.”

나는 이번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고 참여하지 않았다. 그 후 어머니와 소통할 때 나는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에서 예를 든, 할머니가 차에 치인 사례가 생각나 말했다. “어머니는 대법제자로서 도리어 구경하는 속인의 역할을 했으며 마음이 불편해 할아버지와 함께 할머니를 만류했는데 차에 치인 할머니에게 운전사를 찾아 돈을 달라고 하라고 한, 속인과 무슨 다른 점이 있나요? 할머니는 어머니와 할아버지의 만류에도 자신의 선택을 견지했고 원망도 후회도 없이 고생하고 있어요. 정말 도를 수련하지 않아도 도(道)중에 있어요! 어머니는 수련자로서 어찌 이 한 점에서 속인보다 못하나요!”

무엇 때문에 가족의 시비를 간섭하지 말아야 하는가?

우선 수련인의 각도에서 보면 아마 그들은 전생에 은혜와 원한이 있어 이번 생에 해결해야 하는데 우리가 막으면 이 일을 배치한 고층생명의 계획을 교란한 것이 아닌가? 사람은 신이 배치한 길을 자연히 따라서 걸으며 또한 원망도 후회도 없다. 할머니가 매번 얼마나 오래 도와주고 얼마나 하는지는 이미 배치된 것인데 우리가 상관할 수 있겠는가? 아마 이번 생에 할머니는 업력을 다 갚은 후 고층(高層)으로 돌아가게 배치할 수도 있다. 속인 역시 속세에서 수련하고 있다. 우리는 일의 진상을 알지 못하기에 인위적으로 하지 말고 할머니의 상태를 교란하지 말아야 한다. 그 진풍(真瘋) 할머니처럼 그녀의 가족은 그녀가 고생하는 것을 볼 수 없어, 그녀가 밖에 나가 추위에 떨게 하지 않게 가두었다. 보기에는 효도하는 것 같지만 그녀의 돌아가는 길을 막고 있는 것을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는 미혹 중의 가족 역할을 해 역효과를 내는 작용을 하면 안 된다.

이것은 수련 과정에서 혈육에 대한 정을 닦고 심성을 제고하는 데 설치한 하나의 관문이다. 보기에는 방관자 같지만 실은 극 중의 사람이다. 나는 모든 정(情) 중에서 사람은 혈육에 대한 정을 비교적 중요하게 여기며 또 알아차리기 어려운 집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때문에 우리는 혈육의 정에 대해 더더욱 수련인의 역할을 바로잡아 사부님의 고심한 배치에 어긋나지 말아야 한다.

두자춘(杜子春)이 도를 닦은 이야기 중에서 그는 희(喜), 노(怒), 애(哀), 두려움, 악(惡), 욕망을 닦고 수많은 시험을 돌파했지만, 마지막에 모자정(母子情)의 가상에 실패했다. 혈육정의 집착이 얼마나 은폐되고 엄숙한지 알 수 있다. 아마 마지막 원만할 때 최종 시험이 될 수도 있다. 그 때문에 평소에 반드시 착실히 수련하고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한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元神(왠선)이기 때문에, 당신의 元神(왠선)을 낳은 그 어머니만이 당신의 진정한 어머니다. 당신은 육도윤회 중에서 당신의 어머니가 인류였든, 인류가 아니었든 다 헤아릴 수 없다.”[1]

그러므로 이번 생의 혈육에 대한 정에 우리는 집착할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화상이 출가하면 혈육에 대한 정을 단절하고 더는 가족을 간섭하지 않는다. 우리는 속세에서 수련하고 있어 강제적인 규정이 없는 것 갖지만 실지 그들보다 요구가 더 높다.

사부님은 이미 우리에게 몸은 세속에 있지만, 마음은 도(道) 중에 있는 상태에 대해 알려 주셨다. “보아도 보지 못한 듯이 하니 미혹되지 않는도다. 들어도 듣지 못한 듯이 하니 그 마음 혼란하지 않도다.”[2]

우리가 하지 못한 것은 여전히 사람 중에 미혹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의 이치로 사람 중의 일을 간섭하는 것은 틀리지 않지만 수련인은 안 된다. 수구(修口)하지 않는 문제에도 연관되고 나쁜 일을 하고 업을 빚어 층차가 떨어지는 문제에도 연관된다. 동시에 혈육 정에 대한 집착을 닦지 못한 것인데 수련 경지를 어떻게 제고하겠는가?

우리는 극단으로 나가서도 안 되며 가족 관계를 잘 평형해야 하지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가족 수련생과의 관계 역시 이러하다. 아마 우리는 같지 않은 아득히 먼 세계에서 와 가족이 된 것은 서로 독촉하고 공동으로 정진하고 사명을 완성하려고 맺은 성연(聖緣)일 수 있다. 평소 나는 어머니가 발정념 할 때 손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조급해했고 어머니는 내가 매일 일찍 일어나 연공하지 않아 화를 냈다. 사실 수련생을 위해 책임지는 외에 가족에 대한 정이 섞여 있다. 모두 닦아야 할 부분이다.

우리는 가족 수련생에게 무례하게 의지하거나 지시, 비난할 이유가 없으며 그들을 일반 수련생으로 간주하고 다른 수련생처럼 대해야 한다. 약간의 차이가 있어도 사실 모두 정이다.

혈육의 정에 대한 집착을 닦고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순수하게 해야 비로소 공동으로 조사(助師)의 염원을 완성할 수 있다.

개인의 깨달음이며 법에 있지 않은 곳은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점오에 감사드리며 수련생의 사심 없는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전법륜(轉法輪)
[2] 리훙쯔 사부님 시사: ‘홍음-도(道) 중에서’

[편집자 주: 본문은 글쓴이 개인의 현재 인식에 따라 작성된 것이므로, 수련생들이 서로 교류하고 ‘비학비수(比學比修)’하는 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원문발표: 2022년 7월 11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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