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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정념으로 마지막 길을 잘 가야

글/ 중국 헤이룽장성 대법제자

[밍후이왕] 나는 24년 수련한 77세의 농촌 여성 대법제자로 줄곧 사부님의 깊은 은혜 속에 푹 빠져있다.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가 없다면 우리 오늘의 행복과 영예가 없었을 것이다. 오늘 이 고덕(高德) 대법을 수련할 수 있고, 사부님을 도와 정법하며 중생을 구도할 수 있어 정말 행운이다. 나는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를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법공부를 통해 인식했다. 수련 중에서 사부님을 확고히 믿고 법을 확고히 믿어야 한다. 마음속에 법만 있으면 무슨 고비든 다 넘을 수 있다. 아래에 몇 가지 예를 들겠다.

1. 일에 부딪히면 잊지 말고 사부님 부르자

2000년 12월 23일, 각종 교란을 제거하고 하얼빈 기차역에 가서 표를 사서 베이징에 청원하러 갔다. 가족과 진 정부 사람이 알고 20여 명이 하얼빈의 각 길목과 역전에서 나를 찾았다.

오후 1시 40분쯤, 검표를 시작해 줄을 서서 가고 있는데 좌측 앞쪽에 매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사부님께 매부가 나를 보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보니 막내 사위가 이쪽 앞쪽에 서 있어 나는 또 얼굴을 앞으로 돌리며 ‘사부님 이쪽에 하나 더 있습니다. 절대 그들 둘이 저를 보지 못하게 해주십시오’라고 마음속으로 말했다. 둘은 앞에서 자세히 사람들을 뜯어보았다. 그때 내가 앞에 도착했는데 그들이 나를 보지 못해 나는 순조롭게 검표를 마쳤다.

그때 나는 발정념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구세력과 구세력의 배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서 나를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만 알았다. 사부님의 가지(加持)하에 나는 순조롭게 베이징으로 가는 열차에 올랐다.

2. 사람 마음 내려놓고 정정당당하게 마굴에서 걸어나오다

정부에 대한 신임과 헌법이 국민에 부여한 신앙 자유, 청원 자유의 권리에 따라 나는 2000년 12월 23일, 마침내 천안문에 도착해 사람들에게 ‘파룬따파하오’를 알렸다. 가서 보니 경비가 삼엄했다. 천안문 곳곳에 사복경찰과 경찰이 있어서 아예 들어가지 못했다. 그들은 한 사람도 놓치지 않고 살폈다. 나는 앞에 가자마자 사복경찰에게 잡혔다. 경찰은 사부님과 파룬따파를 욕하라고 했다. 나는 욕하지 않고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을 하는 사람인가요? 왜 사람을 욕하라고 하나요?” 그들은 다짜고짜 나를 경찰차에 태우고 천안문파출소로 가서 철창에 가뒀다. 철창에서 나는 줄곧 ‘파룬따파하오(法輪大法好-파룬따파는 좋습니다)’ 등 마음속에 있던 말을 외쳤다.

2000년 12월 29일, 진 파출소는 나를 현 구치소로 데려왔다. 한 달 뒤 내가 단식해 2001년 1월 29일 현 감옥으로 보내졌다. 그곳은 음침하고 공포스러웠다. 매일 때리고 욕하는 소리가 났고 현 정치보위과와 현 정치법률위원회 서기가 매일 우리를 찾아 ‘3서’와 ‘전향서’를 쓰라고 했다.

어느 날, 그들은 또 나를 찾아와서 내일 집으로 보내준다며 당신이 보증서를 아주 잘 쓴 걸 보았다고 했다. 나는 생각했다. ‘누가 썼을까? 진짜일까 가짜일까? 하지만 누가 썼어도 승인할 수 없다. 승인하면 그들을 해치는 것이다.’ “저는 쓰지 않았습니다. 제가 쓴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썼다고 인정하면 집으로 갈 수 있지 않습니까?” “제가 쓴 것이 아닌데 무엇을 인정하란 말입니까?”

지난번에도 다른 사람이 보증서를 써주었다. 감옥 경찰이 들고 와서 누가 대신 써주었다며 동의하는지 묻고, 동의하면 내일 집에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당시에 명확하게 깨달았다.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이 대신 썼는데도 태도 표명해야 하는가? 어느 길을 가려는지 선택하라는 것이 아닌가? 사악의 말을 듣겠는가, 사부님을 따라가겠는가? 아무도 함부로 결정하지 못한다. 나는 알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는 내가 쓴 것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대법을 수련해 좋은 사람이 되는데 어디로 전향하라는 말인가? 경찰은 전향하지 않으면 풀어주지 않겠다고 했다. 나는 경찰에게 “당신들이 평생 저를 가둘 수 있겠어요? 우리 현에서 다 수련을 포기한다고 해도 마지막에 남아 수련하는 사람이 저일 것입니다.”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쟁투심, 승부욕, 잘난체하는 마음이 얼마나 강했는가 싶다. 정말 사부님의 자비로운 구도에 죄송하다는 마음이 든다.

나는 줄곧 그들에게 대법을 알렸다. 그들이 여전히 같은 일을 반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4월 9일, 그들은 나를 취조실에 데려갔다. 현 정치법률위원회 서기가 종이와 펜을 들고 와서 빨리 보증서를 쓰라고 했다. “다 쓰고 집에 가야지요. 보증서를 쓰지 않은 베이징에 갔던 사람들이 모두 노동교양 되었습니다. 4가지만 쓰면 됩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제가 당신 사부께 말하겠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쓴 것이 아니고 제가 쓰라고 한 것이라고, 당신 사부는 당신을 탓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쓴 것을 사부님께 가지고 가서 당신 제자가 쓴 것을 좀 보라고 하겠지.’ 여기까지 생각하고 나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왜 이 기회를 이용해 내가 써야 할 것을 쓰지 않는가? 다른 공간의 사악 요소는 반드시 제거될 것이다.’ 나는 펜을 잡고 네 가지를 썼다. 1) 파룬따파는 바른 법이다. 2) 법이 건곤을 바로 잡는다. 3) ‘나는 마음속으로부터 파룬따파는 좋습니다’라고 외친다. 4) 나는 대법을 수련하며 영원히 포기하지 않겠다. 성명인: 모모. 2001년 4월 9일 성명.

그 후부터 그들은 다시는 무슨 보증서를 쓰라고 나를 찾아오지 않았다. 5월 14일, 나는 정정당당하게 마굴에서 걸어 나왔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는 줄곧 대법제자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다.

3. 정념의 위력이 끝없음을 체험

세 가지 일을 잘하는 것은 대법제자의 책임이고, 자신의 사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신의 수련, 법실증, 중생구도는 매일 반드시 해내야 한다.

한번은 시골로 내려가 길 양옆의 나무와 전봇대에 영구성 대법 표어를 페인트로 뿌려 새겼다. 일을 끝내고 자전거를 타고 돌아오는데, 앞에서 진 파출소 경찰차가 오고 있었다. 차 안에 세 명이 앉아 있었다.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았고 사부님께 제자의 정념을 가지해 달라고 요청하고 생각했다. ‘그들이 업을 짓게 하면 안 된다. 빨리 되돌아가라, 페인트가 아직 마르지 않았다. 그들이 보아서는 안 된다. 다 지워내면 어떻게 사람을 구하는가?’ 이 일념에 사부님께서는 경찰차를 즉시 감속하고 되돌아 돌아가게 했다. 나는 신의 정념을 쓰면 위력이 끝이 없다는 것을 체험했다.

또 한 번 시골에 내려갔다. 길에서 한 사람을 만나 진상을 알리니 휴대폰을 꺼내 촬영하며, 증거로 삼아 610에 전화해 고발하겠다고 협박했다. 대법에 대해 좋지 않은 말도 했다. 나는 생각했다. ‘당신이 고발하게 해서는 안 된다. 업을 지을 것이다.’ 얼른 안으로 찾아 내가 어디에 누락이 있어 법의 요구에 부합하지 못했는지 찾아보았다. 동시에 이것은 가상이라며 발정념해 그의 배후에 있는 사악한 요소를 청리했다. 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우리 동네에서는 파룬궁 이야기를 하지 마세요”라고 말하고는 가버렸다.

나는 위급한 상황에서 먼저 남을 생각하고 위사위아(爲私爲我)한 염두를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결과의 엄중성을 알면서도, 이 순선(純善)한 일념이 대법의 법리에 부합했다. 내보낸 염두는 선량했고, 대법의 법리는 타인을 위한 것이지, 이기심이 작용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님께서 항상 곁에서 나를 보호해주고 계신다는 것을 느꼈다.

어느 한번, 파출소에서 집을 수색할 때 소장이 대여섯 명을 데리고 왔다. 진 정부 서기도 왔다. 사부님의 보호로 나는 3번 도망가 마침내 그들의 납치에서 벗어났다.

4. 기점을 바로 잡고 법에서 수련하는 것을 선택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나는 1999년의 7.20에서 7.20 이전의 수련생들을 전부 제 위치로 밀었는데 당신들의 가장 높은 위치로 밀어 올렸다.”[1]

사부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높이 밀어주셨고, 정법이 최후의 최후까지 왔다. 시시각각 신의 정념과 청성한 두뇌를 유지하고, 일에 부딪히면 우선 기점에 바로 서고, 다시 어떻게 법에서 해야 하는지 선택해야 한다. 항상 자신이 정법시기 대법제자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명이 있고, 중생을 구도할 책임이 있다. 마음속에 법이 있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잊어서는 안 된다. 이렇게 하면 잘못된 길을 가지 않을 것이다. 우주 중의 그런 우리를 갈라놓는 미시적 요소는 정법 중에서 사부님이 모두 이미 해결했다. 다시 문제에 부딪히면 진정한 나, 주왠선(主元神)이 법의 입장에서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예:

지난달, 한 수련생이 우리 집에 수련에서의 일들을 처리하러 왔다. 우리는 일을 끝내고 할 말을 다 했다. 갑자기 그의 주머니에서 휴대폰이 울렸다. 나는 첫 생각이 그의 안전 문제였다. “왜 휴대폰을 가지고 왔어요? 여기는 공안국과 한 동네입니다. 우리 집은 폭로돼 있어요. 2018년 대형 납치 때 저도 포함됐어요. 감옥에서 안보 대장을 했던 사람이 저를 고발해, 공안국 직원이 우리 집에 와서 그가 고발한 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러 왔었어요. 몇 번이나 왔었어요. 이 일이 지난 지 몇 달밖에 되지 않았어요. 휴대폰을 가지고 오면 당신에게 안전하지 않아요.”

이때 사부님의 한 단락 법이 생각났다. “석가모니가 목욕을 하려고 삼림 속에서 그의 제자를 불러 목욕통을 청소하라고 했다. 그의 제자가 거기에 가서 보니 목욕통 안에는 벌레가 가득 기어 다니고 있어서 목욕통을 청소하려면 벌레를 죽여야 했다. 제자는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알렸다. ‘목욕통 안이 온통 벌레입니다.’ 석가모니는 그를 보지도 않고 한마디 했다. ‘자네는 가서 목욕통을 깨끗이 청소하게.’ 이 제자가 목욕통 거기 가서 보니 손을 댈 수가 없었다. 손을 대기만 하면 벌레는 죽기 때문에 그는 한 바퀴 돌고는 또다시 돌아와서 석가모니에게 물었다. ‘사존(師尊)님, 목욕통 안이 온통 벌레여서 만약 손을 대기만 하면 벌레들을 죽이게 됩니다.’ 석가모니가 그를 보며 말했다. ‘내가 자네에게 청소하라는 것은 목욕통이네.’”

사부님께서는 무엇 때문에 석가모니의 그때 제자의 수련상태를 우리에게 알려주셨을까? 나는 더 높은 법리는 깨닫지 못했고, 이 단락 법에 신사신법의 법리가 있다는 것만 깨달았다. 우리는 100% 신사신법 했는가, 정말 사부님 말씀을 듣는가? 사부님께서는 휴대폰에 관한 안전 문제를 이미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 다시 되돌아보면 우리가 석가모니의 그 제자와 같은 행위를 한 것이 아닌가? 나는 아직도 위챗과 휴대폰을 사용하는 수련생이 있다는 것을 안다. 이 일을 통해 나도 많은 집착심을 찾아냈다.

며칠 후 수련생이 다시 왔을 때 내가 먼저 물어보았다. “휴대폰 가지고 왔어요?” 이것은 수련생에 대한 불신임, 의심 등의 사람 마음이다.

수련은 엄숙하다. 수련은 무슨 일에 부딪혀도 법에서 대조하고, 법에 부합하는지 보며 즉시 그 마음을 찾아내 제거해야 한다. 끊임없이 안으로 찾고 끊임없이 수련해야 정법 노정을 따라잡을 수 있고, 법을 실증해 더 많은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어느 날, 관리사무소에서 모두 PCR 검사를 하라고 했다. 딸의 동료가 너의 어머니는 왜 오지 않았는지 물었다. 딸이 집에 와서 이 일을 말해주었다. 나는 생각도 하지 않고 말했다. “그 애한테 이 일이 언제부터 네 소관이 되었는지 물어보지 그랬냐?” 말이 나가자 나는 말을 잘못했다는 것을 알고, 이 말을 해체하고 즉시 법에서 자신을 바로잡았다. 이것은 쟁투심뿐만이 아니다. 나는 마치 사부님께서 ‘전법륜(轉法輪)’ 제7강에서 언급하신 신공표 같았다. 원망과 질투, 쟁투, 위사위아 등 사람 마음이다. 각종 사람 마음을 제거하고 대법제자의 표준에 도달해야, 법을 실증하고 중생을 구도할 수 있다. 법에 맞지 않은 곳은 수련생께서 자비롭게 시정해주시기 바란다.

주:
[1] 리훙쯔(李洪志) 사부님 저작: ‘북미 순회 설법’
[2] 리훙쯔 사부님 저작: ‘전법륜’

​원문발표: 2022년 6월 18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원문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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