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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 5.13] 수련 3개월에 심성은 천지 차이

글/ 중국 산둥 대법제자 징쓰(静思)​

[밍후이왕] 1996년 6월,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수련하기 시작하여 사부님을 바짝 뒤따라 반본귀진(返本歸真)의 길을 걸어오면서, 나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3개월 동안에 사람이 바뀌다

나는 1996년 6월, 파룬따파 수련을 시작하여 ‘전법륜(轉法輪)’을 매일 보았는데, 보면 볼수록 이 책을 떠날 수 없었고, 법을 얻은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으며, 즐겁기가 마치 작은 새 같았다. 매일 전법륜을 읽으면서 동시에 사부님 요구에 따라 하여 단시간 내에 신체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법을 얻은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한 가지 일이 발생했으며, 이때 나의 변화가 나를 놀라게 했다. 일의 경과는 이렇다.

1996년 8월 말 어느 날 정오, 나는 퇴근 중에 사거리에서 자전거를 세워 신호를 기다렸다. 남쪽을 향해 녹색 등이 켜지기를 기다리다가 다시 왼쪽으로 돌았는데, 갑자기 나는 큰 돌을 싣고 우회전하는 트랙터에 치였다(차량 정보는 사후에 알았음). 그리고 사람과 자전거가 함께 차 밑에 휩쓸려 들어갔다. 기사는 너무 긴장했는지 차를 세우지 않고 오히려 우회전을 가속하여 서쪽으로 전진했다. 나는 차 밑에서 의식이 뚜렷하여 차바퀴마다 내 등을 짓누르며 지나가는 것을 똑똑히 느꼈는데, 눈을 감은 채 이제 끝났다고 절망했다.

행인들이 “차 세워! 차 세워!”라고 외치는 소리를 차 밑에서 들을 수 있었다. 기사는 긴장해서 차를 세우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나는 눈을 감았으며 차바퀴마다 내 등을 짓누르고 지나갔다.

내가 절망할 때, 갑자기 ‘차바퀴가 내 등을 이렇게 짓누르며 지나가는데, 왜 조금도 아프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현듯 사부님 생각이 났다. 대법제자는 사부님께서 보호하시며 위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갑자기 눈을 뜨고 차 밑에서 “차 세워! 차 세워!”라고 끊임없이 소리쳤고 행인들도 외쳤다. 기사가 마침내 차를 세웠다.

나는 차 밑에서 힘껏 밖으로 나왔으나, 기어 나오지 못하고, 꽉 끼였다. 행인들이 빨리 와서 도와주기를 바랐지만, 아무도 차 옆에 와서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이때, 내 마음은 이미 기적적으로 평온해졌다. 사부님께서 나를 보호하시리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들이 나의 ‘비참한 모습’을 선뜻 보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기사도 차에서 내려 나를 도와주지 않았으며, 정신을 잃어버렸다.

나는 차 밑에서 큰소리로 외쳤다. “후진! 후진!” 시동 건 기사는 후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앞으로 나아갔다. 차를 세웠다가, 후진하고, 세우고 하면서, 대략 30여 미터를 운전했다. 나는 마침내 스스로 차 밑에서 기어 나왔고 자전거도 끌어냈는데 그때까지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기사는 트랙터의 덮개 없는 운전석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때, 나는 비로소 큰 돌을 실은 트랙터라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

행인들이 내가 괜찮다는 것을 보고는 잇달아 다가왔다. 어떤 사람이 기사에게 빨리 내려와서 나를 데리고 병원에 가 검사하라고 꾸짖었다. 기사가 천천히 내려와 내 앞에 섰다. 겁이 나서 창백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며 처분을 기다렸다. 기사의 창백한 얼굴을 보면서 나는 아무런 원망 없이 오히려 그를 안타까워하며 상냥한 말투로 말했다. “기사님, 차 보험 안 들었지요?”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계속해서 천천히 말했다. “앞으로 운전 조심하세요. 농민들이 돈 좀 벌려면 쉽지 않아요. 만약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돈을 얼마나 써야겠어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하므로 괜찮아요. 병원에 갈 필요가 없으니, 안심하세요.”

행인이 나에게 병원에 가 보라고 권했는데,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기사는 나에게 깊이 허리 숙여 감사를 표했다. 나는 “괜찮아요. 나는 파룬궁을 연마합니다.”라고 말했다. 참 신기하게 내 자전거도 고장이 나지 않았다. 내가 자전거를 밀고 몇 걸음 걷다가 뒤돌아보니 그 기사는 여전히 떠난 나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여 절하고 있었다.

일이 20여 년 지났는데 기사가 허리 굽혀 절하는 장면을 회상할 때마다 나는 눈물이 흘렀다. 아쉽게도 대법 사부님께 감사드려야 한다는 것을 그에게 말하지 못했다. 이것은 나의 유감이다.

자전거를 타고 집에 가는데 모든 것이 다 괜찮았다. 당시 나는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었기 때문에 몸에 큰 통증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난 남편은 내 등과 허벅지 뒤쪽에 보라색의 또렷한 바퀴 자국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남편은 화가 나서 내가 기사의 차 번호를 남기지 않았다고 탓했고, 직장 동료들도 내가 기사의 신상 정보를 받아 놓지 않았다고 탓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말하든지 내 마음은 조금도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서 나의 생명을 구해 주셨다는 것을 대법 중에서 깊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로서 감사드릴 뿐이다. 베풀어 주신 은혜에 무한히 감사드리고 사부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더 잘하고 일할 때 남을 먼저 배려해야 한다.

직장에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일의 경과를 회상하면서 자신의 변화에 놀랐다. 대법을 수련한지 석 달도 안 되었는데, 나는 정말 사람이 바뀌었다! 9개월 전, 임신 7개월 때 자전거를 타고 출근했는데 뒤에서 자전거를 탄 사람이 부딪쳤다. 자전거에서 내린 후 나를 부딪친 그 젊은 남자가 나에게 사과를 했다. 나는 사과하는 성의가 부족하다고 생각하여 그를 용서하지 않고 신랄하게 꾸짖으며 길을 막고 가지 못하게 했더니, 그는 출근이 급해서 거듭 사과했다. 내가 가만있지 않고 결국은 안경 쓴 것이 조금도 점잖지 않다고 하니까, 그 남자가 나에게 말했다. “당신은 안경을 쓰고 있으니 조금도 무지막지한 여자 같지 않아요.” 나는 어이가 없었다.

이치에 맞으면 지나치게 몰아붙이는 것은 내가 대법을 수련하기 전의 나쁜 버릇이다. 자전거가 가볍게 부딪친 것과 트랙터 바닥에 말려들어 30여 미터를 끌려간 것은 일의 크기를 명백히 알 수 있지만, 처리 방식은 천지 차이며, 파룬따파를 수련하고 정말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다.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직장에서 직급을 양보하다

1996년 6월에 나는 파룬따파를 수련하기 시작했다. 1999년 7월에 장쩌민 일당과 중국공산당(중공) 사당은 대법 박해를 시작했다. 위대하신 사부님께서는 모함당하셨고, 대법제자는 박해받았다. 이에 직면하여 거대한 고통이 짓눌러서 나는 호흡이 곤란했다. 그러나 나는 대법제자이다. 아무리 고생스럽고 어려워도 나는 대법의 진선인(真·善·忍) 기준에 따라서 자신을 지도해야 한다. 그동안 교장은 우리 학교 대법제자가 박해를 받지 않게 했고 상급자의 압력을 많이 받았으며 감당을 많이 했다.

2000년 9월, 학교 교사 직급 경합이 있었으며, 1급 교사 정원의 1명이 2급으로 떨어지면서 임금이 이에 따라 하향 조정되었다. 1급 교사마다 하향 조정을 우려했는데, 명리를 모두 잃게된다.

교사(직급) 경합 강연에 앞서 나는 교장을 찾아가 말했다. “저는 연공인입니다. 교장 선생님이 저를 보호하여 주셔서 저는 박해를 받지 않았어요. 저는 스스로 직급 강등을 신청해서 교장 선생님과 다른 교사들의 걱정을 덜어 드리고 싶습니다.” 교장은 엄숙하게 말했다. “선생님처럼 우수한 교사가 자발적으로 직급 강등 신청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겠어요. 전체 교사 투표로 결정합니다.” 말이 끝나자 교장 선생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결국 1급 교사 중 가장 어린 나는 강등되지 않았다. 20여 년 동안 여러 차례 교사 직급 경합이 있었는데, 나는 주동적으로 경합 강연을 포기하여 표를 모은 적은 없지만, 한 번도 강등된 적이 없다.

파룬따파를 수련한 후, 나의 변화를 동료들은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몸이 약해서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것만 같았던 내가 건강하고 밝아졌으며, 맡은 일을 열심히 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우리 학교, 더 나아가서는 우리 시에서 영예를 얻었다.

2015년, 나는 퇴직을 앞두고 마지막 직급 경합을 했다. 이것은 퇴직 후의 오랜 기간 임금과 관련이 있었다. 나는 교장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다. (교장이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전제하에 경합 강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보다 나이 많은 선생님들이 계십니다. 그분들의 생활 스트레스가 저보다 크고 평생 고생입니다. 그분들이 강등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저보다 젊은 교사들도 있는데, 저보다 학교를 위해 더 많은 시간을 내어 공헌할 수 있으니, 그들도 강등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나는 스스로 (직급) 강등을 신청했다. 회의 후에 책임자들은 매우 화가 나서 말했다. “선생님 같은 훌륭한 교사가 강등된다면 뒷 일을 이끌어 나갈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체 교사에 대해서도 불공정합니다.” 나는 퇴직할 때 중학교 교사 직급의 최고 등급이었다.

직장에서 집을 양보하다

2001년 전후,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집을 분배했다. 모두 기다린 지 이미 오래됐다. 8, 90㎡의 집은 5만 위안(약 940만 원)이고 학교에 살면서 출근길의 고생도 면한다. 아침 자습이 6시, 저녁 자습이 9시인데, 학교에서 살면 정말 좋다. 내 집은 학교에서 자전거를 타고 20여 분이 걸리며 하루 네 번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어느 날, 교장이 나를 사무실로 불러 그의 어려움을 완곡하게 말하면서, 내가 주택 신청을 포기하길 바랐다. 만약 조건에 따라 배치한다면 나는 반드시 분배받을 수 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교장이 우리 학교 대법제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생을 많이 했다는 것을 생각했다. 박해 기간에 우리 지방 도시(鄕鎭)의 많은 대법제자들이 학교 교실에 불법으로 갇혔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저녁이 되면 교장이 우리 학교의 대법제자를 그의 집에서 자게 하고 그는 스스로 사무실에서 쉬었다. 우리는 모두 감동했다. 대법제자는 은혜에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남을 위해 생각해야 한다. 어쩌면 남들이 나보다 이 집이 더 필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바로 교장 선생님에게 집 구하는 것을 포기하겠다고 승낙했다. 이 과정은 매우 짧았고, 즐겁지도 않고, 괴로움도 없고, 그렇게 자연스러웠다. 모든 것은 위대하고 자비로우신 사부님 덕분이며, 이것이 대법의 위덕이다!

20여 년간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해서 봄, 여름, 가을, 겨울에 고생을 많이 했다. 학교에 거주하는 선생님들은 이미 점심 낮잠을 자기 시작하는데, 나는 아직 길 위에 있다. 현재 이 집은 이미 30여만 위안으로 올랐다. 신기하게도 20여 년 동안 나는 처음 선택을 후회한 적이 없다. 이것은 정말 기적이다. 대법제자는 진선인의 기준에 따라 수련하며 자비롭고 자상한 마음가짐으로 선타후아(先他後我)하는 높은 경지에서 인간 세상의 기적을 창조했다.

수련 전에 승부욕이 강했던 나는 명리정(名利情)을 위해 애써 추구하면서 얻는 기쁨과 잃는 슬픔을 느꼈다. 속세 중에서 끝없는 욕망은 나에게 끝없는 번뇌를 가져다줬다. 대법을 수련한 후 대법 사부님의 호탕하신 큰 은혜에 잠겨서 생명이 진선인과 동화되는 과정을 직접 겪으며 행복하고 아름답고 소탈하게 살고 있다.

 

원문발표: 2022년 5월 17일
문장분류: 수련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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